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40화 (140/416)

내 안에 마교있다 140

자리는 불편한데 음식 맛은 좋았다.

덕분에 송유하는 눈치껏 여러 요리들을 부지런히 입에 집어넣는 중이었다.

그러던 한 순간, 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섰다.

‘어머니······!’

그리웠던 어머니다. 오랜만이라서 너무나도 반갑다.

하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눈빛만 잠시 주고받는 것으로 인사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곧 진양옥이 송천광에게 말했다.

“밖에 손님들이 찾아오셨어요. 젊은 손님들이 장주님께 잠시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해요.”

“젊은 손님들이면 관도들인가? 우리 애들의 친우들?”

“예.”

“오! 그래. 들어오라고 해.”

진양옥이 고개를 숙인 후에 돌아선 순간, 송유하가 빠르게 전음을 보냈다.

[어머니, 저 이번에 병반으로 승반했어요.]

어머니의 뒷모습이 움찔하는 게 느껴진다.

갑작스러운 전음 때문에 놀라기도 했겠지만, 내용 때문에 더 놀랐을 것이다.

뒤로 살짝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조금 있다가 제대로 얘기해요.]

다시금 전음을 보내자, 걸음을 옮기던 어머니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잠시 후, 몇 사람이 차례로 들어섰다.

총 여섯 명으로, 황성락, 단목지, 진운령, 청여홍, 장우혜, 유은무였다.

“어? 여, 여러분······.”

송유하가 즉시 일어나며 여섯 명을 맞이하자, 송천광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작년에 봤던 단목세가의 금지옥엽이 아니신가?”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장주님. 그간 강녕하셨지요?”

“아이고, 강녕하다마다. 단목 소저도 잘 지내셨는가?”

“예, 장주님.”

“가족 모임 중이셨는가? 어른들도 계시고?”

당장에라도 달려 나갈 기색으로 송천광이 말하자, 단목지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어른들께서는 이번에 못 오셨습니다. 현재 절강 해안에 해적들이 들끓는 통에, 저희 세가도 일정 부분 방비를 담당해야 해서요.”

“아이고, 그렇겠지. 저런, 얼마나 고생들이 많으실꼬.”

“어디 저희 세가만 고생이겠습니까. 모두가 고생중이며, 당장 장주님의 아드님인 송유겸 공자도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잖습니까.”

그 말에 송천광이 염려가 담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장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계반의 일 년차인 유은무라 합니다.”

“인사 올립니다. 저도 계반의 일 년차인 장우혜라 합니다. 은무랑은 친구구요.”

유은무와 장우혜가 예를 취하며 인사하자 송천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오호. 계반의 관도들이면 우리 유겸이의 친우들인 모양이군.”

유은무가 특유의 명랑한 표정과 어조로 대꾸했다.

“네. 송 오라버니와도 친하지만 송 언니와도 친해요.”

“송 오라버니라······. 허허. 우리 유겸이와 많이 친한 모양이군. 그래, 그래. 반갑네, 유 소저, 장 소저.”

송유하가 곧바로 말을 보탰다.

“유 동생과 장 동생은 계반이기는 해도 무공 실력이 좋아요. 제 수련에도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동생들이예요.”

계반이라는 얘기를 듣고 두 소녀를 건성건성 대하는 부친의 모습이 민망했다. 그래서 부연을 한 것이다.

송천광이 즉시 반응했다.

“오오! 그랬는가? 정말 고맙군. 한데, 무공도 제법 한다면서 왜 계반에······.”

송유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부친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은무가 대꾸했다.

“아! 올해 초에 입관하기 전에 들어보니까 계반에 정말 잘 생긴 선배 한 분이 있다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가까이에서 보면서 이왕이면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헤헷. 물론 그 선배가 송 오라버니구요.”

여전히 명랑한 표정이었다.

송천광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허허허헛! 그런 이유로 계반으로 들어갔다니, 재미있는 소저들이로군. 어쨌거나 내 아들 잘 생겼다고 말해주니 애비로서 기분은 좋구먼.”

