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39화 (139/416)

내 안에 마교있다 139

길초량이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참! 그나저나 오늘이 섣달 스무하루 날이었지요?”

“그렇소만······.”

“그럼 오늘이겠네! 이학기말 승반심사 말이오.”

아, 그러고 보니 벌써 그 시기가 됐구나.

근래 여기저기 전투를 치르고 다니고, 부상 후에는 수련에만 매진하다보니 잠룡관 쪽 생각은 못 했다.

문득 작년의 이학기말 승반 심사 날이 떠오른다.

제삼서고에 들렀다가, 제갈수광한테서 제일서고의 임시 관리자 역할을 부탁받았던 날이었다. 그 전까지는 한심한 장년에 불과했던 제갈수광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다음 날에는 승반 심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그 날 가족 모임에 나갔었지.

그때로부터 벌써 일 년이 지난 거구나.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길초량이 말했다.

“우리 친우들의 승반 심사 결과가 어찌될지 궁금해지는구려. 소충광 공자, 우문직 공자, 단목홍신 공자는 일단 열외로 치고.”

잠룡대에 자원한 관도들에게는 가산점이 주어지며, 잠룡관으로 복귀한 후에 특별 승반 심사를 치른다.

소충광은 갑반이니 상관없는 얘기고, 을반인 우문직과 단목홍신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실전 경험들까지 쌓았으니, 돌아가서 가산점을 받은 채로 승반심사를 치르면 무난하게 갑반으로 승반할 것이다.

“잠룡관에 남아 있는 건 단목지 소저, 진운령 소저, 황성락 공자, 송유하 소저인데······.”

“길 형이 보기에 그 네 사람의 결과는 어떨 것 같소?”

마침 얘기가 나온 김에 그렇게 물었다.

현재 단목지는 을반, 진운령은 병반, 황성락은 정반, 송유하는 기반이다.

“솔직히 단목지 소저와는 알고 지낸지가 오래 되지 않아서 그쪽은 잘 모르겠소. 작년 말에 을반으로 승반하고 일 년이 지났으니, 잘 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오. 그리고 단목 소저와는 송 형이 더 친하잖소. 어떻게 보시오?”

“단목 소저는 가산점이 없으니 간당간당할 것 같소. 반반이라고 생각되오. 만약 이번에 승반하지 못해도 명년 일학기말에는 승반할 정도의 실력으로 보이오.”

내가 대꾸하자 길초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내 생각에 나머지 세 명은 모두 무난하게 승반할 것 같소.”

나도 비슷한 예측이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특히 기대되는 건 송 소저요. 송 형이 더 잘 알겠지만 송 소저의 경지가 올해 들어 무섭게 상승했잖소. 정반까지 두 단계 승반은 떼 놓은 당상일 것 같고.”

이 또한 동의하는 바이기에 빙그레 웃어 보였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길초량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병반까지 가능할지도······.”

“에이, 그건 너무 갔잖소. 내 앞에서 내 누이 얘기한다고 그렇게까지 과하게 띄워줄 필요는 없소.”

대꾸는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내 예상도 길초량의 예상과 비슷하다.

단지, 길초량이 어떤 근거로 저런 예측을 하는지가 궁금해서 떠보듯 말한 것뿐이다.

올해 송유하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다. 볼 때마다 쑥쑥 성장해 있는 모습이었다.

당연하다.

올해 들어 이 몸이 성심껏 신경 써줬기 때문이다.

일단 송유하는 올해부터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를 익히기 시작했다. 연승휴의 무공은 근본 있는 무공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절학으로 통할 수 있는 무공이다.

그 무공들을 지도해준 사람이 다름 아닌 이 몸이다.

천하제일인임과 동시에 무공연구 쪽으로도 강호 최고의 석학이었던 분한테서 사사한, 바로 이 몸인 것이다.

조별 활동 중에 잠룡관 복귀 시기가 겹칠 때마다 매우 열심히 지도했으며, 여름의 합숙 기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송유하는 백년음양선과의 줄기와 잎을 통해 공력까지 증진되었다.

