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16화 (116/416)

내 안에 마교있다 116

우리는 계속해서 절강 땅의 동남쪽으로 이동했다.

절강의 남부는 대부분 산지이기에 경로만 잘 설정하면 이동 중에 남의 이목을 끌 일이 거의 없다.

낮에는 휴식시간을 최소화한 채 신법만 펼쳤고, 해가 떨어진 후에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노숙을 했다.

불을 피우지 않는 노숙으로, 모두가 미리 지급된 침낭을 펼쳐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잠을 잤다. 침낭은 두껍지는 않으나 방한 기능은 준수한 편이었다.

절강의 남부가 춥지 않은 지역이기는 한데 그렇다 해도 늦가을 산 속의 밤은 제법 쌀쌀하다.

그럼에도 일행들 모두가 고수들이다 보니 쌀쌀한 기온에도 크게 불편해 하지는 않는 모습들이었다.

신법으로 이동하기 시작한지 나흘째가 되었다.

정오 무렵, 절강 중남부의 선거현 인근에 있는 깊은 산지를 달리고 있는데, 풍광이 수려한 계곡 근처에서 교관들이 신법을 멈췄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이곳에서 보낸 후 내일 새벽에 출발할 것이다. 그러니 모두 편안하게 휴식들 취하도록.”

“교관님, 누구를 기다린다는 말씀이십니까?”

황보충이 묻자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앞으로 우리를 도와줄 분들이다. 때가 되면 어차피 알게 될 테니 다들 조용히 쉬고 있도록.”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제갈수광보다 지위가 높거나 연륜이 높은 사람들인가 보다.

이왕 대낮부터 휴식이 주어진 김에, 교관이고 관도고 할 것 없이, 남녀 모두가 계곡물에 입수했다.

남자들은 대부분 상의를 탈의한 채 곧바로 입수했고, 여자들은 물에 젖어도 살이 비치지 않는 흑의나 남의 등으로 갈아입고 온 후에 입수했다.

물이 깨끗했기에 나름의 목욕을 겸한 입수다.

제갈수광과 차우기만 입수하지 않은 채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후에는 각자 흐르는 물에 빨래를 하여 이곳저곳에 널어 두고는 휴식을 취했다.

한데 해가 저물 때까지도 우리가 기다리는 이들은 오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상쾌한 기분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슬슬 저녁 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던 제갈수광과 차우기가 신법을 펼치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의 뒤를 세 개의 인영이 따르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던 인물들이 드디어 도착한 모양이다.

안력을 돋워보니 제갈수광과 함께 오고 있는 이들은 모두가 노인들이었다.

노인들 세 명 중에서 두 명은 등에 멘 행장 외에도 어깨에 따로 커다란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커다란 통나무를 짊어지고 있었다. 참고로 제갈수광과 차우기는 더 커다란 통나무를 지고 있는 상태다.

제갈수광과 노인들이 계곡물가의 평평한 자갈밭으로 향하더니 들고 왔던 짐들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 즈음에는 우리도 이미 노인들 근처로 모여든 상태다.

노인들의 나이는 육십대 후반에서 칠십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상당한 연령의 노인들이다.

노인 중 한 명은 체격이 건장했으며 등에 구겸도를 차고 있었다. 구겸도는 창대에 도신이 달려있는 실전용 대도다.

다른 한 명은 키가 작고 통통했으며 허리춤에 도집을 차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도 키가 작았지만 그는 마른 체형이며, 허리춤에 검집을 차고 있었다.

가까이서 세 노인의 특징과 용모를 확인하며 천마신교의 정보를 떠올려 봤는데,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정체가 짐작되는 얼굴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의아함 가득한 눈빛으로 노인들을 바라보는 중이다.

관도들도, 장호산과 이세옥조차도, 노인들의 정체를 전혀 모르는 분위기다.

노인들은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로 우리를 바라보는 중이다.

한데 그들의 표정과는 별개로, 노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도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일흔 즈음의 나이임에도 자세가 상당히 꼿꼿했으며 안광은 형형했다.

굳이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도 절정고수임을 알 수 있는데, 내 느낌에는 셋 다 절정의 후반이다.

참고로 절정의 후반을 완전히 지나면 절정의 극에 이르게 되는데, 그 경지를 최절정이라고 부른다.

수십 명의 강호 명숙들이 최절정의 경지에 있으며, 당연히 천마신교에도 많다. 그렇기에 나는 최절정고수들의 느낌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노인들은 최절정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육감은 마치 최절정고수들 앞에 선 것처럼 미묘한 자극을 느끼고 있다.

이 느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굳이 깊게 고민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전투 기술자, 즉 실전 고수 출신이라는 뜻이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앞으로 우리를 도와줄 백도의 대선배님들이시다. 모두 인사드리도록.”

모두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그 와중에도 관도들은 여전히 궁금해 하는 분위기다.

백도의 대선배들이라고는 하는데, 나처럼 정체조차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구겸도를 차고 있는 체격 건장한 노인이 말했다.

“허허허! 듣던 대로 다들 뛰어난 아이들이라는 걸 한 눈에도 알겠구나!”

