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89
“저! 저기!”
“송유겸 공자다!”
한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거처 앞에 모여 있던 많은 이들의 고개가 내 쪽으로 홱홱 돌았다.
“와! 정말 송유겸 공자님이야!”
“드디어 왔어!”
여러 외침들이 들리는가 싶더니, 모여 있던 이들이 우르르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혼란 가득한 그 순간에 맞추어 회회심공의 기운을 바닥으로 흘렸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기에 은밀하면서도 신속하게 퍼트릴 수 있었다.
계반의 신입 관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김에 전체적으로 탐색이나 한번 해보려는 목적이다.
다수의 정보가 빠르게 전해지고 있다.
탐색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계반 실력이 아닌 이들이 많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명호운만큼은 아니더라도, 중위 반 정도에는 갈 만한 실력자들이 다수였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회회심공의 기운이 계속해서 은밀한 탐색을 이어 나가던 한순간이었다.
퍼져가던 내 기운에 닿은 여러 기운들 중 하나가 즉시 기척을 지우는 게 느껴졌다.
바닥으로 퍼진 은밀한 기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기운을 감지하고는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기척을 지운 것이다.
게다가 기척을 지운 후의 느낌 또한 매우 미세했다.
기감에 민감한 나조차도 순간적으로 그 기척을 놓칠 뻔했을 정도였다.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상의 은잠술이 빼어나다는 뜻이며, 훈련도 잘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흑풍대였던 만큼 당연히 은잠술의 조예도 뛰어나다. 그렇기에 저 인물의 은잠술 숙련도가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도 금세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숙련된 은잠술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무공 경지도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한다. 아마 저 정도 은잠술이면 무공 경지도 최소한 일류 이상은 될 것이다.
일류 이상이라는 건 잠룡관을 기준으로 하면 을반 이상이라는 뜻이다.
그런 실력자가 저 무리에 섞여 있다는 건데, 저들은 대부분 계반 관도다.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이 실력자도 일단은 계반 관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대체 누굴까.
속으로는 흥미가 크게 동한 상태였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그 인물을 찾았다.
많은 인원들이 뒤섞여서 한꺼번에 내 쪽으로 다가오는 중인데, 오래지 않아 나는 대상을 특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 놀람을 감추기도 쉽지 않을 만큼.
소녀다.
그것도 매우 앳되어 보이는 소녀다.
겉보기로는 잘해야 열네댓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여서, 저 어린 소녀가 어떻게 벌써 잠룡관도인가 싶을 정도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연령 기준을 통과했으니 잠룡관도가 된 것이겠지만.
키도 작은 편이고 몸집도 평균보다 훨씬 날렵한 편이라서 더더욱 어려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용모는 예쁘게 생겼는데, 어려 보이기 때문인지 예쁜 아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한데 저렇듯 어려 보이는 소녀가 은잠술에 매우 능통한 일류고수라니.
보고 있음에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하여튼 이놈의 백도는 재미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질릴 만하면 이런다니까.
소녀에 대해 순간적으로 많은 궁금증이 일었으나, 일단은 모른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우르르 다가온 아이들이 내 앞쪽에 멈춰 섰다.
총 스물일곱 명이다.
많은 인원이 움직인 탓에 먼지가 일었고, 그래서 나는 얼굴 앞쪽에다가 대놓고, 보란 듯 손부채질을 했다.
다가온 아이들에게 부담감을 주려는 목적이었는데, 역시나 많은 아이들이 얼굴에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턱을 든 채로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곧, 몰려든 이들 쪽에서 이런저런 외침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와아! 정말로 송유겸 공자를 직접 보게 되다니!”
“어쩜,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어!”
“아아!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느낌이야!”
듣는 것만으로도 쑥스러운 소리들이 튀어나오더니, 여기저기에서 나를 향한 인사들이 이어졌다.
“반갑습니다, 송유겸 선배!”
“정말 반가워요, 송유겸 공자님!”
이에 나도 모두를 향해 인사의 말을 건네줬다.
“다들 안녕하시오. 아하하······.”
어색한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심지어는 목소리마저도 좋아!”
“웃으니까 더 매력적이야!”
“세상에, 나를 보고 웃었어······!”
주로 여관도들이 곧바로 반응하며 저런 말들을 했다.
모여든 아이들을 잠시 조용히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농담조로 입을 열었다.
“허어, 이것 참. 보잘것없는 소생을 보겠답시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소. 여러분, 제발 정신들 차리시오.”
“푸하하하!”
다들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내가 표 나지 않게 주시하고 있는 소녀 또한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다.
그러자 여관도 한 명이 나를 향해 외치듯 말했다.