이후에는 고천비룡결의 성취가 증가함에 따라 평상시의 축기 속도도 더 빨라진 상태다.

송유하는 무공 두뇌가 탁월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수준이며, 궁술 실력에서 알 수 있듯 집중력도 좋다. 게다가 애가 성격이 털털해서 시험 같은 것에 그다지 부담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애가 노력을 어마어마하게 한다는 점이다.

나도 노력 쪽에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데, 송유하도 만만치가 않다. 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하는 애다.

그러니 오랜만에 한 번씩 볼 때마다 애가 기도가 달라져 있었던 거다.

내 예측은 이런 모든 면들을 종합해서 내린 결과다.

참고로 병반 승반 심사가 무슨 일류고수를 뽑는 심사가 아니다. 일류 수준이면 기본적으로 을반에 간다.

즉, 병반은 이류 중에서도 최상위 내지는 그에 근접한 수준의 관도들이 주로 포진되는 반이다.

그래서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길초량이 말했다.

“결과 예측이야 뭐 송 형과 내가 다를 수는 있는데, 적어도 올해 들어 송 소저를 더 꾸준히 지켜봤던 사람은 나였소. 나는 송 소저와 같은 조였잖소. 하지만 송 형은 조도 달랐던 데다가, 통합 잠룡대전에도 다녀오셨고.”

“그거야 그렇긴 한데.”

“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내가 본 송 소저도 송 형만큼이나 지독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었소. 참고로 별 생각 없이 열심히만 하는 느낌이었으면 이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조별 파견에 나갔을 때 송 소저가 소충광 공자에게 비무 부탁을 많이 했었다고 말했었지요? 그 비무를 지켜본 후에 내가 송 소저에게 조언을 해줬다는 말도 했었고. 그러고 나서 다음 비무를 할 때 보면, 그전 비무 때 소충광 공자와 내가 해줬던 짧은 조언들이 항상 반영되어 있는 모습이었소.”

길초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솔직히 조언은 쉽소. 그러나 당사자가 그걸 수정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오. 가뜩이나 비무 시에 수정 사항이 반영되어 있다는 건,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노력했다는 뜻이잖소.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만 하는 정도로는 절대로 그게 단기간 내에 반영될 수 없는 거니까.”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길초량의 말이 옳다.

무공을 펼침에 있어 누구에게나 자신조차 모르는 안 좋은 습관들이 있다. 오랜 세월 굳어 온 습관이기에, 그걸 단기간에 수정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정을 했다손 치더라도, 전투나 비무 시에 다급해지면 원래의 습관들이 무의식중에 나오게 되어 있다.

한데 송유하는 그걸 고쳐서 다음 비무에 임했다는 것이다.

하여간 독한 것 같으니라고.

“어쨌거나 모두의 승반 심사 결과가 어찌될지 기대되는구려. 뭐, 내일이면 결과가 나올 테니, 내가 이리저리 정보를 좀 수집해 보겠소. 이르면 모레, 늦어도 글피쯤에는 우리도 결과를 알게 되지 않을까 싶소.”

나도 기대된다.

그 말을 마친 길초량이 가서 쉬겠다며 내 거처를 벗어났다.

* * *

승반 심사의 결과가 발표된 날답게, 옥산의 대로는 온통 북적거리는 중이었다.

송천광이 무원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뒤를 총관 이청오와 정부인 동난향이 따랐다. 그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이는 진양옥이었다.

곧, 깨끗하게 차려 입은 장년의 점소이가 송천광의 앞으로 다가오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이쿠! 송 장주님 오셨습니까요!”

“허허. 오랜만이군. 잘 지냈는가.”

“예, 예. 잘 지냈습니다요. 장주님께서도 강녕하셨지요?”

“허헛. 뭐, 그럭저럭 지냈네. 그나저나 우리 아이들은 도착했는가?”

“예. 일각 전쯤에 도착하셨습니다요.”

“그래. 예약한 방으로 안내해 주게.”

“아, 그 전에······,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장년의 점소이가 조심스럽게 묻자 송천광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기다리라니? 왜 그러는가?”

“그게, 송 장주님께서 오시면 잠시만 대기해주십사 부탁드리라고······, 객잔주님께서······.”

