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48
송유겸.
잠룡일대의 기동타격조원이다.
동부지맹 잠룡관의 계반 삼 년 차, 아니, 이제는 사 년 차가 된 관도다.
지난해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이기도 한데, 사실 백룡인 자신은 그전부터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삼청산에서의 귀령사객 사건, 강서 태화지부 사건, 장강 사건 등에 공통으로 등장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내부 기밀 정보에 따르면, 송유겸은 그 사건들 당시에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고 되어 있었다. 잠룡관의 일개 계반 관도가.
잘생겼다는 소문도 들었었는데, 엊저녁에 군함에서 직접 보고 나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사내의 외모만 보고 그런 감정이 든 건 매우 오랜만의 일이었다.
자신의 취향에 딱 맞게 잘생긴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송유겸과는 같은 군함에 타고 같이 움직였었다.
남횡도에서 작전을 펼치는 와중에도 티 나지 않게 틈틈이 주시했었다. 주목받는 후기지수다 보니 어떻게 싸우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송유겸은 궁술로만 해적들을 상대했었다.
먼 거리에서도 나름 잘 맞추는 모습이긴 했다. 그러나 아직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는 궁술이었다.
활을 쏠 때는 나름 진지한 모습이었으나, 그 외에는 진지한 느낌 같은 게 없었다. 대체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었다.
어렵지 않은 작전이었기에 치열하게 싸울 상황이 아니기는 했다. 때문에 딱히 눈에 띄는 면모는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었다.
그런데 그 송유겸이 바로, 방금의 무음시를 막아낸 검의 주인인 것이다.
미리부터 무음시가 날아오는 걸 알고 반응한 만큼 상당한 고수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송유겸이었다니.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이 있다.
방금 송유겸은 좌측에서 다가왔을 텐데, 자신은 그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러모로 놀란 상태이고 의문도 많으나, 당연하게도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송유겸이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저 잘생긴 외모로 저런 미소를 짓고 있으니, 미소에서도 빛이 나는 것만 같다.
* * *
원을태를 따라 신법을 펼치고 있던 어느 순간.
우측의 제법 먼 거리에서 심상치 않은 두 개의 기운이 느껴졌다.
감각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 느낌의 기운들이었다.
내가 아는 사파 놈들의 기운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미묘한 종류의 기운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종류의 기운을 한 차례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일전에 내가 죽였던, 기형거검을 휘두르던 덩치 놈의 기운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데 지금 느껴지는 두 개의 기운은 그때의 덩치 놈보다 더 강력하다.
그 강력한 두 개의 기운은 어딘가를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분위기를 보니 우리 조의 다른 고수들은 아직 그 기운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내 경우에는 기척을 매우 멀리까지 퍼트리고 있었기에 그 기운들의 존재를 알아챈 것이다.
문제는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이 향하는 방향이다.
백룡조가 아군을 지원하며 전투를 펼치고 있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물론 백룡은 강하다. 삼사 년 차라고 해도 조장은 조장이다. 아무나 신룡대의 조장에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정예로 통하는 신룡대인 만큼, 백룡조도 강하다.
그렇다 해도 백룡과 백룡조가 저 강력한 두 놈의 합류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두 개의 기운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장의 상황이란 시시각각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언제든 돌발 변수들이 작용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혼전의 양상에서는 그러한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도 더 높다.
가뜩이나 이곳 동갑도는 적들의 안마당이다.
만약 강력한 두 놈이 합류한 상황에서 다른 변수까지 작용한다면, 아무리 백룡과 백룡조라 해도 그 찰나의 순간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이르자마자 제갈수광에게 전음을 남겼다.
[교관님! 저, 잠시······!]
그 직후,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백룡조가 싸우고 있는 방향을 향해 신법을 펼쳤다.
기척을 죽여 신법을 펼쳤다. 그러면서 두 놈들이 다가가는 속도에 맞추어 이동했다.
백룡조 쪽과의 거리를 좁혀놔야 한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면 언제든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는 도달해 있어야 한다.
두 놈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역시나 대단한 고수들인 것이다.
보아하니 백룡 또한 그 두 놈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챈 눈치였다.
잠시 후, 칠 보 거리까지 다가온 두 놈이 각자의 무기를 이용하여 경력을 발출해냈다.
두 놈 모두 백룡을 향해서였다.
백룡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뒤쪽에 백룡조원들이 있는데, 그녀가 피하면 조원들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 두 개의 강력한 경력을 혼자서 막으면 아무리 백룡이라도 충격이 클 것이다.
그러면 이후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천섬무를 운용하며 백룡을 도우러 가던 순간, 두 놈의 뒤쪽에서 날아오고 있는 하나의 미세한 기운을 감지해낼 수 있었다.
