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78
운기조식의 경로를 따르며 흐르고 있는 진기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내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전생의 경험을 통해 이 현상이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오랜만에 진득하게 운기조식이나 하자는 마음 정도였는데, 갑자기 이 현상이 시작될 줄이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즉시 정신을 집중했다.
이건 성취가 높아진 천섬무가 자연스럽게 회회심공의 운기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회회심공으로 축기를 할 수 있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통각을 잠력으로 바꿔서 공력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며, 하나는 평범한 운기조식을 통해서 축기하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 축기 효율은 평균 이하다.
따라서 회회심공은 운기조식으로 축기를 할 경우, 다른 특급 내지는 일급 심법에 비해 훨씬 많은 횟수를 운기해야만 비슷한 양을 축기할 수가 있다.
횟수로 밀어붙일 경우의 문제는 시간이다. 이 방식은 시간 대비 효율이 너무 좋지 않다. 아무리 나라도 매일매일, 하루 종일 운기조식만 취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한 번의 운기조식으로 축기할 수 있는 양 자체에는 변함이 없으나, 한 번의 운기조식에 걸리는 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다.
즉,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횟수의 운기조식을 취할 수 있게 되어, 단위 시간당 축기 효율이 증가하게 된다.
회회심공의 약점이었던 운기조식에 의한 축기의 효율도 보완이 되어, 이 부분도 여타의 일류 심법들이 부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절정 이후의 성취 속도에 자신 있어 했던 근거는 여러 가지인데, 이 현상 또한 그 근거 중 하나다.
전생에 이런 현상이 시작되었던 건 절정의 중반에 이르렀을 때쯤이었다.
그즈음에는 사부님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통각을 통한 수련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 덕분에 성취 속도가 계속해서 빠르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생의 나는 아직 절정의 초반 단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이 현상이 시작된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한 번 가본 길을 다시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승의 경지는 깨달음이 중요한데 나는 성취에 비해 깨달음이 앞서 있는 상태다. 그렇기에 성취도에 필요한 다른 부분들에서 최소한의 요건들만 충족되면 즉시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둘째, 근래의 치열했던 전투 경험들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전생의 내 실전 경험은 대부분 흑풍대 시절에 편중되어 있었으며, 당시의 내 경지는 일류였다. 전생에는 절정 이후에 실전을 경험해본 적이 많지 않았으며, 절정 이후에 치열한 실전을 겪을 일은 더더욱 없었다.
한데 이번에는 절정 이후에도 치열한 전투들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도 많았다.
어찌 보면 새로운 영역에서의 값진 경험들이 추가된 셈이라, 이 또한 성취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운기조식의 속도는 오 회차에 비해 육 회차가 더 빨라졌다. 그런 식으로 칠 회차, 팔 회차, 구 회차가 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십 회차부터는 더 이상 속도가 빨라지지 않았다.
십오 회차까지 계속 진행해 봤으나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이게 현재의 내 성취에서 빨라질 수 있는 최대치인 모양이다.
같은 시간을 기준으로 이전에는 운기조식을 세 번 취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네 번쯤을 취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앞으로 내 성취가 증가함에 따라 이 속도도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총 이십 회차까지 운기조식을 취한 후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예상보다 빠르게 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 나도 모르게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점심 식사 후에는 단목세가의 궁술 수련장으로 향했다.
어제 단목강이 전체적으로 단목세가를 안내해 줬었기에 수련장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뭐든 그렇지만 궁술은 특히나 꾸준한 수련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제갈수광의 강조 사항이다.
일정한 감을 계속 유지하는 상태에서 실력을 향상시켜야 차후에도 안정적인 정확도를 낼 수 있다나?
무림맹에서 통용되는 규격의 활을 들고 궁술 수련을 시작했다.
참고로 시위는 굳이 은룡삭으로 교체하지 않았다.
이 또한 제갈수광의 조언 때문이다.
「지금은 네 궁술을 급하게 실전에서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만큼, 차분하게 기본 실력을 상승시키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굳이 그 반투명한 끈을 시위로 사용하기보다는, 표준 규격의 활만 써서 일정한 감을 꾸준히 유지하는 형태로 수련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가뜩이나 그 끈을 시위로 쓰면 위력이 매우 강해지는 만큼 남들의 이목을 끌기가 십상이다. 급할 것도 없는데 굳이 그런 부담을 안고 수련할 필요는 없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조언이었다.
