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52
입에 피독주를 문 채, 최대한으로 활성화시킨 기운을 전신으로 휘돌렸다.
여러 명이 합을 맞춰 장력을 발출한 덕에, 통로 안의 독무는 대부분 밀려난 상태다. 그러나 아직은 미세하게나마 독 기운이 공기 중에 남아 있다. 통로의 벽과 바닥에 내려앉은 독 기운들도 있다.
피부에 닿거나 호흡기로 들어갈 수도 있으니, 피독주의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체내를 도는 기운도 최대한으로 활성화시킨 것이다.
공력 소모는 매우 심하겠지만 어차피 잠깐이다.
이 통로만 통과하면 된다.
아까 폭죽의 빛이 통로를 훑고 지나가던 순간, 기관 작동이 의심되는 부분들을 확인했었다.
그 부분의 계단들만 훌쩍 건너뛰어 가며 현재의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냈다.
통로의 출구를 통과하기도 전에 독탄들이 날아오고 있다.
이번에는 여섯 개다.
나는 아직 출구 아래의 계단에 있고, 도약해서 독탄을 던졌던 적도들은 이미 바닥으로 내려선 상태다.
즉, 놈들에게는 지금의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고 있기에, 아까의 독탄들을 낚아챌 때보다 지금의 독탄들이 더 느려 보인다.
궤적도 명확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어떤 독탄이 더 빠르고 느린지도 제대로 보인다.
어차피 놈들은 나를 노리고 날린 독탄이 아니다.
애초에 통로 아래쪽의 먼 곳을 향해 날린 독탄이었다.
놈들이 먼 곳을 향해 독탄을 날린 후에야 내가 순간적으로 이곳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먼 곳을 향해 날린 독탄인 만큼, 지금의 거리에서는 바닥이나 측면에 닿을 만한 독탄이 없었다. 구석으로 움직일 일이 없으니 독탄들을 낚아채기도 비교적 쉬운 상황이다.
독탄의 숫자가 많다는 게 약간 귀찮을 뿐.
황룡조원에게서 빼앗아 왔던 피풍의를 살짝 어깨에 걸며 양손을 자유롭게 했다.
양손에 두 개씩의 독탄을 낚아챈 후, 곧바로 그걸 내 뒤쪽으로 부드럽게 날렸다.
품속에 넣었다가 꺼낼 만한 시간까지는 없다.
게다가 손에 독탄을 쥔 채로 다른 독탄을 받는 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위험하다.
그래서 적당한 힘을 가해 통로 뒤쪽으로 던진 것이다.
이 정도는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다른 두 개의 독탄도 그런 식으로 처리했을 무렵, 어깨에 걸어뒀던 피풍의가 앞쪽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둔 후, 나머지 두 개의 독탄을 잡아챘다.
동시에 한 발로 피풍의를 걷어차 올리며, 마지막으로 낚아챈 두 개의 독탄은 품속에 넣었다.
이후에는 피풍의를 양손으로 잡고 통로의 출구를 향해 몇 걸음을 더 달렸다.
통로 안쪽은 독무가 거의 사라졌지만, 출구 주변은 아직 옅게나마 독무가 남아 있다. 그런 만큼 아무리 피독주를 물고 있다 해도 피부가 노출되면 매우 위험하다.
현재의 내 몸에서 무복과 신발로도 가려지지 않은 살갗은 목 윗부분 정도다. 손에는 비룡수투를 끼고 있는데, 웬만하면 비룡수투에도 독무가 묻지 않게 할 생각이다.
출구 바로 앞에서 피풍의를 머리 쪽에 뒤집어쓰며, 피풍의를 잡은 양손도 머리 위쪽에 위치시켰다.
그렇듯 피풍의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출구 밖의 넓은 공간을 향해 오른발을 강하게 박찼다.
아까 적들이 도약하여 독탄을 던졌던 위치를 향해서였다. 최소한 그쪽에는 독무가 없다는 뜻일 테니까.
천섬무는 여전히 최대한으로 운용되고 있는 상태다.
그 와중에도 주변에서 이십여 개의 기척이 느껴졌고, 한쪽에서 이곳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수십 개의 기척들도 느껴졌다.
목적한 곳까지 다가왔다고 생각한 순간, 피풍의를 벗어 던졌다.
무복에는 독이 좀 묻었을 것이나 피풍의로 가렸던 피부에서는 통증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피풍의로 가렸다 해도, 독무에 피부가 미세하게나마 노출이 되기는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멀쩡한 것을 보면, 피독주를 문 채 체내의 기운을 최대한으로 활성화시켰던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빠르게 훑어보니 역시나 어두운 공간이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어둠이 좋다.
