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61
비맹주 세력 측의 무인들이 놀란 표정으로 태무엽을 바라보고 있다.
신룡대의 황룡이라는 부분에서 놀란 것이다.
일반 대원들의 정체조차 밝혀질 일이 없는 게 바로 신룡대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신룡대 조장의 정체가 밝혀진 상황이니 다들 놀랄 만도 하다.
증운생이 말했다.
“후······! 네놈이야말로 말끝마다 ‘배운 분, 배운 분’ 소리로구나. 고얀 놈이 어른을 놀리는 게지. 이왕 말이 나왔으니 보태자면, 네 옆에 서 있는 여자아이가 백룡이라는 것도 안다.”
비맹주 세력 측의 무인들이 다시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태무엽 때와 비슷한 이유로 놀란 것이다.
그나저나 신룡대 조장 두 명의 정체를 금세 특정해 내다니.
확실히 증운생이 대단하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역량이 있는 자이니 이런 대규모의 난리도 피울 수 있었던 거겠지.
증운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 훈련받은 맹견들 사이에 들개들이 섞여 있다는 것도 안다.”
훈련받은 맹견들이란 무림맹의 무인들을 뜻하는 말이며, 들개들이란 비맹주 세력의 무인들을 뜻하는 말이다.
증운생의 말이 이어졌다.
“생각해 보면 운천흠이보다 나를 더 무시한 건 바로 저놈들이겠지? 운천흠이는 그래도 아끼는 충견들을 보낸 건데, 저놈들은 그냥 대충 크게 짖는 놈들끼리 모여서 온 거니까.”
증운생이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아. 감히, 그따위 말도 안 되는 오합지졸로 이 몸을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게.”
말을 마친 증운생이 갑자기 양손을 활짝 펼치며 앞으로 내밀었다.
슈슈슈슛-!
증운생의 열 손가락을 통해 심상치 않은 기운들이 일제히 발출되었다.
지풍이다.
은밀하면서도 날카로웠고, 무섭도록 빨랐다.
티디딩-!
푸부부부북!
열 개의 기운들 중에서 세 개는 막혔으나, 나머지 기운들은 모두 여기저기에 적중했다.
“크헉······!”
“아악!”
지풍에 적중당한 이들이 비명을 토해내며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진 이들은 모두 절명했다.
그 순간에도 알 수 있었던 건, 쓰러진 일곱 명의 인물들이 모두 비맹주 세력의 무인들이라는 점이었다.
나머지 세 개의 지풍을 막은 이들은 태무엽과 서문걸, 단리웅이었다.
사실은 그 세 개의 지풍들도 모두 비맹주 세력의 무인들 쪽으로 향하던 공격들이었다. 그 세 사람이 각자의 근처로 지나가던 지풍들을 막아냈던 것이다.
세 사람도 겨우 막아내는 모습들이었다. 애초에 저 세 사람 정도의 실력은 되어야 막을 수 있는 공격들이기도 했다.
증운생의 지풍 자체가 그 정도로 대단한 경지의 공격이었던 탓이다.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비맹주 세력 무인들의 얼굴이 모두 사색으로 변하고 있다.
증운생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허어······! 그걸 또 막아주고 앉았구나? 저 들개들이 너희들 쪽에 숟가락이나 얹으려고 온 쓰레기들이라는 걸 네놈들이 더 잘 알 텐데도? 허허허,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것이냐?”
태무엽을 바라보며 물은 말이다.
“좋든 싫든 백도인들을 보호하는 일 또한 무림맹의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요.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직무유기를 할 수는 없잖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리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켜줄 수는 없소. 그래도 할 수 있는 선에서만큼은 노력해볼 뿐이오.”
태무엽이 대꾸하자 증운생이 포기했다는 듯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하여간 그놈의 백도는 답답한 위선자들 천지지.”
증운생의 저 말만큼은 동감이다.
태무엽이 대꾸했다.
“귀하는 이해하기 어려울 테지만, 이런 게 바로 백도가 백도로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가치요. 최소한의 의협심이라는 것이지. 아무리 남들 눈에 답답해 보이고 위선자로 보여도, 우리는 그걸 지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소. 그걸 버리면 우리도 귀하들과 큰 차이가 없어지는 거라서.”
