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32
우리 인원들이 퇴각한 흔적은 주로 하천변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이동하면서 목갑을 열어 왼손의 손가락 사이에 독침 몇 개를 끼웠다.
오른손은 비워두었다. 상황에 따라서 비룡검을 빼들거나 소비도를 빼들기 위해서다.
흔적을 쫓아가는 와중에도 계속 미소를 짓게 된다. 절정에 올랐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이렇듯 괜찮으니, 우리 인원들만 무사했으면 좋겠다.
내가 빠진 후의 전황이 어떻게 흘러갔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라면 충분히 버티며 퇴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절정고수는 내가 많이 죽여서 세 명밖에 남지 않았었던 데다가, 강자들 다섯 놈 중의 한 놈에게도 다리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었다.
그 정도면 우리 인원들이 감당하며 퇴각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가뜩이나 지휘관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갈수광이다.
적측의 고수들이 더 합류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같은 의미로 무림맹 측에서도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우리의 도움을 받아 퇴각한 수많은 이들도, 미리 퇴각한 황보충 등도, 알아서 소식들을 전했을 테니까.
이동하는 도중에 나와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절정고수 다섯 놈과 마주쳤다.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절정고수 놈들이 합류하고 있다는 건, 적도들의 입장에서도 작정하고 이번 전투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뜻이다.
놈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마침 잘 됐다.
절정에 오른 만큼, 대놓고 독침을 쏴도 통할지가 궁금하던 차였으니까.
일단 천섬무를 중상 단계로 운용하며 한 발을 발출했다.
핏!
절정고수 놈이 침을 인지한 순간, 독침이 놈의 복부에 박혔다.
잘 가고.
이 정도 거리에서 중상 단계는 충분히 통한다는 것이니, 곧바로 천섬무를 중 단계로 내려서 독침 한 발을 발출했다.
핏!
놈이 인지하며 반응은 했지만, 결국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옆구리에 박혔다.
너도 잘 가고.
대강의 견적은 나왔으니, 적당한 속도로 놈들 사이를 누비며 나머지 독침들을 발출했다.
거의 대놓고 날렸는데도, 역시나 한 발에 한 놈씩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었다.
바로 이거지. 이게 절정의 맛이지.
흔적은 계속 하천 인근을 따라 이어졌다.
그리고 한 방향의 어둠 너머로, 수많은 병장기들이 빠르게 부딪치는 소리들이 들렸다. 그쪽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기동타격조가 처음 이 전장에 투입했던 전선을 기준으로 한참이나 후퇴한 지점이다.
이렇게까지 밀릴 만도 하다. 적측이 너무 대규모였던 데다가 전력의 질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리가 먼 주둔지들에서도 서둘러 전력을 파견했다고는 하나, 무림맹 측의 증원은 아직까지 당도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동안 증원된 전력이라고 해 봐야 우리 기동타격조가 전부인 것이다.
되도록 기척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최대한 빠르게 다가갔다.
강력한 기운들이 격돌하고 있다.
숫자도 많다.
거리가 더 가까워질수록 내게 익숙한 기운들이 하나둘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반가운 제갈수광의 기운을 비롯하여 세 노인의 기운도 느껴졌다. 내가 아는 다른 인원들의 기운도 얼핏 느껴지고 있는데 확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백도의 다른 강력한 기운들이 매우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맞서고 있는 사파 놈들의 기운 또한 강력했다.
그 중에는 나를 다치게 만들었던 덩치 놈의 기운도 섞여 있었다. 놈은 지금도 맹렬하게 기운을 발산하는 중이다.
덩치 놈의 기운을 확인했을 즈음부터는 기척을 더욱 감추며 적들의 후방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나는 덩치 놈을 유인할 계획이다.
사실, 같은 절정이라도 놈은 경지가 매우 높다.
내가 놈을 이길 수 있을까?
확실치는 않지만, 이 상태에서 천섬무를 펼치면 이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설령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아까처럼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확실하게 벗어날 자신도 있다.
그래서 놈을 유인하려는 것이다.
기형거검을 휘두르던 덩치 놈의 고개가 살짝 뒤로 도는 게 보인다.
역시나 놈은 고수인 만큼, 내가 은밀히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 챈 모양이다.
사실은 내가 기척을 일부러 적당히만 감춘 탓이기도 하다.
덩치 놈을 유인하기 위해, 절정 수준이 아니라 일류 수준에 맞추어 기척을 감췄던 것이다.
회회심공은 경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런 때 참 좋다.
