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83
문이 벌컥 열렸고, 방 안을 확인하듯 유은무와 장우혜가 동시에 안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내 모습을 확인한 두 소녀가 거의 동시에 외쳤다.
“송 오라버닛!”
“송 오라버니!”
“오랜만이야, 누이들.”
내가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대꾸하자 두 소녀가 신발을 벗는 듯하더니 후다닥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서탁의 좌우 측면에 빠르게 자리하고 앉았다.
정면에는 송유하가 앉아 있기에 좌우의 유은무와 장우혜가 내 위치에 더 가깝게 앉은 상태다.
두 소녀가 그 상태에서 상체를 내 쪽으로 가까이 한 채, 나를 열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곧 유은무가 말했다.
“일단 사지는 멀쩡히 다 붙어 있는 것 같아!”
그러자 장우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응! 어디 한 군데 떨어져 나가거나 그러진 않았어.”
두 소녀 모두 매우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 그걸 확인하려던 거였냐?
“그담에 얼굴!”
유은무가 그렇게 말하더니 내 왼쪽 얼굴을 자세하게 살폈고, 장우혜는 내 오른쪽 얼굴을 자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예쁜 눈동자들이 좌우의 볼 가까이에서 오가는 모습이 참 귀엽다.
가까워서 부담스럽기도 한데, 애들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그냥 참으며 가만히 있었다.
“흠집 안 났어!”
“응. 이쪽도 그래.”
“피부 상태도 매우 괜찮아 보여!”
“피부의 경우 심지어는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유은무와 장우혜가 주거니 받거니 그런 말들을 했다.
그녀들에게 물었다.
“하하, 복귀하자마자 누이들한테 내 얼굴 상태하고 피부 상태까지 검사받게 될 줄은 몰랐네.”
유은무가 말했다.
“당연하죠! 송 오라버니의 얼굴은 온 강호 차원의 귀중한 재산이자 보물이라구요. 보물이 험한 환경에 있다가 왔는데 당연히 멀쩡한지 검사해야죠!”
“푸홧! 무슨 보물씩이나. 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그렇게 대꾸하자 이번에는 장우혜가 말했다.
“송 오라버니에게는 무공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그 얼굴이라구요. 잘 보존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 말에 유은무도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저런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게 더 재미있다.
하여간 얘들답다는 생각이 든다.
유은무가 말했다.
“송 오라버니도 대충 예상하고 있겠지만 이번에 계반 신입 관도가 많이 늘었어요. 물론 송 오라버니 때문이구요.”
“아하하······, 아까 오면서 계반 거주 구역에 거처가 추가로 많이 지어져 있는 건 봤어.”
“송 오라버니가 본 건 계반 남관도들의 거주 구역뿐이잖아요. 여관도들의 신임계반 쪽 거주 구역에도 거처가 엄청 많이 늘어났어요. 계반의 여관도들이 많이 늘어나서 그래요. 작년에 우리가 신입 관도일 때보다 훨씬 많이. 당연히 그것도 송 오라버니 때문이구요.”
작년에 계반의 신입 여관도는 유은무와 장우혜를 포함해서 여섯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었다.
“아하하하······, 계반의 신입 여관도가 그렇게 많아? 몇 명이나 되는데?”
“서른두 명.”
“컥······!”
유은무의 답을 들은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이 늘었다고는 해도 잘해야 열댓 명이나 되겠거니 했는데 서른두 명이나 된다니.
장우혜가 특유의 냉소를 보이며 말했다.
“실력이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계반에 들어온 애들은 몇 명 안 돼요. 대부분은 실력이 남아돌면서도 일부러 계반으로 입관한 거예요. 빤한 거죠.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작년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와 어떻게든 인연을 대보고자 이쪽으로 온 거예요, 자의든 타의든. 그러다가 송 오라버니와 운 좋게 남녀 관계로까지 이어지면 그야말로 대박이라는 생각일 거고.”
그러자 유은무가 말을 보탰다.
“참고로 신반과 임반의 신입 관도들도 평년보다 많이 늘었어요. 목적은 계반에 들어온 신입 여관도들과 비슷하겠죠. 어차피 여관도들은 신임계반이 같은 거주 구역을 쓰니까요.”
“푸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실, 당사자들의 심정도, 그들을 종용한 어른들의 심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나와 인연을 맺으려는 시도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거다.
그러다가 뜻대로 안 되면 그때 가서 승반을 해도 된다. 실력만 있으면 승반이야 뭐.
꼭 나와 인연을 맺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도, 나를 관찰하는 게 목적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여관도들뿐만 아니라 남관도도 포함될 것이며, 소속 세력의 뜻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장우혜와 유은무의 말을 들어보니 앞으로 잠룡관 생활이 제법 귀찮아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초량처럼 적당히 잠룡관 밖으로 돌아다녀야겠다.