“주 대인께서?”

“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오랜만의 가족 모임이라 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송천광이 난감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점소이가 곧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합니다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오실 겁니다요.”

“뭐, 다른 분도 아니고 주 대인이 그리 말씀하셨다니, 잠시라면 기다리긴 하겠네만.”

말은 그렇게 해줬지만 송천광은 살짝 짜증이 났다.

‘얼른 가서 애들의 승반 심사 결과나 듣고 싶은데, 그 인간은 왜 이런 때 갑자기 보자고 난리야?’

잠시 후, 화려한 옷차림의 중년인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왔다. 키는 평균에 몸집은 통통한 사내였다.

“아이고! 송 장주님! 오셨습니까?”

“오! 주 대인, 안녕하시오. 듣자하니 이 송 아무개에게 볼 일이 있으시다고?”

“허허. 기다리시게 해서 송구합니다. 실은 제가 엊그제 우리 직원들한테서 보고를 받았는데, 송 장주께서 삼 층 귀빈실을 예약하셨고, 그래서 이 한심한 인사들이 그대로 삼 층을 내드렸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뭐, 오늘 같이 잠룡관의 가족 모임이 많은 날에는 으레 그래왔잖소. 돈 있다고 누구나 사 층 귀빈실을 차지할 수 있는 날이 아니니, ‘끕’ 안 되면 알아서 삼 층으로 예약해야지 뭘 어쩌겠소. 우리가 계속 그래왔음을 주 대인도 아실 텐데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급(級)’이라는 말을 일부러 강조해서 ‘끕’이라고 발음해준 것이다.

“허허허. 마침 ‘끕’ 얘기를 하셔서 드리는 말씀인데, 송 장주님은 이제 이런 날에도 사 층의 최고 귀빈실을 이용하실 ‘끕’이 되시잖습니까.”

송천광이 고개를 갸웃했다.

‘으잉? 여러 유명 인사들과 명문가들이 모여드는 오늘 같은 날에도 사 층 최고 귀빈실을 쓰게 해주겠다고? 이 작자가 갑자기 왜 이러지?’

그러자 주 대인이 얼굴 가득 아부하는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허허.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를 배출한 가문이 급이 안 되면, 대체 어떤 가문이 급이 되겠습니까?”

“아······! 아! 허헛! 허허허허헛!”

송천광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이제야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 것이다.

그동안에는 이청오와 함께 이리저리 움직이느라 매우 바빴다.

송가장의 남창 진출 계획 때문이었다.

송가장의 드러나지 않은 재산들을 정리하기 위해 여기 저기 알아보고 다녔고, 남창과 포양호 쪽의 부지도 조사하고 다녔다.

그 와중에도 송가장의 다른 구성원들이 알아채지 못하게끔 몰래 움직여 왔다. 장남인 송유백이 물려받을 광풍현에는 재산을 최소한만 남겨둘 계획이라, 움직임을 최대한 감출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몰래, 바쁘게 다니다 보니 이곳 무원객잔에 온 것도 매우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래서 이곳의 분위기를 몰랐던 것이다.

주 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이 어디, 보통 대단한 일입니까? 정말 대단한 자제분을 두셨습니다! 둘째 자제분이라고 했지요?”

“으허헛! 우리 둘째가 그냥 운 좋게 한 번 우승한 것뿐인데, 뭘 그런 걸 갖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이시오. 허허허허허!”

물론 겸손의 말을 대충 던진 것뿐이었다.

주 대인이 곧바로 대꾸했다.

“운이라니요? 호들갑이라니요? 저도 다 들었습니다. 둘째 아드님께서 점창, 곤륜, 무당, 화산, 소림의 제자들을 차례로 꺾고 우승하셨다면서요? 이게 말로나 쉽지, 그 대단한 구파일방 소속의 제자들을 꺾고 우승한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거야말로 그냥 우승도 아니고 제대로 된 우승 아닙니까!”

“허허헛! 제대로 된 우승······. 으허허허!”

