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43
중요한 작전인 만큼 신룡대가 투입된 것도 당연히 납득이 된다.
참고로 청(靑), 적(赤), 황(黃), 백(白), 묵(墨)으로 대표되는 신룡대 각 조의 조장들은 통상 청룡, 적룡, 황룡, 백룡, 묵룡으로 불린다.
즉 황룡조장인 태무엽은 황룡인 셈이다. 황룡 태무엽이 이끌고 왔으니 뒤따르는 이들은 당연히 황룡조원들일 테고.
참고로 그중에 여인은 세 명이었다.
아까 드러난 얼굴들은 다들 면구 등으로 용모를 바꾼 상태일 것이다.
이번 작전까지만 저 얼굴로 지내겠지.
흑풍대든 신룡대든, 기본적으로는 각 조별로 독립 임무들을 수행하고 다닌다. 그러나 사안의 중요성에 따라 두 개 조 이상이 합동 작전을 펼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번 경우 또한 매우 중요한 작전이니 다른 조가 합류할지의 여부도 궁금하다.
이왕 다른 조가 합류한다면 묵룡조나 백룡조였으면 좋겠다.
신룡대의 다섯 조장은 지위가 동등하나, 전통적으로 가장 강한 조장은 대부분 묵룡이었다. 현재의 다섯 조장들 중에서 가장 강한 조장도 묵룡이라고 알고 있다.
그를 직접 한번 보고 싶다.
백룡조가 보고 싶은 이유도 백룡을 직접 보고 싶어서다.
신룡대에서 실로 오랜만에 배출된 여조장이라는 정보를, 삼 년쯤 전에 천마신교에서 본 적이 있다.
신룡대에서 여조장은 삼십여 년 만이라고 했던가.
참고로 흑풍대의 경우에는 여인이 마지막으로 조장에 오른 게 오십 년이 넘었다고 알고 있다.
여인이 조장에 오르기가 그만큼 힘든 조직이 바로 신룡대나 흑풍대 같은 최정예 기밀 조직이다.
그런 만큼, 얼마나 대단한 여조장인지 직접 보고 싶다.
태무엽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은 역시 길초량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모습을 목격했던 기억 때문이다.
일단 길초량이 신룡대인 건 거의 확실하다.
개인 간의 싸움이야 어렵지 않지만, 단체전은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린다. 동료와 함께 조직적으로 전투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수차례 전투를 같이 치러 보니 길초량은 높은 수준의 단체전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놈은 항상 전체를 보며 적재적소로 움직였고, 주변 동료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공수를 펼쳤다.
최정예 전투 조직에서 단체전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결코 보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특히, 과거의 신룡대원들이었던 세 노인과의 연계가 매우 자연스럽기도 했다.
그렇듯 길초량이 신룡대인 건 확실해 보이나, 태무엽과 대면한 모습만으로 황룡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조가 다르다 해도 협조가 필요한 경우에는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들을 이어가다 보니 경계 근무 시간도 금세 지나갔다.
* * *
근무를 교대해주고 마을로 복귀했다.
복귀하며 확인해보니 지난밤에 이곳에 합류한 이들은 신룡대의 황룡조뿐이었던 모양이다.
내 거처로 배정된 집의 사랑채로 돌아왔다.
이 마을에서 연기가 나면 안 되기에, 불 같은 건 일절 피울 수가 없다. 그래서 방 안이 쌀쌀하다.
사실은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긴 하다. 그동안 계속 노숙을 했던 입장이니, 사방과 천장이 막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자고 있던 황보충이 침낭 안에서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나와 같이 이 사랑채를 숙소로 쓰는 사람은 조장인 단목강과 부조장인 황보충이다. 지휘관의 전령인 나까지 셋이 함께 쓰게 된 거다.
단목강은 경계 근무를 나간 모양이다.
“아, 송 공자. 오셨소? 수고하셨소.”
