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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87화 (187/416)

내 안에 마교있다 187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송천광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켜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나저나 교관님께서 저희 가족들에게 하시려는 말씀이라는 건······.”

그 말에 제갈수광이 한차례 호흡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유겸이는 매우 유명해질 겁니다.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로 유명해진 것보다 훨씬 더 유명해질 겁니다.”

그 말에 가족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유겸이는 이번에 결정적인 활약들을 많이 펼쳤고, 그걸 수많은 정예 고수들이 목격했습니다. 당연히 소문이 점점 더 퍼져나갈 겁니다. 소문의 발원지가 정예 고수들인 만큼 그 파급력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들이 더욱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가운데 제갈수광의 말이 이어졌다.

“어디서나 즉시 전력감으로 통할 만한 실력자가 약관의 잠룡관도에 불과합니다. 즉, 누구나 탐낼 만한 인재인 겁니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제의를 하며 접촉해올 겁니다. 소문이 퍼질수록, 더 많은 이들이.”

“허허, 허허허······.”

송천광이 웃음을 흘렸다.

내 가치가 그 정도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투다.

그 와중에도 송천광은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인데, 누가 봐도 이미 입이 귀에 걸려 있다.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선의를 갖고 접근하는 자들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이용할 목적으로 접근하는 자들도 많을 겁니다. 별의별 인간 군상들이, 유겸이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접근할 겁니다.”

“허어, 가족들에게까지······.”

“예. 그래서 여러분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물론 유겸이 얘기를 하며 접근하는 이들은 당사자와 상의하라며 돌려보내면 그만일 겁니다. 그러나 속내를 감춘 채, 애초에 가족 구성원을 목표로 삼고 친분을 형성하며 접근하는 이들에게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결국 여러분이 주의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제갈수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장원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 더 대단한 연줄을 소개시켜 주겠다, 좋은 사업 구상이 있는데 같이 추진해 보자, 이런 식의 제안들을 수도 없이 해올 겁니다. 그 외에도 온갖 감언이설로 여러분을 혹하게 만들 겁니다.”

“그, 그렇게까지······.”

“예. 송가장의 위상이 올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잖습니까. 미래 가치가 있잖습니까. 미리 줄을 대어놓으려는 이들도 많을 것이고, 송가장의 성장세에 기대어 한자리하려는 자들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권에 개입하여 아예 한몫 챙기려는 자들도 많겠지요.”

송천광이 침을 꼴딱 삼켰고,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주님과 가족분들이 대처를 조금만 잘못해도, 사실 관계가 왜곡되어 송가장에 대한 온갖 악의적인 소문이 퍼질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억울하게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미리 대비하시라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말에 송천광을 비롯한 가족들 모두의 얼굴에 고심이 담겼다. 이쯤 되니 마냥 편하게 생각할 일이 아님을 확실하게 주지한 것이다.

동갑도에서 선우훤이 내게 말해줬던 내용들이라, 사실 나도 오늘 송천광과 이청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줄 생각이었다.

그냥 놔두면 대책 없이 말려들 가능성이 높기에 미리 주의 정도는 줄 필요가 있었다.

내가 기본적으로 송가장에 딱히 애정이 없기는 하나, 그렇다고 증오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이왕이면 잘 지냈으면 하는 쪽이지 일부러 패가망신을 바랄 대상까지는 아닌 것이다.

어쨌거나 제갈수광이 말했으니 내가 말한 것보다는 효과도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잠시 후 송천광이 입을 열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교관님. 대책을 세울 것이며, 가솔들에게도 철저한 주의를 당부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서 잘 대처할 수 있을지는 염려가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일에 대해 이미 집법당주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유겸이와 송가장의 경우에는 약간 특수한 경우이기에, 어느 정도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계셨습니다.”

그 말에 송천광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지, 집법당주님이라면······ 선우훤 대협······!”

다른 가족들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

선우훤은 백도에서 매우 파급력이 큰 인물이다. 그런 존재가 송가장을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실은 나를 신경 써주는 것이긴 하지만.

제갈수광이 말했다.

“무림맹 차원에서의 지원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무림맹 차원의 지원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이건 나도 궁금하다. 나조차도 아직까지는 전해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본맹의 정보 조직인 천풍단의 인원들 소수를 송가장에 파견하는 방식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고 하십니다.”

“오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접근하는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쉽겠군요!”

송천광이 반색하며 대꾸하자 이청오가 말을 보탰다.

