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29
적측 절정고수들의 수가 훨씬 많기에 무림맹 측의 절정고수들은 후퇴하며 싸우는 중이다.
기동타격조의 우리 여덟 명은 짧게 치고 빠지는 형태로 적측 절정고수들의 진격 속도를 늦추었다.
도와야 할 아군들이 이곳저곳에 많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들 또한 한 곳에 오래 머물면 금세 포위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측 절정고수들이 계속 꼬리를 잡으려 하는데도, 우리는 그들을 어렵지 않게 떨쳐내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중이다.
전열의 인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며, 후열의 인원들이 정확한 암기술을 통해 엄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빛을 발하고 있는 건 교관 이세옥의 암기술이다.
이세옥은 현재 길초량처럼 철비정을 쓰고 있다.
복대와 다리의 가죽 띠에는 유엽비도가 꽂혀 있는데, 주로 쓰고 있는 건 철비정이다. 허리춤의 양쪽에 차고 있는 가죽 주머니에서 계속 철비정이 나오고 있다.
많은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철비정을 가득 챙겨서 나온 모양이다.
한데 가만히 보니 날리는 시점도 매우 적절할 뿐만 아니라, 철비정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도 길초량보다 뛰어났다.
확실히 암기술 담당 교관다운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길초량의 철비정술이 수준 낮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세옥에게는 암기술이 주 무공인데, 길초량에게는 암기술이 보조 무공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경우도 길초량과 같다.
그런 식으로 일각(15분) 정도를 열심히 움직이는 동안, 우리 여덟 명은 적측의 절정고수 열댓 명을 처치했다.
우리가 이곳저곳 짧게 치고 빠지는 형태로 싸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 중에서 일곱 명이 내 독침에 당했다.
적이 역동작 등에 걸렸을 때, 확실한 순간에만 천섬무를 제대로 운용하여 던졌기 때문이다.
나는 엄호 목적으로 쇠구슬이나 소비도를 날리지도 않았다.
이 또한 놈들을 확실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또 다시 한 차례의 짧은 지원과 견제를 마치고 이동할 때쯤, 후방에서 차우기와 원을태가 기동타격조의 나머지 인원들을 데리고 합류했다.
달리는 와중에 제갈수광이 말했다.
“현재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적들은 절정고수들이며, 숫자도 너무 많다. 몇몇 관도들에게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살아남아야 다음 기회도 있다는 내 말, 기억할 것이다. 황보충은 일전에 내가 지시한 대로, 해당 관도들을 데리고 후방으로 퇴각하여 다른 잠룡일대의 인원들 쪽으로 합류한다.”
“예!”
그 말이 끝나자마자 황보충이 달리면서 옆으로 빠졌고, 이어서 종금무, 강하령, 남군호, 악미조, 모용리가 그 뒤를 따랐다.
“이따 뵙겠습니다.”
부조장인 황보충이 대표로 그렇게 말하더니 여러 관도들을 이끌고 퇴각했다.
원을태마저 합류하자 원래 전열에 있었던 촉홍결이 후열로 빠졌다. 그러더니 악미조처럼 소비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악미조의 소비표술을 다듬어줬던 사람이 촉홍결이다.
과연 신룡대 출신답게 암기술 또한 수준급이었다.
그리하여 전열에는 제갈수광, 원을태, 탕유심, 단목강, 추소륵이 섰고, 후열에는 나, 이세옥, 길초량, 촉홍결, 차우기, 장호산이 섰다.
차우기와 장호산도 교관이니 기본적인 암기술은 익힌 사람들이다. 차우기는 철비정을, 장호산은 소비도를 날리고 있다.
기동타격조의 구성원들 중에서도 정예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 우리는 아까에 비해 조금 더 여유롭게 적측 절정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일다경 동안 적측 절정고수 스물네 명을 처치했는데, 내 독침으로 처치한 수가 열 명이다.
우리는 갈지자[之] 형태로 전장을 오가며 아군을 지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점차적으로 퇴각하는 방식이었다.
전선의 우측 끝 부분인 하천 근처에 다다랐을 때쯤, 약 서른 명의 적측 절정고수에게 포위된 무림맹 측의 무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쪽의 모두가 즉시 반응하며 빠르게 달렸다.
사거리에 들어오자 제갈수광이 쌍검을 한 손에 모아 쥐며 유엽비도를 연속으로 날렸고, 이세옥 또한 매우 오랜만에 양손에 유엽비도를 쥐고 연속으로 날렸다.
