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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91화 (191/416)

내 안에 마교있다 191

내 놀란 표정을 확인한 정우립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뭘 그리 놀라시오. 우리 집안의 귀인이자 은인인 송 공자를 위해 내가 이 정도도 못 해드리겠소?”

“그래도 제법 널찍한 대지라고 하셨으니 전장에 넣어뒀던 자금을 적잖이 융통하셔야 했을 터인데······.”

“다행히 내가 보유하고 있는 금액 내에서 해결할 수 있었소. 어차피 송 공자가 다시 매입해주리라는 걸 아는데 전장에서 돈 좀 잠시 빼는 게 뭐가 대수겠소?”

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우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참고로 그 대지는 우리와 인접한 대지요. 다른 곳이 아니라 아까 송 공자가 넘어왔다는 담장 옆에 있는 큰 밭이오.”

나는 또다시 두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대지여도 큰 상관은 없지만, 내 입장에서는 붙어 있으면 여러모로 훨씬 편해질 건 자명하기 때문이다.

내 반응을 확인한 정우립이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송 공자가 특히 원했던 땅이 바로 이곳과 인접한 땅이었잖소. 지금의 대지만으로는 나중에 두 집 살림이 빠듯해질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말씀드리기야 했습니다만, 인접한 대지를 이렇게 빨리 구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허헛. 어쨌거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 땅은 송 공자가 아니라 송가장과 거래하게 생겼구려.”

“할 수 있는 한 높게 부르십시오. 짐작하시다시피 저희 장원은 재산이 많을 겁니다.”

내가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정우립도 웃으며 대꾸했다.

“허허헛! 다른 분도 아니고 송 공자의 부친이신데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 다만 내 입장에서도 그럴듯한 단기 차익 정도는 남기는 모양새로 팔 수밖에 없소. 이문을 별로 남기지 않고 팔 경우에는 동네 사람들도, 관아에서도 이상하게 여길 것이오. 딱히 위법이 아니더라도 소문이 이상하게 나면 그 또한 우리에게 좋은 일은 아닌지라.”

맞는 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노고에 대한 사례비는 따로 책정해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럴 생각일랑 마시오. 말했듯 나도 어쩌다 보니 단기 차익을 남기게 되는 상황이오. 내 입장에서도 충분한 이득을 보는 셈이니 더 이상의 사례는 필요 없소.”

정우립의 표정이 단호하여 더 이상은 그 얘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가문에 말씀드려서 조속히 매매가 완료되게끔 조치하겠습니다.”

“알겠소. 기다리고 있겠소.”

“그리고 아마도 아버지는 제 거처에 관한 사안을 신속하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터가 구해지면 금세 지반 공사를 하고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할 겁니다. 참고하십시오.”

그 말에 정우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천광은 내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졸업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만큼 내 거처에 대한 일 처리도 서두를 것이다.

잠시 후 정우립이 말했다.

“어쨌거나 대강의 이야기는 끝난 듯하니 이제는 공사 진행 상황이나 구경하러 갑시다. 내 지인인 척, 자연스럽게.”

객실을 나서서 정우립을 따라 천천히 장원을 걸었다.

정우립은 나를 비룡장 구역이 아닌 정가장 구역으로 먼저 안내했다. 그러면서 내게 개보수 공사가 진행된 건물들과 시설물들을 보여줬다.

공사들이 말끔하게 잘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가장의 부지를 매입할 당시에 적절한 개보수 공사를 약속했었는데, 딱 봐도 그 약속이 잘 지켜진 것 같아서 뿌듯했다.

안내를 해주는 정우립도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비룡장의 구역으로 들어섰다.

천천히 걸으며 보니 새로운 건물들이 차분하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정우립이 말했다.

“종종 와서 구경하는데, 보아하니 공사에 쓰이는 자재들이 전부 튼튼하고 좋은 것들이더구려.”

“하하, 예. 이왕 올리는 건물, 튼튼하게 올릴 마음이었던지라.”

이후에도 쭉 돌아보니 각각의 건물들이 내가 전해줬던 설계도에 따라 잘 지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경관 면에서도 정가장의 원래 조경을 최대한 살리는 모습으로 모든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정우립이 말했다.

“내가 지켜보니 관 지점장과 양 총관이 최소한 두 주에 한 번씩은 찾아와서 공사 진행 상황을 직접 챙기더구려. 한 주에 한 번씩 찾아올 때도 잦고.”

정우립이 말한 ‘관 지점장’이란 연주상단 남창지점의 지점장인 관대평이며, ‘양 총관’이란 그곳의 총관인 양운필이다.

