내 안에 마교있다 115
길초량이 우리 쪽으로 와서 나란히 서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대충 눈치들 챘겠지만, 우리 기동타격조의 선발 기준은 이번 통합 잠룡대전 개인전에서의 성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십육강 안에 들었던 관도들이 우선 선발 대상이었으며, 거기에 북부지맹에서는 남군호가, 동부지맹에서는 길초량이 추가된 셈이다.”
눈치 채고 있었다는 듯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관도들이 열 명이니 너희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이끌어줄 조장이 필요하다. 곧 출발해야 하니 빠르게 정하도록 하지. 물론 너희들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이다.”
제갈수광이 말을 마치자 모든 관도들이 말없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내가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다 보니 저러는 것이다.
물론 나는 조장 같은 거 맡을 생각 없다.
내가 막 거절 의사를 표현하려는데 제갈수광이 말했다.
“저 송유겸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잘 아는데, 송유겸은 조장 같은 직분을 맡을 주제가 못 된다.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라고 해서 관도들의 분위기를 잘 이끌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이보쇼! 다들 보고 있는데 대놓고 까내리기요?
관도들과 교관들이 웃고 있다.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지휘 교관을 맡은 만큼 내게는 전령이 필요하다. 송유겸은 내 전령을 맡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는 편하기도 하다. 아, 내 전령은 나에 관련된 잡일과 심부름을 도맡는 역할이기도 하다.”
“푸흐흐흡!”
애들이 웃고 있다.
애들도 제갈수광이 말하는 전령의 역할이 실질적으로는 따까리 역할이라는 사실을 알아 챈 것이다.
말은 저런 식으로 하고 있지만, 나는 제갈수광의 속뜻을 알고 있다.
제갈수광은 내 실전 역량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가 조원들에 대해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갖지 않는 쪽이, 우리의 실전 상황에도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아서 판단하여 자유롭게 움직이게끔 놔둘수록, 내 실전 역량이 훨씬 더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이후에는 관도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추소륵 쪽으로 향했다.
추소륵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제 경우에는 평소의 성격이 활발한 편도 아닌 데다가, 혼자 불경을 외우며 명상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제가 조장 역할에 적절치 않은 인사라는 사실을 저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속가제자라고는 해도 소림의 제자다.
저런 시간이 필요하긴 할 테니, 다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추소륵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관도들의 시선이 단목강 쪽으로 향했다.
단목강은 개인전에서 사강에 진출했을 뿐만 아니라 단체전에서도 맹활약을 한 바 있다. 실력 면에서 나와 추소륵 다음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황보충이 단목강을 향해 말했다.
“장강 사건 이후로 동부지맹의 관도 분들과 여러 차례 함께하면서 알게 된 건데, 송유겸 공자가 단목강 공자를 조장님이라고 부르더구려. 동부지맹 잠룡관의 비상 대비 체제 때문에 그런 모양이던데, 그 일로 조장 경험도 있는 만큼 단목 공자가 이곳에서도 조장을 맡는 게 어떻겠소?”
“아, 그 조장 얘기라면 종금무 공자와 강하령 소저 또한 각 조의 조장이시오. 두 분 또한 경험이 충분하시오.”
단목강이 대꾸하자 종금무가 바로 입을 열었다.
“하하, 갑반이라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조장을 맡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성격에 맞진 않더구려. 단목 공자도 아시다시피, 나는 이번 통합 잠룡대전에 동부지맹 잠룡관의 대표 격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관도들을 제대로 못 챙겼잖소.”
약간의 자책이 담긴 어조였다.
그러자 강하령도 입을 열었다.
“저도 갑반이라서 조장을 맡긴 했었지만, 경험을 해보니 스스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여러분처럼 대단한 분들을 잘 이끌 자신도 없구요.”
종금무와 강하령의 말을 들은 단목강이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단목강이 황보충에게 말했다.
“친분이 생겨서 어울리다보니 황보 공자야말로 친화력도 좋고 성격도 호탕하다는 걸 알 수 있었소. 무공 실력도 충분하시니 황보 공자야말로 조장 역할에 제격이신 듯하오. 황보 공자께서 맡으시는 게 어떻겠소?”