잠시 후, 유은무가 뭔가를 떠올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처음에 계반 신입 관도들을 이끌고 잠룡관 안내하는 역할 있잖아요? 작년에 길초량 선배님이 했던 거. 그거, 이번에는 우혜랑 저랑 둘이서 했어요.”
“오호? 그래?”
“네. 우혜랑 같이 신입생들 구경하러 돌아다니는데 저희가 총교관님 눈에 띄었나 봐요. 저희를 부르더니 갑자기 그 역할을 맡기시더라구요.”
총교관 노양홍도 얘네 둘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입장에서 얘들 둘은 매우 듬직한 계반 관도일 테니, 마침 잘됐다는 생각으로 시킨 모양이다.
“이번에 계반의 남녀 신입 관도들을 합하면 수십 명이었을 텐데, 둘이서 안내하느라 고생 좀 했겠네?”
“총교관님이 부탁하셨으니 최대한 열심히 안내 역할을 하기는 했는데, 우리가 이 년 차에도 계반이어서 그런지 대놓고 무시하는 애들이 많더라구요.”
신입생들의 입장에서 얘들이 이미 일류고수라는 걸 알아챌 수 있는 관도들은 없었을 것이다.
얘들의 무공 실력이 얼마나 모자라면 이 년 차에도 계반에 있는 건가 싶었겠지.
“짜증은 좀 났지만 송 오라버니를 생각하니 참아지더라구요. 송 오라버니는 그 실력으로도 마치 자존심이 없는 사람처럼, 온갖 굴욕과 구차함을 참아내며 계반 생활을 이어왔다는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그때의 일을 직접 겪고 나니까 저, 송 오라버니가 더 존경스러워졌어요.”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칭찬하는 것 같기도 한, 유은무 특유의 화법이 나오고 있다.
나는 자연스럽게 장우혜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은무는 참는다 해도, 장우혜 얘는 그런 걸 쉽게 참아줄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장우혜가 말했다.
“뭐예요, 그 눈빛? 설마 제가 잠룡관 안에서 후배들을 두드려 패기라도 했겠어요? 아무리 제가 자존심이 세도 잠룡관 안에서 대놓고 중징계받을 만한 일은 안 한다구요. 그냥 귀엽게 봐줬을 뿐이에요. 애들이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오오!”
내가 장하다는 투로 그렇게 대꾸해주자 장우혜가 말을 이었다.
“그저 이름들을 물어봐서 다 외워놨을 뿐이에요. ‘이름 말해주면 뭘 어쩔 건데?’ 하는 기색으로 다들 자신 있게 알려주더라구요. 뭐, 저도 이제 선배이고 하니 후배들이 깨달을 수 있게끔 잘 이끌어줘야죠. 뭣도 모르고 까불면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온다는 것 정도는 항시 염두에 두고 살아갈 수 있게끔.”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은 채로 저렇게 말하는데, 왠지 아수라님의 미소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어쨌거나 누군지는 몰라도 걔들은 후일에 아주아주 많이 후회하게 될 것 같다.
장우혜 쟤가 다른 건 몰라도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만큼은 쉽게 안 넘어가는 애거든.
잠시 후에 장우혜가 말했다.
“들어보니까 송 오라버니, 이번에 기동타격조에서 활동하면서 아주 날아다닌 모양이더라구요?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모습을 보이면서?”
“맞아, 맞아.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어요. 다들 송 오라버니 얘기로 난리예요.”
유은무도 말을 보탰다.
둘 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보아하니 알려진 소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기색이다.
아마도 장우혜는 그녀의 오라비들을 통해서, 유은무는 그녀의 조부인 선우훤을 통해서 모종의 언질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송유하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얘도 이제 병반인 만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정보들도 많아졌을 것이다. 가뜩이나 얘는 내 누이이기도 하니 다른 관도들이 먼저 다가와서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복귀한 소충광, 우문직, 단목홍신 등을 통해 들었을 수도 있다.
“워낙 치열한 전투들이 연속되다 보니 나로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어. 그러던 중에 남들의 눈에 인상적으로 보이는 광경들이 왕왕 있었던 모양이지. 날아다녔느니,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너무 과장된 거야. 소문이라는 게 늘 그렇듯.”
내가 말을 마치자 유은무가 장우혜를 향해 바로 입을 열었다.
“나, 알아. 송 오라버니가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는 건, 정말로 날아다녔고, 정말로 어마어마한 활약을 펼쳤다는 거야.”
장우혜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어. 송 오라버니는 본인의 우수함이 너무 부각될 것 같으면 항상 저런 식으로 두루뭉수리 넘어가려고 하잖아.”
하······! 이 여시들 진짜.
잠시 후 유은무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어. 송 오라버니한테서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 말이야. 원래 내가 알던 분위기보다 뭐랄까, 훨씬 더 깊어졌어.”
