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안에 마교있다-180화 (180/416)

내 안에 마교있다 180

단목지는 진심으로 감탄하는 중이었다.

단지, 한 번의 비무와 그에 대한 복기였을 뿐이다.

한데 송유겸은 그것만 가지고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분석하여 원인을 파악해냈고, 나아가서는 대안까지 제시했다.

대안도 그냥 대안이 아니었다.

송유겸이 초식을 약간씩 변형시키며 제시해준 대안은 거의 해결책에 가까운 대안이었다.

변형된 초식들을 직접 몇 차례씩 펼쳐보며 기존의 방식과 비교해 봤기에 그 대단함을 알고 있다.

‘세상에, 잠룡관도 수준에서 이런 게 가능하단 말이야?’

송유겸이 남다른 사람임을 진즉에 알아봤었다.

그리고 송유겸은 실제로도 스스로의 대단함을 만인 앞에 증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송유겸은 지금껏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일 수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든다.

송유겸에게 말했다.

“지금껏 가문의 초식을 조금이라도 바꿔서 펼쳐볼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나 오라버니도 그런 생각은 안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초식을 약간씩만 변형시켰을 뿐인데도, 가전 무공이 여인인 제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하하, 소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 수 있는 건지, 정말 놀랍고 신기할 뿐이에요. 대체 무학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가 얼마나 높아야 이런 게 가능해지는 거예요?”

송유겸은 대답하지 않은 채, 미소 띤 얼굴로 자신의 시선을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

당사자인 송유겸은 모를 것이다.

저런 미소를 지은 채로 가만히 바라볼 때마다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긴장되는지를. 저 미소와 저 표정이 여인을 상대로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를.

“송 공자님처럼 되기는 어렵겠지만······ 저도 무인의 입장이다 보니 무학에 대한 이해도는 조금이라도 더 높이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도 해서······.”

긴장감을 감추려 내뱉은 말이었다.

그제야 송유겸의 입이 열렸다.

“무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한다면, 우선적으로 의심하는 자세가 중요하오.”

“의심······?”

“그렇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무공이나 무학 이론들에 대해서 의심해 보는 것이오. 완벽한 무공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면 제 경우에는 설령 가전 무공이라 할지라도 의심해 보라는 말씀이군요? 그래야만 송 공자님이 했던 것처럼 같은 초식이라도 유연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겠구요.”

“그렇소.”

그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전 무공조차 의심해 보라는 말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얘기하다니.

송유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왕 초식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초식이라는 것도 일종의 기준이오. 기준이 물론 중요하나, 그게 모든 여건에서 절대적인 가치일 수는 없소. 무공은 인간이 펼치는 것이며, 인간은 규격화될 수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오.”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가 말했다.

“어설프게 뜯어고치라는 이야기가 아니오. 기준의 맥락과 연장선에서, 본인에게 조금 더 맞는 형태로 약간씩 변형을 가미하면, 그게 의외로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오. 한데 많은 이들이 초식을 변형하는 일을 선조에 대한 불효나 사문에 대한 불충으로 여기오. 애초에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의심을 아예 하지 않기에 유연한 접근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소.”

“아······.”

“생각해 보시오. 지금 소저가 익히고 있는 무공도 단목세가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선조들에 의해 수정, 보완한 형태일 것이오. 한데 그분들이 초식 변형을 불효로 여겼다면 단목세가의 가전 무공이 더 나은 형태로 발전해올 수 있었겠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송유겸이 빙그레 웃으며 정리하듯 말했다.

“무학에 대한 이해도 또한 방금 했던 이야기들의 연장선이오. 많은 무공서를 섭렵하는 것만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왕도는 아니오. 완벽한 무공은 없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내가 알고 있는 무학들에 대해 의심해 보는 태도, 유연하게 사고하며 발상을 전환하려는 태도 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그런 자세로 무학 서적들을 섭렵할 때에야 이해도도 훨씬 더 올라가는 것이고.”

송유겸이 그 말을 끝으로 말을 마쳤다.