그러자 이번에는 장우혜가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송 오라버니가 누굴 닮아서 그렇게 잘 생겼나 했더니, 아버님을 닮았던 거네요.”

“으허허허허헛! 에이, 무슨. 허허헛! 하여간 참으로 유쾌한 소저들이로구먼. 다시 한 번 반갑네. 유 소저, 장 소저.”

송유하가 또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친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은 괄시하는 기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내년에 오 년차에 병반이 되는 황성락이라 합니다.”

황성락이 인사를 끝내자마자 송유하가 한 마디를 보탰다.

“황 공자는 광동 청원표국의 장남이세요.”

“헛! 광동의 청원표국이라면······.”

송천광이 말을 줄이며 이청오를 바라보자, 이청오가 곧바로 대꾸했다.

“맞습니다. 광동제일표국입니다.”

“오오! 황 공자, 반갑네. 정말 반갑네.”

“저야말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송유하가 소리 내지 않고 한숨을 쉬었다.

두 소녀를 대할 때보다 부친의 표정이 훨씬 밝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아버지를 누가 말려.’

“장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유하와 동갑에 동년차인 진운령이라 합니다.”

진운령이 인사하자 이번에도 송유하가 한 마디를 보탰다.

“운령이는 광주진가의 장녀예요. 이번에 을반으로 승반했어요.”

“어이구! 과, 광주진가의 영애셨구먼! 반갑네, 진 소저!”

송유하가 보니 부친의 표정이 매우 환했다. 광주진가가 유명한 세가이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후에도 부친은 진운령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여러 대화들을 나누었다.

이후에는 청여홍이 예를 취하며 말했다.

“인사 올립니다. 저 또한 유하와 동갑에 동년차인 청여홍이라 합니다. 송유겸 공자를 통해 따님을 알게 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친우 사이로 편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송유하는 이번에도 한 마디를 보태줬다.

“여홍이는 연주상단의 장녀예요.”

역시나 부친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지고 있다.

“여, 연주상단이라면 광동의 그 연주상단? 여기 남창에 지점도 있는 바로 그······?”

“그러합니다, 장주님.”

“허어! 누구신가 했더니 연주상단주의 영애셨구먼! 정말 반갑네!”

“저야말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주님. 송유겸 공자에게는 신세 많이 지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허헛! 신세라니! 그깟 신세쯤 얼마든지 더 져도 되네! 그럼, 그럼! 그렇고말고.”

송유하가 보니 부친은 아예 신이 난 모습이었다.

연주상단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기에 저러는 거다.

갑자기 둘째 오라비가 더 그리워진다.

하여간 못 말리는 인맥 지상주의라며 툴툴거릴, 오라비의 속 시원한 한 마디가 듣고 싶다.

*

송천광은 둘째와 막내의 친우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단목세가에, 청원표국에, 광주진가에, 연주상단이다.

직접 연줄을 대고 싶어도 댈 수가 없는 가문과 세력들이다. 한데 그 후손들이 이렇듯 직접 인사까지 하러 오다니.

분위기를 보아하니 친분도 상당히 깊은 모양이다.

딸과도 상당히 친해 보이는데, 이건 아마도 둘째를 통해 형성된 인맥들이리라.

하여간, 둘째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용한 놈이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천하제일세가라는 남궁세가의 후손한테서도 인사 받고 그러는 거 아냐? 그 외에도 오대세가의 후손이랄지, 요즘 급부상 중인 선우세가의 후손이랄지.’

그런 가문의 후손들이 와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 생각을 하던 송천광이 말없이 피식 웃었다.

너무 많이 나갔음을 자각한 탓이었다.

인사하러 온 관도들에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다들 앉지. 여기가 사 층 최고 귀빈실이라 자리도 넉넉하다네. 음식도 많으니 함께들 들고.”

그러자 단목지가 대꾸했다.