“이번 통합 잠룡대전에서 가장 대단했던 분들은 당연히 송 공자와 추 공자였지만, 개인적으로 내 마음을 가장 뜨겁게 만들었던 분은 바로 단목 공자였소. 특히 우리와의 단체전 결승 당시에 보였던 모습이 압권이었소.”
황보충이 바로 말을 이었다.
“단목 공자는 전날의 시합으로 인해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의지를 불태웠잖소. 진심으로 감탄했었고, 지금도 그 모습이 잊히지가 않소. 단체를 위해 그 정도의 의지를 보일 수 있는 분이라면, 우리의 조장으로서도 가장 적합한 분이라는 뜻 아니겠소?”
북부지맹의 다른 관도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라, 단목강이 또다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강하령이 말했다.
“저도 단목 공자님이 조장을 맡는 것에 대해 찬성해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제 절친한 벗이 단목 공자의 조에 속해 있는데, 그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모든 조원들이 단목 공자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고 해요.”
그녀가 말하는 절친한 벗은 우리 사십사 조의 부조장인 묘옥련일 것이다.
강하령의 말마따나 우리 조원들은 단목강을 매우 잘 따른다.
심지어는 까칠함의 대명사인 남궁설마저 단목강을 매우 잘 따른다. 천하제일세가의 금지옥엽임에도 단목강 앞에서는 공손하니, 이 정도면 조장으로서의 역량에 대해서는 말 다 한 거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단목강은 훌륭한 조장이다.
이번에는 남군호가 말했다.
“장강에서 지켜보니 단목 공자는 실전 실력도 매우 뛰어나셨고, 실전 상황에서의 시야도 매우 넓으셨소. 그런 면을 고려했을 때에도 단목 공자가 적임이라고 생각되오.”
이쯤 되자 대부분의 관도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다.
단목강이 아까보다 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제갈수광이 정리하듯 말했다.
“자,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니 단목강이 조장을 맡기로 한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관도들이 곧바로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짝!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조장도 바로 정하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부분의 관도들이 황보충을 바라보았다.
황보충이 양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조장이 남관도이니 이왕이면 부조장은 여관도들 쪽에서 하시는 것도······.”
그러자 악미조가 대꾸했다.
“우리가 지금 남관도, 여관도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똑같은 무인의 입장에서 주어진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맡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요?”
강하령과 모용리도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결국 황보충도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수광이 못을 박았다.
“이번에도 큰 이견은 없는 듯하니 부조장은 황보충이 맡기로 한다.”
짝짝짝짝짝짝!
이번에도 짠 것처럼 관도들이 곧바로 박수를 쳤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맹에서 우리의 움직임을 최대한 기밀로 유지하라고 지시했기에, 당분간 우리는 표행으로 위장하여 마차를 타고 이동할 것이다. 우리가 탈 마차는 중요 물품 수송을 위한 화물 마차로, 짐칸이 천막처럼 되어 사방과 천장이 방수포로 가려진 형태다. 기본적으로 절강에 있는 영강표국으로 향하는 표행이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다. 마차로 이동하다가 중간의 산지에서 내려, 그때부터는 신법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관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총 네 대의 화물 마차에 나뉘어 탈 것이다. 남자 교관들의 마차가 선두, 북부지맹 남관도들의 마차가 두 번째, 동부지맹 남관도들의 마차가 세 번째, 이세옥 교관과 여관도들의 마차가 네 번째다. 남관도들의 경우 다음 탑승부터는 지맹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섞여도 상관없다.”
일단은 길초량 놈과 같은 마차인 셈이니, 그것 참 잘 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즉, 우리는 한동안 표물 신세인 셈이다. 그렇기에 이동하는 동안에는 계속 마차 안에만 있어야 한다. 식사도, 수면도, 마차 안에서 해결한다. 이동 중에 이목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법한 곳에서만 잠깐씩 멈출 것이다. 생리 현상은 그 시간에만 나와서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음식이나 수분 섭취를 알아서 조절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급할 경우에는 마부석에 알리도록 한다.”
