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45
술시 정(오후 8시)이 되기 전에 우리는 일차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에서 출발한 후로 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장악현 동부의 해안이다.
먼바다 쪽에서 보면 잘 드러나지 않는 만 형태의 해안에 함선 여섯 척이 숨겨져 있었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중규모의 군함들이었다.
관부를 통해 지원받은 모양이다.
모두가 빠르게 승선했다.
기동타격조는 맨 마지막 배에 올랐는데, 여섯 척의 군함들 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은 배였다.
군함에 올라서 보니 길쭉한 조각배 몇 척이 난간 쪽에 준비되어 있었다. 목적지의 해안가에 조용히 근접하기 위한 배들인 듯하다.
선원들도 이미 대기 중이었는데, 모두가 해군들이었다.
신룡대의 황룡조가 우리와 같은 배에 승선했다.
황룡조 외에도 열여덟 명의 인원들이 우리 배에 승선했는데,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우리가 있던 마을 쪽에는 합류하지 않았던 인원들인 것이다.
그들도 신룡대인 것 같다.
한때 동종업계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의 감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무슨 조인지 궁금해서 곧바로 제갈수광에게 물었다.
[교관님, 저들도 신룡대죠?]
[어.]
[하면 저들의 조도 아십니까?]
[백룡조. 이쪽에서 이런저런 준비를 도맡느라 마을 쪽으로는 합류하지 못했던 거고.]
오! 백룡조라니.
보고 싶었던 두 개의 조 중 하나다.
아까 얼핏 보니 그쪽에도 여자 조원이 서너 명 있던데, 그중에서 누가 조장인지 슬쩍슬쩍 파악을 해봐야겠다.
참고로 백룡조가 이곳에서 이런저런 준비를 도맡았던 이유는, 황룡조에 비해 조장 짬밥이 크게 밀리기 때문일 것이다.
백룡조의 조장은 이제 겨우 삼사 년 차 조장이니까.
횃불 따위는 전혀 켜지 않은 채로, 배는 별빛에만 의지하여 어두운 바다 위를 조용히 나아갔다.
선원을 맡고 있는 해군들의 솜씨가 좋은지, 배가 나아가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배가 출발하고 나서 일각쯤 지났을 때, 전원 갑판 중앙으로 집합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기동타격조 열일곱 명, 신룡대의 황룡조 열여섯 명, 백룡조 열여덟 명이 갑판의 중앙에 빼곡하게 모였다.
태무엽이 말했다.
“이 배에 같이 탄 우리는 한동안 함께 움직이며 작전을 수행하게 될 것이오. 즉 우리는 말 그대로 한배를 탄 처지라고 볼 수 있소.”
“헐헐헐!”
원을태, 탕유심, 촉홍결 등의 노인들만 웃었다.
아저씨 농담에 할아버지들만 반응한 것이다.
나머지는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있는데, 나는 일부러 태무엽을 향해 썩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명색이 신룡대의 황룡이라는 자가, 농담 수준 하고는 하여간.
“흠흠!”
태무엽이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쯤에서 확실하게 밝히자면, 우리는 신룡대요. 우리 신룡대의 두 개 조와 기동타격조가 계속 같이 움직이게 될 것이오. 어떤 조인지는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라겠소.”
조원들 몇 명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 유명한 신룡대가 두 조나 투입되었고, 우리가 그들과 합동 작전을 펼치게 되었다는 점에서 놀란 것이다.
이어서 태무엽이 엄숙한 표정으로 신룡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신룡대 전원 정렬. 대선배님들께, 예(禮)!”
그러자 황룡조와 백룡조의 전원이 우리 조의 세 노인들을 향해 몸을 틀며 예를 취했다.
쿵!
신룡대원들이 오른 주먹을 가슴에 동시에 대며 난 소리다.
원을태를 비롯한 세 노인도 같은 동작으로 신룡대원들을 향해 예를 취했다가 주먹을 내렸다. 그러자 신룡대원들도 주먹을 내렸다.
나름 멋진 광경이었다.
태무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드리는 말씀을 이어가겠소. 우리는 총 오십 명가량의 인원이오. 그런 만큼 일관된 지휘권이 필요하오. 기동타격조의 지휘관인 제갈 교관님과는 이미 이야기를 나누었고, 총지휘는 내가 맡기로 했소. 편의상 일(一) 조장이라고 불러주시면 되겠소. 모쪼록 기동타격조의 여러분들께서도 이 사람의 지시를 잘 따라주시기를 부탁드리겠소.”
