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58
유령사왕을 향해 움직인 두 명의 복면인은 내가 처음부터 정체를 유추해 냈었던 자들이다.
나한테 죽었던 덩치 놈이 수뇌부 몇 놈의 별호를 발설했었고, 저 두 사람도 그 명단에 있었다.
서천혈부(西天血斧)와 망산겸노(邙山鎌老)다.
서천혈부의 이름은 토중파로, 사파 십대고수 언저리의 고수다. 사파 쪽의 무공서열로 따지면 십이삼 위쯤 될 것이다.
천마신교에서 봤던 정보에 의하면 그의 경지는 최절정까지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최절정에 거의 근접한 수준이라고 되어 있었다.
나이는 사십 대 중후반이며 덩치가 상당히 우람하다.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도끼를 무기로 쓴다.
망산겸노의 이름은 건동령이다.
나이는 고희에 가까우며, 깡마르고 왜소한 체구에 등이 굽은 노인이다. 별호에서도 알 수 있듯 낫을 무기로 쓰는데, 두 자루의 낫을 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겉모습만 봐서는 영락없는 농사꾼 노인이다.
그러나 저 노인은 사파에서 말석이나마 십대고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의 실력자이며, 최절정고수이기도 하다.
두 명 모두 대단한 고수들인 만큼, 전방의 전선 쪽을 어렵지 않게 돌파하며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제갈수광을 향해 즉시 전음을 보냈다.
[교관님, 복면을 쓰고 있는 적측 고수 두 명이 다가옵니다. 범상치 않은 고수들이니 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갈수광도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망산겸노와 서천혈부마저 가세한다면 지금의 이 인원으로는 유령사왕을 어찌해볼 수 없다. 어찌해보기는커녕, 오히려 제갈수광을 포함한 네 사람이 매우 위험해질 것이다.
유령사왕을 압박하고 있는 네 사람 또한 그 전에 몸을 빼야 할 텐데, 그것조차 조심해야 한다. 몸을 빼는 도중에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유령사왕이 가만 놔둘 리가 없는 탓이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인지, 원을태와 탕유심이 슬며시 내 근처로 다가왔다.
신룡대 출신의 노고수들답게, 제갈수광을 포함한 네 사람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후방의 구석 한 곳에 유령사왕을 몰아넣은 상태였고, 원을태와 탕유심은 후방의 중앙 쪽에서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두 노인은 교관들과 함께 유령사왕이 끌고 왔던 자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백도 측의 다른 무인들도 그쪽으로 합류한 탓에, 사파 측에서도 일반 정예들 소수가 그쪽으로 지원을 간 상태다.
기동타격조의 관도들도 그쪽에서 싸우는 중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관도들도 자연스럽게 전투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후방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기에, 관도들로서도 이제는 딱히 피할 데가 없는 상황이었던 탓이다.
그러한 여러 이유로 인해, 동굴 속 넓은 공간의 후방에서도 나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다.
기척을 죽이며 그쪽으로 은밀하게 이동했다.
망산겸노와 서천혈부가 합류하기 전에 후방의 적들을 최대한 정리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미리 그쪽에 가 있어야 우리 조원들을 보호하기도 편하다.
어차피 유령사왕 쪽에 있는 아군들은 고수들이니, 내 도움이 없어도 다들 일정 수준 이상의 대처는 할 것이다.
이동하는 중에 보니 단목강은 낮은 자세에서 무게중심이 무너져 난감한 상황이었다.
단목강이 실수를 해서라기보다는 상대가 너무 강한 탓이었다.
적측 절정고수가 틈을 노리고는 커다란 도를 강하게 휘두르며 위에서 아래로 단목강을 베어왔다.
단목강을 도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의 등 뒤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길초량이었다.
길초량이 단목강의 위쪽으로 곤을 들어 올리며 적의 도를 막아갔다.
수직으로 갈라오는 도를 향해 곤을 수평으로 들어 올린 건데, 한 손으로는 곤의 손잡이를 쥐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도 곤의 반대편 끝부분을 쥔 모습이었다.
적의 도에 담긴 힘이 강력하다고 판단하여 곤을 양손으로 잡은 모양이다.
