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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68화 (168/416)

내 안에 마교있다 168

부친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모범적인 인품의 소유자다.

진솔하고 반듯하고 인자한 성품이라, 거의 공자님, 맹자님과 더불어 차 한잔 마실 수준의 인품은 되는 분이다. 이건 부친을 아는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바다.

물론 부친의 인품은 자식들을 상대할 때도 변함이 없었다.

다른 세가의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각종 강요와 강압을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그로 인한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는 관도들을, 실제로 잠룡관에서도 많이 봤다.

한데 자신과 여동생은 어려서부터 어떠한 강요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자식들에게 부모의 욕심을 투영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부친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부친은 그런 분이다.

한데 그런 부친이 방금, 송유겸을 보고 사위 삼고 싶다는 표현을 썼다.

참고로 부친도 여동생과 송유겸 사이에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저런 발언을 하신 것이다.

여동생을 통해서라도 사위로 들이고 싶을 만큼 송유겸이 탐난다는 뜻이니, 당연히 부친의 욕심이 투영된 발언이다.

생전에 부친의 입에서 저런 발언을 듣게 될 줄이야.

놀랄 일이다.

“흠, 흠!”

자신의 놀란 표정을 확인했는지, 부친이 헛기침을 하고 있다.

부친이 말했다.

“그냥 집안의 사내끼리라서 꺼내 본 말이다. 네 어머니나 지아에게는 말하지 말거라.”

“하하. 알겠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묻고 싶은데, 송 공자의 주변에 특별한 관계로 보이는 소저들은 많아 보이더냐?”

“허······! 그런 것까지 하문하십니까?”

저런 것까지 묻는 걸 보면, 부친은 진심으로 송유겸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흠, 흠! 그냥 궁금해서 그런다.”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소저들이야 많지만, 아버지가 생각하시는 특별한 관계의 소저는 딱히 없는 것으로 압니다.”

“그 와중에 지아와는 상당히 가깝게 지낸단 말이지?”

“예. 홍신이와 같이 어울리며 제법 친해진 모양이더군요.”

부친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다시 물었다.

“지아의 분위기는 어떤 것 같고?”

“지아도 송 공자를 각별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사실 지아 쪽의 분위기는 저보다 홍신이가 더 잘 알긴 할 텐데······.”

“알았다. 그쯤이면 됐다. 그냥 지아도 마음에 들어 한다면 조용히 응원이나 해줄 생각으로 이것저것 물어본 것뿐이다. 그러니 아까 당부했던 대로 네 어머니와 지아에게는 말하지 말거라. 우리끼리만 나눈 얘기인 거다.”

“하하, 알겠습니다.”

* * *

단목세가의 부자와 헤어져서 막사로 돌아오는 길.

우리 막사 구역 근처의 해송 지대에 다다른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위쪽을 살폈다. 그 후 가장 높은 해송의 나뭇가지들을 가볍게 밟으며 위쪽으로 도약해 올랐다.

어차피 막사로 돌아가도 바로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괜히 뒤척이며 제갈수광과 길초량의 수면을 방해하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 후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할 것들도 좀 있으니까.

상단의 가지에 앉아 나무줄기에 등을 기대었다.

높은 가지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어제부터 계속되었던 수많은 전투 광경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복기를 이어가다 보니, 전투 중에 느꼈던 묘한 이질감에 대한 생각에 자연스럽게 닿을 수밖에 없었다.

이질감의 정체가 궁금하다.

왜 갑자기 그런 현상이 벌어졌던 걸까.

분명히 전투에 큰 도움이 되는 이질감들인데, 내 의지로 제어할 수는 없는 걸까?

발동 조건 같은 게 따로 있는 걸까?

여러 의문이 들지만 지금으로써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을 때 눈동자의 색이 변한다는 사실도 여전히 의아하다.

제갈수광이 알려줬을 당시, 내 한쪽 눈동자는 적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다른 쪽 눈동자에는 여섯 가지 색이 혼재되어 있었다고 했다.

양쪽 눈동자의 색을 합하면 총 일곱 개의 색인데, 하필이면 그 모든 색이 내가 봤던 칠채마주의 색과 똑같다. 그렇기에 당시에도 나는 제갈수광이 말해준 색을 듣고 곧바로 칠채마주를 떠올렸었다.

그렇다면 내가 묘한 이질감에 사로잡힐 때마다 칠채마주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일까?

알 수 없다.

다만, 색이 같다 보니 계속 연관을 지을 수밖에 없게 된다.

전설상의 영단이라던 칠채마주가 당시의 내 육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니, 정신이나 혼백 쪽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육신이 바뀐 지금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니까.

눈동자의 색에 대해 또 하나 궁금한 게 있다.

지난 전투에서 내가 느꼈던 묘한 이질감은 두 종류였고, 특유의 쾌감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분명히 구분이 됐었다.

적의 움직임이나 반응들이 시야에 훤하게 들어오고, 그럼으로 인해 적을 쉽게 죽이게 되는 이질감이 있다.

공력 소모도 거의 없는 그 이질감일 당시에는 눈동자가 적색이었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빛의 알갱이들이 보이며 엄청난 속도를 내게 되는 이질감이다. 이 경우에는 내 의지로 천섬무의 최대 단계를 낼 때보다 한층 더 빨라지며 공력 소모도 많다.

이때의 눈동자는 무슨 색일지가 궁금하다.

나아가서는 다른 이질감이 또 있는지도 궁금하며, 그때마다 눈동자 색이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하다.

그때마다 검이라도 꺼내서 검면으로 눈동자 색을 확인해야 하나 싶다.

후유증 같은 게 없는지도 궁금하다.