일반적인 활로도 명궁수인 제갈수광은 은룡삭을 시위로 쓰는 시점에 더 무서운 명궁수가 됐다. 기본 실력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동안 정자세에서 쏘며 거리를 늘려가는 형태의 수련을 했고, 그 후에는 움직이며 쏘는 수련을 이어갔다.
신시 정(오후 4시) 남짓 된 듯하여 궁술 수련을 정리하고 내 거처가 있는 접객당 쪽으로 향했다.
적당한 속도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내원 쪽에서 나란히 걸어 나오고 있는 단목강과 단목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송 공자!”
“송 공자니임!”
남매가 나를 부르며 빠르게 다가왔다.
금세 내 앞에 다다른 단목강이 물었다.
“궁술 수련장에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수련 끝내고 이제 돌아가는 길인가 보구려.”
“그렇습니다.”
“수련하기에 시설이 불편하거나 하진 않았소?”
“불편하기는요. 아주 좋던데요.”
내가 대꾸하자 이번에는 단목지가 말했다.
“이곳에 오래 머무실 거라고 들었어요. 송 공자님뿐만 아니라 제갈 교관님과 길 공자님도.”
“하하, 그렇소. 염치는 없지만 신세 좀 지려고 하오.”
“신세라뇨. 저희 세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영이죠.”
단목지의 말에 단목강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빙그레 웃어 보인 후 단목강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어디 가는 길이십니까?”
“아, 이 아이가 수련을 좀 도와달라기에 실내 연무장에 가는 길이오.”
“그렇군요.”
“이왕 이렇게 마주쳤으니 송 공자도 같이 갑시다. 송 공자는 무학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으니, 그냥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다가 의견 정도만 말해줘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소.”
“예? 그래도 두 분이 수련하면 단목세가의 가전 무공이 난무할 텐데 저 같은 외인이 어찌······.”
“송 공자와 내가 손발을 맞추며 싸운 전투가 어디 한두 번이오? 어차피 그동안 내가 무공 펼칠 때 우리 가전 무공을 많이 봤을 것 아니오.”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송 공자가 그리 내키지 않는 표정이라서 하는 말인데, 작년 여름 합숙 때 나도 송 소저의 수련을 많이 도와줬었다는 거, 잊지는 않았으리라 믿소. 하하.”
그, 그것도 그렇지.
단목강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목지가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어? 그러면 송 공자님이 빚 갚으셔야겠네요.”
하여튼 빚 얘기 좋아한다니까.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과 같이 걸음을 옮겼다.
내가 누구들처럼 대놓고 빈대 붙기 위해 머무르는 것도 아니니, 이런 기회에 밥값 정도는 하자.
실내 연무장은 상당히 커다란 석조 건물이었다.
들어와서 보니 천장은 충분히 높고 공간 자체도 상당히 넓었다.
나는 구석 쪽의 의자에 앉았고, 단목강과 단목지는 진검을 뽑아 든 채로 연무장의 중앙에 섰다.
비무 형식의 수련인 모양이다.
단목강은 기동타격조 활동을 통해 성취가 크게 상승했으며 실전 실력도 엄청나게 늘었다. 그런 만큼 단목지에게도 단목강과의 비무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곧 두 사람이 맹렬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챙! 챙! 채쟁! 캉! 카가강! 퍼엉!
단목지는 공격 위주로, 단목강은 방어 위주로 임하고 있다.
나는 천섬무를 통해 어느 정도 안법을 활성화시킨 채로 비무를 지켜보았다. 이왕 도와주기 위해 따라온 만큼, 제대로 봐놓기 위해서였다.
오누이 간의 비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치열했는데, 공격하는 쪽의 단목지부터가 실전처럼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단목강 또한 최대한 진지하게 누이의 공격을 받아주는 중이다.
자고로 연습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하는 법이다.
둘 다 아주 훌륭한 자세라 하겠다.
두 사람의 비무는 일각 남짓 계속되다가 끝났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단목지의 숨소리다.
그녀는 호흡이 매우 거칠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땀도 많이 흘리고 있다.
비무가 펼쳐졌던 일각 내내, 단목지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임하는 모습이었다. 한정된 그 비무 시간 내에 모든 걸 다 해보겠다는 각오가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단목강의 경우에는 호흡이 약간 거칠어진 수준이었다.