보아하니 적측 절정고수는 더 강력하게 도를 내려치려는 모양이었다.
길초량을 아예 힘으로 굴복시킬 생각이다.
‘어? 저거, 저러면······.’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도와 곤이 강하게 부딪쳤다.
카앙!
내 예상대로 적의 도가 반탄력으로 인해 위쪽으로 맹렬하게 솟아올랐다.
반탄력이 저 정도면 튕겨 오르는 도의 손잡이를 제대로 잡고 있기도 어려운 지경일 것이다.
“헛!”
역시나 적의 입에서도 헛바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순간적으로 절정고수의 정면에 큰 틈이 생긴 상황이다.
그걸 알아챈 단목강이 곧바로 연계하여 공격하려 했으나, 다른 적이 검을 뻗으며 단목강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놓치기에는 아까운 기회이니 쇠구슬이라도 튕기려던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길초량이 양손으로 잡고 있던 곤의 한 부분이 분리되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넓적한 쇠붙이가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넓적한 쇠붙이는 검신으로 보인다.
즉, 길초량이 들고 다니던 두툼한 곤 안에 검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곤처럼 휘두르다가 저렇듯 손잡이 부분을 뽑으면 검이 뽑혀 나오는 형태였나 보다. 즉, 곤의 몸체가 바로 검집이기도 했던 셈이다.
챙!
검신이 곤의 몸체를 빠르게 벗어났다.
그러자마자 길초량이 연결 동작으로 정면에 있던 적측 절정고수의 가슴을 찔러갔다.
빠르다.
지금껏 길초량이 싸우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지만, 이 순간에 검을 찔러가고 있는 저 동작이 가장 빠른 느낌이다.
매우 숙련된 느낌의 움직임이기도 한데, 아마도 저 동작에 대한 수련을 많이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길초량의 정면에 있는 적은 순간적으로 틈이 너무 크게 드러났던 상황이다. 반탄력으로 인해 도가 너무 많이 튀어 올라, 정면이 활짝 열리다시피 한 상태다.
아무래도 길초량의 갑작스러운 저 공격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푹!
결국 길초량의 검이 그 절정고수의 가슴을 찔렀다.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짜식이 역시 제법이란 말이야.
게다가 무기도 매우 훌륭하고.
길초량의 무기는 애초에 곤의 형태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무기였다. 특유의 반탄력 때문이다.
한데 그 안에 검까지 들어 있다.
검신에 은은한 묵빛이 도는 것이, 딱 봐도 보통 검이 아니다.
평소에는 곤술을 펼치다가 상황에 따라 검을 뽑는 모양이다.
현재의 길초량은 왼손에는 곤의 몸체를 쥐고, 오른손에는 검을 쥔 상태다. 그 상태로 곤과 검을 동시에 휘두르며 싸우기 시작했다.
잠시 보니 검술의 경지도 상당한 것 같다.
짜식이 검술 실력까지 좋았던 거야?
역시 흥미로운 놈이라니까.
은밀하게 적들의 옆과 뒤를 오가며 개중에 약해 보이는 자들을 향해 독침을 날렸다.
이곳에도 아군과 적측이 얽히고설켜 있기에, 까딱 잘못하면 아군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독침술은 간결함과 정확성에 초점을 두어 하나씩만 날렸다.
그런 식으로 열 명 가까운 적들을 순식간에 처치할 수 있었다.
적들이 아군들에 신경이 팔려 있는 상태에서, 나는 천섬무를 운용하며 은밀하게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가뜩이나 어둠 속이니 내 입장에서는 더더욱 유리한 면이 많다.
이제 이쪽에 남아 있는 적들은 대부분 유령사왕을 따라왔던 자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절정의 중반 이상 되는 실력자들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런 수준의 적들을 상대로 독침을 날리는 건 위험할 수 있다.
피하거나 쳐낼 가능성이 일정 부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애먼 독침이 아군에게 박힐 수가 있다.
결국 비룡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면서 전장을 빠르게 살피던 순간, 나는 눈매를 급격하게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유령사왕을 구하기 위해 구석으로 향하는 듯했던 망산겸노와 서천혈부가,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방향을 갑자기 우리 쪽으로 틀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두 사람과 가장 가까운 아군은, 이선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암기를 지원하던 이세옥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천혈부가 공간을 압축하듯 이세옥을 향해 빠르게 다가서고 있었다.
