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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92화 (192/416)

내 안에 마교있다 192

정우립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이상함을 느낀 마당이니 흑도들에 대해서 조사를 좀 해볼 필요가 있다.

남창은 강서의 성도인 만큼, 흑도방들도 남창에 있는 흑도방들이 노른자위일 수밖에 없다. 남창은 인구도 많고 저잣거리도 많으니, 흑도방 놈들이 개입할 이권도 많고 수입도 더 짭짤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웬만하면 남창 쪽의 흑도방들만 조사해 봐도 모종의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예상이다.

가뜩이나 남창에는 서너 곳의 대규모 흑도방들이 몰려 있기에 여러 곳을 조사할 경우에도 더 유리하다.

멀리 움직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흑도 놈들은 내공조차 갖추지 못한 놈들이 대다수이나, 제법 싸울 줄은 아는 놈들이다.

놈들은 일단 깡다구가 좋고 악착같아서 개싸움에 능하다.

임기응변도 제법 뛰어난 편이라 잔머리를 써서 야비하게 싸우기도 한다.

흑도 중에서도 싸움깨나 한다는 놈들은 그 바닥에서 죽을 고비도 몇 번씩은 넘긴 놈들이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생존해온 터라 싸우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한 놈들이기도 하다.

또한, 흑도 놈들을 상대하려면 다수를 상대할 각오를 미리 해야 한다. 뒷골목의 연락책들을 통해 금세 수많은 인원들이 충원되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충분히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흑도 놈들에게 당하는 무인들도 종종 있다. 정식으로 무공 좀 배웠다고 까불다가, 막상 붙고 나면 놈들이 의외로 잘 싸우는 모습으로 인해 당황하는 것이다.

물론 내 경우에는 흑도 놈들 따위에게 당할 일은 없다.

노련한 실전 고수인 데다가 흑도에 대해서도 알 만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 내 입장에서도 주의해야 할 점은 있다.

흑풍대 시절의 경험에 따르면 거대 흑도방들은 대부분 ‘구린 뒷배’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흑도방이 누리고 있는 저잣거리의 이권들은 누가 봐도 충분히 탐나는 이권들이며, 그들이 벌어들이는 재화는 출처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재화들이다. 애초에 힘없는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낸 재화이기 때문이다.

강한 힘을 가진 이들이 그런 재화를 흑도방이 독식하도록 그냥 보고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흑도방과 은밀하게 결탁하는 구린 뒷배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흑도방이 갈취하면 그중에서 일부를 상납받고, 그러면서 흑도방의 행패를 적당히 봐주는 식이다.

구린 뒷배들의 정체는 다양한데, 크게는 두 종류다.

강호세력과 관부다.

강호세력의 경우에는 사파나 천마신교 쪽이 주로 흑도방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동네에 따라서, 또는 상황에 따라서 백도 쪽이 흑도방과 연결된 경우도 적지 않다.

관부에서는 하급 관원이고 고위 관원이고 할 것 없이 많이들 엮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고관대작이 뒷배인 경우마저도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

물론 강호세력이나 관부 모두 흑도방과 대놓고 직접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최소 두세 다리쯤은 건너서 연결되어 있다. 그마저도 위장 신분이나 위장 조직 등을 이용해서 연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까다로운 뒷배들이 존재할 수도 있으며, 만약 천마신교와 연관된 흑도방이라면 섣불리 엮였을 경우 상당히 귀찮아질 수도 있다.

때문에 내 입장에서도 그런 부분 정도는 나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창의 지리는 작년에 조별 파견 임무 때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익힌 바 있다.

당시에 나는 우리 조와 동행했던 남창지부의 무인들에게 인근의 흑도 세력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물어봤었다.

그때 들은 정보에 의하면 남창의 번화가를 대표하는 대규모 흑도방은 세 곳이다.

각각 중심부의 동호방, 중서부의 서호방, 중북부의 청산호방이다.

그 외에도 중대규모의 흑도방 하나가 세를 불리며 대규모로 커가고 있다고 했었다. 그곳은 남부의 청운보방이다.

