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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53화 (153/416)

내 안에 마교있다 153

제자의 오른쪽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변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는데, 왼쪽 눈동자는 더 이상했다.

눈동자에 여러 색이 혼재되어, 회오리처럼 서서히 돌고 있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이상한 광경이기에 다급하게 제자를 불렀었고, 이후에 괜찮으냐고 물었었다.

하지만 제자에게서는 대꾸가 없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음을 듣지 못한 눈치였다.

이후에 재차 전음을 보내봤지만 역시나 제자에게서는 반응이 없었다.

자신의 말을 결코 무시할 리가 없는 제자다.

그렇기에 제자를 가만히 살펴봤다.

제자는 전투에 완전히 몰입하여,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진 상태로 보였다.

때문에 전투 행위 이외에, 본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다른 요소들과는 완전히 단절되어버린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제자를 향해 고함을 치듯 전음을 보냈는데, 그제야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반응을 보인 제자가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눈동자의 색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여러 색이 혼재되어 있었던 왼쪽 눈동자는 곧바로 평소의 색으로 돌아왔다.

적색으로 물들어 있던 오른쪽 눈동자는 왼쪽 눈동자처럼 여러 색이 혼재된 느낌으로 잠시 변했다가 그 후에야 평소의 색으로 돌아왔다.

양쪽 모두, 눈동자의 색이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게 대체······.’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봐도, 지금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만한 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니 제자는 본인의 눈동자가 그런 식으로 변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다행스러운 점은, 아군 중에서 제자의 눈동자를 본 게 자신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무림맹 측의 다른 무인들이 제자의 붉은 눈동자를 봤다면 분명히 이상한 소리들이 나왔을 것이다. 수많은 의혹과 오해들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현상이긴 했다.

제갈수광이 남아 있는 세 명의 적들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저 세 놈마저 확실하게 죽여야만, 제자의 눈동자에 대해 헛소리를 할 사람이 완전히 없어질 테니까.

* * *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저 많은 정예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

아까의 묘한 이질감 때문이었을 텐데, 그 현상을 인정한다 해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그 현상 자체가 이상한 현상이었으니까.

제갈수광이 쌍검을 뽑아 든 채로 남아 있는 세 놈의 적을 향해 달려들고 있다.

나도 간단하게 쇠구슬을 날리며 후방에서 지원했다.

그 와중에도 내심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체내에 남아 있는 공력의 양 때문이었다.

묘한 이질감에 빠져 있을 당시에도 얼핏 느끼긴 했는데, 그때의 움직임은 천섬무를 거의 최대 단계로 펼칠 때의 속도였었다. 속도가 빠른데도 공력 소모는 미약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실제로도 그랬던 모양이다.

체내의 공력이 별로 소모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많은 적들을 단시간에 학살하고서도 공력이 거의 보존되어 있다니.

뭐가 어찌 된 걸까.

나는 방금 전에 대체 뭘 겪었던 걸까.

여전히 혼란스러운 와중이긴 하나, 우리 둘이서 세 놈의 적들을 처치하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처치하는 와중에 느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갈수광의 쌍검술이 평소에 비해 더 가차 없고 단호한 느낌이었다.

공간 안의 모든 적이 쓰러졌다.

그 직후, 아군의 여러 인원들이 내가 있는 공간 안으로 속속 합류했다.

백룡, 태무엽, 남궁묵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에는 또 다른 두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다른 두 사람은 천무대의 삼 조장과 사 조장이다.

천무대의 삼 조장은 사십 대 초반의 사내이며 이름은 서문걸이다. 중경에 있는 서문세가 출신으로, 노인인 현 서문세가주의 차남이다.

참고로 서문세가는 현 강호에서 천하 십대세가에 드는 명문가다.

천무대의 사 조장은 삼십 대 극후반의 사내로 이름은 단리웅이다. 운남의 대리에 있는 단리세가 출신이며, 현 단리세가주의 셋째 아우다. 단리웅은 남궁묵의 직속상관이기도 하다.

단리세가 또한 명문가로, 천하 세가 서열에서 이십 위 안에는 쉽게 드는 곳이다.

천무대의 조장인 만큼 서문걸과 단리웅도 모두 고수들이다.

백도 내 명문가의 후손들은 일찍부터 무림맹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장자는 가주의 역할을 이어받기 위해 가문으로 돌아가곤 하지만, 장자가 아닌 경우에는 계속 무림맹에 남아서 본인의 실력을 증명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편이 가문에도 도움이 되고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서문걸과 단리웅처럼 실력을 인정받아 천무대의 조장급으로까지 올라서면, 가문의 입지뿐만 아니라 본인의 입지 또한 여러모로 상승한다. 가문 내에서의 본인의 영향력 또한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무림맹의 여러 조직에는 명문파의 대사형이나 명문가의 장남보다는, 둘째 제자 이하의 제자들이나 차남 이하의 형제들이 포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남궁세가의 남궁묵 또한 그 길을 걷기 위해 일찍부터 천무대에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이, 이 인원들을 벌써 다 처치하셨소이까?”