“아, 실은 저희들도 지금 사 층에서 음식을 주문해 놓은 후에 잠깐 인사드리러 온 길입니다. 다들 이번에 부모님들께서 오실 여건이 안 되는지라 저희들끼리 모였던 겁니다. 여기 청 소저가 자리를 마련해줘서요. 게다가 오랜만의 가족 모임일 텐데 저희들이 너무 방해하는 것도 송구한 일이구요.”

고개를 돌려보니 청여홍이 민망하다는 듯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긴, 그녀는 연주상단의 장녀이니 주 대인의 입장에서도 귀빈 대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그런가? 아쉽지만 할 수 없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자 단목지가 입을 열었다.

“인사도 드렸으니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다들 반가웠네. 허허허.”

그러자 청여홍이 딸에게 말했다.

“아, 참! 유하야. 이번 방학 때도 어차피 강서를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서, 여기 있는 인원들과 같이 포양호 쪽에서 합숙하며 무공 수련하기로 했어. 우리 지점장님이 이미 장소 예약을 해두셨는데, 혹시 너도 가능할까 싶어서······.”

청여홍이 말을 줄이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아, 그, 그래? 일단은 말씀을 드려봐야 해서······.”

딸도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허락을 구하려는 것이다.

보아하니 미리 짠 것 같지는 않다.

어쨌거나 딱 봐도 알겠다.

딸도 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딸은 이번에 병반까지 세 단계나 승반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기까지 친우들의 도움도 받았다고 했다.

저들일 것이다.

인원들 중에 사내는 하나뿐인데다가, 안전에 관해서는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알아서 신경 쓸 것이다. 염려할 일이 그다지 없다.

가뜩이나 저런 가문의 후예들이라면 거절할 이유도 없다.

저런 데 못 끼게 하면 딸한테 오히려 손해이기도 하다.

딸에게 말했다.

“합숙지에 도착해서 전서. 합숙 중간에 한 번 전서. 합숙 끝내고 잠룡관으로 출발할 때 전서. 잠룡관으로 복귀해서 전서. 이것만 지켜준다면 가도 좋다.”

딸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딸의 미소다.

평소 표정이 거의 없는 아이임을 감안할 때, 저 정도면 매우 기뻐하는 모습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뭔들 못 들어주겠는가.

일류고수가 목전인 딸인데.

* * *

기동타격조가 복귀한 후로 나흘이 지났다.

나흘간은 해적들의 침공 소식이 없어, 조원들 모두가 간만에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조원들은 복귀 첫 날과 이튿날까지는 회복에만 집중했고, 사흘째인 어제부터는 각자의 수련을 이어갔다.

제갈수광은 수련 시에도 기력 관리와 체력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다.

어차피 궁술을 수련하는 인원들은 내공을 쓰지 않으니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검술과 암기술 쪽을 수련하는 조원들은 다르다.

그쪽은 수련 시간이 반이고 휴식 및 운기조식의 시간이 반이라고 들었다.

아침 식사를 빠르게 마친 후, 활을 들고 궁술 수련장으로 향했다.

일반 시위를 이용해서 몇 발을 쏘고 있는데, 길초량이 활을 든 채로 빠르게 다가왔다.

“송 형! 소식을 알아왔소!”

아마도 승반 심사 결과에 대한 소식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 또한 궁금하던 차였다.

내게 다가온 길초량이 이윽고 나와 친분이 있는 관도들의 승반 심사 결과를 빠르게 읊었다.

들어보니 진운령은 을반으로, 황성락은 병반으로, 사십사 조의 부조장이었던 묘옥련도 병반으로 승반했다고 한다.

뭐, 예상했던 결과다.

연주상단의 장녀인 청여홍은 원래 임반이었는데, 이번에 경반으로 두 단계를 승반했다고 한다. 장우혜와 유은무가 부지런히 도왔던 모양이다. 어차피 하위반이니, 그 두 소녀가 도왔다면 그 정도 승반은 어렵지 않다. 청여홍 본인도 열심히 했을 테고.