“그 두 분이 그렇게까지 직접 챙기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 두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물론 청여홍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솔직히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열심히 신경 썼을 것 같소. 따끈따끈한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에게 잘 보여 놔서 손해 볼 일은 없을 테니까. 가뜩이나 우리 강서 출신으로는 첫 우승자잖소.”

정우립이 빙그레 웃더니 바로 말을 이었다.

“분위기를 보니 최근에는 더 부지런히 신경 써주는 느낌이더구려.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상인인 만큼 정보가 빠를 테고, 그렇다면 송 공자가 해적과의 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테니.”

이후에 정우립은 나를 이번에 매입했다는 밭으로 이끌었다.

역시나 내가 아까 담장을 넘어올 때 지나쳤던 밭이었다.

들었던 대로 밭이 상당히 널찍했다.

경계선도 비룡장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어서 그 또한 마음에 들었다.

흡족해하고 있는데 정우립이 말했다.

“아, 내가 매입해둔 땅은 이 아래쪽 밭까지요.”

“예에?”

“둘 다 한 사람의 소유였던지라 거래하기 편하게끔 나도 그냥 한꺼번에 산 것이오. 덕분에 매입가도 살짝 깎을 수 있었소. 뭐, 나름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지인이기도 했던지라.”

그 말을 듣고는 얼른 밭의 가장자리로 이동하여 아래쪽 밭을 살폈다.

내가 서 있는 밭과 이 아래쪽 밭은 계단 형태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낙차가 상당히 컸다. 성인 남성의 신장을 기준으로 한 배 반은 된다.

애초에 정가장이 언덕의 고지에 위치해 있기에 이렇듯 주변의 농지도 낙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면적으로 따지면 위쪽 밭이 아래쪽 밭의 두 배쯤 되어 보이며, 평면도상으로는 아래쪽 밭이 길쭉하게 위쪽 밭을 감싸고 있는 형태다. 언덕 지형에 조성된 계단식의 농지라서 이런 형태가 된 모양이다.

위쪽 밭이든 아래쪽 밭이든 전체적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내 생각보다 대지가 훨씬 넓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들었다.

“허허. 표정을 보아하니 흡족한 모양이구려.”

“이를 말씀이겠습니까. 매우 흡족합니다.”

진심이다.

정우립을 업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후에는 정가장의 사랑채에서 정우립과 함께 약간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내가 모습을 바꾸고 있으니 정우립이 배려하는 차원에서 따로 식사를 준비시킨 것이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물었다.

“혹시라도 그 후에 철심 흥신소 쪽에서 이상한 짓을 하거나 그러진 않았지요?”

“허허, 그 후로는 서로 마주칠 일도 생기지 않더구려.”

“그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포양호 동부의 흑도방에서 장주님을 향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습니까? 원래는 그들이 이 땅을 노리는 분위기도 어느 정도는 있었잖습니까.”

“그렇기는 했었는데, 아시다시피 이곳에서 공사를 맡고 있는 당사자가 연주상단이잖소. 우리가 연주상단과 가까워진 것을 알고 순순히 마음을 접은 게 아닌가 싶소. 흑도방의 입장에서도 연주상단 정도 되는 거대 상단을 상대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을 테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우립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꼭 연주상단 때문이 아니더라도 별일은 없었을 것 같소. 근래 흑도 놈들이 전체적으로 조용하기도 해서.”

그 말에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도 놈들은 웬만한 규모의 저잣거리에는 다 있으며, 그 일대의 약자들에게 기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런 놈들이 전체적으로 조용하다고?

“전체적이라고 하심은······.”

“나는 그저 이 근처의 흑도방들만 잠시 조용한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오가며 소문을 들어보니 남창 인근과 포양호 인근 전체가 다 비슷한 모양이오.”

이유는 잘 모르겠다는 투였다.

남창은 강서의 성도인 만큼, 규모가 큰 흑도방이 서너 곳은 존재한다고 들었다. 거기에 포양호 인근 전체까지 더하면 거의 열 곳은 된다고 알고 있다.

한데 그 많은 흑도방들이 전체적으로 조용하다고?

“혹여 관부에서 흑도방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이라도 펼쳤답니까? 각 흑도방의 우두머리들이나 수뇌부들을 일거에 잡아들였다거나······.”

“허헛. 그런 일이 있었다면 웬만해서는 내가 소문을 들었을 것이오.”

하긴 그건 그렇다.

“아니면 관부에서 소탕 작전을 계획 중인 걸까요? 흑도 세력들이 그걸 미리 알고 다들 몸을 사리고 있다거나······.”