서문걸이 놀란 눈으로 제갈수광에게 물었다.

단리웅 또한 휘둥그레진 눈으로 제갈수광을 바라보고 있다.

저들이 올라왔을 즈음에는 제갈수광이 쌍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는 중이었고, 나는 뒤에서 지원을 마친 모양새였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제갈수광이 주도했던 것처럼 보일 테니 제갈수광에게 저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제갈수광이 대꾸했다.

“이 아이와는 실전에서 손발을 맞춰 온 세월이 매우 깊소. 적들의 수준도 예상했던 것보다는 대단치 않다 보니 금방 정리할 수 있었소. 가뜩이나 이 아이는 암기술이 매우 뛰어난데, 마침 짙은 어둠 속이기도 해서.”

저건 당연히 나를 감춰주기 위해서 한 말이다.

내가 이곳의 적들 대부분을 처치했다고 하면 다들 나를 너무 주목하게 될 테니까.

제갈수광의 대답을 들은 서문걸과 단리웅은 나름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태무엽, 백룡, 남궁묵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동자에서는 놀라움마저 엿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제갈수광의 말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저럴 만도 하다.

태무엽과 백룡, 남궁묵은 통로에서부터 내가 움직이는 광경을 더 자세히 봤기 때문이다.

그들은 통로를 뛰어 올라온 내가 여섯 개의 독탄을 안전하게 처리한 후, 곧바로 이 안으로 진입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공간 안에서 제갈수광과 내가 함께 머물렀던 시간보다, 나 혼자 머물렀던 시간이 상대적으로 훨씬 길다는 사실까지도.

즉, 저 세 사람은 쓰러진 적들 중 다수가 나로 인해 죽었으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백룡이 말했다.

“우리야 눈대중으로 앞사람이 밟은 계단을 밟으며 올라왔지만, 아래에 있는 다수의 아군은 통로의 기관을 완벽하게 해체한 후에야 합류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요. 그동안 우리가 일단 이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면밀하게 조사해 놓는 게 좋겠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제갈수광과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공간의 외곽으로 흩어졌다.

제갈수광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소의 사무적인 표정이 아니라 약간의 염려와 의문이 담겨 있는 표정이었다.

[아까 표정을 보니 약간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던데, 지금은 괜찮나?]

[예. 지금은 멀쩡합니다.]

의문스러운 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나, 생각을 해본다고 해서 지금 당장 풀릴 만한 의문들도 아니다.

[네가 혼란스러워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아까 내가 전음으로 고함쳤던 시점 전까지,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얘기해줄 수 있겠나? 기분이랄지, 감정이랄지.]

이에 나는 제갈수광에게 내가 아까 느꼈던 기분과 감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내 이야기를 모두 전해 들은 제갈수광은 깊은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에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려왔다.

[음······. 방금까지도 이 말을 해줄지 말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한데 아무래도 해주는 게 나을 것 같군.]

내가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제갈수광의 전음이 이어졌다.

[아까 내 전음에 반응하기 전까지, 네 눈동자 색이 이상했었거든.]

[예······? 눈동자 색이 이상하다니요?]

[오른쪽 눈동자가 붉은색이었다. 네가 내 외침을 듣고 나서 잠시 후에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눈매를 급격하게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눈동자의 색이 붉은색으로 변했었다니.

갑자기 이게 웬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왼쪽 눈동자는 더 이상했다. 여러 색이 혼재되어 회오리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또한 내 외침을 듣고 난 후에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고.]

다른 쪽 눈동자에는 여러 색이 혼재돼 있었다고?

세상에, 붉은 눈깔도 이상한데 여러 색이 혼재된 눈깔이라니?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여러 광경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까 묘한 이질감이 작동하던 당시에, 나를 상대하던 적들은 저마다 눈을 부릅뜬 모습들이었다.

이후에 나와 시선이 마주쳤던 제갈수광 또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남았던 세 명의 적들은 마치 괴물이라도 보듯 나를 바라보며 벽 쪽으로 주춤주춤 물러났었다.

방금 전에 제갈수광이 해준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목격했던 그 모든 반응들이 납득이 되고도 남는다.

게다가 저 말을 해주는 사람이 다름 아닌 제갈수광이다. 이런 거로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닌 것이다.