황보충이 자다가 깨서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나 때문에 깼구려. 피곤할 텐데 어서 더 주무시오.”
“아니오. 나는 전반야 근무를 끝내고 와서 잤으니 이쯤이면 일어나야지요. 피곤한 것으로 따지면 후반야 근무였던 송 공자가 더 피곤하시겠지.”
‘반야’란 밤의 반절이라는 뜻이다. 자정 전의 밤 근무가 전반야, 자정 후의 밤 근무가 후반야다.
뱀이 허물을 벗듯 황보충이 침낭에서 벗어났다. 그러더니 빙그레 웃으며 내게 물었다.
“내 침낭에서 주무시겠소? 내가 방금까지 따따앗하게 뎁혀놨는데.”
놈이 사람 좋은 표정으로 구수한 언어까지 구사하며 그렇게 말했다. 농담을 하고 있는 거다.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주었다.
“괜찮소. 내 침낭에서 자겠소.”
“왜? 사내끼리 뭐가 어때서 그러시오? 내 온기도 느끼고, 좋잖소.”
“아니. 우리 그렇게까지 가진 맙시다.”
내가 또다시 단호하게 거절하자 황보충이 웃었다.
“푸흐흐흐!”
“후후후.”
나도 마주 웃다가 순간적으로 웃음기를 거뒀다.
황보충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웃다가 갑자기 왜 그러시오?”
“아, 나와 친한 사람이 해줬던 말이 갑자기 떠올라서 말이오.”
“무슨 말이었는데 그러시오?”
“바보끼리는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하던데, 방금 전의 우리가 딱 그랬던 것 같아서 말이오.”
“헉!”
황보충도 곧바로 웃음기를 거뒀다.
그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며 투덜대듯 말했다.
“쯧. 누군지는 몰라도 괜한 말은 왜 만들어내서. 사람 웃을 때 신경 쓰이게.”
나한테 그 말을 해준 사람은 황성락이었다. 물론 걔도 어디에선가 들은 말이겠지만.
황보충이 문을 닫으며 씩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송 공자와 함께 바보 취급을 당하는 건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닐 것 같소. 그럼 푹 쉬시오.”
나는 피식 웃어 보이기만 했다.
짜식이 친해지니까 대하는 태도도 능청스러워졌다.
회복을 위해 회회심공을 두 차례 운기한 후 잠에 들었다.
* * *
밭두렁 옆으로 다가간 길초량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초식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귓전으로 전음이 날아들었다.
[오랜만이군.]
태무엽의 전음이었다.
길초량이 자연스럽게 초식 수련을 이어가는 모양새로 서서히 몸을 틀었다.
실상 길초량이 이곳에서 초식 수련을 하고 있는 이유도 태무엽의 지령 때문이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접선하자는 지령이 있었던 것이다.
밭두렁 옆의 큰 나무 방향으로 몸을 튼 길초량이 전음으로 대꾸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관님.]
태무엽은 신룡대의 황룡조장인데, 길초량이 사용한 호칭은 ‘조장님’이 아닌 ‘교관님’이었다.
[음······, 너, 기도가 좀 변한 것 같은데.]
[해적들과 함께 움직이는 사파 놈들이 상당히 강하더군요. 제 입장에서도 치열한 전투들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런 전투들을 연이어 겪다 보니 약간의 깨달음이 있었던지라.]
[하! 참! 너 같이 대단한 놈을······! 아오! 내가 미친놈이다, 내가 미친놈이야! 그때의 예비 대원들 중에서 수석이었던 너를 놔두고, 여자 대원이랍시고 차석을 뽑았던 내가 미친놈이야. 우리 부조장 그 새끼를 죽여야 돼! 미모도 좋은 여자 대원이 차석이니, 당연히 여인을 뽑아야 되는 거라며 옆에서 꼬드겼던, 그 새끼를 죽여야 돼!]
태무엽의 어조에 한탄과 분노가 가득했다.
