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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82화 (182/416)

내 안에 마교있다 182

삼월 초이튿날 미시 정(오후 2시)이 약간 지났을 무렵, 우리는 잠룡관의 정문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내가 기동타격조로 차출되어 잠룡관을 떠났던 게 작년 시월 마지막 날의 일이었다. 그러니 꼬박 네 달간 잠룡관을 비웠다가 다시 돌아온 셈이다.

감회가 새롭다.

정문에서 이어지는 대로를 걷다가 갈림길에서 제갈수광, 단목강, 단목지와 헤어졌다.

제갈수광은 우리의 복귀를 보고하기 위해 본관으로 갔고, 단목강과 단목지는 최상위반 관도들의 거주 구역으로 간 것이다.

나와 길초량은 계반 거주 구역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길초량이 말했다.

“오랜만이라 약간 낯선 느낌도 있긴 한데, 그래도 잠룡관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편해지는구려.”

나도 공감하는 바이기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걷고 있는데 저 멀리로 익숙한 얼굴들이 마주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길초량도 그들을 발견하고는 내게 말했다.

“어? 저 공자들은 송유상 공자의 친구들인 왕여일, 구자춘, 양사걸 공자들이구려. 오늘은 송유상 공자는 없네.”

송유겸의 몸으로 깨어났던 내가 처음으로 거처를 벗어났던 날, 송유상과 마주쳤을 때 함께 있었던 놈들이 바로 저놈들이었다. 당시에 길초량과 나를 대놓고 무시했던 놈들이다.

곧 세 놈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길초량과 나는 길의 한복판을 걷고 있는데, 놈들이 우리를 알아보고는 알아서 주춤주춤 옆으로 길을 비켜주고 있다.

기동타격조에 차출되었던 우리의 소문을 알고 있으니 저러는 것이다.

길초량이 멈춰 서서 놈들을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어이구! 이게 누구시오! 왕 공자, 구 공자, 양 공자! 안녕들 하시오오! 오랜만이오오!”

놈들이 눈을 깔고는 길초량의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기, 길 공자······.”

“아, 안녕하시오······.”

그 와중에도 한 놈은 아예 입조차 열지 못했다. 그놈은 처음부터 길초량보다는 내 눈치를 더 살피고 있다.

왕여일이다.

동부지맹 잠룡대전 당시, 청선곡 주최의 비무대회에서 놈을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놈의 사타구니를 시원하게 응징해주기도 했었다.

왕여일을 향해 씩 웃으며 인사 한마디를 건네줬다.

“오랜만이오, 왕 공자?”

“아, 아, 안녕하시오······.”

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대꾸했던 놈이 곧바로 다시 눈을 깔았다.

그러자 길초량이 세 놈을 향해 말했다.

“하하!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닌데 뭘 그렇게들 어려워하시오? 하하, 나요, 나! 계반의 전설 길초량! 여기 있는 송 형과 함께 이 잠룡관에서 가장 속 편한 두 사람 중의 한 명!”

길초량의 말에 세 놈이 움찔했다.

과거에 세 놈이 길초량을 조롱하기 위해 했던 말들을 방금 길초량이 그대로 다시 읊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길초량 저 자식도 가만 보면 사악한 구석이 있어.

길초량이 세 놈에게 다가가더니 친근한 척 놈들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같은 잠룡관의 교우들끼리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편하게들 지냅시다. 편하게들. 편하게들.”

길초량은 한 놈을 토닥거릴 때마다 ‘편하게들’이라는 말을 친절하게 한 번씩 붙여주는 모습이었다.

당연하지만 저건 앞으로도 절대로 편하게 지내지 말자는 의미와 같다.

저 자식도 은근히 사람 잘 갈구네.

흉악한 신룡대 자식 같으니.

금방 세 놈과 헤어진 우리는 더 즐거운 발걸음으로 계반 거주 구역을 향해 걸었다.

멀리로 계반 거주 구역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쯤 길초량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라? 뭔가 우리 계반 거주 구역이 좀······ 확장된 것 같지 않소?”

내가 봐도 그랬다. 계반 거주 구역이 전체적으로 횡으로 늘어나 있었다.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거처의 각 열마다 몇 채씩을 추가로 지은 것이다.