태무엽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까 비맹주 세력의 무인들 한 무리가 환영진에 걸렸을 때, 태무엽은 숨어서 그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돕지 않았었다.
그때 나도 그쪽에 있었기에 잘 알고 있다.
나도 방관했지만 태무엽도 완전히 방관했었다.
때문에 그 진법에 걸렸던 비맹주 세력의 무인들이 모두 죽어버렸던 것이고.
어쨌거나 그때는 비맹주 세력 쪽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사람이, 지금은 저런 입바른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다니.
당시에는 보는 눈이 없었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많다는 거겠지.
그런데 더 웃기는 건, 방금 태무엽의 말을 들은 비맹주 세력 무인들의 눈동자가 감격에 차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각오가 담긴 눈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하고 있다.
푸하하하!
정말이지 골 때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태무엽도 저들의 저러한 반응을 노리고 내뱉은 말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순진한 고기 방패들이 하나라도 더 늘 테니까.
잘하네.
아까 진법에 걸려서 죽었던 비맹주 세력의 혼들은 태무엽 때문에 원혼이 될 것 같다.
증운생이 입가에 미소를 보이더니 말했다.
“그래. 어디 한번 그 의협심들, 열심히 발휘해 보거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증운생이 정면을 향해 한 팔을 뻗었다.
공격 신호였다.
그러자마자 증운생의 뒤에 있던 사파 놈들이 우리를 향해 일제히 짓쳐 들었다.
우리 쪽에서도 즉시 적들을 막아섰다.
전투가 금세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눈여겨볼 만한 점은, 비맹주 세력 측의 무인들이 용맹하게 전열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심이야 어떠했든, 태무엽의 말이 저들의 심정을 제대로 자극한 것이다.
증운생은 당장은 달려들지 않은 채, 일단은 뒷짐을 진 모습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저러다가도 언제 갑자기 움직일지 모르니, 백도의 고수들은 적에게 맞서는 중에도 계속 증운생 쪽을 주시하는 중이다.
장호산에게 업혀 왔던 나는 후방 쪽 측면의 벽에 상체를 기대고 앉아 있다. 이쯤 되자 몸통에 가득했던 고통도 약간이나마 덜해진 상태다.
지금도 움직이려면 움직일 수는 있으나, 나는 고통이 조금이라도 더 가실 때까지 최대한 이대로 꼼짝 안 할 생각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들 중에서 고수들의 기척을 최대한 파악하고 있는 일이다.
증운생도 증운생이지만, 주의해야 할 고수들이 적지 않다.
최절정고수인 유령사왕도, 망산겸노도 여전히 멀쩡하다.
게다가 내가 아직까지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두 명의 복면 남녀도 있다. 참고로 두 남녀는 여전히 나서지 않은 채로 아까의 자리에 가만히 있는 상태다.
증운생은 가만히 서서 지풍 등을 이용해 전선을 한 차례씩 지원하곤 했다.
전선에는 최절정고수인 망산겸노가 투입되어 있는 상태다.
망산겸노가 낫을 들고 신나게 날뛰는 상황에서 증운생이 후방지원을 하다 보니, 백도인들 쪽이 눈에 띄게 밀리기 시작했다.
벌써 천무대원들과 신룡대원들이 여럿 당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당한 부류는 태무엽의 말에 감격해서 호기롭게 전면으로 나섰던, 비맹주 세력의 무인들이었다.
그 와중에도 유령사왕이 서서히 기척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저러면 놈은 곧 귀신처럼 어딘가로 이동할 것이다.
잠시 후에 유령사왕의 기척이 이른 곳은 단목강 쪽이었다.
즉시 단목강을 향해 전음을 보내주려 했는데, 보아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제갈수광이 이미 단목강의 옆에 다다라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다.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히 내 근처에 있었는데 언제 저곳까지 갔단 말인가.
카강! 캉!
제갈수광의 쌍검이 매서운 검광을 발했고, 유령사왕이 소검을 들고 그 공격을 막았다.