천천히 수련을 이어가던 길초량이 빙그레 웃었다.
반년 동안의 훈련생 기간을 거쳐 신룡대의 예비 대원으로 차출된 후, 그때부터 세 달간은 정식 신룡대원이 되기 위한 교육훈련을 받아야 했다.
훈련생 때보다 더 지옥 같은 훈련이었다.
당시의 교육훈련을 주관했던 교관이 바로 황룡조장인 태무엽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동기들 열일곱 명 중에서 수석을 차지했던 게 바로 자신이었다.
태무엽이 자신에게 눈독 들이고 있다는 걸 훈련 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자신을 아끼는 게 느껴졌었다. 훈련을 주관했던 게 태무엽이었던지라, 우선 차출권도 황룡조에 있었다.
한데 태무엽은 우선 차출권을 수석이었던 자신에게 쓰지 않고 차석에게 썼던 것이다.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선택이기도 했다.
사내들이 득실거리는 신룡대라,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신입 조원이라면 어느 조에서든 당연히 환호하며 반길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차석을 할 정도로 실력마저 뛰어났으니 더더욱 반길 수밖에.
태무엽은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당시에 차출권의 두 번째 순번이었던 조가 바로 묵룡조였다.
당시에 묵룡조의 부조장이 오더니 횡재했다며 자신을 주워가다시피 데려갔던 것이다.
길초량이 태무엽을 향해 대꾸했다.
[하하. 희아도 실력 좋잖습니까. 황룡조에서 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배들의 예쁨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물론 걔도 잘하고는 있지. 그래도 너랑은 비교가 안 되지. 너를 볼 때마다 내가 아까워서 미치겠다! 기회가 있었는데도 놓아줬던 놈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는데, 내가 복장이 안 터질 수가 있겠냐? 묵룡 그 인간이 나를 또 얼마나 놀려댈지. 아아아······! 미쳤지, 내가! 이런 천재를 놔두고 내가······!]
[하하, 매번 말씀드리지만 저, 천재 같은 거 아닙니다.]
[그 나이에 그 정도면 충분히 천재지, 이놈아! 네가 천재 아니면 누가 천재야?]
길초량은 빙그레 웃어 보이기만 했다.
다른 누가 천재냐고 질문해오니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
그러나 태무엽이 그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묻지 않는 이상, 굳이 자신이 먼저 그 이름을 밝히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자신을 아껴주는 태무엽이라 해도 그렇다.
친우의 이름이니까.
물론 자신이 친우를 배려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까지다.
잠시 후면 태무엽이 기동타격조원들 한 명, 한 명의 실력에 대해 물을 것이고, 그러면 자신은 최대한 정확하게 보고를 해야 한다.
친우를 감싸주기 위해 거짓 보고를 해봐야 금방 들통난다. 정보력 하면 신룡대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태무엽이 곧바로 질문해왔다.
[기동타격조의 조원들에 대해 말해봐.]
어조가 바뀌었다.
이제는 교관과 제자의 입장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상관과 부하의 입장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다들 치열한 전투와 수련이 반복되며 전체적으로 성취도 상당히 늘었고, 실전 실력도 늘었습니다. 열의들이 대단합니다. 전투력에 도움이 되기 위해 몇 명은 암기술을 열심히 익히고 있고, 몇 명은 궁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누가 암기술을 익히고 누가 궁술을 익히는지, 해당 분야에서의 실력들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보고했다.
[알았다. 그럼 주요 인물들에 대한 사항으로 넘어가지. 단목강은 어떻지?]
[검술의 성취도 많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전 적응력도 매우 뛰어납니다. 사파 쪽의 절정고수들을 상대로도 안정감 있게 대처할 정도로 실력이 크게 늘었습니다. 무서울 정도의 발전 속도입니다.]
[묵룡조를 기준으로 서열이 어느 정도 될 것 같나?]
저렇게 묻는 이유는 대상의 전투 능력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함이다.