어둠 속에서 적을 상대하는 일은 더 좋다.
고맙다. 니들이 나를 위한 판을 깔아놨구나.
회회심공은 평범한 운기조식으로 모이는 축기의 양이 부족한 대신, 신체 기능 활성화 쪽으로 특화되어 있다. 그 덕분에 자연 치유력도 뛰어난 것이다.
회회심공은 성취가 상승할수록 기본적인 신체 능력도 자연스럽게 상승하는데, 절정에 오른 나는 많은 면에서 그 덕을 보고 있다.
단적으로 평상시에도 시력과 청력이 남들에 비해 월등한데, 지금처럼 공력을 운용하고 있을 때는 더 월등해진다.
즉, 이런 어둠 속이라면 나는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상황을 기본적으로 깔고 가게 된다.
또한 나는 기척이나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이건 사부님과의 회회심공 수련 덕이다. 천하제일인한테서 얻어터져가며 체득한 눈물겨운 성과인데, 당연히 어둠 속에서는 남들과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게다가 나는 빠르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적당한 빠르기로만 움직여도 웬만한 적들은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내가 어두운 전장을 좋아하는 것이다.
최대한으로 운용하고 있던 천섬무도 중하 단계로 내렸다.
어둠 속에서도 내 근처에 있던 적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설마 저 통로와 독무의 범위를 벗어나서 누군가가 튀어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더해서 내 속도가 너무 빨랐기에 더 놀랐을 테고.
소비도를 꺼내어 놈들에게 던졌다.
어둠 속의 근접 거리다.
중하 단계로만 던져도 충분히 처치할 수 있다.
“컥!”
“큭!”
아니나 다를까, 소비도가 놈들의 심장에 푹푹 박히고 있다.
근처에 있던 여섯 명의 적을 순식간에 처치했다.
비명을 통해 다른 적들도 내 존재를 알아챈 모양이다.
놈들이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독탄을 던지면 쉽게 처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도 어찌 됐든 동굴 안이다. 독무가 퍼질 경우, 우리 인원들의 차후 움직임에도 큰 제약이 생긴다. 터트린다 해도 나중에 상황을 봐 가며 터트리는 게 나을 것 같다.
게다가 딱히 독탄을 던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내가 통과했던 통로 안에서 익숙한 기척들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갈수광, 태무엽, 백룡, 남궁묵 등의 기척이었다.
제갈수광이라면 내가 통로의 계단을 어떤 식으로 밟고 왔는지도 대강이나마 기억할 것이다. 그걸 참고하여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피풍의 따위로 바람을 일으켜 출구 쪽의 독무를 적당히 밀어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들의 뒤로도 다른 강력한 기척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품속에서 목갑 하나를 꺼내어 왼손의 손가락으로 최대한 많은 양을 집어 들었다. 스무 개는 넘을 것 같다.
지금은 독침을 쓰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독침은 굳이 정확하게 맞추지 않아도 어딘가 맞추기만 하면 성과를 낼 수 있기에 힘도 덜 든다.
놈들의 사이를 경쾌하게 누비며 하나씩 처치해갔다.
매우 근접한 적들을 상대로는 비룡검을 썼고, 서너 걸음 간격의 적들에게는 쇠구슬을 날렸으며, 칠팔 보 인근까지는 독침을 날렸다.
그보다 더 먼 거리의 적들에게는 소비도를 날릴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한 명뿐이니 놈들이 알아서 다가올 것이다.
적들의 경지는 대부분 일류의 중후반에서 절정의 초반 남짓까지다. 놈들도 소위 정예들인 것이다.
혼자서 이 많은 수의 정예들을 상대로 싸우는 경험은 흔히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돈 주고도 해보기 어려운 경험이다.
또한 이러한 경험은 내 성취 상승에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혼자인 만큼 조심해야 한다.
조금의 실수조차 치명적일 수 있다.
온몸의 감각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며 온 정신을 집중했다.
손발은 매우 바쁘지만, 이왕 흔치 않은 경험이라면 제대로 겪어줘야겠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묘한 느낌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다른 때보다 적들의 움직임이나 반응들이 훨씬 더 잘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출수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적을 죽일 수 있을지가 자연스럽게 그려지고 있다. 누군가를 처치한 이후의 동선 또한, 최적의 방향과 경로가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다.