간격이 조금 더 가까워지자 적들을 향해 비표와 철비정도 날아들었다.
덕분에 포위가 풀렸고, 우리 측의 전열에 있던 인원들이 즉시 무림맹의 무인들을 보호하는 형태로 막아섰다.
“부상자들 수습해서 어서 퇴각하시오.”
그러자 무림맹의 무인들 중 멀쩡한 자들이 부상자들을 업거나 안은 채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본격적으로 적측 절정고수들과의 전투를 시작했다.
적측 절정고수들도 독탄, 독침 등을 날리며 우리에게 대항했다.
그러나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인원들은 기동타격조 중에서도 정예들이다. 게다가 이전의 실전을 통해 독탄과 독침 등은 이미 경험해 보기도 했다.
짧은 시간 상대하는 와중에 이미 적측 절정고수들 여섯 명이 죽었고, 그 중에 세 명이 내 독침에 죽었다. 내가 오로지 독침을 빠르고 정확하게 날리는 일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싸움을 이어가던 한 순간, 세 노인과 제갈수광의 고개가 거의 동시에 측면으로 돌아갔다.
나 또한 뭔가를 느끼고는 즉시 정신을 집중했다.
그 직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한쪽에서 강력한 기운들 다섯 개가 우리를 향해 가공할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기운 모두 사파의 기운이다.
모두가 얼추 우리 노인들 급의 고수였다. 게다가 그 중의 하나는 유독 강력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우리가 기동타격조의 정예라고 해도 이건 위험하다.
내가 뭐라고 외치려던 순간, 제갈수광의 외침이 먼저 들렸다.
“위험! 퇴각! 전속력으로!”
외침이 들리자마자 모든 인원들이 일제히 전선을 이탈하더니, 후방을 향해 쾌속하게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달리는 와중에도 우리 인원들은 뒤쪽을 향해 꾸준히 암기를 날렸다.
방금 전까지 싸웠던 절정고수들이 추격해 오고 있었기에, 그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여러 암기들이 뒤쪽을 향해 날아가는 상황에서, 나 또한 교묘하게 독침을 섞어서 날렸다. 그 와중에도 두 놈이 독침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파의 강자들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제갈수광과 차우기와 세 노인이 즉시 측면으로 이동했다.
따라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본인들이 다섯 놈의 강자들을 막아서는 형태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곧, 다섯 놈의 강자들이 우리의 측면에 다다랐다.
살펴보니 다섯 놈들은 모두 사내들이었고, 나이는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놈들은 복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유심히 봤는데 내 기억에 있는 얼굴들은 없다.
즉, 여태까지 사파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놈들인 것이다.
다섯 놈이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우리의 측면에 짓쳐들었다.
우리 쪽에서도 대비하고 있었기에, 양 측의 열 명이 거의 동시에 격돌했다.
카가가가강!
우리 인원들의 중앙 쪽에 위치해 있던 나는 그 순간에 기척을 지우며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 보니 우리 쪽의 두 사람이 적들의 힘을 못 버티고 밀려난 모습이었다.
교관 차우기는 뒤로 한 걸음 밀렸고, 노인 원을태는 두 걸음 밀렸다.
차우기가 밀린 이유는 측면을 막아선 이들 중에 무공이 가장 낮기 때문이며, 원을태가 밀린 이유는 그의 상대가 다섯 놈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기 때문이다.
원을태도 노인 치고 덩치가 좋은 편인데, 원을태에게 달려든 놈은 덩치가 더 컸다.
그놈은 덩치만큼이나 커다란 검을 들고 있었다.
일단 검신의 길이가 상당히 길다.
일반적인 무인들이 쓰는 검은 검신의 길이가 두 자 남짓에서 세 자 사이다. 한데 놈이 쓰는 검의 경우, 검신이 거의 네 자 가까이 되어 보였다.
검신의 모양새 자체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검신의 폭이 손잡이 쪽으로 갈수록 매우 넓어지고, 검극으로 갈수록 협봉검 만큼이나 좁아지는 형태였다. 그 차이가 일반적인 기준보다 훨씬 컸다.
그렇기에 놈이 들고 있는 검에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기형거검이라 할 수 있겠다.
성난 소처럼 생긴 놈이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또다시 원을태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기형거검을 휘두르면서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장호산이 즉시 검을 빼든 채 원을태를 지원했고, 단목강이 차우기를 지원했다.