여객용 범선에서 내린 나는 일단 나루터에서 가장 가까운 청산호방의 구역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번화한 중심 거리에는 주로 식당과 주루가 매우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식당들은 슬슬 정리하는 분위기였으나 주루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이면의 거리에는 주루와 기루, 객잔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나는 청산호방 구역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고자 중심 거리와 양쪽의 이면 거리, 그리고 그 이면 거리에 있는 주요 골목들까지 쭉 한 차례 둘러보았다.

흑도로 여겨지는 놈들이 곳곳에 보이기는 했으나, 제대로 된 행동대원이라고 생각되는 놈들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흑도 놈들이 한창 껄렁껄렁 행패를 부리고 돌아다닐 시간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이상한 일이다.

정우립의 말이 사실인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확인한 후에는 번화가에서 멀지 않은 천변(川邊)으로 향했다.

천변의 길에는 각종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밤중이라 다들 가게 문을 닫았고, 길에는 오가는 인적도 없다시피 했다.

나는 이리저리 몸을 숨기며 은밀히 이동했다.

이윽고 천변길 끝부분의 약간 외진 지점에 허름한 담장이 넓게 둘러 있는 장소가 보였다. 그 담장 안쪽으로 창고 형태의 큼지막한 건물도 보이고 있다.

저곳은 고철상인데, 내가 알고 있기로는 저곳이 바로 남창지부의 무인들한테서 들었던 청산호방의 거점이다.

멀리에서 나무 위에 올라 고철상 쪽을 향해 안력을 집중했다.

경지가 절정인 만큼, 제법 거리가 먼 어둠 속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훑어보니 담장 안쪽의 대지는 상당히 넓었고, 안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하나뿐이었다.

그 대지의 한쪽에 커다란 창고가 세워져 있었고 나머지 공터에는 고철 더미로 보이는 것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었다.

담장 대문의 바로 안쪽에서 세 놈이 경계를 서고 있다.

문밖에서는 그들이 보이지 않겠지만 실제로 그 안쪽에서는 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대문 방향 외에도 담장 안쪽의 사방에 이인 일조의 경계조들이 보였다.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고철상을 여러 명이 저렇게까지 열심히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디 가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창고의 입구 앞쪽도 두 놈이 지키고 있었다.

창고는 얼핏 봤을 때는 불빛 같은 게 보이지 않아서 그 안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놈이 창고의 입구 앞을 따로 지키고 서 있는 것이다.

여러 정황상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보니, 나는 아예 나뭇가지 위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서 잠복을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창고의 입구는 커다란 문짝뿐 아니라 그 가운데에 작은 쪽문도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만 드나들 경우, 굳이 창고의 커다란 문을 여닫을 필요 없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된 문이다.

반 시진(1시간) 하고도 한 식경(30분) 가까이 지난 것 같다.

달과 별의 위치를 확인해 보니 거의 축시 초(밤 1시)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나뭇가지 위에 잠복한 채로 조용히 창고 쪽만 바라보았다.

나는 필요하다면 밤새도록 이러고 있을 작정이며, 날이 밝으면 다른 방식으로 저 고철상을 감시할 계획이다.

내가 이런 식의 첩보활동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다.

잠복이라는 게 운이 좋은 날에는 반 시진 안에도 그럴싸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일단 내일 새벽까지는 이곳에서 감시할 생각이며, 그래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흑도방의 거점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그로부터 일각이 더 지났을 때쯤이었다.

똑똑.

창고의 쪽문에서 난 소리다.

거리가 멀다 보니 소리가 미세하긴 했지만 분명히 들었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순간적으로 회회심공을 운용하며 창고 방향으로 안력과 청력을 집중시켰다.

바깥에 있던 놈들은 가만히 서 있었으니, 창고 안쪽에서 누군가가 쪽문을 두드렸다는 뜻이다.

그러자 쪽문 밖에 서 있던 두 놈이 사위를 한차례 쓱 훑었다. 그러더니 한 놈이 쪽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 직후, 창고의 쪽문이 조용히 열렸다.

밖에 있던 놈들은 가만히 있었으니 안쪽에서 연 것이다.