우람한 덩치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다.
[이 교관님! 뒤쪽! 피하셔야!]
서둘러 전음을 보내며 그녀 쪽을 향해 천섬무를 펼쳤다.
날이 넓은 도끼 한 자루가 이세옥의 허리 어림을 베어 오는 모습이 보인다.
엄청나게 강력하고 빠른 부술(斧術)이다.
힘에서는 웬만큼 커다란 도(刀)보다도 훨씬 강력한 게 바로 도끼다.
이세옥은 암기술 전문이기에, 저 강력한 힘이 담긴 도끼를 막을 만한 병장기가 없다.
유엽비도 따위를 교차해서 막는다는 건 자살행위이며, 비껴내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힘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상대는 사파의 내로라하는 고수다.
그렇기에 무조건 피해야 한다.
보아하니 이세옥이 곧바로 반응하며 몸을 틀고 있다.
처음부터 내 말대로 즉시 회피 동작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천섬무를 펼치며 다가가는 중이다.
시간상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이세옥이 조금이라도 고민한 후에 대처했다면, 도울 수 있는 이 한순간의 시간조차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그 순간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그림자가 서천혈부의 어깨 위를 스치듯 뛰어넘어, 이세옥의 측면에 있는 장호산에게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산겸노였다.
왜소한 체구에 등이 굽은 그가, 굽은 형태의 무기 두 자루를 아래로 찍어 내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빠르다 해도 이러한 찰나의 순간에 저 두 사람을 동시에 막아주는 건 어렵다.
원래의 목표였던 이세옥 쪽으로 이동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망산겸노의 목표가 하필, 내게는 너무도 고마운 사람인 저 장호산이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이를 악물었다.
둘 중 한 명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세옥에게 다다르기까지 세 걸음쯤 남았을 때.
휘익-
뭔가가 서천혈부의 도끼와 이세옥의 가녀린 몸통 사이로 불쑥 들어왔다.
하나의 검이었다.
검에 강력한 기운이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검의 주인을 보니 남궁묵이다.
이 상황을 알아채고 이런 급박한 순간에 어떻게든 개입을 하다니.
역시 저 핏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 검으로 서천혈부의 도끼를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검에 강력한 기운을 주입했다지만, 대상이 바로 서천혈부의 도끼인 것이다. 물론 경지도 서천혈부 쪽이 훨씬 높다.
그래도 남궁묵은 내게 시간을 벌어줬다.
남궁묵이라면 잠시나마 최소한의 대처는 가능할 것이니, 나는 이세옥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곧바로 장호산 쪽으로 틀었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곁눈질의 형태로 남궁묵의 검과 서천혈부의 도끼 쪽을 확인했다.
두 개의 무기가 부딪치기 직전의 순간, 나는 절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수웅-
남궁묵의 검극에서 구슬 모양으로 집약된 강력한 기운이 발출되었던 것이다.
검환이다.
예전에 산장에서 장우혜도 검환을 발출했었다.
그 검환은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였다.
한데 방금 남궁묵이 발출해낸 검환은 조막만 하다. 조막만 한 정도라도 검환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크다.
저 정도의 검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와아······! 정말이지 저 핏줄이 대단하기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곧, 남궁묵의 검환과 서천혈부의 도끼가 맞부딪쳤다.
콰아아앙!
강렬한 충격음이 울렸다.
나는 결과를 확인하지 않은 채, 오로지 망산겸노만을 보며 움직였다.
망산겸노는 허공에서 사선으로 떨어지며 낫 한 자루를 찍어 내리고 있고, 장호산은 맹렬하게 몸을 비틀며 검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양 무릎을 굽힌 채였다.
한데 장호산의 어깨 뒤쪽에서 빠르고 강력한 무언가가 날아들고 있다.
허공에서 내려오고 있는 망산겸노를 노린 공격이었다.
이번에도 검환이다.
크기는 남궁묵의 검환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검환은 검환이다. 아무리 망산겸노라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형태의 공격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 검환에 담긴 기운이 누구의 기운인지도 안다.
단목강의 기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