그 즈음에는 적측 다수의 절정고수들이 뒤쪽에서 달려들고 있어, 나머지 인원들은 그쪽을 막아섰다.
적측의 강자 다섯 명마저 등장한 마당이니,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우리가 매우 불리한 싸움이다. 위험한 싸움이다.
이 상태로 도주해 봐야 대부분은 죽는다.
저들 쪽이 수도 많고 실력도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들의 추격에서 잘 살아남아 봐야 두세 명 살 것이다.
그래서 제갈수광과 노인들이 일단 강자들의 발을 잡아 놓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퇴각 명령을 내려도 몇 명은 더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랬을 때, 강자들을 막고 있는 본인들은 죽을 각오를 할 수밖에 없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수광이 아직까지 퇴각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기척을 지운 채로 아예 움직이지 않고 있다.
내가 괜히 이러고 있는 게 아님을, 저 제갈수광이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내가 뭔가를 해주리라고 믿고 있는 거다.
여기서 내가 뭔가를 해내면 우리가 살아남을 가능성도 높아질 테니까.
순간적으로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며 튀어나갔다.
다섯 명의 적측 강자들 방향이 아니라, 이십여 명의 적측 절정고수들이 있는 방향이다.
절정에 가까워진 지금의 경지에서 최대한의 속도로 펼쳐낸 천섬무다.
공간이 압축되는 느낌과 함께, 나는 전방에 있는 적측 절정고수들을 금세 지나쳤다.
내 양손의 손가락들 사이에는 독침이 빼곡하게 끼워져 있는 상태다. 퇴각하던 도중에 목갑을 열고 침을 꺼내어 최대한 많이 끼워두었다. 사십 개가 넘는다.
찰나 간에 적측 절정고수들의 진형 중앙으로 파고든 후, 신형을 맹렬하게 회전시키며 양손의 독침들을 한꺼번에 털어냈다.
당연하게도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한 회전이다.
지금은 내공을 아낄 상황이 아니다.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이 수많은 절정고수 놈들을 최단시간 안에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가 힘을 합쳐 나머지 강자들에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순간에 모든 걸 쏟아 붓는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힘을 아끼다가 후회할 일을 남겨서는 안 된다. 무조건 최대한이다.
퓨슛!
수십 개의 암기들이 매우 짧은 순간에, 거의 동시에 발출된 소리다.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발출했기에 독침들은 전 방향으로 뿌려졌다.
이번 한 수에 의해 얼마나 많은 놈들이 당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수십 개의 독침을 털어내던 그 순간의 손맛만큼은 확실했다. 현재의 내 경지에서 펼칠 수 있는 최고의 한 수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직 적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다.
뭔가가 ‘쓱’ 와서 ‘휙’ 하는 느낌만 들었을 테니까.
회전을 멈추자마자 결과도 확인하지 않은 채 비룡검을 뽑아들었다. 동시에 또다시 최대한으로 천섬무를 펼쳤다.
차우기가 상대하고 있는 적을 향해서였다.
다섯 명의 강자를 상대하고 있는 우리 인원들 중에서 가장 위태로운 쪽이 차우기 쪽이기 때문이다.
어둠을 가르며 나아가던 중 여덟 걸음 째에 놈의 우측 후방에 다다를 수 있었고, 아홉 걸음 째를 내딛으며 검을 그었다.
그제야 놈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서걱-
비룡검이 놈의 허벅지를 베었다.
그러나 깊숙이 베지는 못했다.
놈도 상당한 고수인 만큼, 그 짧은 순간에도 반응을 한 것이다.
그 순간에 나는 왼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왼손에 들고 있던 소비도를 덩치의 측면을 향해 던졌다.
차우기 다음으로 고전하고 있는 사람이 원을태이기 때문이다.
내공을 아끼지 않은 채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한 소비도다.
순간적으로 각이 보였기에 날리는 경로 또한 치밀하게 설정했다.
설령 놈이 피한다 해도 그 옆에서 싸우고 있는 놈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경로다.
다음 순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채앵!
조금이나마 타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덩치 놈이 곧바로 반응하며 기형거검으로 내 소비도를 비껴냈기 때문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빠른 속도였다.
역시나 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놈이다.
현재의 내 수준에서는 공격을 성공시키기가 쉽지 않은 상대인 것이다. 경지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그 잠깐의 순간 동안, 덩치 놈이 나와 시선을 마주친 채 이를 드러내고 웃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