“동부지맹 쪽에서도 수년만의 경사지만, 제가 들어보니 강서 출신이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한 경우도 최초라고 하더군요! 강서 최초라니! 정말 대단한 아드님이십니다!”

“가가, 강서 최초······! 으허허헛! 뭘 또 굳이 그런 말들을 갖다 붙이시고들 그러시는지 모르겠구려. 듣는 당사자 쑥스럽게. 어허허허허!”

강서 최초라는 말까지 들은 상황이라, 송천광의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주 대인이 말했다.

“제가 송 장주님이 보통 분이 아니시라는 건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만, 자식 농사를 또 그렇게까지 잘 지으셨다는 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간 몰라 뵈어 송구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자제분을 두셨으면 한 번씩 귀띔이라도 주시지, 뭘 그렇게까지 꽁꽁 숨기고 계셨습니까. 허허.”

“허허헛. 뭘 그게 자랑할 일이라고. 자식 자랑이나 하고 다니는 아비만큼 꼴불견이 또 없잖소.”

“송 장주님께서 이리 훌륭하시니 자제 분께서도 그렇듯 훌륭하게 자랐겠지요. 존경스럽습니다.”

“허헛! 실상 나는 한 게 별로 없소. 그 아이가 원체 똑부러지는 아이라, 알아서 잘 한 것이지. 내가 무슨. 허허허!”

주 대인이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제가 타지에 좀 다녀오느라 송가장에서 열린 축하연 때 가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여러 모로 송구함을 갚는 의미에서, 오늘 그 방에서 드시는 것들은 술이고 음식이고 모두 제가 대접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모쪼록 편하게, 많이 드십시오.”

송천광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꾸했다.

“아이고! 아이고! 뭘 부담스럽게 그렇게까지······! 남들이 들으면 소문나오!”

“아니! 소문 그까짓 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송천광이 속으로 씩 웃었다.

‘풋! 이 인간이 속으로는 소문이 나기를 바라는 게지.’

주 대인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저와 송 장주님 사이의 관계라는 게 있는데, 축하의 의미로 이 정도야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앞으로도 무원객잔에서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뭐든 말씀해 주시고, 이제부터는 언제든 편하게 사 층 귀빈실로 예약해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송 장주님.”

“아이고 고맙소. 주 대인 말마따나 앞으로도 잘 지내봅시다.”

“이 사람이 안내할 겁니다. 자녀분들도 지금쯤이면 그 방으로 옮겨가셨을 겁니다.”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송천광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흐뭇하기가 이를 데 없다.

‘주 대인 저 인간이 저렇게 나오는 속내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이 무원객잔에서 이렇게나 융숭한 대접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기분이 정말 좋다.

둘째 아들 덕분이다.

둘째를 떠올리다 보니 갑자기 염려도 된다.

지금 둘째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녀석아, 제발 무사히만 돌아와 다오.’

*

점소이가 와서 갑자기 사 층의 최고 귀빈실로 옮겨준다고 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올라오긴 했다.

더 좋은 방에서 가문의 어른들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긴 한데, 송유하는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첫째 오라비와 셋째 오라비 때문이다.

잠룡관에서 두 사람과 만나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인사 외에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자신이 먼저 뭐라고 말을 걸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묵묵히 뒤따르기만 했다.

무원객잔에 도착해서 가문의 어른들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같은 분위기였다.

상황상 어른들이 도착해도 불편할 것 같기는 한데, 그 편이 차라리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다.

이윽고 어른들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오라비들과 함께 일어서서 인사하고 나자 어른들이 각각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 기분이 많이 좋아 보이시네. 이 숙부님도 그렇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난향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

송천광은 의아했다.

인사를 하고 있는 세 자식들의 분위기가 왠지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실상 저 세 아이들의 관계는 딱히 말다툼 같은 것을 주고받을 관계도 아니다.

‘뭐야? 녀석들이 이번에도 승반에 실패한 건가?’

딱 떠오르는 이유는 그것뿐이다.

“승반 심사들은 잘 치렀느냐? 일단 유상이부터 한 번 말해보거라. 이쯤이면 너는 충분히 심사에 통과했을 것 같은데.”

