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28
잠룡대에 따로 정예 전투조가 꾸려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정식 명칭은 기동타격조라고 했던가.
종금무, 단목강, 강하령, 송유겸.
동부지맹을 대표하는 관도들 중에서는 그 네 명이 기동타격조에 선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었다.
한데 기동타격조의 종적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가 근래 그들의 소식을 접했다.
그들이 최근에 절강의 동남부 해안가인 서안현에서 해적들과 싸워, 큰 전공을 세웠다는 소식이었다.
같이 절강의 해안가에 파견되어 있으니 잘하면 마주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곳에서 이렇듯 단목강을 보게 된 것이다.
우문직의 눈이 빠르게 뒤쪽을 훑었다.
단목강이 있다면 종금무와 강하령도 있을 테고, 누구보다 반가운 송유겸도 있을 테니까.
죽립인들 중에서 송유겸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선봉의 바로 뒤쪽 열에 있었기 때문이다.
송유겸은 강탄술을 펼치며 전방을 지원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도 이따금씩 살짝 도약하여 측면이나 후방의 먼 곳을 지원하기도 했다.
송유겸과 친하긴 한데, 그가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다.
딱 보기에도 속도, 정확도, 위력 등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강탄술이었다. 쇠구슬이 날아갈 때마다 ‘퍽’소리가 나며 적들이 어김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적들에게 대처하는 움직임 또한 가볍고 부드러웠다. 등에 묵직해 보이는 자루를 짊어지고 있는데도 그랬다. 역시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열에, 송유겸의 옆에 있는 인물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교관 제갈수광이었던 것이다. 제갈수광이라면 당연히 정예 전투조의 교관으로 투입되었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활을 쏘고 있다.
주로 전방에 화살을 날리고 있었는데, 화살이 날아간 곳에 있는 적들이 어김없이 죽어나가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연사 속도마저도 매우 빠르다는 점이었다.
제갈수광 또한 전방을 지원하다가도 종종 도약하여 측면과 후방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 열에 위치한 세 사람 중에서 중앙이 제갈수광이고 오른쪽이 송유겸이다.
제갈수광의 왼쪽에 있는 인물은 누굴까 하고 살펴봤는데,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는 얼굴이긴 한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길초량 공자······?’
이럴 수가.
계반의 터줏대감인 길초량이 기동타격조에 속해 있다니.
길초량과도 친분이 깊다보니 더욱 놀랍다.
딱 봐도 매우 뛰어난 실력이다.
적들을 상대하는 움직임도 그렇고 철비정을 날리는 솜씨도 그랬다. 가볍게 움직이며 정확하게 철비정을 꽂아 넣고 있었다.
선봉의 세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돌파할 수 있는 건지도 충분히 알 것 같다.
이 열의 제갈수광, 송유겸, 길초량이 원거리 무기를 통해 지원을 워낙 잘 하기 때문인 것이다.
기동타격조가 바로 앞을 지나가고 있다.
도약하여 강탄술을 펼친 송유겸이 잠깐 고개를 돌리더니 한쪽을 향해 포권해 보였다.
교관 양소열 방향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양소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러더니 곧 송유겸의 전음이 들려왔다.
[우문 공자, 무운을 빌겠소. 독침, 독탄 조심하시고 나중에 봅시다.]
전음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곧바로 대꾸했다.
[알겠소. 송 공자도 부디 몸조심하시오. 송 공자라면 알아서 잘 하시겠지만.]
송유겸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전방을 향해 쇠구슬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핫. 우문 공자, 몸조심하시오! 나중에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서 밤새 한 잔 합시다!]
길초량의 전음이었다.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길 공자도 몸조심하시오. 길 공자가 왜 그 조에 끼어 있는지에 대한 해명도 그때 듣겠소. 하하.]
[하핫! 알겠소. 단단히 각오해야겠구려.]
전음으로 대꾸한 길초량이 다시금 부지런히 철비정을 날리기 시작했다.
기동타격조가 빠르게 지나쳐갔을 때쯤, 우문직은 검병을 꽉 쥔 상태였다.
우문직의 눈동자에 각오가 가득했다.
‘저 두 사람에게 이대로 마냥 뒤처져버릴 수는 없지.’
더 치열해져야 하리라.
최소한 저 친우들과 보조를 맞출 수준은 되어야, 앞으로도 저들과 같은 세계를 볼 수 있을 테니까.