참고로 그는 세 명의 노인 중에서 가장 젊어 보이는 노인이기도 하다.

“헐헐헐! 얘들 눈동자 반짝반짝 빛나는 것 좀 보십쇼.”

“헐헐! 좋군요! 백도의 미래가 든든합니다.”

도를 차고 있는 노인과 검을 차고 있는 노인도 각각 한 마디씩을 보탰다.

도를 차고 있는 노인이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아 보이고, 검을 차고 있는 노인의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인다.

한데 의아하게도, 더 늙어 보이는 두 노인이 구겸도를 차고 있는 노인에게 말을 높이는 모양새다.

곧, 도를 차고 있는 통통한 노인이 말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합니다. 어서 우리 소개를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구겸도를 차고 있는 건장한 체격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노부는 원을태라는 사람이다.”

이어서 도를 차고 있는 노인이 말했다.

“헐헐, 노부의 이름은 탕유심이다.”

“노부는 촉홍결이라 한다.”

마지막은 검을 차고 있는 노인의 말이었다.

원을태, 탕유심, 촉홍결.

아무리 그 이름들을 떠올려 봐도 역시나 모르겠다.

처음 듣는 이름들이다.

다른 관도들도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다.

우리의 표정을 확인했는지, 구겸도를 차고 있는 원을태 노인이 빙그레 웃더니 입을 열었다.

“허허허! 열심히 기억을 떠올려 봐도 소용없을 게다. 너희들이 우리 이름을 들어봤을 리 없다. 우리는 신룡대 출신이거든.”

그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살짝 놀라긴 했지만 다른 애들보다는 덜 놀랐다.

내 경우에는 이들이 전투 기술자 출신일 거라고 약간이나마 예상하고 있었던 탓이다.

순간적으로 확인해봤는데, 원을태의 발언을 듣고도 놀라지 않은 사람은 길초량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도 눈을 크게 떠 보이긴 했다. 그러나 눈동자에 놀란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놀란 척만 한 것이다.

즉, 이 자식은 노인들의 정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거나, 매우 정확하게 짐작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사실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왠지 놈이 신룡대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느낌이다.

도를 차고 있는 노인, 탕유심이 말했다.

“신룡대 복무를 마친 후 무림맹으로 진출하는 이들도 있지만, 맹의 도움을 받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맹으로 진출했다면 너희들도 우리의 이름을 들어봤겠지. 그러나 우리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 경우이기에 너희들이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검을 차고 있는 노인, 촉홍결이 말했다.

“헐헐, 참고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나이는 원 형님이 가장 많고 탕 형님이 둘째이며 내가 막내다. 원 형님은 부조장 출신이기도 하지.”

그 말에 관도들의 시선이 원을태 쪽으로 향했다.

관도들의 눈빛에 경외심이 담겨 있다.

다른 조직도 아닌 신룡대인 만큼, 부조장을 맡았을 정도면 대단한 실력자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촉홍결이 말을 이었다.

“현역에 있을 때 우리는 각각 다른 조였다. 몇 차례 합동 작전을 함께 하면서 알게 되어, 당시에도 서로 형님, 아우로 부르며 지냈었지. 퇴역한 후에도 가끔 만나곤 했고.”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원을태가 말했다.

“자자, 나머지 얘기는 일단 먹으면서 하지. 우리를 기다리느라 다들 배고팠을 테니.”

저들이 짊어지고 온 통나무들은 잘 마른 통나무들이었다.

탕유심이 자신의 도를 이용하여 그 커다란 통나무들을 잘라 장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무를 자르듯 매우 손쉽게 통나무들을 자르는 모습이었다.

원을태와 촉홍결이 메고 온 두 개의 커다란 보따리에는 큼지막하게 잘려진 고깃덩어리들이 들어 있었다. 우리 인원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을 양이다.

노루고기 향이 미세하게 나고 술 냄새도 난다.

술에 재워서 냄새를 잡은 노루고기인 모양이다.

촉홍결이 단검을 이용하여 노루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랐고, 원을태는 그 고기들을 꼬치에 꿰었다. 두 사람 모두 매우 숙련된 솜씨였다.

수십 개의 꼬치들까지 미리 준비해온 걸 보면, 노인들은 애당초 우리들을 제대로 먹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중앙에 모닥불 두 개가 피워진 가운데 모두가 타원형으로 둘러앉았다.

노인들이 알아서 고기를 구웠다.

꼬치에 꿰인 고기가 익기 시작하자, 노인들이 여자들부터 챙긴 후 남자들을 챙겼다.

“고기는 많으니 염려 말고 많이들 먹거라.”

모두가 감사 인사를 한 후에 꼬치를 받아 고기를 먹었다.

노인들은 맨 나중에 고기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도 또 다른 꼬치들을 굽는 모습이었다.

황보충이 제갈수광에게 물었다.

“간만의 포식이라 좋긴 한데, 이렇듯 고기 구워먹으며 불 피워도 괜찮은 건지요? 지금껏 우리는 남들의 이목에 띠지 않기 위해 노숙할 때 불도 안 피웠잖습니까.”