단목지의 경우에는 안타깝게도 갑반 승반에 실패한 것 같다.

이 또한 예상했던 범주 내의 결과다.

뭐, 그녀라면 내년에는 당연히 승반할 것이다.

“계반인 장우혜 소저와 유은무 소저는 승반 심사를 안 친 모양이오. 자, 이 정도면 되었지요?”

길초량은 아직 송유하의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래 놓고 지금 저딴 소리를 하고 있는 거다.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나.

“우리 길 형이 많이 한가하신가 보네. 소충광 공자와 우문직 공자가 알면 좋아할 테니, 가서 알려줘야겠구려.”

“에잇! 거 참, 송 형도······! 농담이잖소! 농담!”

놈도 비무는 하기 싫은 거다.

신룡대씩이나 되는 길초량 놈에게 있어 그 두 사람과의 비무는 거의 봉사활동에 가깝다. 친분 때문에 해주는 거지, 길초량 본인은 얻는 게 거의 없는 비무다. 냉정하게 말해서 심력 낭비고, 기력 낭비고, 체력 낭비다.

가뜩이나 길초량은 지금 궁술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라 시간 여유도 거의 없다.

내가 씩 웃어 보이자 길초량이 말했다.

“송가장의 장남과 삼남은 각각 한 단계씩 승반한 모양이오.”

후! 결국 두 놈 다 승반을 하긴 했나 보네.

할 때가 되긴 했었다. 오히려 너무도 더딘 승반이다.

이 놈들아, 그래갖고 언제 일류고수 되려고 그러냐.

“스읍! 누가 그딴 거 궁금하다고 했소?”

“하핫! 역시 송 형은 형제인데도 가차 없으시구려.”

“형제는 개뿔이. 내가 소 공자와 우문 공자에게 달려가기를 원하시나 봐? 내가 빠르다는 건 익히 알고 계시지?”

그러자 길초량이 다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소, 송 소저는 병반이오, 병반! 하! 거 참, 우리 송 형, 갈수록 성격이 까다로워지는 것 같단 말이야. 으휴!”

역시나 송유하가 해낸 거구나.

예상했던 결과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견하다.

마치 내가 해낸 것처럼 기분이 좋다.

흔한 성과가 아니니 동부지맹 잠룡관에서도 많이들 놀라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송천광이 가장 놀랐을 것 같다.

아마도 결과 발표 날에 가족 모임이 있었을 테니까.

다른 것 보다 동난향 그 아줌마의 표정을 못 본 게 아쉽다.

거의 똥 씹은 표정이었을 텐데.

그나저나 송유백하고 송유상 그것들은 앞으로 쪽팔려서 어떻게 살까 몰라?

푸흐흐흐!

그쪽 세 모자의 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아! 기분 좋아! 아! 상쾌해!

속으로 그 생각을 하며 웃고 있는데 옆에서 길초량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거보시오. 내가 송 소저라면 병반까지도 가능할 것 같다고 했잖소.”

“그러게 말이오. 역시 길 형이시오. 그 탁월한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소. 내가 많이 배우는구려.”

나도 이미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이 놈아.

그래도 그냥 잘한다, 잘한다 해주자.

애들한테는 원래 이러는 거지, 뭐.

내 말을 들은 길초량이 기분 좋게 웃었다.

“으하하하하하!”

좋단다.

다음 날, 우리는 모든 행장을 챙긴 후 영거현 주둔지로 이동했다.

해적들의 침공 때문이 아니다.

임해현 주둔지에는 잠룡일대가 머물고 있으니, 우리까지 굳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한쪽에 필요 이상으로 전력이 집중된 상황이라, 적절하게 분산시키는 차원의 결정이다.

소충광과 우문직의 비무 요청에서 벗어난 길초량이 특히 즐거워했다.