신룡대 각 조의 정원은 스무 명이다.
다만 조원 전체에 대한 동원령이 떨어져도 스무 명 모두가 모이는 일은 거의 없다. 개인 임무, 특수 임무, 부상자, 휴가자 등은 제외되고 모이기 때문이다.
[열여덟 번째 정도일 것 같습니다.]
묵룡조의 이십 명을 기준으로는 열여덟 번째 실력자쯤 된다는 의미의 대꾸다.
[호오. 어려서부터 무재가 뛰어났다고 하더니 확실히 대단하군. 그 나이에 그 정도라니. 하면, 추소륵은?]
[검술의 성향은 매우 다른데, 성취나 실전 적응력 면에서는 단목강 공자와 거의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둘이서 경쟁하듯 수련하고 있기에 두 사람 모두 발전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묵룡조 기준 서열도 비슷하다고 판단됩니다.]
[소림이 괜히 그를 아끼는 게 아니겠지. 다음, 송유겸은 어떻지?]
드디어 친우의 이름이 나왔다.
태무엽이 그 이름을 마지막에 말한 이유는, 친우가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친우는 그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후기지수다.
태무엽의 전음이 이어졌다.
[실전에서의 암기술 실력이 매우 빼어나다는 정보는 이미 알고 있다. 한데 기동타격조에서의 활약 또한 매우 대단했다고 하더군. 송유겸과 친한 사이인 만큼, 네가 이번에 봤던 모습들을 자세히 얘기해 보도록.]
길초량은 그 시점에 초식을 수련하며 신형을 한 바퀴 천천히 회전시켰다.
그러면서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를 짓고 있는 건 아닌데, 이런 상황은 역시나 불편하다. 그리고 친우에게 미안해진다.
태무엽에게 전음을 보냈다.
[성취를 짐작하기 어려운 종류의 내공을 익힌 듯합니다. 그래서 정확한 경지를 짐작하기는 어려우나, 제가 파악하기로는 아직 절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데 움직임이 매우 빠릅니다. 쾌자결 위주의 무공을 익혔기 때문이라는 게 본인의 설명입니다.]
[매우 빠르다면 어느 정도로 빠르지?]
[절정의 초반쯤인 적측 고수들의 반응이 매우 늦다고 여겨질 정도로 빠릅니다.]
이 정도도 표현을 최대한 자제해서 말한 것이다.
눈앞에서 실제로 겪어본 친우의 속도는, 그야말로 온몸의 털이 모조리 곤두설 정도로 빨랐었다.
귀신같은 빠르기였다. 폭발적인 속도였다.
저렇게 빠른 사람이 적이 아닌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류인데도 그 정도의 빠르기라니. 놀랍군. 알았다. 암기술은 역시나 대단하던가?]
[예. 빠르고 위력적인 데다가 정확합니다.]
[단체 전투 시의 역량은?]
[······모든 면에서 저보다 뛰어납니다.]
[뭐어어? 너보다아?]
믿을 수 없다는 어조였다.
[예.]
대꾸를 들은 태무엽이 침묵했다.
놀람으로 인한 침묵이다.
태무엽이 잠시 후에 다시금 전음을 보내왔다.
[그래서 송유겸의 묵룡조 기준 서열은?]
[그게······.]
이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니, 곧이곧대로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열두 번째 내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니다.
친우는 지금의 실력으로도 일고여덟 번째는 충분히 되는 엄청난 실력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우를 생각해서 다소 낮춰 말한 것이다.
나중에 어느 정도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만한 선에서.
물론 태무엽은 이 정도만으로도 놀랄 것이다.
[무어라아아아? 그 나이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그 후로 제법 오랫동안, 태무엽에게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태무엽은 이후에도 송유겸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더니 떠나갔다.
나무 뒤에 등을 기댄 길초량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악용할 목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고, 태무엽 또한 저 정보들을 악용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언젠가는 친우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