* * *
기동타격조 전체가, 이전에 서안현에서 해적들을 상대로 첫 실전을 벌였을 때보다 훨씬 잘 싸우고 있다.
세 노인과 교관들이 싸우는 모습은 그때와 큰 차이가 없다. 달라진 건 관도들이다.
관도들도 이제 전투 시에 본인이 뭘 해야 전력에 더 보탬이 될지를 알고 움직이는 모습이다.
그동안 관도들 스스로가 전투시의 역할에 대해 꾸준히 고민했다는 증거다. 알아서 저렇듯 발전하고 있으니, 확실히 뛰어나긴 뛰어난 애들이다.
전투 중에 양소열에게 인사한 후, 우문직과 사옥연에게 차례로 전음을 보내어 인사했다. 나름 친분이 있는 얼굴들과 전장에서 마주치니 반가운 마음도 크다.
아군이 많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우리의 등장으로 인해 다들 사기가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후에도 기동타격조는 전선을 따라 계속 전진하며 아군을 지원했다.
주경명, 목태월, 형가섭, 엄상평 등, 통합 잠룡대전에 함께 참가했던 관도들과도 눈인사를 나누었다. 인솔 교관이었던 황염기도 보이기에 그에게도 짧게 포권을 해보였다.
소충광과 단목홍신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두 사람과도 전음으로 직접 인사를 주고받았다. 우문직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독침과 독탄을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여 주었다.
적의 수가 많다보니 일대에서 감지되는 적측 절정고수들의 기척 또한 매우 많았다.
우리는 나아가는 경로 근처에 있는 절정고수들에게는 최대한의 타격을 가하려 노력했다. 실제로 몇 놈을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적진 깊숙한 곳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리 기동타격조라 해도 그들을 죽이기 위해 적진 깊숙이 파고드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일반 적도들의 수를 줄이는 일도 중요한 상황이다.
우리는 무리하지 않은 채로 전선을 오가며 계속해서 적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우리가 참전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체적으로 전선이 서서히 밀려나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밀려나지 않고 있다.
전선을 두 차례 왕복하며 지원한 후, 우리는 잠시 후방으로 물러나 정비를 취했다.
간이 무기고 역할을 하는 수레에서 암기와 화살 등을 재보급한 후, 근처에서 운기하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틈틈이 휴식을 취하며 체력과 공력을 관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슬슬 준비한다. 운기조식을 마친 인원들부터 집합하도록.”
제갈수광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침 삼 회차의 운기조식이 거의 끝나가고 있던 상황이라, 마무리를 하고는 화살 자루를 짊어지고 제갈수광 쪽으로 다가갔다.
운기조식을 마치고 집합한 인원은 아직까지 반도 되지 않은 상태다.
교관은 제갈수광과 이세옥, 노인 쪽은 탕유심과 촉홍결, 관도는 추소륵과 악미조와 나였다.
그때쯤, 저 멀리 전선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탄!”
퍼벙! 퍼버버벙!
집합해 있던 인원들이 놀란 눈빛을 교환할 때쯤, 전선 쪽에서 비명과 외침들이 이어졌다.
“크아악!”
“으악!”
“독탄이다! 모두 신속하게 후퇴!”
“중앙 쪽 조심! 적측 고수들이다! 으악!”
제갈수광이 아직 운기조식이 끝나지 않은 이들을 향해 즉시 지시했다.
“우리 먼저 가겠소. 차 교관이 원 선배님과 함께 나머지 인원들을 챙겨서 합류하시오.”
운기조식을 취하는 중이라 대꾸는 없었다. 그러나 당연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송유겸은 그 자루, 내려 놔도 될 것 같다.”
적측의 고수들이라는 외침이 들렸었다. 절정고수라는 뜻이다.
그들을 막으러 가야 하는데, 화살 자루를 짊어진 채로 상대할 만한 자들이 아니다. 그래서 저 지시를 내린 것이다.
“예.”
내가 신속하게 자루를 벗어 놓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출발.”
우리 일곱 명이 바닥을 박차며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쯤,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던 인원들 중 한 사람이 빠르게 우리 뒤쪽으로 따라 붙었다.
길초량이었다.
우리는 후퇴하고 있는 무림맹의 무인들과 관도들을 지나치며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곧, 뭉쳐 있는 적측 절정고수들의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오십 명? 아니 육십 명도 넘는 것 같다.
