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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77화 (177/416)

내 안에 마교있다 177

강하령을 보낸 후에 제갈수광, 길초량과 셋이서 아침 식사를 했다.

“어으, 국물 좋다. 어으······.”

제갈수광이 연신 ‘어으’ 소리를 해대고 있다.

어젯밤에 또 들이부으신 거다.

정말이지 대단한 술꾼이 아닐 수 없다.

한숨을 내쉰 후 길초량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떠나고 이제 우리밖에 안 남았구려.”

“하하. 그러게 말이오. 이러고 있으니 잠룡관에 있는 것 같은 착각도 드는구려. 우리 두 사람은 언제나 그렇듯 한가하고, 제갈 교관님도 평소처럼 숙취로 고생 중이시고.”

맞는 말이라 웃음이 나왔다.

“한데 길 형은 어찌할 것이오? 이곳에 조금 더 머물 것이오? 아니면 조만간 떠날 계획이시오?”

“송 형이 잊으셨나 본데 이 몸은 내상 환자요. 섣불리 움직이기보다는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오.”

“아, 미안하오. 잊고 있었소. 길 형이 엊그제 밤새워서 술을 퍼붓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내 뇌리 속에서 환자라는 인식이 완전히 증발해 버렸나 보오.”

“크흠! 흠!”

길초량이 딴청 피우듯 헛기침을 했다.

놈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대답하는 투를 보아하니 조금 더 머물 생각인가 보구려.”

“조금 더는 무슨. 계속 이곳에 머물다가 조장님이 잠룡관으로 복귀할 때 같이 복귀할 것이오.”

“눈빛에서 단단한 각오가 느껴지는구려.”

“송 형, 내가 예전에도 말했듯, 인생에 공짜 밥 얻어먹고 사는 기회가 흔치 않소. 그중에서도 이 정도로 융숭한 대접을 받을 기회는 더더욱 흔치 않소. 아무것도 안 하고 한량으로 있어도 맛있는 요리가 나오고, 깨끗하고 따뜻한 방에서 재워주잖소. 그럼에도 집주인은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있고.”

“최대한 빈대 붙겠다는 소리를 길게도 늘어놓는구려.”

“비, 빈대라닛! 식객이라는 좋은 표현도 있잖소!”

놈을 무시하듯 외면하며 다시금 젓가락질을 했다.

“어으, 속 풀린다. 어으.”

마침 그놈의 ‘어으’ 소리가 들려오기에 제갈수광에게도 물었다.

“교관님은 언제쯤 떠날 계획이십니까?”

“잊었나 본데, 나도 내상 환자야. 장기간 안정이 필요하다고.”

“당연히 잊죠. 매일매일 숙취로 고생하고 계신 분을 누가 내상 환자라고 여기겠습니까.”

“이 자식이 또 잔소리질 시작됐네. 하여튼 저건 딱 전투할 때만 멋있지, 평소에는 아주, 으휴.”

남 말 하지 마시오. 딱 전투할 때만 멋있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란 말이오.

“보아하니 교관님도 좀 더 머물 계획이신 모양이군요.”

“좀 더 정도가 아니지. 나도 끝까지 남아 있다가 단목강과 같이 잠룡관에 복귀할 생각인데.”

“예에에? 교관님도요?”

“인생에 공짜 술 얻어먹고 사는 기회가 흔치 않거든. 가만히 있어도 술 나오고 밥 나오잖나. 가뜩이나 좋은 술인 데다가, 그 와중에 밥도 첫 끼는 늘 해장 음식이라고. 휴가라고 특별히 어디 여행 가고 놀러 다니고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 이곳이 최고의 휴가지이고, 지금 나는 최고의 휴가를 누리는 중이지.”

어련하시겠소.

한숨을 내쉰 후에 그에게 말했다.

“결국 교관님도 이곳에 들러붙겠다는 속셈이시군요.”

내 말에 제갈수광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들러붙는 건 길초량이고, 나는 다르지. 나는 지금 가정 방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인 데다가, 단목강의 스승인 만큼 대접받을 자격도 충분하지.”

하여튼 갖다 붙이시기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하게 대접받고 계시는 거 아닙니까?”

