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30
아, 짜증나.
전생의 삶을 살고 있었던 이삼 년 전이었더라면 사파의 저런 새끼 따위는 내 앞에서 눈조차도 못 마주쳤을 텐데.
저딴 놈이 감히 이 몸 앞에서 쳐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어야 한다니.
그러나 지금은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할 때다.
현재의 내 경지에서 놈에게 섣불리 달려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린다. 이게 현실이다.
천섬무를 계속해서 최대한으로 운용했기에 공력은 반도 남지 않은 상태다.
현 상황에서 내가 이 공력으로 뭘 해야 우리 인원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나는 곧바로 돌아서서 적측 절정고수 놈들이 있었던 곳으로 향했다.
내 독침에 당하지 않고 남아 있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놈들을 최대한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내가 독침을 뿌렸던 현장으로 은밀하게 다가갔다.
여덟 명의 적측 절정고수가 남아서 우리 인원들과 싸우고 있었다. 세어 볼 겨를은 없지만 쓰러져 있는 놈들 대부분이 내 독침에 죽었을 것이다.
절정고수들 쪽을 막고 있는 우리 측의 인원은 세 사람으로, 추소륵, 길초량, 이세옥이다.
전열에 선 인원은 추소륵과 길초량이며, 이세옥이 후열에서 매우 바쁘게 암기를 발출하고 있었다.
숫자에서 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막아내고 있다.
추소륵은 부지런히 검을 휘두르는 중인데, 눈빛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인 것이다.
통합 잠룡대전의 결승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강력한 검술이었다.
그 와중에도 강약이 순환하고 공수가 순조롭게 전환되는, 소림 무학 특유의 묘리를 잘 살려내고 있다.
기동타격조에 들어와서 실전을 겪고 수련을 하며 실력이 한층 더 상승한 것이다.
추소륵도 추소륵인데, 이 순간에 내 눈을 더 사로잡은 건 길초량이었다.
길초량은 지금껏 허리춤에 차고 다니기만 했던, 천에 둘둘 말려 있는 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적들과 근접하여 직접 맞서고 있다.
한데 움직임의 수준부터가 다르다.
적들의 도검이 난무하고 있는데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며 곤을 휘두르고 있다. 게다가 빠르다.
이제야 저 자식의 실력을 제대로 보는 것 같다.
저건 제대로 훈련 받은 실전 고수가 아니면 절대로 보일 수 없는 움직임이다.
캉! 캉! 카강!
길초량의 곤과 적들의 도검이 부딪치며 저런 소리가 나고 있다.
놀라운 점은 길초량의 곤에 부딪친 적들의 도검이 생각보다 많이 튕겨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탄력이 제법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거다.
곤 자체의 재질 때문인지, 길초량이 그런 종류의 무공을 익힌 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저 반탄력으로 인해 적들이 길초량을 상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가뜩이나 길초량은 그 와중에도 다른 손으로 틈틈이 철비정까지 날리고 있다.
이 자식. 이 신룡대 자식. 잘하긴 잘 하네.
길초량이 저런 활약을 보이고 있기에 저쪽에 있는 인원들이 잠시나마 밀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 세 사람이 잘 버티고 있는 건 잠시뿐이다.
얼른 돕지 않으면 금세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은밀하게 이동하던 나는 천섬무를 맹렬하게 운용하며 적들의 후방으로 파고들었다.
일단은 추소륵을 공격하고 있는 놈들부터 노렸다.
비룡검을 한 놈의 등 뒤에 쑤셔 넣자, 옆에 있던 놈이 바로 반응하며 나를 향해 도를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상체를 비스듬하게 틀자 놈의 도가 내 오른쪽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즉시 신형을 낮추며 비룡검으로 놈의 다리를 갈랐다.
내가 다음으로 노리는 절정고수 놈에게 이세옥의 철비정이 날아들고 있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한 상태이기에 날아가는 철비정의 모습이 느리게 보였다. 절정고수 놈이 반응하며 피하기 시작하는 모습도 똑똑히 보였다.
비룡검을 쭉 뻗으며 철비정이 날아가는 경로를 바꾸었다.
팅! 푹!
“끄윽!”
경로를 바꾼 철비정이 놈의 이마 옆쪽에 깊숙이 박혔다.
일전에 원을태가 내 쇠구슬의 경로를 바꾸는 것을 보고, 마침 상황이 되기에 응용해 본 것이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두 걸음을 이동하며 다음 절정고수 놈의 옆구리를 쑤셨다.
절정고수 세 놈이 길초량을 공격하고 있다.