셋째인 송유상은 경반이었다. 중하위 반인데도 이전에 몇 차례나 승반에 실패했었다. 아무리 무공에 재능이 없어도 이쯤이면 통과할 법도 하기에 먼저 물은 것이다.

송유상이 대꾸했다.

“······예, 아버지. 통과했습니다.”

“오오! 그럼 내년부터는 기반이 되는 것이냐?”

“예.”

“잘했구나! 고생 많았다. 장하구나!”

송천광이 그렇게 말하자 동난향이 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이구우! 우리 작은 아들! 잘했다! 정말 잘했다! 어이구, 내 새끼!”

“유상이, 축하한다.”

이청오까지 축하의 말을 건네자 송유상이 공손히 읍해 보였다.

그 와중에도 송천광은 의아했다.

‘왜지? 승반을 했는데도 썩 기뻐하지 않는 느낌이라니.’

송천광의 시선이 곧 송유백에게로 향했다.

‘하면 저 아이가 승반에 실패했나? 큰애가 승반에 실패해서 애들 사이의 분위기가 안 좋았던 건가?’

생각을 마친 송천광이 곧바로 송유백에게 물었다.

“그래, 우리 장남은 결과가 어땠는고? 승반 했느냐?”

“······예, 아버지. 승반했습니다.”

“오오오! 정말이냐? 정녕 네가 정반으로 승반했단 말이냐? 드디어 갑을병정에 들어갔단 말이더냐?”

“······예.”

송유백이 재차 대꾸하자마자 동난향이 기쁨에 겨워하며 소리를 질렀다.

“어머! 어머, 어머! 우리 큰 아들! 잘했다! 정말 대견스럽구나! 어이구, 내 새끼! 어이구, 내 새끼!”

“잘했다, 우리 장남! 해냈구나! 장하구나!”

송천광이 그렇게 말을 보태자 이청오도 환한 표정으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유백이 잘했다! 축하한다!”

“가, 감사합니다.”

큰아들이 그렇게 대꾸하는데, 송천광은 그 모습도 의아했다.

갑을병정에 들어갔으니 당연히 기뻐할 일인데, 큰아들의 표정 또한 썩 밝아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이렇듯 장남과 삼남이 승반했는데도 왜 아이들 사이에서 계속 불편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당장 묻고 싶지만 일단 딸에게도 결과를 물어보긴 해야 한다.

딸아이는 작년에 훌륭한 성과를 보였었다.

일 학기 때 한 단계, 이 학기 때 두 단계를 승반했었다.

올해 일 학기 때는 자신이 없었는지 승반 심사를 치지 않았다고 했는데, 작년에 세 단계나 승반했으니 올해에도 한 단계 승반 정도는 할 법도 하다.

“그래. 유하는 결과가 어찌됐느냐?”

딸은 기반이었다. 이번에 승반하면 무반이다.

만약 이번에 무반으로 승반한다면, 작년에 둘째 아들이 했던 말마따나, 딸도 갑을병정을 노려볼 수가 있다.

“······예, 아버지. 저도 승반했어요.”

“오오! 정말이더냐? 잘했다! 잘했어! 역시 올해에도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딸이 참 예뻐 보인다.

아직 이 년차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최소한 한 번씩은 승반해주고 있다. 오히려 두 아들들보다도 더 믿음감이 생기는 느낌이다.

이청오가 말했다.

“허허! 유하도 축하한다! 장하구나!”

“흥! 그래도 밥값은 하나보구나.”

동난향도 한 마디를 보태자, 이청오가 송천광에게 말했다.

“형님! 이렇듯 셋 다 승반을 했으니 이 얼마나 큰 경사입니까? 감축 드립니다!”

“허허. 그러게 말일세.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구먼. 열심히 해 준 아이들이 너무도 자랑스럽네.”

그렇게 대꾸한 송천광이 아들딸들을 연이어 바라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더없이 장하고 자랑스러운 건 분명한데······. 너희들,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모두가 모처럼 대단한 성과들을 내놓고도 표정이 왜 그 모양들인 것이냐?”

아비가 물었음에도 다들 선뜻 대꾸하지 못하고 있다.