“너무 과하게 대접받은 것 같으면 나중에 잠룡관으로 돌아가서 단목강과 단목지를 좀 편애해 주면 되지. 남들이 눈치 못 채게 편애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이, 이보쇼! 무슨 선생이라는 사람이 대놓고 편애 얘기를 꺼내고 있소? 당신에게 교육자로서의 도덕성 같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오?

길초량이 아첨하는 미소를 지으며 제갈수광에게 말했다.

“역시 교관님이십니다. 저도 그런 융통성을 배우고 싶습니다.”

“길초량 너는 지금도 잘하고 있어.”

“하핫,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보고 있는 것만으르도 한숨이 나온다.

이게 바로 나와 가장 가깝다는 인간들의 실체라니.

두 인간한테서 신경을 끈 채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길초량이 내게 물었다.

“그러는 송 형은 어찌할 계획이시오?”

“사실은 나도 단목세가에 최대한 오래 머물다가 조장님하고 같이 복귀할까 생각 중이었소.”

잠룡관으로 복귀해 봐야 내가 할 일이라고는 개인 수련밖에 없다.

한데 복귀했을 경우의 문제는, 나와 인사를 나누고 관계를 맺으려는 수많은 관도들로 인해 생활이 불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목세가에 최대한 오래 머물려는 것이다.

수련은 단목세가에서도 할 수 있으며, 수련할 수 있는 여건 또한 이곳이 더 좋으니까.

길초량이 대꾸했다.

“풋! 어차피 본인도 빈대 붙을 생각이셨으면서.”

이 자식아, 네놈과는 이유가 완전히 다르거든?

식사 후에 길초량은 두어 군데 전서를 보낼 게 있다며 곧바로 식당을 벗어났다.

제갈수광과 둘이 앉아서 차를 마시는데 그가 물었다.

“일전에 네 독립 얘기 말인데, 졸업하자마자 독립한다고?”

술자리에서 세 노인과 대화를 나눌 때 나왔던 내 독립에 대한 이야기다.

“예.”

“하여튼 송가장에는 어지간히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기 싫은 모양이군. 뭐, 네가 그쪽 식구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만.”

내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자 제갈수광이 다시 물었다.

“송유겸 너, 잠룡관은 올해까지만 다니고 졸업할 생각이지?”

그 말에 내가 놀란 표정을 보이자 제갈수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그랬군.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다. 너를 잘 아는 입장에서 그 정도 예측하는 게 뭐가 어렵겠나. 어차피 너는 지금 당장도 굳이 잠룡관에 다닐 필요가 없는 입장인데, 뭐 하러 오 년 차, 육 년 차까지 다닐 생각을 하겠어?”

“제가 사 년 차까지만 다니고 졸업할 경우에 아쉬워지는 건 단 하납니다. 잠룡관에 있으면 교관님을 가까이서 이 년 더 뵐 수 있을 텐데, 그러지를 못한다는 점뿐이죠.”

“풋! 네놈이 오랜만에 기특한 소릴 하는군.”

제갈수광이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가 잠시 기억을 되돌리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물었다.

“그전에 너희들이 여름 합숙을 했던 곳도 포양호의 동쪽 호변이었지?”

“그렇습니다.”

“당시에 그쪽에 가보니 느낌이 좋았나 보지? 독립한 후의 거처를 그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예.”

“그때 너희들이 합숙했던 곳이······ 정가장이라고 했던가?”

“대단한 기억력이십니다.”

내 대꾸에 제갈수광이 피식 웃더니 다시 물었다.

“하면 네가 거처로 생각하고 있는 위치도 그 근처인 건가?”

“그렇습니다.”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음······. 포양호 동쪽 호변의 정가장 근처라······.”

뭔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기에 곧바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여 그쪽에 교관님의 지인이라도 거주 중이십니까? 아니면 교관님이 원래 알던 동네라거나?”

“아니. 실은 나도 슬슬 거처를 구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네가 말한 위치도 한번 생각해 보려는 거지.”

“예에? 아니, 교관님은 어차피 잠룡관의 교관 숙소에서 지내시니 따로 거처가 필요하지는 않으실······.”

거기까지 말하던 중에 뇌리에 번쩍하며 떠오른 게 있었다.

“설마······ 윤 교관님 쪽에서 압박이 들어온 겁니까?”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우······.”

“그러니까 교관님이 말씀하시는 거처라는 건 신혼집······.”