기동타격조의 인원들이 절도 있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태무엽이 말했다.
“편의상 제갈 교관님은 삼(三) 조장으로 부르겠소. 이(二) 조장은 이 친구요.”
태무엽이 그렇게 말하며 본인의 옆에 있는 한 명의 여인을 가리켰다.
이전부터 슬쩍슬쩍 확인했던 내가 백룡일 거라고 추정했던 여인이다. 그녀가 확실히 백룡인 모양이다.
어차피 면구 따위로 용모를 바꾼 모습이겠지만, 저 모습만 봐서는 삼십 대 초중반 정도로 보인다.
날렵한 몸매이며 눈동자가 착 가라앉아 있다. 기도 또한 평온하게 정제되어 있다.
태무엽이 말했다.
“이제부터는 이 조장이 우리의 임무에 대해 설명해 드릴 것이오.”
이어서 백룡의 설명이 시작되었고, 모두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우리의 주 목적지는 복건 평담도의 남쪽 바다에 있는 동갑도다.
동갑도는 작은 섬인데, 그 주변에는 더 작은 섬들이 세 곳이 딸려 있다. 소갑도, 동한도, 칭서도 등이다.
여섯 척의 군함 중에서 일단은 네 척이 그쪽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한다.
동갑도에서 남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도 두 개의 작은 섬이 있는데, 각각 횡산도와 남횡도다. 그 두 개의 섬은 거의 붙어 있다고 봐도 무방한 섬이다.
혹시 모를 일이기에, 군함 두 척은 그 섬들을 먼저 훑은 후에 다시 북상하여 동갑도로 향한다고 한다. 우리가 타고 있는 군함 또한 이쪽에 포함된다.
이상이 백룡이 설명한 대강의 내용들이었다.
* * *
여섯 척의 군함은 평담도의 동쪽 바다를 우회하여 남남서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듯 어두운 바다 위를 항해하기 시작한 후로 얼추 네 시진 가까이 지났을 때쯤, 태무엽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목적지요. 준비하시오.”
동이 트기까지 한 시진쯤 남았다.
애초의 계획도 야음을 틈탄 기습이었는데, 일단 시간적으로는 계획대로 된 것이다.
군함 네 척은 주 목적지인 동갑도와 그 인근의 섬들 쪽으로 향했고, 우리가 타고 있는 군함과 다른 한 척의 군함은 동갑도의 남서쪽으로 향했다.
횡산도가 북쪽 섬이고 남횡도가 남쪽 섬이다.
둘 다 작은 섬들이다.
다른 군함은 횡산도의 북쪽 해안으로 향했고, 우리가 타고 있는 군함은 남횡도의 남쪽 해안으로 향했다.
양측 전력이 각각의 지점에 상륙한 후, 그쪽은 남하하고 우리는 북상하여 중간쯤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포위 섬멸 작전의 형식이다.
멀리로 남횡도가 음영 정도로만 보이는 위치에 도달하자, 우리가 타고 있던 군함이 속도를 줄이며 서서히 바다 위에 멈췄다.
닻을 내린 상태에서 해군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난간의 측면에 매달려 있던 길쭉한 조각배 다섯 척을 해수면 위로 내렸다.
야습이기에 지금부터는 저 조각배들에 나눠 타고 직접 노를 저어서 가야 한다.
참고로 일사불란하게 노를 젓기 위해 모두가 군함 위에서 연습까지 마친 상황이다.
미리 계획했던 대로 각각의 조각배에 신룡대와 기동타격조가 섞여서 열 명씩 탔다.
조각배마다 양쪽에 네 명씩, 총 여덟 명이 앉아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모두가 연습한 대로 일사불란하게 노를 젓고 있다.
게다가 내공까지 담아서 젓는 노다.
그렇다 보니 길쭉한 조각배들이 나아가는 속도도 매우 빨랐다.
조각배들이 섬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섬 위에서 호각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우리를 향해 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했으나 별다른 위협이 되지는 못했다.
각 조각배마다 고수들 두 명씩은 노를 잡지 않은 채 이러한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 남횡도의 남쪽 해안가에 상륙할 수 있었다.