매우 빠르게 날아오고 있는 그 미세한 기운 또한 백룡에게로 향하는 중이었다.
무음시라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전에 태화지부에서도 겪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의 무음시가 수준이 훨씬 높다. 그때의 절정고수 궁수보다 지금의 궁수가 더 명궁수라는 뜻이다. 기척 감지에 뛰어난 나조차도 절정이 아니었다면 저 무음시를 훨씬 늦게 파악했을 것이다.
게다가 절묘한 시점의 무음시다.
방금 전에 경력을 날린 두 놈과의 연계 공격인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아무리 백룡이라도 저 무음시를 알아채기가 어렵다.
콰광!
백룡이 두 줄기의 경력을 막아낸 순간,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며 백룡에게 다가갔다.
흙먼지가 비산했지만 그 안의 상황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백룡의 신형은 뒤로 밀렸으며, 무음시는 그녀의 복부를 향해 날아드는 중이다.
비룡검을 쑥 집어넣으며 무음시를 튕겨냈다.
카강!
튕겨내는 순간에 보니, 화살촉 부분에 녹색의 물질이 묻어 있었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궁수 놈은 독까지 묻혔네?
하긴 뭐, 납득은 된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거점이 털리고 있는 상황인데 뭔들 못 하겠는가.
매우 근접한 거리이다 보니, 흙먼지 속에서도 백룡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엄청나게 놀란 표정이다.
오호? 이 누님, 눈동자 예쁘네? 속눈썹도 길고.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인 후, 또다시 비룡검을 휘둘렀다.
하나의 강력한 기운이 내게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앙!
비룡검을 이용하여 그 기운을 튕겨낸 후, 백룡과 함께 두 놈에게 맞섰다.
두 놈 중 한 놈은 왜소한 체구인데 박도를 들고 있었다. 박도 중에서도 커다란 박도다.
다른 한 놈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데, 마차(馬叉)를 들고 있었다.
마차란 창두 부분이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형태의 창이다. 상처를 여러 개 남길 수 있고, 방어에도 용이한 무기다. 물론 익히기는 까다롭다.
두 놈 모두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챙! 챙! 채쟁! 캉! 카강!
두 놈도 고수들이고 백룡과 내 경지도 높다 보니, 순식간에 십여 차례의 공수가 교환되었다.
백룡은 주로 박도를 휘두르는 왜소한 놈을 상대했고, 나는 주로 마차를 쓰는 키 큰 놈을 상대했다.
천섬무는 키 큰 놈의 속도에 맞추는 정도로만 운용했다.
확실하게 통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최대한의 속도를 미리 보여줄 필요는 없다. 놈들이 경계할 테니, 틈이 보일 때를 노리는 편이 낫다.
가뜩이나 지금은 보는 눈도 많은 상황이다.
공수를 주고받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역시나 놈들이 발산하는 기운은 내가 죽였던 덩치 놈과 궤가 비슷했다.
덩치 놈에 이어 이놈들까지 겪어보고 나니 더 확실해졌다.
이놈들은 사파 놈들이라고 단정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전생과 현생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사파 놈들의 기운은 탁하고 잡스러운 느낌이다. 게다가 사파 놈들의 경우에는 기운의 흐름이 일정하지 못하고 들쑥날쑥한 느낌이 많다.
이놈들의 기운도 탁한 건 마찬가지인데, 기운의 흐름 자체는 상당히 정돈되어 있다.
기운 자체에서 아득한 광기 같은 것도 느껴진다.
피의 광기이며, 살육의 광기다.
그리고 지금의 두 놈 또한 싸우는 와중에도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내가 이전에 죽였던 덩치 놈의 웃음도 딱 저런 웃음이었다.
미친놈들이 뭐가 그리 즐거워서 저렇듯 처웃는 건지 모르겠으나, 정체가 궁금하긴 하다.
그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무음시의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 집중했다.
또다시 날아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왔던 방향에서 원을태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그 뒤를 기동타격조원들이 따르고 있다.
검을 휘두르며 즉시 제갈수광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무음시 조심하십시오. 태화지부 때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내 말에 제갈수광이 양미간을 빠르게 좁히더니, 곧바로 조원들을 향해 낮게 말했다.
“모두 무음시 조심. 수준 높은 무음시다.”
조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담겼다.
우리 인원들이 합류하자 사파 놈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키 큰 놈과 왜소한 놈은 빠르게 움직이며 다른 사파 고수들의 사이로 들어갔다. 약삭빠른 놈들이다.
기동타격조와 백룡조와 인의대가 즉시 그들의 뒤를 쫓았다.