“후우우우······, 그런 셈이지.”

“좋은 일인데 왜 그리 계속 한숨을 쉬십니까. 가뜩이나 서로 좋아하는 관계시면서.”

“글쎄.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계속 나오는군.”

차를 한 모금 들이켠 후에 말했다.

“결국 윤 교관님이 이쪽으로 오시게 된 거군요.”

“어. 뭐, 그렇게 된 거지.”

“혼례식은 언제로 계획 중이십니까?”

“혼례식 같은 건 치르지 않기로 했다. 윤 교관도 동의한 부분이고.”

제갈수광다운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같이 사시는 건데요?”

“윤 교관은 아마 올해까지만 일을 하고 퇴직할 거야. 그전까지 내가 신혼집을 구해놓기로 했지.”

“아하.”

대답을 하고 나니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한데 그러면 신혼집이 옥산 근처에 있어야 교관님이 잠룡관에 출퇴근하기도 편하실 것 아닙니까. 잠룡관은 삼청산에 있는데 신혼집이 포양호 쪽에 있으면 며칠에 한 번씩, 쉬는 날에만 댁에 다녀오시게 될 텐데······.”

나는 거기까지 말한 후, 과장되게 눈을 번쩍 뜨며 말을 보탰다.

“헛! 설마 그걸 노리고······! 역시 교관님이십니다!”

“아니야, 이 자식아! 이 자식은 제자라는 놈이 선생을 뭐로 보고!”

제갈수광이 째려보기에 나는 곧바로 눈을 깔아주었다.

“아하하,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아하하······.”

“으휴, 저 웬수 같은 놈.”

잠시 후에 제갈수광이 말했다.

“나도 올해까지만 하고 몇 년간은 휴직할 거라서 그래, 인마.”

그 말에는 진심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갈수광은 교육에 대한 열정도 남다를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매우 훌륭한 교관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몇 년씩이나 휴직하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 여쭤도 됩니까?”

“너도 알겠지만 윤 교관과 내가 서로를 좋아하기는 했어도 함께 보낸 시간은 극도로 적었잖아.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탓에 만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그러니 이왕 함께 살게 된 김에, 한동안은 윤 교관과 시간을 같이 보내주려는 거다.”

제갈수광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차피 윤 교관은 지금도 노산이라면서 아이를 빨리 갖고 싶어 하거든. 하면 둘만의 시간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뿐이지. 가뜩이나 윤 교관은 본인이 살던 터전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동네로 오는 것이니, 초반에는 더욱 같이 있어 주고 싶은 거야.”

“와아! 교관님에게 이렇게까지 낭만적인 면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 자식이 틈만 나면 선생을 놀리려고.”

“놀리는 거 아닙니다.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진심이다.

제갈수광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이후에 아이까지 낳게 되면 나도 제법 오랫동안 육아를 도울 수밖에 없겠지. 최소한 둘은 낳고 싶다는 모양이니 일이 년에 끝날 일도 아닐 거고.”

그래서 수년간 휴직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말했다.

“어쨌든 네 녀석과 이웃사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심심하지도 않을 것이고. 윤 교관도 네 녀석을 매우 아끼니까.”

“교관님과 윤 교관님이 이웃이면 저야말로 너무 좋죠.”

사실은 환호가 나올 것만 같다.

만약 내 주변에 제갈수광이 살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비룡장에다가 거처를 내어주고 싶을 정도다.

내게 있어 제갈수광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고마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능력 또한 어마어마한 사람이다. 어떻게든 모셔 와서 앉혀 놓으면 무조건 도움이 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비룡장 얘기를 벌써부터 꺼낼 일은 아니다.

이웃사촌이 되는 것만으로도 대박이니, 일단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자.

제갈수광과의 대화를 마치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나고 남을 사람들만 남았으니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때다.

정좌하고 앉아서 차분한 마음으로 운기조식을 취했다.

그동안에는 잠깐씩만 운기조식을 취했었다. 항상 주변 사람들과 얽혀 지냈기에 제대로 운기를 취할 만한 상황이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차분한 마음으로 운기조식에 임하고 있기 때문인지 정신이 평안하고 좋다.

평소보다 기운이 부드럽고 경쾌하게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식으로 운기조식이 오 회차에 들어섰을 무렵,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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