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79
단목지를 향해 편안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그리 염려되시면 옷 갈아입으러 다녀오셔도 되오. 하하. 다른 분도 아니고 단목 소저신데, 당연히 기다려드릴 수 있소. 다만.”
“다만?”
“나도 아까 궁술 수련 할 때 움직이며 쏘는 연습을 오래 했소. 체력 단련도 할 겸 격렬하게 움직이며 쐈던지라 땀도 매우 많이 났었소. 그러니 우리가 비무를 펼치는 와중에 땀 냄새가 난다면 그건 아마도 다 내 땀 냄새일 것이오.”
단목지가 의미를 알아듣고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송 공자님을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는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슬슬 시작할까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뒤로 물러서서 비룡검을 뽑았다.
단목지가 마음껏 검을 휘두르게 하려면 나도 검을 뽑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뽑은 것이다.
“모쪼록 잘 부탁드리겠소. 준비되시면 언제든 오시오.”
단목지는 역시나 실전을 펼치듯 필사적으로 달려들었고, 나는 첫 비무인 만큼 정석적인 방식으로 그녀의 검을 받아줬다.
이렇듯 직접 마주하면서 보니 그녀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임하고 있는지가 더 잘 느껴진다.
단목지의 검을 받아주다가 문득 떠오른 사실인데, 내가 단목세가의 검술을 직접 맞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단목강과도 비무를 펼쳐본 적이 없었다.
내가 비무를 즐기는 성격이 아님을 알고 단목강이 눈치껏 비무를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직접 상대해 보니, 단목세가의 검술은 검로가 유려하게 흐르는 와중에도 그 안에 중후한 힘이 담겨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단목지와 단목홍신이 왜 물속에서 수련을 하는 건지 충분히 이해도 되었다.
우리의 비무는 일다경 가까이 지속되다가 끝났다.
사실은 좀 더 일찍 끝내고 싶었다.
일각이 되기 직전부터 단목지의 호흡이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단목지가 완전히 몰입한 상태에서 신나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니 끊을 수가 없었다. 단목강을 상대할 때보다 훨씬 더 몰입해 있는 느낌이라, 차마 끊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비무를 마친 단목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이다. 그 와중에도 나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감탄의 빛이 가득했다.
나는 그녀가 호흡을 고르는 동안 구석에 놔뒀던 죽통을 들고 와서 말없이 건넸다.
물을 마시며 어느 정도 호흡을 고른 단목지가 놀람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와아! 이렇게 신나게 검을 휘둘러본 게 얼마만의 일인지 모르겠어요!”
아닌 게 아니라 눈빛에서 환희마저 느껴지고 있다.
내가 빙그레 미소를 보이자 단목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비무를 하는 내내 신기했어요. 틈이 있는 것 같아서 공격하는데 어느샌가 모조리 막히고 있고, 그럼에도 공격이 통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드니까 더 신나게 휘두르게 되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숨이 막힐 것처럼 차오르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이렇게 푹 빠져 있었네요.”
일부러 내가 그렇게 유도했다.
내가 직접 상대하면서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휴식 후, 단목지와 함께 비무를 처음부터 복기하기 시작했다.
“방금 얘기한 부분에서 소저가 어떤 초식에 기반을 두고 검을 휘둘렀는지가 궁금하오. 소저가 해당 초식의 해당 부분을 한 번 시전해 주시면 내 입장에서도 원인을 파악하기가 여러모로 더 수월해질 것 같소.”
내 말에 단목지가 잠시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단목강이 단목세가의 검법을 펼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하긴 했으나 이건 경우가 좀 다르다.
가전 무공의 초식을 대놓고 보여 달라는 주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입장에서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윽고 단목지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세가 안에서, 이렇게 대놓고 당당하게 우리 세가의 검법 초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분은, 아마 과거에도 없었을 것이고 미래에도 다시없을 거예요.”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단목지는 순순히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자세를 잡았다. 그러더니 초식의 한 부분으로 보이는 동작들을 펼쳐 보였다.
이후의 복기를 이어가는 와중에도 나는 필요한 부분마다 그녀에게 초식 시전을 요구했다.
내 의견은 복기가 끝난 후에 정리해주기로 한 채, 일단은 내가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해 언급하고 초식 시전을 요구하기를 반복했다.
전체적인 복기를 마친 후 단목지에게 말했다.
“역시나 단목세가의 검법이 빼어나다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소. 단목 소저의 검술 또한 매우 훌륭했소.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는데, 내가 하는 얘기들은 오로지 참고 용도로만 들으시오.”
“알겠어요.”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근래 단목세가의 혈통을 이어받았던 여인들 중에서 절정의 후반에 도달한 고수가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았소?”
내 물음에 단목지의 눈동자가 커졌다.
“어, 어떻게 그걸······!”
역시나 내 추론이 맞는 모양이다.
“그 여성분들도 소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련하며 검법을 익혔을 테니 그럴 가능성이 높겠다고 추측한 것이오.”
여전히 놀란 표정의 그녀를 향해 바로 말을 이었다.
“나는 조장님이 실전에서 검술을 펼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했소. 그러면서 느꼈던 단목세가의 검술은 전체적으로 웅장하며 남성적이었소. 한데 내가 보니 소저의 검술도 조장님의 검술과 너무 가감 없이 똑같았소. 그렇지 않아도 남성적인 성향의 검법을, 여인이, 남성적인 방식으로 구사하고 있는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된 위력을 내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단목지의 눈동자가 조금 더 커졌다.
표정을 보니 이런 식의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 모양이다.