“어, 맞아.”
장우혜가 대꾸하자마자 송유하가 말했다.
“어? 나도 동생들이 오기 전까지 오라버니에게 그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자 장우혜가 정리해주듯 송유하에게 대꾸했다.
“송 오라버니의 기운이 풍기는 느낌이 워낙 은은해서 원래 티가 잘 안 나기는 하는데, 지금은 훨씬 더 은은해졌어요.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송 오라버니를 봤던 넉 달 전과 비교해서도 무공이 매우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뜻이에요. 원래도 통합 잠룡대전에서 우승할 정도로 대단했던 저 무공이, 그사이에 또다시 대폭 상승했다는 거죠.”
정리를 하는 와중에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장우혜의 얼굴은 질려버렸다는 표정이었다.
“우혜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네.”
유은무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송유하의 표정 또한 유은무와 다를 바 없었다.
장우혜가 말했다.
“송 오라버니의 기운이 워낙 은은해서, 직접 실력을 확인한 게 아닌 이상 남들은 이런 걸 못 느낄 거야. 우리처럼 송 오라버니에게 관심도 많고, 실제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영역이지.”
송유하와 유은무도 공감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상식적으로 내가 절정에 올랐다는 사실을 얘들 수준에서 파악했을 수는 없다.
다만, 장우혜의 말마따나 워낙 가깝게 지낸 사이이기에 내게서 풍겨지던 기도의 변화를 느낀 것이다. 익숙한 그 기도가 상당히 많이 변했음을 느끼고는, 이를 통해 내 성취의 급진전을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와! 정말 귀신은 속여도 우리 누이들은 못 속이겠네. 맞아. 기동타격조에서 죽을 위기에 자주 내몰리다 보니 성취에 큰 진전이 있었어. 그런데······.”
잠시 말을 멈춘 나는 두 소녀를 향해 씩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공이 제법 상승한 건 나만이 아닌 것 같네? 유 매와 장 매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단순히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니다.
실제로도 두 소녀의 기도 또한 매우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 년 전쯤에 처음 봤을 당시에도 두 소녀는 을반 정도는 충분히 갈 만한 실력들이었다. 둘 중에서도 장우혜는 거의 갑반에 근접한 실력이었다.
한데 지금은 장우혜는 말할 것도 없고 유은무 또한 충분히 갑반에 갈 만한 실력이다.
고작 이 년 차 초반의 여관도들이 이런 수준에 오른 게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얘들은 남궁세가와 선우세가 출신으로, 배경부터가 매우 좋다.
즉, 얘들이 익히고 있는 가전 무공 자체가 다른 애들이 익히고 있는 무공들에 비해 훨씬 빼어나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 다른 애들과 똑같이 노력을 해도 얘들이 더 빠르게 발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데 그 와중에 얘들은 삼청산의 산장과 태화지부에서 가슴 철렁한 실전 경험까지 했다.
스스로 충분히 강해지지 않았을 때 이 강호가 본인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다가오는지를, 당시에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얘들은 수련도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뚜렷한 목적의식하에서 했을 것이다.
그러니 저렇듯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
장우혜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동안 성취가 제법 빨리 상승해서 스스로 조금은 대견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송 오라버니를 보고 나니 제가 지금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요.”
그러자 유은무가 장우혜에게 말했다.
“나도 더 이상은 송 오라버니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실력을 갖추려고 그동안 되게 열심히 했는데 이게 뭐야?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거잖아. 송 오라버니에게 부족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하하! 나는 누이들이 부족하다거나 민폐라거나 하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누이들은 지금도 충분히······.”
“아니요! 송 오라버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제가 스스로 그렇게 각오하고 노력하는 거거든요! 저, 버거워도 쫓아가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거거든요!”
유은무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가 담긴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장우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그럼. 설령 버겁다 해도 쫓아가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게 결국 남는 거기도 하고.”
“응!”
어이구, 기특한 것들.
이러니 얘들을 안 예뻐할 수가 없다.
송유하가 말했다.
“참! 오라버니, 길 공자님은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길 공자님이 기동타격조에 포함되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심지어는 기동타격조의 관도들 중에서도 오라버니 다음가는 활약을 펼치셨다고······. 그 정도로 대단한 실력이시라고······.”
“맞아, 맞아! 정말 깜짝 놀랐어요! 관도들도 다들 엄청 놀랐어요!”
유은무가 맞장구를 치자 장우혜도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무공을 어느 정도 익혔다는 느낌은 받았었지만 길초량 선배님이 그 정도일 줄은 저도······.”
어떻게 되긴. 신룡대니까 그런 거지.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우혜가 눈매를 찡그리며 내게 물었다.
“절친끼리 짠 거예요? 처음부터 실력 감추고 계반에서 한심한 척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