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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37화 (137/416)

내 안에 마교있다 137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무림맹은 사파의 그 세력을 뿌리부터 먼저 제거하려는 전략이었던 것 같다.

사파의 본진 급습을 깔끔하게 성공시켜 뿌리를 제거하면, 나머지를 와해시키는 건 어렵지 않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파의 본진이나 구심점에 관한 정보를 통제하여, 맹의 내부 정보가 사파 쪽으로 흘러나갈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했던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괜찮은 판단이었다고 본다.

무림맹은 연맹체로서의 특성상, 모종의 중대 사안이 있으면 각 세력들마다 본인들의 손익을 따져가며 움직이게 되어 있다.

때문에 모든 걸 공개해가며 일을 추진하다 보면 잡음도 많다.

각자가 이 방식이 낫네, 저 방식이 낫네 하며 갑론을박을 벌이다 보면 일을 진행하는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느니 일단은 정보를 통제한 채로 뚜렷한 성과부터 보여서, 백도 내부의 잡음과 혼란을 최소화시키겠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한데 결과론적으로 무림맹의 계획은 반만 성공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반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사유 증운생으로 추정되는, 사파의 우두머리를 처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보를 그렇게까지 통제했는데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이제부터는 슬슬 백도 내에서도 잡음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속으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제갈수광이 원을태를 향해 말했다.

“맹의 급습을 알아채자마자 놈들이 서류와 자료 등을 빠르게 태워버려서 역추적도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 같습니다. 사로잡은 자들의 입을 열게 해야 하는데, 인명이나 지명 등이 모두 번호와 암어로 관리되고 있었던 탓에 그조차도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주 철저하게 관리했군. 그만큼 우두머리라는 자도 철저한 성향이라는 뜻이겠지.”

원을태의 대꾸에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본진과 지부 인근을 훑고 있는 토벌대의 성과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니, 결국 우두머리의 종적을 파악하는 일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 경우에는 아예 우두머리의 정체를 공개해서, 제보를 받는 식으로 추적을 한다는 모양입니다. 돌아가는 사정상, 아마도 머지않은 시점에 공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긴 하지. 이번 급습으로 인해 사파 쪽에서도 식겁했을 테니, 서둘러 꼬리를 자르는 방식으로 무림맹의 추적에서 최대한 멀어지려 할 테니까. 그 경우에는 제보를 받는 방식을 쓸 수밖에 없지. 무림맹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테지만, 음······.”

말을 하던 원을태가 염려하는 얼굴로 침음을 삼켰다.

원을태의 표정을 보니, 단순히 이후에 생길 잡음 정도를 염려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더한 이유가 있는 것 같기에 물었다.

“원 어르신, 왜 그런 표정이십니까? 정보가 공개되어 제보를 받을 수 있으면 더 효율적인 것 아닙니까?”

그러자 원을태가 노안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유겸이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를 수 있겠구나. 음, 일단 무림맹도 하나의 커다란 정치판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친맹주 세력이 있고 비맹주 세력이 있지. 무림맹의 권력은 맹주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비맹주 세력은 평상시에는 조용히 지낸다.”

그 정도야 알고 있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원을태를 생각해서 일단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번 사파와의 전쟁은 큰 사안이다. 이런 큰 사안은 비맹주 세력에게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하지. 그들에게는 돋보일 수 있는 기회이며, 잘만 되면 본인들이 주류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거든. 마침 무림맹이 오랜 준비에도 불구하고 사파의 우두머리를 처단하지 못한 상황이지? 이런 상황에서 우두머리의 정체가 공개되면 비맹주 세력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할 게다. 직접 움직여서 우두머리를 찾으려 하겠지. 말했듯,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니까.”

“아.”

“그들은 당연히 무림맹의 전투 조직에 편입되지 않은 채,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려 할 게야. 이 경우에는 무림맹의 입장에서도 통제하기가 쉽지 않지. 그들에게도 사파의 우두머리를 찾는다는 명분이 있으니까.”

“그렇겠네요.”

“그들은 애초에 세인들의 이목을 끌 목적으로 나서는 것이니, 본인들이 직접 움직이며 알아낸 정보들에 대해 최대한 시끄럽게 떠들어댈 게다. 정보는 정확성이 중요한데, 그들에게는 그런 게 그다지 중요치 않아. 최대한 시끄럽게 떠들어 본인들의 활약을 알리고, 나아가서는 무림맹의 실착을 알리는 게 중요하지. 그게 그들의 목적이니까.”