들킨 걸 모르는 척, 나는 기척을 약간 더 죽였다. 그러고는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척하며 포복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이쯤이면 놈도 내가 누구인지를 특정했을 것이다.
아까 본인이 큰 상처를 입혀서 물속에 빠트렸던 존재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놈의 입장에서 나라는 존재는 가만히 놔두기에는 상당한 위험 요소다. 본인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으나, 본인의 동료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모를 리 없다.
내가 아까 놈의 동료들을 학살했던 탓이다.
그러니 미리 제거하고 싶을 것이다.
놈의 의식 속에 있는 나는 좀 귀찮은 피라미에 불과할 테니까.
기대와 달리 놈에게서 반응이 없다.
이에 나는 기척을 죽인 상태 그대로, 포복을 유지하며 우측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놈의 존재를 알아채고는 살짝 방향을 틀어, 다른 쪽에 있는 적들을 노리려는 듯 연출한 것이다.
쫀 척 한 거지.
자, 얼른 튀어 와라.
너한테 좋은 먹잇감이 여기 있잖아.
너, 나 좋아하잖아.
참고로 이쯤 했는데도 놈이 안 걸려들면 때려치울 생각이다.
크게 아쉬울 건 없다. 측면으로 빙 돌아 아군 쪽에 합류해서 싸우면 된다. 그 편이 더 안전하기도 하다.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순간, 덩치 놈이 움직였다.
놈이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다.
다시 봐도 매우 빠른 속도다.
그렇지.
그냥 놔두기에는 너무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겠지.
놈이 이를 드러낸 채로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다.
그래. 나도 반갑다, 이놈아.
나는 화들짝 놀란 척 몸을 일으킨 후, 일단은 적당한 속도로 천섬무를 펼치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우측에 있는 하천 방향을 향해서였다.
오른손에는 비룡검을 빼들었고, 왼손에는 소비도 세 자루를 동시에 꺼내어 쥐었다.
덩치 놈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만 달리며 소비도 세 자루를 동시에 날렸다.
물론 최소한의 천섬무만 운용하며 날린 소비도들이다.
목숨 걸고 도망치는 와중에 최선을 다해 견제하는 모양새로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 와중에도 한 자루는 놈에게서 살짝 빗나가게 했다.
두려움으로 인해 긴장한 척 보이기 위해서다.
휙! 챙!
놈이 소비도 하나를 살짝 피하고 다른 하나는 아주 쉽게 쳐내며 가속했다.
놈과의 간격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왼손에 소비도 한 자루를 뽑아들며, 언제든 최대한으로 천섬무를 펼칠 수 있게끔 체내의 공력을 휘돌렸다.
절정이라서 좋은 점은, 똑같은 찰나의 순간이라도 더 많은 공력이 더 빠르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내가 속도에 자신이 있다 해도 강자를 상대로 싸움을 길게 끌어서는 안 된다.
놈이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있는 지금, 한 순간에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내가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탓에 놈과의 간격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곧, 놈이 내 등 뒤의 지척에 다다랐다.
슈악-
등 뒤에서 놈의 기형거검이 휘둘러지고 있다.
달리는 방향을 기준으로, 내 오른쪽 목 언저리에서부터 사선으로 몸통을 가르는 경로다.
보통은 이 경우, 왼쪽으로 피하면 완전히 피할 수가 없다.
놈이 사선으로 내리긋던 검의 경로를 쉽게 왼쪽으로 변경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놈의 이 공격은 나로 하여금 무조건 오른쪽으로 피하게 하려는 의도다.
첫 공격으로 내 움직임을 오른쪽으로 제한하고, 그 범위에 들어온 내게 미리 준비했던 다음 수를 즉시 발출하는 방식이다. 그러니 놈이 펼치는 다음 수가 내 입장에서는 한 박자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설령 내가 다음 수를 가까스로 피해낸다 해도, 그 시점에서 나는 이미 자세나 무게중심 등에서 궁지에 몰린 상태가 된다.
놈은 그 우위에서 출발하여, 계속 몰아붙이며 우위에 우위를 더해가는 형태의 싸움을 한다.
아까 겪어봤기에 알고 있다.
놈의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나는 오른쪽으로 피했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여 맹렬하게 회전했다.
절정에 이르고 나서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쳐보기는 처음이다. 일류 때보다 몸이 훨씬 가볍게 돌아간다.
이 와중에도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는 놈의 면상이 보였다.
나는 눈동자만 돌려서 놈의 왼손을 살폈다.