“아니, 내 거처는 원래 맨 끝에 있어서 한가하고 좋았는데, 이러면 더 이상 끝 집이 아닌 건데······.”

길초량 놈이 낭패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더니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이게 다 송 형 때문이잖소! 송 형이 괜히 계반 출신으로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을 차지해버리는 바람에 신입 관도들이 이쪽으로 몰린 거잖소! 에잇!”

이에 나는 안타까움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꾸했다.

“허어! 길 형도 변했구려.”

“벼, 변하다니요?”

길초량이 빠르게 되물었다.

원래 이런 식의 변했다는 말이 사람을 괜히 신경 쓰이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 놈도 저렇듯 바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길 형은 계반의 터줏대감으로서, 작년만 해도 병아리 같은 계반의 신입 관도들을 예뻐하며 친절하게 이끌어주셨잖소. 한데 이제 더 많은 신입 관도들이 계반에 들어왔는데도 어여쁘게 여겨줄 생각을 하기보다는 본인의 불편함부터 호소하고 있구려. 쯧, 이제는 뭐, 본신의 실력이 드러난 마당이니 슬슬 본색도 드러내시겠다는 건가?”

“아, 아니, 나는 그저 끝 집에 오 년간이나 적응이 되어 있는 상태라서······. 아닛! 그보다도 내가 뭘 했다고 본색은 무슨 놈의 본색이오! 하여튼 틈만 나면 뭐든 뒤집어씌우시기는. 어휴, 가면 갈수록 상대하기가 버거워지는 느낌이라니까.”

길초량 놈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놈을 향해 씩 웃어주자 놈도 피식 웃어 보였다.

계반 거주 구역에 가까워졌을 때쯤 준비해뒀던 죽립을 꺼내어 썼다.

평범한 색에 챙이 넓은 죽립인데, 단목세가에서의 마지막 날에 단목지가 선물로 준 것이다.

계반 거주 구역에서 얼굴을 대놓고 드러내고 가다가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기느니, 일단은 쓰고서 재빨리 내 거처까지 갈 생각이다.

저 앞의 거주 구역 쪽을 살피던 길초량이 말했다.

“어? 보니까 각 거처마다 울타리가 높아졌구려? 게다가 사립문도 하나씩 다 달렸고.”

딱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사실이었다.

원래 계반의 모든 울타리는 높이가 낮았었다. 내 가슴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걸어가면서도 각 거처들의 마당 안쪽을 훤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한데 지금의 울타리는 내 키보다 높았다. 적어도 한 자 정도는 더 높은 것 같다.

원래는 없었던 사립문도 울타리 높이에 맞춰서 달려 있었다.

길초량이 말했다.

“굳이 안쪽을 보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그냥 걸어 다니는 와중에는 안쪽을 보기가 어렵겠구려.”

“그러게 말이오.”

“드디어 계반에도 사생활 보호라는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구려! 계반도 사람 사는 곳이 된 것이며, 즉, 이제는 계반 관도도 이 잠룡관 안에서 사람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이오! 아아! 이렇게 감격스러울 데가! 아마도 이건 송 형 덕······. 흠! 큼! 크흠!”

이 자식이 나 듣기 좋은 소리 나올까 봐 급하게 말을 끊으며 헛기침을 하고 있다.

“하던 말, 끝까지 하시오.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분이 아닐까 싶소.”

“아니, 제대로 붙여서 다시.”

“그, 그것까지는 싫소.”

“애정이 식었어, 우리 길 형이. 확실히 본신의 실력이 드러난 김에 이제부터는 아예 본색까지 드러내기로······.”

“알았소, 알았소. 송 형 덕분이오. 됐소?”

길초량이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다.

푸흐흐! 짜식이 항상 적당히 굽혀주는 모습이 참 귀엽단 말이야.

거주 구역으로 들어선 후에 몇몇 관도들과 마주쳤지만 딱히 이목을 끌지 않은 채 내 거처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립문 오른쪽에 붙어 있는 명패까지 확실하게 확인한 후에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쓱 훑어보니 마당이 깨끗했다. 최근에 비로 쓸었던 자국이 보인다.

누가 이랬을지는 빤하니 절로 미소가 흘렀다.

곧바로 마루로 가서 행장을 내려놓고는 신발을 벗었다. 그러면서 보니 마루 또한 깨끗했다.