급할 게 없기에 전투마를 몰고 적당한 속도로 이동했고, 우리는 이틀 후에 영거현 주둔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섣달 스무엿새 날의 일이었다.

* * *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송유겸으로서의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남들은 섣달그믐날의 분위기도 즐기고 정초의 분위기도 즐겼겠지만, 그 시기에 해안가의 각 주둔지들에는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다.

당연한 결정이긴 했다.

전선에서는 원래 이런 시기가 더 위험한 법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가 연말연시의 분위기를 느낀 거라고는 교자를 실컷 먹은 게 다였다.

그리고 그 시기에 해적의 침공은 없었다.

요즘 백도에서는 증운생을 목격했다는 소문들이 여기저기에서 파다하게 퍼져나가는 중이다.

그런데 목격담이 너무 많고 중구난방이다.

같은 날인데도 누군가는 운남에서 봤다고 하고, 누군가는 감숙에서 봤다고 하고, 누군가는 요녕에서 봤다고 한다.

비맹주 세력이 이곳저곳에서 크고 작은 조직들을 구성하여 움직이기 시작한 탓이다.

정보를 정확하게 검증한 후에 퍼트려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불확실한 정보들을 마구잡이로 흘리고 있다. 다들 본인들이 정보의 출처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거다.

조금이라도 더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때문에 많은 백도인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중이라고 한다.

일찍이 원을태가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다.

천마신교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백도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체계가 다른 걸 어쩌겠나.

지금의 나는 백도인이니 내가 이해해야지, 뭐.

어쨌거나 백도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백도의 분위기가 어떻든 간에, 기동타격조의 조원들은 수련에 매진하는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실전 치르고 수련하고.

실전 치르고 수련하고.

원래 이런 과정을 적당히 반복할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성취를 높이는 면에 있어서는 최상의 환경이다.

지금의 기동타격조가 딱 그런 환경이다. 내가 다쳐 있었던 사이, 우리 애들은 그런 과정을 두 번이나 더 겪기도 했다.

게다가 조원들은 교관들과 세 노인을 통해 배움을 구하기도 쉬운 환경이다.

덕분에 조원들은 쑥쑥 발전하고 있다.

내 눈에는 조원들의 성장세가 확연하게 보일 정도다.

그 와중에도 가장 도드라져 보이는 건 세 사람이다.

단목강, 추소륵, 길초량이다.

단목강과 추소륵은 암기술이나 궁술 등을 익히지 않았기에 후위에는 설 수가 없다. 무조건 전위에 서야 한다. 그리고 전위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후위에 비해 더 위험하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매우 필사적으로 수련하고 있다.

둘이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천재들이 경쟁까지 하고 있어서 그런지, 두 사람의 발전 속도는 그야말로 미친 수준이다.

길초량은 평소처럼 유쾌한 모습인 건 변함없는데, 왠지 모르게 기도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이전보다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의 경지에서 그런 모습이라는 건, 일류의 후반이라는 마지막 고지를 넘어 내리막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근래 길초량이 겪은 전투들은 신룡대원의 입장에서도 치열했던 전투들이었다.

그러한 경험들 속에서 어떠한 깨달음의 끈 같은 걸 잡은 게 아닌가 싶다. 가뜩이나 일전에는 그 덩치 놈에게 죽을 뻔한 경험도 했었으니까.

* * *

어느덧 정월의 아흐렛날.

여느 때처럼 오전 궁술 수련을 하고 있는데, 제갈수광의 집합령이 떨어졌다.

전투 집합은 아니고, 우리가 쓰고 있는 독립 거주지의 회의 막사로 집합하라는 명령이었다.

전원이 집합하자 제갈수광이 공력을 운용하더니 회의 막사를 기의 막으로 감쌌다.

음성이 새어나가는 걸 차단하기 위한 막이다.

이윽고 제갈수광이 관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듣기 전에 다들 명심한다. 지금부터 내가 얘기하는 사안들은 모든 게 극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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