“더 중요한 건 천풍단의 존재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억제력일 겁니다. 허튼 생각으로 접근하면 천풍단에 의해 밝혀질 가능성이 높으니 말입니다.”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송가장에서 원하신다면 그런 도움을 드릴 수 있다는 말씀······.”

“당연히 원합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제갈수광의 말을 끊으며 그렇게 대꾸한 송천광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우리 장원의 입장에서도 그분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거처 등을 정비해야 할 테니, 그 준비가 끝나고 나면 요청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맹에는 일단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제갈수광이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릴 말씀은 다 드린 듯하니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아이고, 안 그래도 제갈 교관님께는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데, 이렇듯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시니 이 고마움을 어찌 다 갚을지······.”

“응당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니 그런 생각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우리도 일어서서 제갈수광에게 인사했고, 송천광은 식당의 문밖에까지 제갈수광을 배웅했다.

식당에 우리 가족만 남았다.

송천광과 이청오는 기분 좋은 표정이고, 송유백과 송유상은 떨떠름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진양옥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속내를 애써 감추는 표정이고, 송유하는 역시나 표정이 없다.

가족들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괜히 저 때문에 여러모로 불편들을 겪으실 것 같아서 송구한 마음입니다.”

내 말에 송천광이 곧바로 대꾸했다.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 당사자가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느냐. 너는 지금 칭찬을 받아야 할 상황이지 사과를 해야 할 상황이 아니다. 네 유명세로 인해 생기는 불편조차 감당치 못하면 그게 가족이겠느냐?”

이청오도 공감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송천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가뜩이나 이 문제는 오히려 이 애비가 미안해해야 할 일이다. 우리 가문이 힘 있는 가문이었다면 애초에 그런 불편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을 터이니.”

아유, 워낙 수긍되는 말이라 하마터면 고개 끄덕일 뻔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가족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일전에 아버지께는 말씀도 드렸고 허락도 구했습니다만, 저는 가문에서 독립할 생각 중에 있습니다. 제가 독립하고 나면 그나마 조금은 나아질 겁니다. 그래서 서두를 생각입니다.”

말을 하면서 보니 송천광과 이청오를 제외한 모두가 깜짝 놀라고 있었다. 송유하의 눈동자마저도 휘둥그레져 있다.

송천광이 이청오 외에는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 갑자기 독립이라니······.”

송유백이 놀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데,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쓰고 있다.

상당히 기뻐 보인다.

내가 장원의 후계자 자리라도 노릴까 봐 내심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근래 가문 내에서의 내 입지가 압도적으로 커진 상황이었으니까.

송유백을 향해 대꾸해줬다.

“서자에 차남인 나는 애초에 독립할 생각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집안에 번듯한 장남이 있으니 그 장남이 가문을 잇는 게 당연한 거잖습니까.”

송유백 놈이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표정을 관리해야 할 상황만 아니었다면 저 입이 찢어져라 함박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조용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송천광을 향해 말했다.

“일전에는 독립 자금이 넉넉지 않았습니다만 아까 포상금을 보셨듯 지금은 자금이 매우 넉넉합니다. 그런고로 그 돈으로 알아서 독립하겠습니다.”

그 말에 송천광이 정색하며 대꾸했다.

“어허. 거처는 이 애비가 지원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우리 가문이 재산이 없는 것도 아니고, 넷뿐인 자식 중에서 하나가 독립한다는데 그것도 지원 못 해줄까.”

그러자 송유백이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그, 그건 아버지 말씀이 맞지. 이왕 독립하는 거면 그럴싸한 거처로 해.”

푸흐흐! 저 송유백 놈의 하는 짓이 귀여워 죽겠다.

내가 무난하게 독립해서 무난하게 나가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좀 더 큼지막한 거처를 얻어줘도 상관없다는 투다. 사실 드러난 송가장의 재산만 생각해도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긴 하다.

“부지런히 알아보고 최대한 빠르게 정하겠습니다.”

내 말에 송천광이 대꾸했다.

“이미 허락했던 사안이니 네 독립에 대해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단, 장소를 정하고 나면 최대한 빨리 애비에게 알리도록 해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던 가족들과의 시간은 어른들이 자리에서 일어선 후에야 끝났다.

* * *

송천광과 이청오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룡관의 정문을 향해 걷는 가운데, 진양옥은 조용히 그 두 사람의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송천광의 지시에 따라 이청오가 앞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멀어졌다.

이후에 송천광이 걸음을 멈추며 뒤돌아보자 진양옥이 흠칫했다.