“어허!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그래, 유백이, 장남인 네가 대답하거라!”

“그, 그게······.”

일단 입을 연 첫째가 막내를 힐끔 쳐다보았다. 한데 그 후에도 우물쭈물 거리고 있다.

“어허!”

“그게······, 유하 저 아이가······.”

“유하가 왜? 무슨 잘못이라도 했느냐?”

“자, 잘못이 아니라 저 아이가 이번에 승반을······, 병반으로 해서······.”

뒤쪽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듣긴 들었다. 한데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스럽다.

“바, 방금 뭐라고? 벼, 병반······?”

“예······, 저 아이가 병반으로 승반했다고 말씀드렸······.”

“무어어? 병바아아안?”

깜짝 놀라며 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 얘기를 들은 탓이다.

송천광이 서둘러 물었다.

“저, 저 말이 사실이냐······?”

“예······.”

송유하가 조심스럽게 대꾸하자 송천광의 눈동자가 더 커졌다.

“정반도 아니고 병반이라니······.”

“네, 네가 어떻게······.”

이청오와 동난향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씩을 보탰다.

“세상에! 병반이라니! 정말 대단하구나! 잘했다! 잘했어!”

송천광이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송유하가 조심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송천광은 세 자식들 간의 분위기가 여태 왜 이랬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장남은 마지막 학년인 육 년차부터 갑을병정의 정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막내인 딸은 삼 년차부터 병반에 들어가게 되었기에 분위기가 이랬던 거다.

장남의 입장에서는 갑을병정에 들어가고도 면이 서지 않는 것이고, 막내의 입장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오라비들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으니 눈치만 살피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대단한 성과고 매우 잘 된 일이다.

이 순간만큼은 딸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한데 그 와중에도 과정이 궁금하긴 했다.

작년에 총 세 단계를 승반한 일이야 그럴 수도 있다.

그때는 하위 반에서 중위 반으로 올라간 것이니, 무재가 있는데다가 노력까지 열심히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

한데 딸은 올해에도 세 단계를 승반했다.

그것도 중위반인 기반에서 상위반인 병반으로 단번에 승반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흔한 경우일 리도 없다.

딸이 둘째를 철석같이 따른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둘째는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이기도 하니, 아마도 녀석이 여러모로 막내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싶다.

확인차 물었다.

“유하야. 정말 장하긴 하다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냐? 세상에 기반에서 단번에 병반으로 승반하다니, 애비는 아직도 어리둥절하구나.”

딸이 살짝 분위기를 살피는 듯하더니 대꾸했다.

“거의 모든 게 둘째 오라버니의 도움 덕분이었어요. 그 외에 여러 친우들의 도움도 있었구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하면 너는 유겸이의 실력에 대해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게냐?”

“몰랐어요. 다만 함께 수련을 하면서 점점 둘째 오라버니의 무공이 뛰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초창기에는 중위반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상위반 실력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일 줄은 전혀 몰랐어요.”

송유하가 대꾸하자 이청오가 말했다.

“아무리 유겸이가 도왔고 친우들이 도왔다고 해도, 너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런 성과를 낼 수 없었겠지. 정말 장하구나.”

이청오의 말에 송천광도 고개를 끄덕였다.

딸은 곧 삼 년차에 병반이다.

딸의 발전 속도를 볼 때, 이후에 갑을반에 들어갈 가능성도 매우 높다.

갑을반은 최상위반이라 느낌이 또 다르다. 을반만 되어도 일류고수이기 때문이다.

‘허어! 이런 일이······!’

아비로서 표정관리를 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될 정도다.

자식들을 잠룡관에 보내면서, 넷 중 하나라도 갑을병정반 안에 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여겼었다.

가장 기대했던 건 장남이었고, 두 번째로 기대했던 건 셋째였다. 여식은 좋은 혼처라도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관시켰던 것뿐이며, 둘째는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었다.

한데 포기했던 둘째는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이라는 어머어마한 성과를 냈고, 무공 쪽으로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여식이 일류고수를 목전에 두고 있다.

‘허······!’

헛웃음이 나온다.

사람 일이라는 건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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