즉, 제갈수광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다.

왠지 모르게 덜컥 겁이 났다.

나는 강한 적을 상대로도 웬만해서는 겁을 먹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나 자신에게 벌어진 이상한 상황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전생의 기억까지 모조리 동원해 봐도, 사람의 눈동자가 그런 빛을 띨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분명히 내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인데 이유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제갈수광이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더니 한 손을 내 어깨 위에 올렸다.

잠시나마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였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는 것 같다.

곧 제갈수광의 전음이 들렸다.

[잘 들어, 송유겸. 아까 네 눈동자를 목격했던 적들은 모두 죽었다. 그 외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런데 이후에라도 혹시 그걸 남들이 보게 되면 괜한 오해를 사게 될 수도 있다. 아군도 오해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네게도 말했던 것이다.]

내 눈동자가 시뻘겋게 변하는 모습을 백도인들이 보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사마외도의 무공 따위를 익힌 게 아닌가 하는 부분부터 의심하기 시작할 것이다. 한 번 그런 의심을 받게 되면 여러모로 귀찮아진다.

제갈수광은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내게 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죽립, 앞쪽을 조금 더 눌러쓰는 게 좋겠다. 그리고 이왕이면 앞머리도 늘어트려서 눈을 한 번 더 가리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그 경우에는 많이 불편할 것 같나?]

나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물론 안 가린 것보다는 불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불편함 따위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전투를 펼치다 보면 아까의 묘한 이질감에 언제 다시 빠져들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런 만큼, 설령 불편하다 해도 참고 감춰야 한다.

즉시 죽립을 벗은 후, 머리를 묶었던 끈을 풀어 앞머리 쪽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다시 묶었다.

앞머리가 얼굴을 가리며 길게 늘어졌다.

눈을 가릴 목적이니 이 정도는 너무 길다.

곧바로 제갈수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멋지게 부탁드립니다.]

제갈수광이 피식 웃더니 허리춤에서 작은 단도를 꺼냈다. 그러더니 내 앞머리를 잡고 적당히 잘라주기 시작했다.

내 눈동자가 그따위 색들로 변했다는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충격이었다. 한데 제갈수광은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다.

만약 남의 그런 모습을 내가 목격했다면,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제갈수광 또한 그런 느낌을 어느 정도는 받았을 것이며,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가까이 다가와 있는 제갈수광에게서는 꺼려 하는 듯한 느낌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머리카락을 잘라주고 있는 그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건 부드러움과 따스함이다.

너무도 고마운 사람이다.

그 생각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 물었다.

[붉은 눈동자 말고, 다른 한쪽 눈동자는 형형색색이었다고 하셨잖습니까?]

[어. 왼쪽 눈동자.]

[혹시 어떤 색들이었습니까? 그 여러 색이라는 게.]

[청색, 녹색, 자색, 황금색, 은백색, 묵색. 내 색감의 기준으로는 그 정도. 웬만한 색 중에서는 홍색 정도가 빠져 있었는데, 그 색은 오른쪽 눈동자에 나타나 있었던 거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때쯤, 제갈수광이 앞머리 자르는 작업을 마쳤다.

자른 앞머리가 앞으로 늘어지며 코끝 언저리에 닿고 있다.

나는 그 상태로 죽립을 눌러 썼다. 제갈수광이 앞에서 적당히 각을 잡아줬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칠채마주에 대한 생각이었다.

천마신교에서 전설상의 영단이라고 알려졌던 만큼, 직접 목격했던 칠채마주는 여러 색깔의 영롱한 빛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나는 그 칠채마주를 삼켰었다.

당시에 칠채마주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기만 했을 뿐, 서무욱의 육신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었다.

공력이든 잠력이든 아무것도 발생시키지 않았었다.

그냥,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설상의 영단이라는 것을 복용했음에도, 그다지 발악도 제대로 못 한 채로 죽었던 것이다.

한데 이후에 나는 신기하게도 송유겸의 몸으로 다시 깨어났다.

그렇기에 두 번째 삶을 얻은 이 신비한 현상 자체가, 그 칠채마주 덕분이 아닐까 생각하며 지내왔었다. 논리에 입각한 생각은 아니고, 그냥 그렇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전설상의 영단이라더니 아예 삶의 기회를 한 번 더 안겨준 거구나, 하면서.

한데 방금 전에 제갈수광이 읊었던 색깔들을 들어보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칠채마주의 영롱한 빛깔과 정확히 일치했다.

색이 일치하는 게 결코 우연일 것 같지 않다.

아직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방금의 현상이 칠채마주와 연관되어 있다는 개연성만큼은 충분히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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