문제는 이 순간에도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 맞서는 기척들도 느껴진다.
무림맹 측의 절정고수들인데, 아직 이십여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은 후퇴하며 싸우는 중이다. 그들의 주변으로도 백도의 절정고수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다.
그러나 적측 절정고수들이 합류하는 속도에 비해 아군 쪽의 속도가 많이 느리다.
이 순간에도 적들은 전선의 이곳저곳에서 독탄을 던지며 머릿수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전선에 퍼져 있는 아군의 절정고수들은 동료들을 지키며 퇴각시켜야 한다. 부상자도 챙겨서 퇴각시켜야 한다.
반면 적측 절정고수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로 인해 양측 절정고수들의 합류 속도도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선두에서 달려가던 제갈수광이 고개를 돌리며 관도들을 향해 말했다.
“저쪽에 모여 있는 수십 명의 적도들은 모두가 절정고수들이다. 집중해야 한다. 일단은 아군 고수들을 보호하며 후퇴하는 형태로 싸울 것이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절대 무리하지 말고 즉시 뒤쪽으로 쭉 빠진다. 알겠나?”
“예!”
“두 선배님들과 나와 추소륵이 전열을 맡는다. 악미조가 비표술로 촉 선배님을, 길초량이 탕 선배님을, 이 교관이 추소륵을, 송유겸이 나를 지원한다. 독탄과 독침 등에 특히 유의한다.”
“예!”
우리가 대꾸를 마치자 제갈수광이 신법 펼치는 속도를 더 높였다. 우리도 일제히 속도를 높이며 보조를 맞추었다.
이윽고 멀리로 절정고수들이 얽히고 있는 지점이 보이기 시작한 순간, 제갈수광이 화살 세 대를 한꺼번에 시위에 메긴 채로 잡아당겼다.
그 상태에서 화살들에 공력을 주입하며 달리던 제갈수광이 허공으로 도약해 올랐다.
투웅!
슈슈슉-
세 발의 화살이 적측 절정고수들을 향해 쾌속하게 날아갔다.
무림맹의 절정고수들을 뒤쫓던 적측 절정고수들이 즉시 피하며 측면으로 도약해 올랐다.
그곳의 적들도 모두가 절정고수들인 만큼, 멀리에서 날린 화살에 쉽게 당할 리는 없었다.
화살 세 발이 그대로 적들의 정면에 꽂혔다.
퍼버벙!
화살이 박힌 자리에서 흙과 먼지들이 비산했다.
화살이니 상식적으로는 그냥 쑥 박혀야 하는데, 땅바닥에 닿는 순간 폭발력을 일으킨 것이다.
애초에 제갈수광이 그럴 목적으로 내공을 담았기 때문이다.
살상보다는 견제의 목적이었다고 봐야 한다.
후퇴하며 싸우던 무림맹 측 절정고수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적측 선봉과의 거리가 몇 장 앞까지 가까워졌을 때쯤, 제갈수광이 활과 전통을 후방으로 멀리 던졌다. 그러더니 즉시 쌍검을 뽑아들며 적들을 막아섰다.
탕유심과 촉홍결과 추소륵도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며 전열에 섰다.
제갈수광이 미리 지시했던 대로 후열도 곧바로 위치를 잡고 암기술을 펼치며 전열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일전에 전리품으로 획득했던 목갑에서 독침들을 꺼내 든 상태다. 달려오면서 미리 준비했다.
제갈수광이 나를 본인의 뒤에 위치시킨 이유를 알고 있다.
내게 최대한 맞춰줄 테니, 암기술을 이용하여 적을 확실하게 마무리하라는 뜻이다.
확실하게 마무리하기에 독침만한 게 없다.
밤중이고, 사람도 많고,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강력한 기운들이 오가는 상황이니 효율성도 좋다.
캉! 캉!
제갈수광의 쌍검이 정면의 적을 막아낸 순간, 각이 보였다.
천섬무를 고단계로 운용하며 오른손을 매우 간결하게 털어냈다.
상대가 절정고수들인 만큼, 어설프게 내공을 아끼다가는 헛수고가 될 수 있다.
지금은 하나씩이라도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할 때다.
쇠구슬과 소비도를 쓰지 않고 독침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설령 스쳐가는 경우에도 마무리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내 손을 떠난 독침이 거의 소리도 없이 제갈수광의 가랑이 아래를 지나쳐, 적의 장딴지에 그대로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