묘한 이질감은 특유의 쾌감도 동반하는데, 그 쾌감 속에서 내가 이상해지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든다.

이후에 다른 생각들을 이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서 바라보니 백룡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내가 앉아 있는 나무의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손에 쥐고 있는 건 술병 같은데,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병의 주둥이를 입에 대고 내용물을 꼴깍 삼키고 있다.

술 한 모금을 들이켠 백룡이 고개를 살짝 들더니 내 쪽을 한 차례 확인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선이 마주쳤으니 일단 인사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그녀가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신법을 펼친 백룡이 내가 앉아 있는 해송의 옆에 있는 해송에 금세 도달하더니, 곧바로 도약하며 나무 위로 올라왔다.

이윽고 그녀가 옆 나무의 가지 위에 앉았다. 내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와 비슷한 높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살짝 당황스럽지만, 일단은 그녀를 향해 짧게 목례했다.

“안녕하십니까······.”

백룡이 검은 바다에 시선을 둔 채로 대꾸했다.

“인사는 고마운데, 안녕하진 못해.”

힘없는 목소리에 힘없는 미소다.

슬픔이 담긴 미소이기도 했다.

이유는 금방 파악되었다.

전사한 백룡조의 부하들 때문일 것이다.

사파 쪽에서 유령사왕이 등장한 순간부터 무상 백리결을 포함한 지원대가 오기 전까지, 우리 쪽 인원들도 제법 많이 죽었다.

천무대의 삼 조와 사 조, 신룡대의 황룡조와 백룡조 그리고 기동타격조로 구성된 최정예들이긴 했으나, 그런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적들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천무대고 신룡대고 할 것 없이 적지 않은 수의 대원들이 죽었는데, 멀쩡한 건 기동타격조뿐이었다.

기동타격조는 애초에 지원 전력이라 전선에 서지 않았던 덕분이며, 내가 집중적으로 지켜준 덕분이기도 하다.

백룡에게 말했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들어갈 생각을 하던 중에 마침 조장님이 오신 거라서······.”

내가 백룡이라면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것 같다. 그래서 자리를 피해줄 목적으로 한 말이다.

그러자 백룡의 전음이 들려왔다.

[내 생각 해서 일부러 자리 피해주려는 거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나마 이전보다는 기운을 차린 느낌의 미소다.

그녀가 전음으로 대꾸하니 나도 전음으로 대꾸했다.

[아하하, 꼭 그렇다기보다는······.]

[싸울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눈치가 빠르구나?]

[평소의 눈치는 그냥······ 평범한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내 대꾸에 백룡이 또다시 미소를 보이더니 전음을 보내왔다.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려는 거면, 그냥 거기에 앉아 있어 주면 안 될까?]

예상외의 발언이었기에 나는 살짝 놀랐다.

내가 눈을 살짝 크게 뜬 채로 바라보자 백룡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여러모로 왠지 든든하거든. 네가 근처에 있으면.]

내 입장에서는 이 역시 의외의 발언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녀가 말한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녀에게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막사로 돌아간다 해도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신룡대의 조장급과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다.

일단 그냥 있어 보자.

백룡이 말없이 두 차례 술을 들이켜는 동안, 나는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을 생각으로 조용히 있었다.

슬쩍 보니, 눈물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데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나 또한 흑풍대 시절에 동료들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저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슬픈 와중에도 죽은 동료들에게 여러모로 미안한 감정이 들곤 하는데, 그 미안한 감정은 후임들을 잃었을 경우에 특히 더 심해진다.

백룡은 책임자인 만큼 그 미안함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전사한 조원이 한두 명이 아니다 보니 감정을 추스르는 일도 더 버거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던 백룡이 이윽고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억지로라도 표정을 밝게 하려고 힘을 내는 느낌이다.

[미안. 심심했지?]

[아닙니다. 저도 여러모로 생각할 것들이 있었던지라.]

백룡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동굴에 들어가기 전의 전투에서 말이야. 사파 쪽의 키 큰 고수와 왜소한 고수가 처음으로 등장해서 공격해 올 때, 나는 뒤에 있는 부하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두 놈의 동시 공격을 막아야만 했어. 위력이 강하긴 했어도 한두 번 정도는 어찌어찌 막으며 버텨볼 만한 수준이었지. 실제로 막아내기도 했고. 비록 몸은 뒤로 밀렸지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룡이 말을 이었다.

[두 놈의 공격을 막아낸 그 순간에도 무음시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상태였어. 무음시가 내 복부에 다다랐을 즈음에야 알아챘지. 내 입장에서는 완전한 외통수였어. 당시의 나로서는 막거나 피하기가 불가능한 공격이었지.]

백룡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극독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보니 까마득한 절망감이 들더라. 독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전장을 이탈해야 할 테니, 그러다 보면 부하들 여럿이 당하겠구나 싶었지. 사실, 그 순간에는 내 안위가 더 문제이기도 했어. 키 큰 놈과 왜소한 놈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었을 테고, 그러면 나는 독 기운을 다스릴 만한 여건도 되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백룡이 말을 이었다.

[신룡대의 조장으로서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내 모든 게 끝나는구나 싶더라. 습관적으로 최선을 다해 몸을 비틀고는 있었지만, 실상 마음속으로는 거의 포기 상태였어. 그런데 그 순간에 검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무음시를 튕겨낸 거야. 그곳에 네가 서 있었지. 그때 내 눈에 네가 어떻게 보였는지 아니?]

[그, 글쎄요.]

[진심으로 맹주님보다 더 멋져 보였어.]

[아하하하······.]

[아직도 그 순간의 광경이 뇌리에 선명해. 그리고 그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다짐하지. 내 힘이 허락하는 한, 평생 너한테 그 빚을 갚으며 살겠다는 다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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