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46
해적의 수가 많다.
그러나 사파 놈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있다.
넓지 않은 섬이라, 놈들이 나타날 거면 최소한 지금쯤은 나타났어야 한다.
한데 아직까지 한 놈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섬에는 사파 놈들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
적의 수가 많다 해도 일반 해적들뿐이라, 신룡대와 우리의 전진 속도는 매우 빨랐다.
이 정도면 양 떼들이 갇혀 있는 우리 안에 이리들을 풀어 놓은 그림이다.
화살을 날리는 와중에도 계속 주시했는데, 신룡대는 적들의 수준이 어떻든 결코 방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신룡대는 역시 신룡대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황룡조와 백룡조 공히, 전열과 후열의 인원 배치가 매우 적절했다. 게다가 전열에 선 이들의 검술도, 후열에서 지원하는 이들의 암기술도, 모두 깔끔하고 위력적이었다.
개개인의 전투력도 매우 강하지만 각 개인들의 모든 움직임이 매우 조직적이었다. 그 와중에 서로의 연계 또한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잘한다. 참 잘한다.
저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흑풍대 시절의 추억들마저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다.
신룡대원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기동타격조원들도 배우는 게 많을 것 같다.
전진하는 길에 해적들의 거주지로 보이는 모옥들이 이십여 채 있었고, 움막 비슷한 시설들도 많았다.
창고 형태의 건물들도 여러 곳 보였다.
전투를 치르는 동안 몇 명의 신룡대원들이 알아서 모옥들을 수색했고, 자물쇠로 잠겨 있는 창고 건물들도 열었다. 기동타격조원들도 몇 명이 그쪽을 지원했다.
나 또한 멀리로 부지런히 화살을 날리는 와중에도 그들을 따라 이동하며 창고 안을 한 차례씩 확인했다.
역시나 노략질한 식량 및 금품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창고들 중 세 곳만큼은 광경이 달랐다.
일단 그중 한 곳에는 일반인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들 사십여 명이 갇혀 있었다.
모두가 손에는 수갑을, 발에는 족쇄를 차고 있었다.
하나같이 헐벗고 굶주린 모습들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매질을 당한 흔적들이 많았다.
그야말로 처참한 몰골들이었다.
신룡대원들이 무림맹의 무인들임을 밝히자,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경계하던 사내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토로하는 내용들을 잠시 들을 수 있었는데, 사내들 모두가 이곳에서 노예로 부려졌다는 모양이다.
위험 요소가 없음을 확인한 신룡대원들이 서둘러 다음 창고로 향했고, 기동타격조원들이 남아서 빠르게 사내들의 수갑과 족쇄를 잘랐다.
제대로 풀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급박한 상황이다.
우리로서도 포로들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만 조치해주는 게 최선이었다.
전투 중이라서 상황이 급하다고 하자 사내들이 알아서 열쇠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신룡대원들이 열어 둔 다음 창고에도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오십여 명이었고 모두가 젊은 여인들이었다.
여인들도 마찬가지로 헐벗고 굶주린 모습에, 하나같이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었다. 단, 매질 당한 흔적이 있는 인원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여인들도 울먹이며 하소연했는데, 예상대로의 내용이었다.
잡혀 온 젊은 여인들이 해적들에게 무슨 꼴을 당했겠는가.
그 내용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분노로 물들어갔다.
내 마음도 차갑게 가라앉고 있다.
기동타격조는 그녀들의 족쇄와 수갑들도 빠르게 잘라주었다.
마지막 창고에도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칠십 명에 가까운 어린아이들이었다.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남녀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 모두에게도 수갑과 족쇄가 채워져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헐벗고 굶주린 모습들이었다. 매 맞은 흔적이 보이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기동타격조원들이 최대한 안심시키려 노력했지만 아이들은 울기만 했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가며 수갑과 족쇄를 잘라주었다.
그즈음, 북쪽에서 무림맹의 무인들이 합류했다.
우리와 같이 왔던 다른 군함의 전력들이다.
그들이 우리보다 인원이 많은 만큼, 북쪽 섬인 횡산도를 빠르게 정리하고 이곳 남횡도로 내려온 것이다.
아군의 합류로 인해 남횡도 쪽의 해적들은 더욱 빠르게 정리되어갔다.
합류한 이들은 정혼대 두 개 조와 인의대 세 개 조였다.
원래 횡산도로 투입된 전력은 정혼대 세 개 조와 인의대 세 개 조였다. 정혼대의 한 조가 오지 않은 것이다.