길초량과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앞으로 나서며 맹렬하게 곤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자 이세옥이 길초량을 엄호하듯 그 세 놈을 향해 철비정을 털어냈다.
두 사람 모두, 내가 더 쉽게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게끔 적들을 갑자기 몰아붙인 것이다.
나도 즉시 튀어나가며 왼손에 쥐고 있던 소비도를 털어냈다.
길초량을 향해 도를 휘두르던 놈이 내 소비도를 의식하고 고개를 살짝 돌렸을 무렵.
카앙!
길초량의 곤이 그 절정고수 놈의 도를 강하게 쳐냈다.
절정고수 놈의 팔이 크게 들렸다.
내 소비도를 의식한 탓에 집중력이 흩어졌고, 그 사이에 길초량이 곤의 반탄력을 더 강하게 운용한 것이다.
천섬무를 운용하고 있던 나는 절정고수 놈을 스치듯 지나가며 그의 팔을 베어낼 수 있었다.
“크윽!”
그 순간 길초량의 곤이 그 절정고수 놈의 허벅지에 작렬했다.
퍼억!
“크악!”
이어서 내가 다음 놈의 좌측 후방으로 짓쳐들려 할 때였다.
“그쪽! 위험!”
제갈수광의 외침이 들렸을 무렵에는 나도 이미 한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강력한 기운이 우리 쪽을 향해 빠르게 쏘아져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을태를 상대하고 있었던 바로 그 덩치 놈이다.
다시 봐도 덩치와 안 어울리게 너무 빠르다.
놈이 다가오는 방향은 길초량이 있는 방향이었다.
거리가 급속도로 좁혀지고 있는데, 길초량은 이제야 반응하기 시작했다.
길초량이 느려서가 아니다.
덩치 놈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다.
길초량의 입장에서는 피하려면 후방으로 몸을 빼야 한다.
한데 그는 마침 전방의 절정고수들을 상대하느라 역동작에 걸린 상태다.
이세옥이 후방으로 도약하며 양손으로 유엽비도를 빼드는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든 길초량을 엄호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는데, 소용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빠른 덩치 놈에게 가속도까지 붙었기 때문이다.
길초량이 후방으로 신형을 뽑기 시작했지만, 이대로라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본인도 알 것이다.
그 순간에 나는 길초량의 앞을 막아설 수 있었다.
길초량이 피하지 못할 것을 알고 천섬무를 펼치며 미리 움직이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덩치 놈의 기형거검이 쭉 뻗어오고 있다.
저렇게 덩치가 큰 데도 마치 검과 하나가 된 듯한 상승의 검술이다.
피하려면 피할 수는 있다.
공력이 아직 바닥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서는 안 된다.
저걸 피하면 길초량이 무조건 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악물며 비룡검에 내공을 잔뜩 주입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덩치 놈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놈의 눈동자를 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놈은 처음부터 나를 노렸던 거다.
내 속도를 알고 있는 만큼, 동료를 노리면 내가 어떻게든 반응하며 막아설 것을 안 것이다.
검병을 양손으로 꽉 쥔 채 기형거검에 맞섰다.
카아앙!
맞서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충격을 분산시키려 검신을 살짝 기울였었다.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끅······!”
입을 최대한 꽉 다물었는데도 저 소리가 나왔다.
힘도, 내공도,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퍽!
막 신형을 뽑아내던 길초량에게 내 오른쪽 어깨가 부딪치면서 난 소리다.
길초량의 몸이 우측 후방으로 튕겨나갔고, 내 몸은 좌측 후방으로 튕겨나갔다.
너무 강력하게 튕겨나간 탓에, 발은 이미 땅에서 떨어진 상태다.
가뜩이나 길초량과 부딪친 탓에 몸의 중심을 잃어, 천지가 빙글빙글 돌고 있다.
실전경험이 별로 없다면 이 순간에 무조건 당황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중심을 잃은 상태에서도 덩치 놈의 기척에만 집중했다.
놈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 즈음의 내 몸은 땅바닥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땅바닥에 닿기 직전의 순간, 나는 빙글빙글 도는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하며 왼팔로 땅바닥을 강하게 때렸다. 동시에 몸을 격렬하게 비틀었다.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함이 아니다. 어차피 이 속도로 날아가는 상황에서는 몸의 중심을 잡기도 어렵다.
덩치 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땅바닥을 구르기 시작했을 때쯤, 놈에게서 발출된 검기가 내 바로 옆의 땅에 박혔다.
푹!
방금 전에 내 목이 있던 자리다.