많은 부분에서 생각할 거리들을 만들어주는 내용들이라, 한동안 그 내용들을 되새겨야 했다.

특히, 완벽한 무공은 없다는 저 말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오늘 송 공자님과 이런 시간을 갖고 나니 시야가 확 넓어진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인지 지금껏 제가 봤던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가전 무공을, 그리고 제 무공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울러 송 공자님이 변형시킨 형태의 초식들을 최대한 수련에 반영해 볼까 해요. 여러모로 감사해요, 송 공자님.”

“하하, 거듭 말씀드리지만 내가 변형시킨 방식의 초식들도 정답일 수는 없소. 참고만 하시고, 절대 이 방식이 더 낫다는 식으로 가주님이나 조장님에게 말씀하지는 마시오. 나는 가전 무공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쫓겨나고 싶지도 않고, 이 일로 가주님이나 조장님에게 미움받고 싶지도 않소.”

그가 약간의 농담조를 섞어서 과장되게 말했다.

그런 그에게 대꾸했다.

“제가 볼 땐 왠지, 여인에게 맞게 변형된 초식을 보면 아버지나 오라버니가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어쨌든 혹시라도 그 두 분에게 선보이시려거든 내가 일러줬다고는 하지 마시오. 하하.”

“후훗. 알겠어요.”

이윽고 송유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련이 끝난 만큼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돌아가려는 거다.

너무나도 아쉽다.

그와 단둘이 보내는 이 즐겁고 설렘 가득한 시간이 끝나고 있기에 이렇듯 아쉬운 거겠지.

수련을 또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가 부담스러워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 욕심내지 말자. 조금씩. 천천히.’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 실내 수련장의 문을 향해 걸으며, 속으로 계속 그 말을 되뇌었다.

그러던 중에 앞서서 걷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소저가 불편하지만 않다면 이곳에 있는 동안 종종 비무 요청해 주셔도 좋소. 매일은 어려워도 이틀에 한 번씩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세상에, 그가 먼저 저런 말을 해줄 줄이야.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에 반할 것만 같다.

정신 차리자. 표정 관리하자.

“저야 감사하기 이를 데 없죠.”

* * *

수련에 열중하는 평범한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운기조식을 오래 취하는 것조차 재미있는 나날들이었다. 운기조식의 속도가 빨라진 덕분이다.

내 수련을 열심히 하는 와중에도 약속대로 실내 수련장에서 단목지의 수련을 도와주곤 했다.

이왕 하는 거, 열심히 도와줬다.

단목지는 계반인 내게 처음부터 편견 없이 공손하게 대해준 사람이었다. 게다가 가족 모임 때도 내 입장을 생각해서 일부러 와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그녀에게 매우 우호적이다.

가뜩이나 단목지는 미인이며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다.

내 입장에서도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내가 단목세가에 온 지 여드레째 되던 날.

새벽에 일어나서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는데, 세가 전체가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궁금해서 밖으로 나와 보니 접객당을 관리하는 인원들도 벌써부터 일어나서 마당에 모여 있었다.

“아, 송 공자님. 일어나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한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세가가 새벽부터 살짝 분주한 느낌이라서······.”

“아! 그게, 마님께서 방금 득녀를 하신 모양이라서요.”

“헛!”

예상하고 있었던 날짜보다는 이삼일 빠른 출산이다.

득녀라고 했으니 여아인 모양이다.

단목강에게 또 한 명의 여동생이 생긴 것이다.

“순산이었답니다.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답니다.”

“오! 잘됐습니다.”

일꾼들도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당장 내원으로 달려가서 축하해 줄 계제는 아니기에 다시 돌아와서 운기조식을 취했다.

이후에 식사 시간에 맞춰서 식당으로 향하니, 식전에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있는 제갈수광과 길초량과 단목강의 모습이 보였다.

얼른 탁자 쪽으로 다가가며 단목강에게 말했다.

“오! 조장님, 얘기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하하, 송 공자. 고맙소. 어서 와서 앉으시오. 나도 방금 왔소.”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소. 다행히.”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길초량이 단목강에게 물었다.