“우와! 농담도 재미있게 하셔!”
이에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아니, 소저의 말씀은 틀렸소. 나는 진담을 재미있게 한 것이오.”
“푸하하하하!”
다들 웃는 와중에도 방금 내가 지적했던 여관도만이 웃지 않고 감격한 표정이었다.
“와! 내 말에 대꾸해 주셨어······!”
세상에, 저런 것에도 감격하고 있다니.
환장하겠다.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다들 이렇듯 소생의 존재를 확인하셨으니 앞으로는 괜히 소생을 기다린다며 귀중한 시간들을 낭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소.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이 세상에는 이러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인 일들이 많소.”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한 남관도가 말했다.
“송 공자와 친해지기 위해 일부러 계반으로 온 건데, 이 정도의 낭비야 알아서 감당해야지요!”
그 말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먼 하늘을 한 차례 바라보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후 다시금 아이들을 바라보며 편안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이건 제법 많이 알려진 사실인데, 소생은 무공 수련과 무학 연구에 빠져 사는 외골수요. 친분 관계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간에 차라리 수련을 하고 무공서를 읽는 게 더 즐거운 사람이랄까. 소생이 갑을반에 가지 않고 계반에 계속 머물렀던 이유도, 이곳에서는 친목이나 인맥 관리로 방해받지 않은 채 혼자서 마음껏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소.”
아이들의 미소가 애매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나는 편안한 어조를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소. 즉, 소생은 친화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재미없고 무신경하고 이기적인 사람인 것이오. 게다가 수틀리면 친우라 해도 무시하며 함부로 대하기 일쑤요. 때문에 소생과 친한 이들은 모두, 희생정신을 가지고 소생을 일방적으로 배려하며 인내하고 있소. 따라서 여러분 또한, 소생과 친분이 생긴다 해도 좋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받는 일만 생길 가능성이 더 높소.”
이쯤 되자 아이들의 미소는 난감함으로 가득해졌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본인이 성인군자 싸대기 후려갈길 정도로 극한의 이타주의자다. 그렇기에 소생한테서 전혀 배려받지 못해도, 소생을 배려해주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소생한테서 무시당하고, 업신여김당하고, 상처받아도 일절 불만 갖지 않겠다. 이런 분들은 얼마든지 소생에게 다가오셔도 좋소. 여러분의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미리 말씀드리는 것이오.”
내 미소는 점점 짙어지고 있는데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방금 말씀드린 정도의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일 학기 말에 승반 심사 치러서 신속하게 원래 자리들 찾아가시는 게 현명한 판단일 것이오. 여러분을 생각해서 드리는 소생의 충언임을 기억하시고, 돌아가셔서 잘들 생각해 보시오.”
정리하듯 말한 나는 손에 있는 책을 들어서 살짝 흔들어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소생은 그럼 이만.”
이제부터는 무공서를 읽으러 간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아이들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내가 방금까지 해 놓은 말이 있어서인지, 중간에 나를 불러 세우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걸어가는 와중에 보니 여전히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중에는 내가 주시하고 있는 소녀도 포함되어 있다.
굳이 그들에게 따로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조용히 걸음만 옮겼다.
늦은 오후가 되자 거처의 마당에서 송유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평소처럼 같이 구보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어, 누이. 잠시만.”
대꾸한 나는 미리 준비했던 것들을 조용히 품속에 챙긴 후에야 마당으로 나섰다.
내 거처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관도들은 더 이상 없었다.
다만 거처의 사립문을 벗어나는데 여전히 몇 개의 시선은 느낄 수 있었다. 몇 사람 정도는 멀리에서나마 내 모습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반환점까지 달린 후 호흡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는데 송유하가 말했다.
“오라버니가 언젠가는 독립하리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독립을 추진한다고 하시니 뭔가 느낌이 이상해요.”
송유하는 워낙 나를 가깝게 여기며 잘 따르는 만큼 느낌이 남다르긴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누이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 거야. 송가장 말고도 누이가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생기는 셈이니까.”
“네. 그리고 오라버니가 독립하면 저는 방학 때도 오라버니네 집으로 갈 거예요. 송가장에는 인사만 드린 후에 바로 갈 거예요. 가서 오라버니랑 같이 수련도 하고, 오라버니 식사도 만들어드리며 지낼 거예요. 그러다가 나중에 잠룡관 졸업하면 아예 오라버니네 집에 가서 살 거예요.”
짐짓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다.
“하하하, 누이야 뭐 언제든 환영이지.”
내 대꾸를 들은 송유하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배시시 웃었다.
귀엽긴.