원을태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어찌될까? 확인되지 않은 여러 소문들이 그들에 의해 생산되어, 확대되고, 재생산되기를 반복하겠지. 그렇게 되면 여러 잡음으로 인해 백도는 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고, 무림맹 차원의 작전도 여러 모로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상황을 염려하는 게다. 참고로 무림맹에서도 이러한 백도의 생리를 잘 알고 있기에 그간 정보를 통제해왔을 테고.”

원을태가 노안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쳤다.

원을태는 잡음에서 끝나지 않고, 백도 내부가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염려했던 것이다.

백도가 혼란스러워질수록 이 싸움도 길어질 테고, 그러면 희생당하는 사람도 더 많아질 테니까.

천마신교와 무림맹은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낀다.

천마신교는 오로지 천마에게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다.

그렇기에 비천마 세력 같은 건 없다.

걸리는 순간 끝이기 때문이다.

물론 후계자들 간에 차기 천마 자리를 노리는 경쟁 구도는 있다. 그 구도 안에서의 정치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정치도 선을 지켜야 한다. 천마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을.

그렇기에 결코, 현재의 천마에게 반하는 언행은 누구도 하지 못한다. 하려면 최소한 목숨 수백 개를 걸고 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생활했기에 내가 백도 무림맹 내의 자세한 정치판까지는 몰랐던 거다.

* * *

식사 후 운기조식이나 취할 생각으로 거처에 돌아왔는데, 곧 제갈수광이 들어섰다.

식사 때는 원을태가 있었기에 내 정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닌가 싶다.

바닥에 앉은 제갈수광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주둔지의 지휘 막사에 가셨던 건, 제가 알려드린 정보를 황 단주님에게 말씀드리기 위함이었겠지요?]

[아니. 전서응 사용을 허락받으려고 갔던 거다. 맹주님에게 직통으로 보고해야 할 사안 같아서.]

[아.]

제갈수광은 이성운룡보주패를 소지한 만큼, 그럴 권한은 충분히 있다.

[일단 제가 말씀드렸던 정보 중에서 하나는 맞았군요.]

놈들의 본진이 서장의 임지현이었음이 확인되었으니, 내가 말했던 다른 정보들이 옳은 정보일 가능성도 더 커진 상황이다.

제갈수광이 속내를 추측할 수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전음을 보내왔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나머지 정보들 중에서도 하나는 맞는 정보다.]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칼 같은 제갈수광이 저런 말을 해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해적들의 본거지에 관련된 정보는 조사를 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리고 사유 증운생에 대한 정보는 무림맹의 수뇌부에서 통제하고 있던 정보다.

즉, 제갈수광은 사파 세력의 우두머리가 사유 증운생임을 확인해준 것이다.

[놀랄 것 없다. 이 부분은 어차피 곧 알게 될 정보이니 미리 말해준 것뿐이다. 다음에도 정보를 받으려면 정보 제공자에게도 최소한의 신뢰를 보일 필요가 있거든.]

내가 빙그레 웃어보이자 제갈수광의 전음이 이어졌다.

[게다가 나는 방금 전에 아무런 이름이나 지명도 언급하지 않았지. 내 말을 통해 네가 뭔가를 떠올렸다면, 그건 똑똑한 네가 알아서 추측해낸 것이고.]

이에 나는 씩 웃으며 제갈수광에게 대꾸해줬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제갈수광이 떠난 후부터는 계속해서 운기조식을 취했다.

늦은 오후 무렵에는 단목강이 여러 사람을 이끌고 나를 찾아왔다.

통합 잠룡대전에서 함께 했던 주경명, 목태월, 사옥연, 엄상평 등이었는데, 병문안을 온 것이다. 여길상은 아직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에, 이번에 지원하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다들 통합 잠룡대전 당시에 친해진 터라, 오랜만에 보니 반가웠다.

반 시진가량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내 쾌유를 기원하며 떠났다.

나처럼 다치지 말고 몸조심들 하라는 당부를 전해줬다.

그 후에는 더 반가운 얼굴들이 찾아왔다.

소충광과 우문직과 단목홍신이 길초량과 함께 찾아온 것이다.