이후에도 제갈수광은 몇 가지 사항들을 관도들에게 전달했고, 관도들도 간혹 제갈수광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대강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창고의 문이 열렸다.
아까까지는 없었던 네 대의 마차가 창고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제갈수광의 말마따나 짐칸의 사방이 방수포 천막으로 가려진 형태의 마차들이었다.
모두가 죽립을 쓴 채로 각각의 마차에 탑승하자, 마차가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문에 다다랐을 즈음에 우리가 타고 있는 마차들이 잠시 멈췄다.
마부석 방향의 작은 덮개를 살짝 열고 밖을 보니, 대열의 앞쪽으로 말을 탄 인물들이 합류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뒤로는 소수의 인물들을 태운 마차 두 대가 합류했다.
일반적인 표행처럼 보이기 위해, 표두와 표사들, 쟁자수들이 합류한 것이다.
말을 탄 인물들이 표두와 표사들이며, 수레에 탄 소수의 인물들은 쟁자수들이다.
표행에서 쟁자수들은 적정량의 짐을 진 채로 걸어 다니는 게 일반적인데, 속도를 요하는 표행에서는 저렇듯 소수의 쟁자수들을 수레에 태워서 다니기도 한다. 표물들을 관리하고 표행에서의 잡일을 맡을 최소한의 일꾼들인 셈이다.
이윽고 영강표국 옥산지국의 정문이 열리더니 행렬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화물칸에는 볏짚이 깔려 있어 나름 안락했다.
단목강과 종금무가 마부석에서 가까운 안쪽 자리를, 나와 길초량이 바깥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러다 보니 나와 길초량은 자연스럽게 마주보는 형태였다.
마차가 나아가기 시작한 직후에 단목강이 말했다.
“길 공자께서 합류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소. 어쨌거나 반갑소, 길 공자.”
“하하, 잘 부탁드리오.”
길초량이 대꾸하자 이번에는 종금무가 나와 길초량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혹여 평소에도 친분이 좀 있으셨소?”
우리 둘 다 계반이니 저리 묻는 것이다.
길초량이 대꾸했다.
“있다마다요. 우리는 송 형이 입관했을 때부터 각별한 친분을 쌓아 온 사이요.”
“오호.”
종금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곧바로 종금무와 단목강을 향해 말했다.
“참고로, 두 분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길 형이야말로 우리 계반의 정신적 지주시오.”
“하하······, 미, 민망하게 무슨 정신적 지주씩이나.”
길초량이 창피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고, 나는 종금무와 단목강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두 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계반에 오 년간이나 머무르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오. 온갖 멸시천대를 감내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두꺼운 낯가죽이 필요하기 때문이오. 참고로 나도 길 형한테서 많이 배우고 있소.”
“푸흐흡!”
종금무와 단목강이 작은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길 형은 그 어려운 걸 해내셨으며, 두어 달 후면 바야흐로 계반의 육 년차가 되는 고귀한 존재시오. 계반을 끝까지 벗어나지 않으려는 관도들에게는 그야말로 큰 귀감이 되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길 형은 ‘계반의 고인 물’을 넘어 ‘계반의 썩은 물’이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소.”
“써, 썩은 물이라닛······!”
“푸하하하!”
길초량이 곧바로 항변하듯 말했지만 단목강과 종금무는 재미있다는 듯 웃을 뿐이었다.
“고이고 고여서 썩은 물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게 딱 들었을 때 어감은 좀 별로지만 계반에서는 매우 명예로운 칭호요. 아까도 말했듯 강인한 정신력과 철판 같은 낯가죽이 필요한 일이라, 계반의 일이 년차 관도들은 길 형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그 호칭을 사용하고 있소. 두 분께서도 혹여 그 호칭을 사용할 거면 경외심을 갖춰서 사용해주시길 부탁드리오.”
“푸흐흐흐흐흡!”
웃는 소리가 너무 크면 안 되니 소리죽여 웃고 있지만, 종금무와 단목강은 웃겨 죽겠다는 표정이다.
잠시 후 종금무가 말했다.
“두 분이 대화를 나누는 것만 봐도 서로 얼마나 친한지 알 것 같소. 서로를 ‘형’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그렇고.”