자물쇠를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는데, 손가락으로 바닥을 한 차례 쓸어보니 역시나 먼지가 없다시피 했다.

송유하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행장을 대충 놓고 맨바닥에 일단 한차례 누웠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내 방이라 매우 반가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시만 이러고 있어야겠다.

일각 정도 가만히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행장을 정리했다.

빨래할 옷들을 따로 빼놓고 있을 즈음, 누군가가 사립문을 열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음이 느껴졌다.

사뿐사뿐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 그 기척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송유하였다.

“오라버니······!”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마루 아래에 있는 신발을 통해 내가 돌아왔다는 걸 확신하고 저러는 것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밖에 대고 대꾸했다.

“누이, 왔어?”

내가 대꾸하자마자 발걸음이 급격하게 빨라지는가 싶더니, 내 방의 문도 빠르게 열렸다.

송유하가 문 안으로 얼굴을 먼저 내밀었다.

신발을 벗느라 저러는 건데, 나를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다.

“오라버니!”

“하하. 누이, 잘 있었어?”

내가 웃으며 그렇게 대꾸하자마자 송유하가 몸을 일으키더니 곧바로 내게 달려들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소리만 세 번째 내뱉으며, 송유하가 결국 내 품에 안겼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같은 소리만 네 번째, 다섯 번째다.

이렇게나 내가 그리웠다는 거겠지.

“하하, 그래······.”

그렇게 말하며 슬슬 포옹을 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흑. 흐윽······.”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 운다고? 울기까지 한다고?

결국 나는 포옹을 풀지 못한 채로 한동안 송유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처가 되는구나.

재회의 기쁨으로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운다는 건 알겠는데, 어떤 이유로든 얘가 울면 괜히 나도 감성적으로 변하게 된다.

재회의 기쁨 때문에 운 것인 만큼, 송유하는 오래 울지는 않았다.

이후에 우리는 곧 서탁을 마주한 채로 앉았다.

“눈, 안 부어서 다행이네.”

오래 운 게 아니라서 그렇다.

“죄송해요. 제가 원래 울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하하.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송유하가 아직은 물기가 촉촉한 눈으로 미소를 짓고 있다.

참 예쁘다.

그러고 보니 얘도 처음 봤을 때는 열여섯 살이었는데 지금은 열여덟 살이다. 처음 봤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숙녀가 됐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미모 또한 그전에 비해 더 활짝 피어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정말이지, 저러다가 금방 시집간다고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와중에도 송유하의 기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못 보던 네 달간 이 아이가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누이, 병반 승반, 축하해.”

“감사해요. 실은 오라버니가 떠나기 전에 알려주셨던 것들을 열심히 익힌 것뿐이에요. 지금껏 오라버니가 무공에 대해 해줬던 말씀들도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요. 그랬던 것뿐인데, 제 예상보다 결과가 더 좋았어요.”

자질이 있어. 확실히.

이후에도 송유하의 승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화제가 작년 말의 가족 모임 이야기로 넘어갔다.

송유하를 통해 당시의 이야기들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충분히 연상이 되어 매우 재미있었다. 동난향과 송유백, 송유상의 표정을 직접 못 본 것이 유일하게 아쉬울 뿐이었다.

그 후에는 송유하의 잠룡관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간략하게 들었다.

송유하도 잘 지냈던 모양이라, 이야기를 듣는 내내 흐뭇했다.

본인의 이야기를 마친 송유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처음부터 느끼고는 있었는데······, 오라버니, 왠지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아요.”

“하하, 그래?”

“네. 분명히 제가 아는 오라버니 그대로이기는 한데, 뭐라고 할까, 훨씬 더 커 보인다고 할까······. 그러니까 이게 오라버니가 신체가 커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송유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얘가 왜 저런 얘기를 하는지는 대강 예상이 간다.

그때쯤, 밖에서 사립문을 통과하여 빠르게 다가오는 두 개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맞잖아! 신발 두 개! 저건 송 언니 신발이니까 그 옆에는 송 오라버니 신발일 거 아냐?”

“그러네? 뭐야! 진짜 왔나 봐! 왔다! 왔다!”

재잘대며 다가오는 저 두 개의 목소리는 유은무와 장우혜의 목소리다.

저 여시들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들은 것만으로도 절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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