“이곳에는 포로가 더 많구려. 실은 횡산도에도 백 명에 가까운 포로들이 있었소. 그래서 정혼대의 한 개 조가 부상자들과 함께 남아서 그쪽의 포로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오. 소수일망정, 우리가 미처 제거하지 못한 해적들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까. 내지는 외부에 나가 있던 해적들이 복귀할 가능성도 있고.”
정혼대의 팔 조장인 상관문택의 설명이었다.
상관문택은 하남 상관세가의 방계로, 현 상관세가주의 사촌이라고 알고 있다.
이곳 남횡도의 포로들만 해도 숫자가 백오십 명이 넘는다.
횡산도의 포로들까지 합하면 이백오십 명이 넘는 숫자다.
이 작은 두 개의 섬에 포로들이 이렇게 많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눈치를 보니 신룡대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인 모양이다.
태무엽이 상관문택에게 말했다.
“우리는 서둘러 군함을 타고 주 작전지인 동갑도로 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두 척의 군함에 우리와 저 포로들 모두가 탈 수는 없습니다. 해군을 통해 이 사실을 관부에 알려, 그쪽에서 포로들을 따로 수습해갈 수 있게끔 요청해야 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태무엽이 바로 말을 이었다.
“바다에 나갔다가 복귀하는 해적들이 존재할 수 있으니, 이곳의 포로들이 제대로 수습되기 전까지는 무림맹이 지켜줘야 합니다. 동갑도 쪽의 작전이 끝나면 충분한 전력을 이곳에 주둔시킬 수 있겠으나, 지금은 우리도 동갑도 쪽에 지원을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전력을 나누어, 일부 전력이 이곳에 남아 포로들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상관문택이 대꾸했다.
“당신들 신룡대는 최정예 전력인 만큼 동갑도로 투입되어야 할 것이고, 맹의 정규 전력인 인의대도 마찬가지고······.”
상관문택이 말을 줄이며 제갈수광 쪽을 바라보았다.
여러모로 기동타격조와 정혼대 쪽에서 남는 게 적절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기색을 눈치챘는지 태무엽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기동타격조는 이쪽에서 사파인들과의 전투를 많이 치러봤기에 그들의 습성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그들의 조언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정혼대나 인의대 쪽에서 일부 전력이 남아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쪽에서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임시로 지키면 되는 것이니, 최소 두 조, 최대 세 조 정도의 전력이면 충분하리라 여겨집니다.”
그 말에 상관문택이 대꾸했다.
“아까도 말했듯 인의대는 맹의 정규 전력으로서 꾸준히 단체전 훈련도 받았을 테니, 차라리 임시 전력인 우리 정혼대 쪽에서 두 개 조를 남기겠소. 우리 쪽에는 경상이나마 부상자들도 좀 있으니까.”
결국 정혼대의 두 개 조가 이곳에 남아 포로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지키고, 나머지 인원들은 배를 타고 동갑도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모두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두 척의 군함이 미리 약속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동갑도로 향할 인원들이 서둘러 군함에 올랐다.
* * *
우리가 타고 있는 두 척의 군함이 동갑도의 해안으로 빠르게 가까워졌다.
해적선들로 보이는 수십 척의 배들이 불타고 있거나, 이미 불타버린 모습이었다.
적들의 퇴로를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작전의 초반부에는 정박되어 있는 배들을 집중적으로 노릴 거라고 들었었다. 해군 쪽에서도 군함을 몰고 지원한다고 들었는데, 그 작전이 제대로 성과를 거둔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은 섬의 곳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었다. 섬으로 다가가는 와중에도 충분히 확인이 되었다.
해적들의 본거지를 타격하기 위해 투입된 무림맹의 전력은 원래 사백칠십여 명에 달했다. 원래는 사백오십여 명이었는데, 중간에 신룡대의 백룡조가 합류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정혼대 세 개 조, 인의대 세 개조, 신룡대 두 개 조, 기동타격조가 횡산도 쪽에 투입되었다. 그 전력은 백사십 명가량이었다.
즉, 처음부터 동갑도 쪽에 투입된 군함 네 척의 전력은 삼백삼십 명 정도였다. 무림맹의 최정예 정규 전력인 천무대와 지협대가 포함된 전력이다.
그런 전력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해적들만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치열할 리가 없다.
역시나 사파의 고수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배 위에서 섬 쪽의 상황을 확인한 태무엽이 우리 배의 인원들을 곧바로 집합시켰다.
“여러분도 확인했다시피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소. 여기저기 도와야 할 곳이 많아 보이오. 이런 상황에서 황룡조, 백룡조, 기동타격조가 우르르 몰려다니며 지원하는 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을 것 같소.”
세 조의 인원을 합하면 쉰한 명이다.