한데 그 짧은 격돌에서 고수인 유령사왕 쪽이 오히려 살짝 당황한 기색이다.
지금 제갈수광이 발산하고 있는 기운은 왠지 평상시의 기운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평상시에 제갈수광이 내뿜는 기운은 단정하고 잘 정제되어 있는 느낌인데, 지금 제갈수광이 내뿜고 있는 기운은 활활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유령사왕이 신형을 교묘하게 뒤로 빼며 또다시 기척을 죽였다. 특유의 귀신같은 움직임을 통해 다른 곳을 노리려는 심산일 것이다.
한데 그 순간에 제갈수광의 쌍검에서 검기가 발출되더니 유령사왕에게로 향했다.
카강!
유령사왕은 결국 몸을 빼지 못한 채 제갈수광의 검기를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캉! 캉! 카강! 캉!
이후에는 또다시 두 사람이 빠르게 얽혔다.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갈수광이 유령사왕을 상대로 거의 밀리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만 놀란 게 아니라 상대방인 유령사왕도 놀란 눈치였다.
아까 우리에게 포위당했던 유령사왕이 일 대 사로 싸우던 당시, 제갈수광은 네 명 쪽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네 명이 유령사왕 한 명과 팽팽한 대결을 펼쳤었다.
한데 그 네 명에 포함되어 있던 제갈수광이, 지금은 혼자서 유령사왕을 상대로 팽팽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놀랄 수밖에.
제갈수광이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그즈음, 사파 쪽 전선의 후열에 있던 증운생이 제갈수광 방향으로 한 손을 뻗는 게 보였다.
곧, 증운생의 장심을 통해 장력이 발출되었다.
아마도 유령사왕을 지원하기 위한 한 수 같다.
슈악-
크기가 크지는 않으나 위력만큼은 매우 강맹한 장력이었다. 게다가 증운생이 날린 공격답게 매우 빨랐다.
제갈수광의 시선이 본인의 뒤쪽을 힐끗 훑었다. 그러더니 입술을 굳게 다물며, 날아오는 장력을 향해 쌍검을 교차했다.
본인의 뒤쪽에 마침 부상당한 신룡대원들 두세 명이 모여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제갈수광이 피하면 뒤쪽의 신룡대원들이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즈음, 유령사왕이 빠르게 기척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제갈수광이 증운생의 장력을 튕겨냈다.
퍼엉!
튕겨나간 장력이 후방 측면의 천장 쪽에 박혔다.
콰광!
그 순간,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켜야 했다.
이번에 유령사왕이 노리고 있는 목표가 나라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유령사왕이 나를 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내가 애초에 그의 움직임을 방해한 전력이 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요주의 인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나는 약간이나마 부상을 당한 상태로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상태다. 유령사왕의 입장에서는 아까의 복수도 할 겸, 괜찮은 먹잇감이기도 했을 것이다.
스윽-
유령사왕이 내 뒤에 나타난 순간, 나는 적당한 속도로 천섬무를 펼치며 그곳을 벗어나 더 후방으로 이동했다.
내공이 일 할도 남지 않았으니 최대한 아껴서 쓸 필요가 있다. 물론 아까도 내가 공력을 낭비하고 싶어서 낭비했던 건 아니었지만.
사사삭-
유령사왕이 속도를 높이며 내 뒤를 쫓았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천섬무의 속도를 더 높였다.
놈의 추격에서 벗어나는 와중에도 의아하다.
이 인간은 아까도 우리 진영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다가 낭패를 당할 뻔한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후방 깊숙한 곳으로 피하는 중인데, 그걸 알면서도 계속 나를 추격해오고 있는 것이다.
곧, 측면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유령사왕의 앞을 막아섰다.
제갈수광이었다.
그가 지원을 온 만큼, 이제는 내 쪽에서도 굳이 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윽고 제갈수광을 지원하기 위해 쇠구슬을 꺼내 들었을 때쯤,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유령사왕의 바로 뒤에 증운생이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증운생이 유령사왕의 옆으로 살짝 이동하며 제갈수광을 향해 쌍장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