“자네.”

“자, 장주님, 아까 제가 감히 동석했던 것은······.”

진양옥이 사죄하듯 얼른 그 말을 꺼내자 송천광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잠시 후 피식 웃어 보였다.

“아, 그거? 그건 뭐, 유하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잖아. 그것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에서는 그리해도 된다는 뜻이고.”

진양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런 대답을 들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송천광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그리 놀라니 내가 오히려 미안해지는구먼. 유하도 잘하고 있는데 그런 면은 내가 미리 신경을 써줄 것을.”

“아닙니다, 장주님. 방금 해주신 말씀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러자 송천광이 회한 깃든 미소를 지은 채로 한동안 가만히 진양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송천광이 말했다.

“생각해 보면 자네도 번듯한 집안 출신이었지. 원래대로라면 우리 장원에서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는데. 너무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라서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그 삶은 제게 주어진 삶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저, 풍비박산된 집안의 오갈 데 없는 여식을 감춰주시고 거둬주신 선대 장주님과, 이후로 쭉 보살펴주신 장주님께 감사하며 살 뿐입니다.”

송천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송천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유겸이 녀석이 자네를 각별히 가깝게 여기는 것 같더군. 아까 자네를 챙기던 모습도 그렇고.”

“아마도 유하한테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전해 들은 게 아닌가 합니다. 유겸이가 장원에 있을 당시, 측은한 마음에 제가 틈틈이 챙기곤 했었던지라······.”

진양옥의 말에 송천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유겸이 분가할 때 자네도 분가하지.”

그 말에 진양옥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자, 자, 장주님······! 혹시 제가 잘못을 했거든······.”

“에헤이! 거참. 내가 지금 자네를 내쫓겠다고 하는 말이 아닐세. 잘 생각해 보게. 오히려 자네 좋으라고 하는 말일세.”

“예? 그게 무슨 말씀······.”

“내가 볼 때 유하는 웬만해서는 갑반까지 갈 걸세. 게다가 알아보니 유겸이 덕분에 주변 교우 관계도 좋더군. 저런 식이면 나중에 충분히 좋은 혼처를 얻겠지. 즉, 자네도 그럴싸한 사위를 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일세.”

송천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사위가 처가에 왔는데 장모라는 사람이 주인마님의 짜증이나 받아주며 무시당하고 있고, 가뜩이나 하인 신분으로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게. 사위나 그쪽 시댁이나 그걸 좋아하겠는가? 그거 보고 나면 유하도 시댁에서 그만큼 무시당하고 살 텐데, 그게 될 일인가 말일세.”

“그, 그건······.”

진양옥은 결국 부인하지 못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송천광이 그럴 줄 알았다는 미소를 보이더니 말했다.

“유겸이가 분가한다고 하는 지금이 적기일세. 자네도 오늘 들은 게 있으니 잘 알겠지만 유겸이는 장차 큰일을 할 아이일세. 사내가 큰일을 하는데 누군가가 보살피며 챙겨야 할 것 아닌가. 가뜩이나 요새 잘나간다는 후기지수들은 다들 혼인도 늦는 추세이니 당분간은 며느리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테고.”

송천광이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에 자네만큼 적합한 사람이 없네. 마침 유겸이도 자네를 잘 따르고. 그러니 자네와 유하가 머물 것까지 감안해서 유겸이의 거처를 널찍한 곳으로 잡아주겠네. 물론 나도 종종 그 집에 들를 생각이네. 그러니 자네도 그리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게. 이 얘기는 당분간 남들 앞에서 발설하지 말고.”

“자, 장주님······.”

진양옥은 감격한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물기가 가득했다.

송천광이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말없이 신형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너 걸음을 걷던 그가 다시금 뒤돌아보더니 말했다.

“그렇게 차려입고 적당히 치장도 하니 참 곱구먼. 하긴 뭐, 옛날부터 광풍현에서 용모가 곱기로 따지면 또 자네였지.”

진양옥이 민망함 가득한 미소를 짓자 송천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보니 자네는 처녀 때에서 크게 변한 게 없어 보이는군. 나는 점점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그, 그렇지 않으세요. 장주님은 지금도······.”

“거······, 오늘 밤에는 자네 처소에 간단한 술상이나 좀 봐 놓게.”

그렇게 말한 송천광이 딴청을 부리듯 먼 하늘을 한 차례 바라보더니, 다시금 돌아서서 뒷짐을 진 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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