다들 전투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조별로도 작전 수행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도와야 할 곳이 많은 상황에서 이런 인원들이 우르르 몰려다닐 경우, 후미의 인원들은 따라다니기만 하다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
과한 전력이기에, 선봉과 중진 선에서 대부분 처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비효율적이며, 전력 낭비이기도 하다.
태무엽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당분간은 조별로 흩어져서 곳곳을 지원하다가 신호하면 모이는 것으로 합시다. 처음에도 말씀드렸듯, 기본적으로 이번 작전에서 우리 세 조는 같은 소속임을 잊지 마시오.”
그렇게 말한 태무엽이 황룡조의 조원 한 명에게 전음으로 뭔가를 지시했다.
그러자 그 조원이 허리춤의 작은 가죽 주머니에서 길쭉한 물건을 두 개를 꺼내어 제갈수광에게 건넸다.
태무엽이 말했다.
“우리가 쓰는 신호용 폭죽이오. 터트리면 세 가닥의 붉은 빛줄기가 연달아 허공으로 올라가는 형태요. 전투 중에 위험해졌거나 긴급 지원이 필요하면 즉시 터트려주시오. 잡고서 하단부를 단단한 돌 따위에 수직으로 내리찍으면 될 것이오.”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무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싸우다가 같은 형태의 녹색 빛줄기를 보시거든, 내 집합 명령으로 알고 그쪽으로 집합해 주시오. 우리 세 조가 같이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만 터트릴 것이오.”
“알겠소.”
이후에는 조별로 흩어져서 상륙 준비를 했다.
제갈수광이 조원들에게 말했다.
“보다시피 무림맹의 최정예 전력들이 투입되어 있음에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사파의 고수들을 상대했지만, 이곳에 있는 자들은 머릿수도 많을 뿐만 아니라 강하기도 더 강할 것이다. 이곳이 해적들의 본거지이며, 사파 세력의 매우 중요한 지부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까지 치러왔던 전투들보다 훨씬 위험한 전투가 될 것이다.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뜻이다.”
조원들이 매우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나는 중진에서 궁술 지원을 할 것이다. 우리의 행로는 그때그때 원 선배님에게 전음으로 말씀드릴 테니, 모두 기본적으로는 원 선배님을 따라서 움직인다.”
조원들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제갈수광이 조원들 하나하나와 시선을 맞추더니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지금까지도 매우 잘해줬다. 그간 너희들은 사력을 다해 싸워왔으며, 그 와중에도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다. 나는 지휘 교관으로서 너희들이 흘린 그 땀방울들의 가치를 믿는다. 그러니 너희들도 스스로를 믿어도 된다.”
조원들의 눈동자가 일렁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말을 들었으니 마음이 동할 수밖에.
저 인간은 꼭 이럴 때 저런 식의 말들을 한단 말이지.
“두 가지만 기억한다. 첫째, 무리하지 말고 절제하며 싸울 것. 둘째, 시야를 넓혀서 동료들을 보며 싸울 것. 알겠나?”
“예!”
관도들이 낮은 음성으로 일제히 대꾸했다.
상륙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제갈수광이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전음으로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적들은 대부분 사파의 고수들이다. 정확하지 않은 네 궁술이 통할 만한 상대들이 아니야.]
그 전음을 듣자마자 내가 들고 있는 활을 제갈수광에게 건넸다. 당연히 그 활의 시위는 은룡삭이다.
나라고 해서 모를 리 없다. 현재의 내 궁술은 해적들을 상대로는 통해도 사파의 고수들을 상대로까지 통할 실력은 아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저 활을 제갈수광이 쓰는 편이 우리 조에도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어차피 제갈수광도 일정 시점이 되면 쌍검을 들고 나설 것이니, 쏘고 싶으면 그때부터 받아서 쏴도 된다.
활을 받아 든 제갈수광이 피식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하여간 송유겸이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라.]
[당연하죠. 누구의 수제잔데요.]
특유의 ‘웬수’ 소리가 섞인 핀잔을 듣기 위해 억지로 한 말이다.
한데 이상하다. 다른 때 같으면 즉각 웬수 소리가 나왔을 텐데, 반응이 곧바로 오지 않고 있다.
시선을 돌려보니 제갈수광은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의 사무적인 표정일 줄 알았는데, 입가에 기분 좋아 보이는 미소까지 걸려 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할 때쯤, 그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렇지······. 내 수제자지.]
차분하면서도 여운까지 느껴지는 어조였다.
나는 휘둥그레 뜬 눈으로 그의 옆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이보쇼······.
갑자기 그런 식으로 나오시니 내가 적응이 안 되잖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