생각 없이 움직이기만 해도 될 정도로.
평소의 나는 이렇지 않다.
머릿속으로 치밀한 계산을 해가며 싸운다. 동선까지도 계산할 정도이며, 상황마다 천섬무를 어느 단계로 운용하는 게 내공의 효율 면에서 나은지도 계산한다.
한데 지금은 싸움에 대해 전혀 계산하지 않고 있다.
적들이 매우 느려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천섬무가 최대한에 가깝게 펼쳐지고 있을 때의 속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력이 쑥쑥 닳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러움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라, 동선이든 공력의 효율이든 신경 쓸 필요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질감이 든다.
뭔가, 이전까지 내가 살았던 세계와는 미묘하게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무아지경에 빠질 때의 기분과도 일면 비슷하다.
전생에도 이런 기분을 경험해 본 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의아하고 이상하긴 한데, 지금의 이 기분이 참 매력적이다. 미약하게 흥분하고 있을 때의 기분 좋은 느낌이 온몸에 가득하다.
이 현상이 지속될수록 적들을 처치하는 쾌감도 계속 증폭되어 가고 있다.
나와 마주친 적들마다 눈을 부릅뜨고 있다.
지금의 내 움직임이 저렇게까지 놀랄 정도인가 보다.
이 기묘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 후로, 적들을 처치하는 속도도 평소보다 많이 빨라진 것 같다.
나는 현재 느끼고 있는 흥분과 쾌감에 계속 빠져들어 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인마! 송유겸!]
어우, 씨. 귀청 떨어지겠네.
제갈수광의 목소리다.
그가 전음으로 소리를 지른 탓인지, 지금껏 나를 사로잡고 있던 미묘한 쾌감이 어느새 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쉽다.
그나저나 언제 올라오셨대?
고개를 돌려보니 제갈수광의 모습이 보였는데, 다른 이들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통로의 인원들 중에서는 제갈수광이 가장 먼저 이 공간 안으로 들어선 모양이다.
즉시 그를 향해 항변했다.
[아니, 전음으로 하는데 뭘 그렇게 소리까지 지르고 그러십니까? 조용히 말하셔도 될 것을.]
말하는 와중에도 이상하다.
나를 바라보는 제갈수광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저래? 뭐가 놀랄 일이 있다고 저렇게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야?
가뜩이나 평소에는 표정도 없는 사람이.
제갈수광은 여전히 놀란 기색이었지만, 곧바로 눈매를 좁히며 내게 대꾸해왔다.
[그전에 전음으로 세 번이나 너를 불렀다. 그럼에도 인식을 못 하는 것 같아서 소리친 건데.]
[예에에? 그게 무슨 말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갈수광은 이런 상황에서 이상한 소리나 할 사람이 아니며, 지금도 거짓말을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없는 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전음을 못 들었다니.
놀라 있는 내 귓전으로 다시금 제갈수광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너 그리고 방금······. 아, 아니다. 일단 주변이나 한번 찬찬히 살펴보도록.]
주변을 둘러본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주변에 적은 없다.
내 주변에서 멀어지고 있는 세 명의 적들이 보이기는 한다.
한데 마치 괴물이라도 보듯 나를 바라보며 벽 쪽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중이다.
그리고 그 외에는 모든 게 시체였다.
수십 구의 시체가 온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다 내가 죽인 자들이다.
묘한 이질감으로 인한 쾌감에 사로잡히기 전에, 통로를 올라오고 있는 제갈수광 등의 기척을 느꼈었다.
내가 그 기척을 느낀 후로 제갈수광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즉,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나 혼자 이 모든 이들을 처치했다는 뜻이다.
적들을 죽이는 속도가 빠르다는 느낌은 받았었는데, 그렇다 해도 이건 좀 이상하다.
아니, 많이 이상하다.
* * *
제갈수광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중이었다.
통로를 가장 먼저 빠져나온 이유는, 혼자 싸우고 있는 제자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제자가 또다시 크게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라오자마자 상황은 금세 파악되었고, 걱정도 한 시름 덜 수 있었다.
제자가 눈으로 쫓기도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정예인 적들을 매우 빠르게 처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다른 때보다 훨씬 빠른 느낌이라, 제자의 모습이 마치 그림자 같았다.
그 그림자가 적들의 사이를 스쳐 갈 때마다 주변의 적들이 짚단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신의 그림자였다.
한데 그 와중에 잠깐 확인한 제자의 눈동자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재차 확인해 보니 확실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제자의 한쪽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