“흑도 놈들은 벌써 한 달 남짓 조용한 상태요. 만약 흑도에서 한 달 전에 관부의 계획을 입수했다면, 지금쯤이면 우리도 그 계획에 대해 조금이나마 소문으로 접했을 것이오. 그리고 관부 쪽에서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소.”

“하면 누군가가 이 인근 전체의 흑도 세력을 일통했다는 식의 소문도 못 들으셨지요?”

“못 들었소.”

내가 생각에 잠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정우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흑도 놈들이 조용하니 인근 저잣거리의 민초들은 살맛 나는 모양이더구려.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도 어디 돌아다닐 때 흑도 놈들 신경 안 써도 되니 좋고.”

정우립은 딱히 깊게 신경 쓸 필요까지는 없다는 투였지만, 내 생각에 이건 이상해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는 차를 마시는데 정우립이 물었다.

“그래서 언제쯤 돌아갈 계획이시오? 아직 잠룡관이 학기 중이니 오래는 못 머물 것 같긴 한데.”

“볼일도 마무리되었으니 곧장 떠날까 합니다.”

내 말에 정우립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헛! 그렇게나 빨리 가신단 말이오? 하룻밤 머무르지도 않고?”

“하핫. 장주님 말씀대로 잠룡관은 아직 학기 중입니다. 제가 아무리 계반이라도 너무 오래 잠룡관을 비우면 징계받습니다.”

사실 징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들어보니 잠룡관에서 중징계라고 해봐야 면벽동 감금인 모양인데, 나는 그런 데 갇혀도 잘만 지내는 사람이다.

오히려 그런 곳에 혼자 갇혀 있으면 더 좋을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운기조식하고 체력 단련하고 신체 단련하면 된다. 좁은 공간이라 해도 단련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참고로 원래는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천천히 잠룡관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그랬던 내가 곧바로 떠나려는 건 다른 계획이 생겼기 때문이다.

정우립이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아쉽구려. 오랜만에 봤는데 이렇게 서둘러 떠나신다니.”

“하하. 아시다시피 제 거처는 이곳입니다. 잠룡관 졸업하고 나면 질리도록 보실 테니 아쉬움은 당분간만 참으십시오.”

“허허. 어쩔 수 없구려. 알겠소. 그럼 잠시만 계시오. 내가 가서 세건이 녀석 불러올 테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세건과는 인사를 나누고 가야 할 것 같다.

나를 워낙 잘 따르는 만큼, 그냥 가면 많이 서운해할 테니까.

결국 정세건과도 작별 인사를 나눈 후에야 정가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정가장에서 한참 멀어질 때까지 적당한 속도로 걷다가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듯 한동안 달리다 보니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고, 어두워진 후에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다가 적절한 곳에서 몸을 숨겼다.

몸을 숨긴 후에도 주변에 인적이 없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 후에야 쓰고 있던 면구를 얼굴에서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행낭 안에서 죽통을 꺼내어 식수로 얼굴을 한 차례 깨끗이 씻어낸 후, 의복의 소매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냈다.

이후에는 행낭 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 하나와 손바닥 크기의 넓적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 크기의 가죽 주머니에는 또 다른 인조면구 두 개가 들어 있다.

틈날 때마다 잠룡관 거처의 부엌에서 대충 만들어, 부엌 구석에 숨겨서 보관해뒀던 것들이다. 이번에 잠룡관에 복귀하면 또다시 틈틈이 두세 개쯤 만들어둬야 할 것 같다.

작은 가죽 주머니에는 얼굴에 면구를 잘 부착시키기 위한 연고가 들어 있다.

애초에 본모습을 감추고 다닐 생각으로 움직이는 경우, 여분의 면구가 있으면 무조건 그것들도 가지고 다니는 게 좋다.

그래야 언제든 또 다른 모습으로 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면구는 무거운 것도 아니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흑풍대 시절부터 학습된 준비성이라고 하겠다.

또 다른 얼굴로 변장을 마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두 번 해보는 것도 아니고 이쯤이야 뭐.

마흔 살가량의 인상 좋은 얼굴이다.

약간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인상이 너무 좋은 게 아닌가 싶다. 대충 만들어서 이렇다.

뭐, 어쩔 수 없지. 언행을 이 얼굴에 맞출 수밖에.

행낭을 단단하게 결속한 후, 또다시 주변의 기척을 확인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 후부터는 천천히 신법을 펼쳐 나루터에 도착한 후, 곧장 여객용 범선에 탑승했다.

곧 배가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잠룡관 방향과는 반대 방향인 남창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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