원래 저들 중에서 단목홍신은 섣달그믐날의 구성원이 아니다. 그러나 나와 친한 사이다 보니 다른 이들과도 얼굴을 자주 보게 되어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긴 경우다.

그들이 알아서 저녁 식사를 챙겨왔기에,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아니, 그런데 길 공자, 너무하시는 것 아니오? 그간 우리가 길 공자와 더불어 기울인 술잔만 해도 수백 잔이오. 한데 기동타격조에 차출될 만한 실력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어찌 그리 감쪽같이 속이셨단 말이오?”

소충광이 책망하는 투로 그렇게 묻자 우문직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동감이오. 와! 내가 가문의 귀한 술들까지 그렇게나 많이 대접했는데, 어찌 귀띔한 번 안 주실 수가 있소? 이 일은 우리의 친우 관계에 심각한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임을 상기시켜드리지 않을 수 없소.”

말은 저렇게 하는데, 두 사람 모두 농담조로 책망하는 중이다.

다들 어제 길초량이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의 실력이 빼어나다는 걸 확인했으니 저런 말을 하는 거다.

“하핫······! 소, 속였다기보다 그냥 드러내지 않은 채로 잠자코 있었던 것뿐이라······.”

길초량이 대꾸하자 소충광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우리 사이에는 그 정도도 속인 것이나 다름없소.”

“하핫······! 일전에 보니까 송 형한테는 이렇게까지 추궁하지 않으시더니 왜 나한테만······.”

이 자식이 봐라?

감히 이 몸을 끌어들여서 물타기를 했겠다?

기회를 봐서 복수해주마.

소충광이 대꾸했다.

“송 공자의 경우에는 통합 잠룡대전에서의 우승을 통해 우리 잠룡관의 위상을 온 강호에 드높였잖소. 덕분에 송 공자와 친한 우리의 위상도 올라갔소. 많은 관도들이 송 공자와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좀 만들어달라며 각종 청탁을 해왔소. 대접도 많이 받았지. 그 공로가 인정된 것이오.”

암만. 그렇고말고.

소충광이 말을 이었다.

“한데 길 공자는 경우가 엄연히 다르잖소. 내가 길 형에게 노상 술을 대접한 것까지는 조금도 아깝지 않소. 그러나 그 와중에도 우리를 속인 것은 죄질이 매우 나쁘오.”

“그런 걸 전문용어로 괘씸죄라고 하더구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단목홍신이 끼어들어서 한 마디를 보태자, 우문직이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말씀 한 번 잘하셨소, 단목 공자. 괘씸죄. 바로 그거요.”

소충광과 우문직과 단목홍신이 동시에 길초량을 바라보며 사악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길초량이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길초량에게 말했다.

“판결. 죄인 길초량은 이 순간 이후, 피해자인 소충광과 우문직 등의 비무 요구에 언제든 성실히 임한다. 이상.”

길초량의 눈이 커졌다.

“아, 아닛! 송 형이 무슨 자격으로 판결을······!”

길초량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머지 세 사람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크으으으! 명판관이시오!”

“역시 송 공자시오! 역시!”

“제삼자인 내가 보기에도 매우 공정한 판결이구려!”

소충광과 우문직과 단목홍신이 각각 그렇게 말을 보탰다.

길초량이 세 사람을 향해 하소연하듯 말했다.

“아닛! 내 편은 한 명도 없는 것이오? 정녕?”

그러자 소충광이 길초량을 향해 포권하며 대꾸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소, 길 공자.”

우문직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한 마디를 보탰다.

“과거의, 그리고 미래의 술값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비무 요청해도 되겠지요?”

“하아.”

길초량이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도 눈동자를 돌려 나를 흘겨보고 있다.

푸히히힛! 아까의 물타기에 대한 복수다, 이놈아.

짜식이 까불고 있어.

어쨌거나 실력 좋은 길초량과의 비무인 만큼 소충광과 우문직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가뜩이나 길초량은 신룡대라서 두 사람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은 본인들이 얻게 된 게 무려 신룡대원과의 평생 비무권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겠지만.

내가 쟤들의 비무 상대를 해주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이 기회에 길초량에게 다 떠넘겨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길초량을 제외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네 사람은 식사 후에도 반 시진 가량 더 머물다가 돌아갔다.

참고로 길초량은 소충광과 우문직에게 끌려가다시피 갔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비무를 한 차례씩 한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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