양팔을 모은 채 땅바닥을 두세 바퀴 구르다가, 또다시 왼팔로 땅바닥을 강하게 쳐냈다. 동시에 몸의 반동을 이용하여 신형을 일으키며 상체를 비틀었다.
스악-
놈이 발출한 검기가 내 오른쪽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탓에, 옆구리에서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다행히 깊게 베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천섬무가 아니었으면 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몸을 비틀어 횡으로 회전하는 와중에 왼손으로는 소비도를 뽑았다. 뽑아듦과 동시에 그것을 발출했다.
덩치 놈이 급격히 간격을 좁혀 오고 있었기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소비도였다.
소비도가 놈의 가슴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확한 비도술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지금의 내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덩치 놈과의 간격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좁혀지고 있다.
놈이 급격하게 몸을 낮추며 내 소비도를 흘려보낸 뒤, 그 속도 그대로 가속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천섬무를 펼치고는 있는데, 이미 최대한으로 펼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공력이 거의 바닥이기 때문이다.
결국 덩치 놈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놈이 기형거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가슴 높이였다.
샥-
엄청나게 빠른 베기다.
가뜩이나 놈의 검은 검신이 길다. 이 상황에서 뒤로 신형을 빼면 완벽하게 피할 수가 없다. 지금은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결국 비룡검을 비스듬히 들며 급격하게 몸을 낮췄다.
까앙!
‘크윽!’
비룡수투를 착용하고 있음에도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다.
이를 악물며 손아귀를 꽉 쥐었다. 비룡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자세를 낮춘 내 정면을 향해 강맹한 장력이 빠르게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력이 이미 내 가슴 앞에 다다라 있다.
놈이 내 대응을 미리 예측하고 장력을 날렸다는 뜻이며, 장법의 경지가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나는 지금, 내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는 속도 면에서도 놈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피할 수가 없다.
왼손바닥을 뻗음과 동시에 뒤로 신형을 뽑았다.
그냥 맞서면 충격이 매우 클 수밖에 없기에, 조금이라도 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콰앙!
“커헉!”
이를 악물었음에도 결국 저 소리가 터져 나오며, 입에서는 검붉은 액체가 튀어나왔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충격을 흡수하며 맞섰음에도 이 정도였다.
몸이 튕겨진 듯 뒤로 날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아득해져가는 정신의 끈을 최대한 붙잡았다.
내가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방금 전의 상황에서 무조건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샥-
뒤로 날아가고 있는 나를 향해 뭔가가 날아들고 있다.
덩치 놈의 검기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게다가 정확히 내 심장을 노리고 있다.
지금의 나는 허공에 떠서 뒤로 날아가는 중인 데다가, 방금 전의 충격으로 인해 당장은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도 않는 상황이다.
즉, 저 검기를 막을 수도 없고 완전히 피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지막 공력을 쥐어짜내며 상체를 살짝 비틀었다.
곧, 검기가 내 가슴께를 관통했다.
푹!
“크윽!”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심장은 피했다.
“송유겸······!”
“유겸아······!”
날카로운 두 개의 목소리는 제갈수광과 이세옥의 목소리였다.
덩치 놈과 나의 속도가 매우 빨랐기에, 저 두 사람도 이제야 뒤쫓아 온 것이다.
남은 진기를 쥐어짜내어 제갈수광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살아서······, 갈 겁니다.]
풍덩!
나는 그대로 하천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가 하천 속으로 빠질 수 있었던 건, 덩치 놈의 장력에 맞서던 마지막 순간에 방향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뒤쪽 몇 걸음 뒤에 하천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입수하자마자 비룡검을 검집에 넣으며, 양손을 이용해 상처 부위 주변의 혈을 짚었다. 지혈을 위해서다. 동시에 최대한 기척을 죽이기 위해 노력했다.
물속이기에, 이러면 내가 죽은 것처럼 보일 가능성도 높아진다.
잠수한 채 어떻게든 하천의 중앙 쪽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속으로는 회회심공의 구결을 빠르게 읊었다.
옘병할 거, 미치도록 아프다.
베이고 찔린 상처뿐만 아니라, 장력과 맞부딪쳤을 때 온 몸의 이곳저곳에 강한 충격을 입은 탓이다.
이 정도면 구결을 빠르게 읊을수록 잠력도 금방 쌓을 수가 있다.
천마신교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개 같은 사형제들과 흑풍대주와 수라단주의 공격을 한 몸에 받았었다.
비록 결과적으로 그곳에서는 죽었지만, 당시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나다.
나는 독종이다.
천하제일인이었던 사부님한테서 인정받은 독종이다.
저딴 놈한테 당해서 죽어줄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