“독립할 거처는 어디에 마련할 생각이세요?”
“포양호.”
“포양호면 혹시 정가장 주변을 생각하고 계신 거예요?”
내가 정가장과 친분이 깊음을 알기에 저렇게 묻는 것이다.
“응.”
“우와!”
송유하도 그쪽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녀에게 말했다.
“위치는 일단 누이만 알고 있고.”
“네.”
“독립할 거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집터도 알아볼 겸해서 며칠간 조용히 그쪽에 다녀올까 해. 이왕 독립할 거, 미리미리 알아보고 빨리 해버려야지. 그래야 가문과의 관계도 더 빨리 홀가분해지지.”
송유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래서 언제쯤 출발하실 건데요?”
“지금 바로.”
“네?”
“우리 구보 경로로 조금 더 가다 보면 북문 쪽으로 통하는 길이 나오잖아. 그쪽으로 바로 나갈 거야. 나갈 때 제출하려고 외출계도 미리 써왔고.”
내 말에 송유하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대꾸했다.
“설마 구보하다가 바로 외출한다고 하실 줄은······.”
“요새 계반에서 나를 주시하는 눈들이 하도 많아져서 이런 식으로 몰래 움직이려는 거야. 내 외출에 관련된 사항까지 그들이 알게 하고 싶지는 않거든.”
“아.”
이참에 내가 아예 며칠간 모습을 안 보여 버리면, 낮에 내 거처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관도들도 생각을 정리하기가 나름 편해질 것이다.
그것까지 염두에 둔 결정이다.
“한 가지만 부탁할게. 내 거처에 보면 제삼서고에서 빌려온 무공서가 있어. 누이가 모레쯤 반납해줘.”
“네. 알겠어요.”
이후에 송유하와 함께 잠시 구보 경로를 달리다가, 계획대로 북쪽 출입문을 통해 잠룡관을 벗어났다.
잠룡관을 벗어난 후에는 산지를 이용하여 적당한 속도로 신법을 펼쳤다.
잠깐 달리다 보니 금세 어두워졌다.
어두워진 이후에는 신법인 천섬비의 속도를 서서히 높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최대한의 속도에 가까워졌다.
만에 하나 누군가가 멀리에서 내 뒤를 추적하고 있다 해도 자연스럽게 따돌리기 위함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동안 매우 빠르게 신법을 펼치다가, 적당히 몸을 숨길 만한 지점에서 기척을 죽이며 이동을 멈췄다.
이후에는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넓게 탐색했다.
일대에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후, 품속에 납작한 형태로 넣어두었던 작은 행낭을 꺼냈다.
작은 행낭 안에 들어 있는 건 인조면구와 위장용품들이다.
면구와 위장용품을 통해 신속하게 모습을 바꿨다.
한두 번 해보는 게 아니기에, 나는 금세 삼십 대 중반의 장년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 후에는 겉에 입고 있던 백의도 벗었다.
내가 평소에 입고 다니는 백의를 벗자 흑의가 드러났다. 애초에 안에 껴입고 왔던 것이다.
입고 왔던 백의를 작은 행낭 안에 넣은 후, 그 행낭을 등에 멘 채로 경쾌하게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덕흥현을 거쳐 악평현 인근까지는 인적을 피해서 신법을 펼치며 이동했다. 그 후 악평현에서 포양호의 동쪽인 파양현까지는 뱃길을 이용하여 편하게 갔다.
그런 식으로 이동하던 내가 정가장 인근에 도착한 건 이틀 후 오후 무렵이었다.
정가장은 내게 익숙한 곳이기에 적당한 곳에서 몰래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섰다. 정우립과 정세건의 실내 수련장에서 가까운 지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수련장 안에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신속하게 주변을 살핀 후, 은밀하게 이동하여 수련장의 문을 열고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마자 정우립이 정세건을 보호하듯 위치를 잡으며 창을 꼬나 쥔 채로 내게 말했다.
“대낮의 불청객께서는 누구신가.”
그러면서 가만히 나를 쏘아보는데, 작년 여름에 헤어질 때보다 안광이 훨씬 형형해진 느낌이다.
공손히 포권하며 대꾸해줬다.
“장주님,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송유겸입니다.”
이후에 내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을 때쯤, 찢어져라 눈을 부릅뜨고 있는 두 조손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을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줬다.
“저, 정말······, 소, 송 공자시란 말이오?”
“하하, 제가 작년 여름에 수정해 드렸던 청파심공의 구결, 그대로 읊어 드릴까요?”
그 말에 정우립과 정세건이 더 크게 눈을 부릅떴다.
곧 두 사람의 얼굴이 반가움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