제갈수광이 곧바로 대꾸했다.

“너희들은 몰랐겠지만 사실 세 분께서는 이틀 전부터 멀리에서 우리의 경로를 따라오고 계셨다. 우리에게 모종의 추적이 붙었는지를 신중하게 확인하며 오셨던 거다. 추적이 없다는 걸 확신하셨기에 오는 길에 고기도 준비하신 거고.”

“아하.”

황보충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룡대 출신의 고수들이 신중하게 확인한 후에 이러는 거라고 하니 곧바로 납득한 것이다.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그간 빠르게 이동하느라 지치기도 했고, 불도 피울 수 없었기에 식사도 변변찮았다. 세 분께서 그걸 아시고 우리를 생각해서 준비하신 거다. 감사한 마음 잊지 말도록.”

이에 관도들이 다시 한 번 노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난 후, 관도들이 한 명씩 일어서서 노인들을 향해 본인 소개를 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일어선 관도는 단목강이었다.

“부족하지만 이 기동타격조의 조장을 맡고 있는 단목강이라 합니다. 동부지맹 잠룡관의 사 년차며, 단목세가 출신입니다.”

“오! 단목강이라는 이름이면 단목세가의 소가주였지?”

탕유심이 되묻자 단목강이 대꾸했다.

“예.”

“오오! 단목세가주가 자식을 참 잘 키워냈구나······!”

“단목세가주는 저 아이를 보고만 있어도 든든하겠습니다.”

원을태와 촉홍결도 그런 말들을 보탰다.

노인들은 겉으로만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한 눈빛이었다.

“대선배님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단목강이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 앉았다.

이후에도 관도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조장 다음은 부조장인 황보충이었고, 그 다음에는 북부지맹 쪽 관도들이 차례로 본인 소개를 이어갔다.

추소륵, 남군호, 악미조, 모용리의 순서였고, 그들에 이어서 동부지맹의 종금무와 강하령이 본인 소개를 했다.

지금까지 소개한 관도들은 모두가 유명한 문파나 세가 출신이라, 그때마다 노인들은 단목강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은 건 길초량과 나뿐이었는데, 노인들이 내 쪽을 바라보고 있기에 결국 내가 먼저 일어섰다.

“동부지맹 잠룡관의 삼 년차인 송유겸이라 합니다. 저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네가 바로 송유겸이라는 아이였구나?”

내가 말을 이어가려던 중에 끊고 들어온 노인은 원을태였다.

“······그러합니다.”

내가 대꾸하자 탕유심이 대견하다는 듯 말했다.

“이번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가 바로 너였구나!”

“헐헐, 기가 막힌 미남이라더니 역시나 그렇구나!”

마지막에 촉홍결도 한 마디를 보탰다.

역시나 통합 잠룡대전 때문에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거군.

나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하고 있다.

“이름난 세력 출신이 아닌데도 우승을 차지하다니, 참으로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지!”

원을태의 말에 다른 노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탕유심이 다른 관도들을 보며 말했다.

“아, 신룡대원들 중에는 명문 출신이 아닌 대원들이 더 많다. 우리 같은 경우에도 이름난 세력 출신들이 아니라서, 저 아이의 우승 소식을 듣고는 모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던 게지.”

관도들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르신들.”

빙그레 웃으며 그 말을 남긴 후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길초량이 일어서서 본인 소개를 했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대선배님들. 저는 동부지맹 잠룡관의 오 년차인 길초량이라 합니다. 저 또한 딱히 내세울만한 사문이나 가문은 없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원을태가 대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뛰어난 아이들 사이에 끼었다는 게 더 대단한 일이지.”

“너 또한 딱 봐도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겠구나.”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니 매우 듬직하구나.”

탕유심과 촉홍결도 한 마디씩을 보탰다.

그 와중에도 나는 길초량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눈빛을 유심히 살폈다.

‘후후후.’

웃음이 난다. 물론 속으로만 웃었다.

남들의 눈에는 노인들이 길초량을 매우 대견하게 여기는 것으로만 보일 것이다. 길초량 또한 노인들처럼 이름난 세력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초량이 신룡대일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내 눈에는 다른 게 보인다.

기대감과 신뢰감을 넘어, 애정과 그리움마저 느껴진다. 노인들 세 명의 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다.

저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이 정도면 거의 확실해졌다.

길초량, 너 이 자식, 역시나 맹주의 사냥개였구나.

참고로 이 형님은 한때 천마의 사냥개였단다.

모든 소개가 끝나고 나자 추소륵이 제갈수광에게 물었다.

“교관님, 세 분 대선배님 외에도 우리 조에 더 합류할 분들이 계십니까?”

“아니.”

이게 우리 기동타격조의 전부라는 뜻이다.

관도 열 명, 교관 네 명, 노고수 세 명으로, 총원은 열일곱 명이다.

결과적으로 맹주 운천흠이 말했던 안전장치라는 게, 우리 기동타격조의 경우에는 저 세 명의 노인들인 셈이다.

다른 조직도 아닌 신룡대 출신의 노고수들인만큼, 나름 훌륭한 안전장치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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