단목강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자, 길 형, 이제 해명할 시간이오.”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말하자 단목강과 종금무도 큰 관심을 보였다.
이제 길초량 놈이 뭐라고 대꾸하는지 보자.
곧 길초량이 입을 열었다.
“하하. 내가 비록 계반이긴 하나, 다른 건 몰라도 경신술 하나는 갑반 관도들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있소. 그래서 교관님들에게 내 경공 실력을 보여드리고는 잠룡대에 지원했던 것이오. 원래는 조용히 계반 생활을 하다가 졸업할 생각이었는데, 강호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마당이니 미력이나마 보태야 하지 않겠소?”
웃기고 있네.
이 자식아, 네놈이 경공만 잘하겠냐?
게다가 뭐? 교관들한테 경공 실력을 보여주고 지원을 해?
맹주 운천흠 내지는 무림맹의 수뇌부가 직접 지시를 내려서 기동타격조에 꽂아 넣었겠지, 이 자식아.
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놈이 말을 이었다.
“교관님들이 내 경공 실력을 보고 감탄하시기에, 이왕이면 정예 전투조에 끼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씀드렸소. 나와 친한 송 형 때문에 정예 전투조에 지원하고 싶었던 거요.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인 만큼, 정예 전투조에 선발될 게 빤하니까.”
종금무가 말했다.
“길 공자를 의심하자는 건 아닌데, 아무리 경신술이 뛰어나다 해도 그것만 갖고는 정예 전투조, 즉 이러한 기동타격조에 합류하기는 어려운 일이잖소. 현실적으로.”
길초량이 대꾸했다.
“하하, 그건 종 공자의 말씀이 맞소. 내가 가장 빼어난 게 경신술이긴 하나, 다른 무공도 조금씩은 하오. 미력이나마 도움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소.”
단목강이 말했다.
“하면 길 공자도 송 공자처럼 무공을 감춘 채로 계반에 머무르고 계셨던 거구려?”
“하하. 그렇기는 한데,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인 송 형처럼 대단한 수준일 리는 없소. 그러니 절대 기대하지 마시고, 혹여 전투가 벌어져도 없는 사람 취급하시오.”
길초량이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로 그렇게 대꾸했다.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지만, 놈은 신룡대 내지는 그에 준하는 특수 조직의 구성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기에 나는 매우 기대하고 있다.
* * *
표행의 속도는 제법 빨랐다.
첫 날에는 옥산을 출발하여 절강으로 진입한 후, 상산현을 지나서야 일박을 했다. 제갈수광이 미리 얘기했듯, 우리는 숙식을 마차에서 해결해야 했다.
이틀째의 표행은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오전에는 나와 길초량과 추소륵이 같은 마차에 탔고, 오후에 마차가 잠시 멈춘 후에는 추소륵 대신 황보충과 남군호가 우리 마차로 왔다.
그 날의 표행은 절강의 구주현을 한참 지나서야 종료되었다.
사흘째의 표행은 절강의 용유현을 지나 난계현으로 향했다.
미시정(오후2시) 무렵, 마차가 얕은 산지를 천천히 올라갈 즈음에 마부가 방수포의 틈을 열며 말했다.
“내리시라는 지시요.”
미리 약속된 바였기에 우리는 마차가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뛰어내렸다.
마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우리 측의 모든 인원들이 바로 옆에 있는 숲으로 몸을 숨겼다.
답답한 마차 안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영강표국의 마차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갈 뿐이었다.
숲속으로 숨어든 우리는 약간의 휴식을 취한 후 신법을 펼쳐 이동하기 시작했다.
각 지맹 잠룡관의 최고 실력자들이기에, 전체적으로 신법을 펼치는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그 와중에도 길초량의 신법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무게중심은 안정적이고 발놀림은 부드러웠다.
신법은 속도도 속도지만 공력의 효율도 중요하다. 그래야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신법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초량이 운용하는 공력의 기운은 미미하다.
신법에 드는 공력의 소모가 적다는 뜻이며, 이는 신법의 성취가 매우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무림맹의 끄나풀 자식은 내 예상대로 상당한 수준의 고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