놈이 빠르게 왼손을 움직이고 있는 게 보인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 쪽을 털어내고 있다.
아까처럼 장력을 발출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독침들이 보인다.
딱 봐도 열댓 개가 훌쩍 넘는다.
장력 대신 독침이라는 건, 이번에야말로 나를 확실하게 죽이겠다는 뜻이다.
놈의 왼손에서 독침이 출발한 순간, 나는 즉시 좌전방으로 일보를 옮기며 독침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피슈슈슈슈슈슉-
독침들이 내 오른쪽 어깨 바로 옆을 지나간 순간, 나는 곧바로 왼발을 박차며 놈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놈이 흠칫하며 검을 쥔 오른팔을 회수하고 있다. 동시에 좌장을 내밀며 장력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저 모든 모습들이 내 눈에 느리게 들어오고 있다는 건, 이미 내 속도가 놈의 속도를 압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놈은 이제야 대처하기 시작한 상황이지만, 내 공격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진입한 상황이다. 절정의 경지에서 최대한으로 펼쳐낸 천섬무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왼손의 소비도가 놈의 왼쪽다리로 날아가고 있는 상태에서, 내 비룡검이 놈의 오른쪽 무릎을 찔렀다.
거의 동시에 소비도도 놈의 허벅지 안쪽에 박혔다.
푸북!
“큭······!”
놈의 거구가 휘청하고 있다.
당연하다. 놈은 현재 오른쪽 무릎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샥-
기형거검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놈의 후방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허리춤의 은룡삭을 풀어내어, 그걸 한 방향으로 털어냈다.
역시나 놈의 왼발이 땅을 박차고 있다.
허벅지에 소비도가 박히긴 했으나, 왼쪽 다리의 경우에는 아직 쓸 수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걸 예상하고 은룡삭을 털어냈던 것이고.
놈의 왼발이 땅에서 떨어진 순간, 은룡삭이 놈의 발목을 휘감았다.
그대로 은룡삭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억······!”
그렇지? ‘억’소리가 절로 나지 이놈아?
허공에서 무게중심을 잃은 놈의 왼발이 내 쪽으로 끌려오고 있다.
비룡검을 이용하여 놈의 발목을 잘라버렸다.
철퍼덕!
놈의 몸이 바닥에 패대기쳐진 순간, 나는 최대한의 속도로 다가가서 놈의 대가리를 찼다.
퍼억!
“커헉!”
세게 차긴 했지만 죽일 의도로 찬 게 아니다.
놈이 주둥이에 독단 같은 걸 물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걸 깨물지 못하게끔 찬 것이다.
그 직후, 내 비룡검이 검광을 발했다.
샥! 샥!
놈의 손목 두 개가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곧바로 놈에게 접근하여 마혈을 빠르게 짚었다.
턱관절의 마혈까지 제대로 짚은 후, 놈의 주둥이를 열어 손가락으로 입안을 뒤졌다.
비룡수투를 차고 있긴 하나, 역시나 느낌은 더럽다.
금세 독단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독단은 바로 옆의 흙 위에 올려놓았다.
“스으으으읍. 후우우우우우.”
길게 한 차례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으며 호흡을 정리했다.
기본적으로 절정에 올랐기에 가능했던 승리였다.
그러나 놈이 방심한 탓도 컸다.
나 정도는 쉽게 처치할 수 있다는 방심.
처음에 내가 검을 오른쪽으로 피하는 것을 보고, 본인이 쳐 놓은 덫에 내가 완벽하게 걸려들었다고 생각한 방심.
그런 방심들이 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무심한 눈으로 놈을 내려다보았다.
괴로움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놈의 눈동자에 놀람이 담겨 있다.
“아까처럼 웃어라. 너는 웃는 모습이 어울린다.”
말 자체에는 조롱의 뜻이 담겨 있으나, 내 눈과 표정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오히려 놈이 보는 지금의 내 표정과 눈동자에는 감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건조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놈은 어차피 죽을 것이다. 물론 네놈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쯤, 나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건 편하게 죽느냐 고통스럽게 죽느냐의 차이겠지.”
무덤덤한 어조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나는 네게 고통을 줄 것이다. 네놈에게서 듣고 싶은 게 좀 있거든. 참고로 그 입에서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인 호기심 정도라서, 몰라도 딱히 상관없거든. 오히려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을 네 강인한 정신력을 기대하고 있다. 너희 쪽 놈들 중에 아직까지 그런 놈들을 단 한 놈도 못 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