퇴각하던 사파의 고수들이 뒤쪽을 향해 암기들을 대거 쏟아냈다. 비도와 독침 등이었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쏟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무음시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발이 아니었다. 세 발이었다.
세 발의 무음시가 정면과, 정면의 좌우 측면에서 동시에 날아온 것이다.
한 발은 아군 추격 대형의 좌익 쪽으로, 한 발은 중앙으로, 한 발은 우익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파의 고수들이 암기를 쏟아낸 절묘한 시점에 날아든 무음시다. 대처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좌익에서 추격하고 있는 건 나중에 합류한 기동타격조다.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나, 노인들과 제갈수광이 있는 만큼 기동타격조 쪽은 괜찮을 것이다.
중앙과 우익에는 백룡조와 인의대가 섞여 있다. 한동안 섞여서 싸운 탓이다.
그리고 나는 백룡과 함께 중앙에 위치한 상태다.
문제는 우익으로 향한 무음시가 그 방향에 모여 있는 몇 명의 백룡조원들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 백룡조원들이 저 수준의 무음시를 완벽하게 막거나 피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암기와 함께 절묘한 시점에 날아든 무음시이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독이 묻어 있으니 무음시에 스치기만 해도 독에 당할 것이다.
눈치를 보니 백룡도 무음시의 존재를 알아챈 모양인데, 눈동자에 다급함과 곤란함이 담겨 있었다.
본인의 속도로는 우측의 백룡조원들에게 닿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다.
그래.
이럴 때 이 누님에게 점수나 확실히 따놓자.
사람의 앞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나중에 내가 이 누님에게 도움받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가뜩이나 이 누님은 신룡대의 백룡이니까.
인의대원들과 백룡조원들의 사이를 요리조리 스쳐 지나가며 우측에 닿았다.
목표가 된 백룡조원은 마지막 순간에야 무음시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몸을 비틀고는 있으나, 완전히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다.
카앙!
비룡검을 휘둘러 무음시를 쳐내줬다.
즉시 고개를 돌려 중앙과 좌측의 상황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원을태와 백룡이 나머지 무음시들도 잘 막아낸 것 같다.
백룡이 또다시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한데 그 시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갈수광 때문이다.
제갈수광은 어느새 중앙에 있는 백룡의 뒤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활시위인 은룡삭을 잔뜩 잡아당긴 모습이었다.
그 상태로 화살을 놓지 않고 있다.
화살에 기운이 모여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데 화살에 모여들고 있는 기운의 느낌이 오묘하다.
암기들을 쳐내며 적들을 계속 추격하는 와중에 제갈수광의 짧은 전음이 들려왔다.
[키 큰 놈.]
뜬금없는 한마디인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금세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의 저 화살로 아까의 키 큰 놈을 노리겠다는 의미다.
본인의 궁술이 얼마나 정확하고 대단한지를 자랑하기 위해, 나더러 확인하라는 의미로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빠르다는 걸 알고 있으니, 연계해서 공격하는 게 가능하다면 시도해보라는 뜻이다.
키 큰 놈이 왜소한 놈보다는 뒤처져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제갈수광의 화살에는 계속해서 오묘한 느낌의 기운이 모여들고 있다.
퇴각하는 사파의 고수들이 이번에도 동시에 손을 털어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암기가 아니었다.
조막만한 둥근 구체들이었다.
저게 무엇인지를 내가 모를 리 없다.
“탄!”
백룡의 외침이 들린 순간, 모두가 즉시 주변을 이탈했다.
나도 살짝 이탈하는 식으로 우회하며 제갈수광을 바라보았다.
그 또한 내 쪽으로 우회하며 전진하고 있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화살을 전방으로 겨눈 상태다.
독탄이 날아드는 이런 상황에서도 할 생각인 것이다.
펑! 퍼버벙!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다.
고막을 울리는 벽력 소리가 아니니 저것들은 독탄이다.
나는 중하 단계로 천섬무를 운용하며 독탄이 터진 지점을 향해 달렸다. 그러면서 준비해뒀던 피독주를 입에 물었다.
퍼져가는 검붉은 운무 사이로 들어선 순간,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여 키 큰 놈 쪽으로 달렸다.
그 와중에도 제갈수광 쪽의 기척에 집중했다.
투우웅-!
은룡삭이 튕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격하게 눈매를 좁혀야 했다.
분명히 은룡삭이 튕겨졌는데, 뒤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최대한으로 정신을 집중한 후에야, 매우 미세하면서도 쾌속한 기척 하나를 느낄 수 있었다.
절로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나는 줄곧 제갈수광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이렇게까지 기척을 파악하기 어려운 화살이라니.
미쳤다.
이건 미친 무음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