“소저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하지 않소? 아무리 여인들이라도 단목세가의 혈통인 만큼 무재가 빼어났던 분들도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들 쪽의 성취가 남자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너무 못 미친다는 사실이?”
“하면 그게 방금 전에 송 공자님께서 언급한 이유 때문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마도 그럴 것이오. 당연한 얘기지만 남자와 여자의 신체는 다르오. 같은 동작이라도 남자 쪽이 더 쉽게 구현할 수 있는 동작이 따로 있고, 여자 쪽이 더 쉽게 구현할 수 있는 동작이 따로 있소. 그리고 얼마나 더 쉽게 구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얼마나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오.”
나는 그렇게 말한 후 비룡검을 들고 초식 한 동작을 약간 느린 속도로 펼쳐 보였다.
아까 복기할 때 단목지가 처음에 시전했던 초식이었다.
그때의 초식을 그대로 펼쳐 보이자 단목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한 번 보고도 완벽하게 펼쳐낸 상황이니 저런 반응일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가 중요하오. 잘 보시오.”
내 말에 단목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 나는 방금 전에 펼쳤던 초식의 일부분을 약간만 변형시켜서 다시 펼쳤다. 물론 이번에도 약간 느린 속도였다.
시전을 마친 후에 물었다.
“소저가 보기에 뭐가 달라진 것 같소?”
“음······, 전체적으로 검을 회수하는 시점들이 미세하게 조금씩 더 빨라진 것 같았어요.”
“잘 보셨소. 사실, 초반의 비무 상황에서 내가 소저의 검을 상대해 보니, 전체적으로 검을 약간씩 더 누르는 느낌이었소. 억지로 힘을 조금씩 더 가하려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로 인해 검을 회수하는 시점도 전체적으로 딱 그만큼씩만 미세하게 늦고 있더구려.”
“당시에 제 검이 회수되는 시점이 모두 미세하게 늦었다구요?”
놀라며 되묻는 걸 보니 역시나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소. 전체적으로 그러한 모습이었던 걸로 보아, 오랜 세월 굳어진 습관임을 알 것 같았소. 그래서 습관을 확인하기 위해서 관련된 초식을 시전해달라고 부탁드렸던 것이오.”
“아······. 그런 이유로······.”
“방금 펼쳤던 초식의 그 부분은 특성상 애초에 남자의 근력에 맞춰서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소. 한데 그걸 여인인 소저가 똑같이 따라 하려니 검을 내밀 때마다 조금 더 누르는 식으로 힘을 주게 된 것이오. 그로 인해 검을 회수하는 시점도 전체적으로 밀리게 된 것이고.”
“하면 송 공자님이 나중에 변형시켜서 펼친 초식이 여인에게 적합할 거라는 뜻이겠지요?”
“그 앞뒤 부분까지 확인을 해봐야 더 정확해지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오.”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단목지가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변형시켰던 초식이다.
초식 시전을 마친 단목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한번 변형된 초식을 펼쳤다. 이번에는 해당 부분 이후의 동작까지 연결시켜 보는 모습이었다.
내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가운데, 이후에도 그녀는 그 방식으로 세 차례 더 초식을 펼쳤다. 초식 시전을 한 차례씩 마칠 때마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단목지가 초식 시전을 멈추더니 말했다.
“확실히 검을 회수하는 시점이 더 빨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게다가 방금 제가 펼쳤던 부분은 원래 몇 차례 펼치면 손목에 무리가 가는 느낌을 받곤 했던 부분이었어요. 한데 방금 전에는 몇 번을 연속으로 펼쳤는데도 손목에 전혀 무리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여기까지는 매우 만족스러운데······.”
“만족스러운데?”
“뻗어내는 검에 담긴 위력이 약해진 게 조금······.”
“굳이 그 부분에서 검에 담긴 힘을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오히려 힘보다는 간결함과 예리함이 더 큰 무기가 될 때도 많소. 가뜩이나 단목세가의 검술에는 기본적으로 웅장함이 담겨 있잖소. 위력을 낼 수 있는 초식들은 이후에 펼쳤던 여러 개의 초식들 중에도 많았으니 그쪽을 살려도 되오.”
단목지가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에 얼른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아까도 말씀드렸듯 이건 내 의견일 뿐이오. 감히 단목세가의 검술에 대해 평가하며 왈가왈부하려는 목적이 아니니, 이런 의견도 있구나 하는 선에서만 참고하셨으면 좋겠소.”
“참고용일 뿐이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초식들에 대한 의견들도 여쭤볼 수 있겠군요.”
말만 가벼운 마음이라는 식으로 할 뿐, 그녀의 눈동자에는 흥미가 가득했다.
결국 나는 복기 과정에서 단목지가 시전했던 초식들을 차례로 변형하여 그녀에게 선보여야 했다.
물론 여인의 신체에 맞게 약간씩만 변형시켰다. 너무 많이 변형시켜버리면 단목세가의 검법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매력을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변형시킨 초식을 선보일 때마다 단목지는 그것들을 최소 네댓 차례씩은 반복하며 직접 펼쳐보곤 했다.
그런 과정들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단목지는 점점 더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여인의 신체에 특화된 자연스러움을 우선시하여 초식을 변형시켰는데, 그 자연스러움을 토대로 어떤 부분은 기존보다 위력이 더 강해지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속도가 더 빨라지기도 했다.
약간 변화된 정도로도 그러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는 만큼, 단목지의 입장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내가 변형시킨 방식은 자연스러운 만큼 움직임에 무리가 되는 부분도 거의 없다. 단목지는 그 부분도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모든 과정을 마무리했을 때쯤, 단목지의 시선에서 경외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