“아기 얼굴은 보셨습니까?”

“하하, 나도 아직 못 봤소.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로는 예쁘다고들 하시던데.”

“암요. 예쁘겠지요. 조장님 가족의 용모를 보면 뭐······. 그래서 아기의 이름은 어찌 됩니까?”

“외자로 ‘연’이오.”

“연. 단목연. 좋은 이름이군요.”

길초량이 대꾸했고 제갈수광과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외인인 우리는 나중에 축하드리러 갈 터이니, 어머님께는 모쪼록 몸조리 잘하시라고 전해드리도록.”

“알겠습니다.”

단목강도 소식을 전하러 잠깐 와 본 모양이라, 곧 일어서더니 돌아갔다.

* * *

며칠 후에는 우리도 산모와 아이를 보러 갈 수 있었다.

“가주 부인, 고생 많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제갈수광이 대표로 인사한 후, 길초량과 나도 동시에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교문혜가 대꾸했다.

“감사해요, 교관님. 길 공자와 송 공자도 고마워요. 노산임에도 이렇듯 순산한 걸 보면, 교관님과 두 분 공자가 세가에 함께 있어 주셨던 게 복이 되었나 봐요.”

산후조리가 잘되고 있는지 교문혜는 건강해 보였다.

그 후, 우리의 시선은 일제히 단목지 쪽으로 향했다.

단목지가 교문혜의 옆에서 아기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수광이 먼저 아기 쪽으로 상체를 가까이 옮겼다. 참고로 그는 이 순간을 위해 어젯밤에 술을 참기까지 했다.

단목지가 양팔의 아기를 살짝 앞으로 내밀자 제갈수광이 아기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아이구, 네가 연이구나! 우르르, 까꿍! 아이구, 예쁘다아. 아이구, 귀엽다아.”

사무적인 표정과 어조로 대표되는 사람인데 의외로 저런 말도 어색하지 않게 잘하네.

이후에는 나와 길초량도 아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보자기에 싸여 있는 아기는 눈동자가 초롱초롱한 것이 여간 예쁜 게 아니었다.

이목구비가 단목지와도 많이 닮아서, 단목지가 어렸을 때 이런 비슷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 튀기는 치열한 전장에서 살았는데, 이렇듯 예쁜 아기를 보고 나니 정신이 정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갈수광이 단목진과 차를 마시러 간다기에, 길초량과 둘이서 접객당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기도 정말 예뻤지만, 아기를 안고 있는 단목지 소저도 참 예쁘더구려.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참 여성스럽고, 마치 엄마인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였소.]

내가 느낀 바도 같았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길초량의 전음이 이어졌다.

[그 정도면 당장 시집가도 될 것 같았소. 그런 의미에서 송 형도 마음의 준비를······.]

고개를 홱 돌려서 바라보니 길초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

[거,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오.]

[이상한 소리라니요? 내가 가만히 보니 두 분이 아주 가깝게 지내시기에 하는 소리잖소.]

이 자식이 그걸 또 알아챈 모양이다.

길초량이 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보니 단목 소저도 분명히 송 형에게 마음이 있고, 송 형도 단목 소저를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소.]

[넘겨짚으시기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송 형의 표정이나 눈빛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오. 송 형 주변에 미인이 좀 많소? 한데 유독 단목 소저를 볼 때의 느낌만 각별하단 말이오. 요즘은 더더욱 그렇고.]

짜식이 하여간 쓸데없이 눈치는 빠르다니까.

[단목 소저와 내가 친한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쓸데없이 앞서가지는 마시오. 내가 할 일 많은 사람이라, 연애나 결혼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상황이오.]

[하핫. 알겠소. 뭐, 나도 송 형이랑 둘이서만 하는 얘기로 재미 삼아 꺼내 본 말에 불과하오.]

이 자식이 가면 갈수록 능구렁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후에도 단목세가에서의 시간은 유유하게 흘러, 잠룡관으로 복귀해야 할 시점이 점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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