상륙하자마자 신룡대의 황룡조와 백룡조가 진형을 넓게 펼치며 쾌속하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황룡조가 좌측 전선을 맡았고 백룡조가 우측 전선을 맡았다.
우리 기동타격조도 빠르게 그들의 뒤를 따랐다.
우리 조원들 중에서 세 명은 활을 들고 있다.
제갈수광과 모용리와 나다.
물론 내가 들고 있는 활은 시위를 은룡삭으로 교체해 둔 상태다. 언제든 은룡삭을 편하게 풀 수 있게끔 매듭을 지은 채로.
남군호와 길초량은 등에 화살 자루를 짊어지고 있다.
전통에서 화살 한 대를 뽑은 내가 활 쏠 준비를 마치자, 내 왼쪽 옆에서 달리고 있는 길초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쳇!”
고개를 돌려보니 놈이 나를 보며 눈을 흘기고 있다.
그 와중에도 한 손에 화살 한 단을 꺼내어 쥐고 있는 상태다. 언제든 우리에게 건네줄 준비를 하고 있는 거다.
푸흐흐! 짜식, 귀엽긴.
신룡대원들이 적들을 쓰러트리며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아직까지 사파 놈들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있다. 고로 신룡대에 의해 도륙당하고 있는 건 해적들이다.
적들의 대응이 변변치 않은 모습인데,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 기습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이곳 남횡도에 진을 치고 있는 적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변변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신룡대원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기에 나는 아직까지 화살을 한 발도 날리지 않은 상태다. 모용리도 마찬가지였다.
굳이 나서서 뭔가를 할 필요가 없을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낫다. 의욕만 앞서서 억지로 뭔가를 하려다가는 괜히 아군에게 피해를 끼칠 수가 있다.
때문에 나는 정신을 집중한 상태에서 신룡대원들의 뒤를 부지런히 쫓기만 했다.
제갈수광은 달리는 와중에도 먼 곳을 향해 바쁘게 화시를 날리는 중이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간 화시들이 정박되어 있는 적들의 배에 어김없이 박히고 있다.
화시는 접혀 있는 돛에 먼저 박혔고, 이후에는 어김없이 돛대들에 박혔다. 그 후의 화시들은 조타실이나 조타 장치 주변에 박혔다.
제갈수광은 보이는 모든 선박을 향해 그런 식으로 화시를 날렸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저곳의 배들에서 불길이 커져가는 중이다.
곧 황룡조에서 일부의 인원이 분리되어 좌측의 해안가 쪽으로 향하자, 백룡조에서도 일부의 인원이 분리되어 우측의 해안가 쪽으로 향했다.
해안가까지 샅샅이 훑으며 나아가는 게 애초의 계획이었기에, 작전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신룡대의 전력이 분산된 만큼, 우리 기동타격조도 본격적으로 전선으로 나섰다. 이 또한 작전대로다.
제갈수광은 남군호와 종금무를 데리고 다니며 계속해서 양쪽 해안에 있는 해적선들 쪽으로 화시를 날렸고, 나와 모용리는 정면을 향해 화살을 날리며 먼 후방에 있는 적들을 노렸다.
천섬무를 하 단계로 운용하는 상태에서 은룡삭을 이용하여 화살을 날리면 시원시원한 맛이 있다.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미칠 듯한 속도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나는 그동안 은룡삭을 사용해서 움직이며 쏘는 연습도 많이 했다. 적당한 거리라면 이동하는 중에 곡사로 맞추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 상태다.
마침 이십오 장 거리에 적이 보이기에, 달리는 와중에도 시험 삼아 곡사로 한 발을 날려봤다.
퉁! 쐐액! 푹!
노렸던 건 심장인데, 내 화살은 놈의 오른쪽 복부에 박혔다.
내 화살에 맞은 놈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이 거리에서 움직이며 곡사로 쐈음에도 이 정도면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다.
이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먼 거리의 적들을 곡사로 노렸다.
화살들이 제법 잘 맞고 있다.
노린 곳에 정확하게 박히고 있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화살이 적들의 몸에 박히기는 했던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마침 좋은 조건이니 이 기회에 부지런히 연습하자.
원래 연습은 실전처럼 하고 실전은 연습처럼 하는 법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