그는 조용히 호흡을 고르고 있는데, 땀조차 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조장님.”
나는 단목강을 부름과 동시에 옆에 놔뒀던 커다란 죽통을 던져줬다. 물이 담겨 있는 죽통이다.
“고맙소.”
곧 단목강이 죽통의 마개를 열더니 단목지에게 먼저 건넸다.
누이부터 챙기는 모습이 참 다정해 보인다.
호흡을 고르던 단목지가 물을 서너 모금 마시고 나자 단목강이 그 후에야 죽통을 받아서 물을 두어 모금 마셨다.
단목지가 어느 정도 호흡을 고른 후에 말했다.
“와아! 오라버니, 그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 같아요! 그전에는 이런 식으로 비무하면 한 번쯤은 오라버니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었는데, 방금 전에는 무슨 철벽에 대고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어요.”
단목지의 어조에는 놀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실력이 강제로라도 늘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니까.”
단목강이 빙그레 웃으며 그렇게 대꾸하더니 내 쪽을 한 차례 바라봤다.
나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여줬다.
단목지의 입장에서는 철벽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목강과 추소륵은 잠룡관도임에도 불구하고 기동타격조에서 어른들과 함께 진형의 전열을 맡았었다.
전열은 적측의 전열과 직접 맞서는 위치이기도 하지만 적측 후열의 원거리 공격에도 항시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위치다. 후열은 전열을 믿고 틈틈이 여유를 챙길 수 있으나 전열은 그럴 수가 없다. 집중력을 조금만 잃어도, 반응이 조금만 늦어도 크게 위험해지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단목강과 추소륵은 그런 위치에서 싸웠다. 사파의 수많은 절정고수들을 상대하면서도 어떻게든 전열을 지켰던 게 그 두 사람이다.
그랬던 단목강을 상대로 단목지 수준에서 어떻게 틈을 만들겠는가.
이후에 단목강과 단목지가 방금 전의 비무를 천천히 복기하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단목지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단목강이 대꾸해주는 식이었다.
그러던 중에 밖에서 인기척이 있더니 무인 한 명이 연무장 안으로 들어섰다.
“소가주님, 총관님께서 찾으십니다.”
“아, 그래요? 바로 갈게요.”
무인이 실내 연무장을 벗어났다.
아직 초반부의 비무 상황에 대해 복기 중이었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단목강이 가봐야 하는 모양이다.
수련도 이걸로 끝일 테니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단목강이 내게 말했다.
“아, 송 공자, 내가 지금 좀 가봐야 할 것 같으니 송 공자가 이 아이의 수련을 좀 도와주시오. 부탁드리오.”
“예? 제, 제가 말입니까?”
“내가 이 아이와 비무를 두 번 해주기로 약속하고 왔는데 한 번밖에 못 해줬잖소. 그러니 나머지 한 번은 송 공자가 좀 해주시오. 어차피 송 공자의 수준에서 이 아이와 비무한다고 힘들거나 그럴 일도 없잖소. 땀 한 방울 안 날 텐데.”
“아니, 그래도······.”
내가 살짝 부담스러워하듯 반응하자 단목강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작년 여름 합숙 때 얘기를 또 할 수밖에 없는데, 당시에 송 공자도 바쁘다며 나와 송 소저만 남겨놓고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곤 했잖소.”
그러기는 했었다. 당시에 정가장 쪽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제법 많았던 탓이었다.
단목강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소.”
단목강이 그 말을 남기더니 바로 실내 연무장을 벗어났다.
단목강이 사라진 문 쪽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단목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하하······.”
내가 어색한 웃음을 보이자 단목지가 말했다.
“오라버니가 다소 억지로 부탁을 드린 것 같아서 송구한 마음이에요. 그럼에도 염치 불고하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송 공자님과 비무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눈동자는 또렷했고 목소리는 진지했다.
진심으로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또 이런 태도는 참 좋아하지.
내가 송유하를 열심히 가르쳤던 것도 그 아이의 태도 때문이었으니까.
미미한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단목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씀드렸듯 무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진지하게 임할 것이나,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는 약간 걱정돼요. 방금 전에 오라버니랑 비무하는 와중에 땀이 많이 나서······. 괜히 송 공자님하고 비무할 때 땀 냄새 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을 하는 내내 약간의 민망함이 담긴 미소를 지은 채 계속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후······. 이건 좀 많이 귀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