창고 안쪽에서 은은한 불빛이 보이는 가운데, 그곳에서 쪽문을 통해 열댓 명 정도가 차례로 밖으로 나왔다.

빠져나온 놈들이 서둘러 공터 한쪽에 있는 작은 건물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말없이, 조용히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열댓 놈이 빠져나오는 동안만큼은 쪽문이 계속 열려 있었던 상황이다.

청각을 극도로 집중하고 있었던 만큼, 나는 미세하게나마 창고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목소리들이었다.

“으······, 힘들어 죽겠네, 씨벌.”

“진짜 지옥훈련이구먼.”

“왜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삭신이야.”

“어따, 무공 초식이라는 게 정식으로 배우려니 보통 힘든 게 아니고만.”

“무공 제대로 익힌 놈들이 괜히 강하겠소? 이렇게 힘든 수련들을 수도 없이 반복했으니 강해졌겠지.”

수많은 목소리들이 섞여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명확히 들은 말들은 그런 말들이었다.

그나마도 여러 소리들이 섞여서 웅성거리는 와중에 몇 마디나마 명확하게 구분해낸 것인데, 만약 내가 절정이 아니었다면 이조차도 불가능했을 터였다.

어쨌거나 쪽문을 통해 빠져나온 열댓 놈 외에도 수십 명이 창고 안에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이 된 셈이다.

청력으로는 그런 소리들을 파악해내는 와중에도 내 시선은 쪽문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열댓 놈이 빠져나가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놈 중 한 놈이 쪽문을 닫았는데, 그 와중에도 자세히 보니 쪽문의 문틈을 이루는 부분에 시커먼 뭔가가 덧대어져 있었다. 두툼한 헝겊 내지는 천 따위로 보였다.

용도가 짐작이 되었다.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소리를 차단하는 용도일 것이다.

창고 벽면의 다른 틈에도 저런 게 모조리 덧대어져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창고 안의 불빛이 밖으로 전혀 새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고, 저 많은 인원들이 창고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음이라고 할 만한 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면 이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도 쪽문이 닫혀 있을 때는 창고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길 수밖에 없다.

곧, 쪽문을 통해 빠져나왔던 열댓 놈이 하나둘씩 쪽문 앞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먼저 온 놈들부터 쪽문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는데, 전원이 복귀하면 한 번에 쪽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모양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방금 나왔던 열댓 놈은 측간에 갔다 온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놈들은 측간에 갔다가 복귀하기까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측간에 다녀오는 걸음 소리마저도 최대한 줄이려고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측간에 갔던 놈들 모두가 복귀하자 다시금 쪽문이 열렸다.

역시나 창고 안에서 들려온 말들 중에 쓸모 있는 말들은 아까 들었던 내용들과 비슷했다.

놈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서고 나자 또다시 창고의 쪽문이 닫혔다.

그리고 고철상 전체가 또다시 고요해졌다.

회회심공 운용을 멈추며 한차례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 저것들이 남들의 이목을 속인 채 저런 깜찍한 짓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흑도 놈의 새끼들이 뭐?

무공 초식 수련?

지옥훈련?

정우립은 남창과 포양호 인근의 흑도방이 전체적으로 조용하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흑도방 놈들도 어디에선가 비밀리에 저 짓들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놈들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걸까.

굳이 무공을 배우지 않아도 충분히 본인들이 해오던 짓을 계속 하며 살 수 있는 놈들인데, 도대체 왜.

지금으로서는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나는 잠복한 지 한 시진 만에 상당히 많은 정보들을 입수했다.

운이 좋은 날이다.

이후에도 나는 가만히 앉아서 멀리로 보이는 고철상만 주시했다.

그렇게 한 시진이 더 지나 인시 초(새벽 3시) 남짓이 되었을 때쯤, 또다시 창고의 쪽문 안쪽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번에도 즉시 회회심공을 운용하며 안력과 청력을 쪽문 쪽에 집중시켰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쪽문이 열렸는데, 아까보다 더 많은 놈들이 나오더니 측간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데 안에서 나온 인원들 중에서 두 명은 측간이 아니라 대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그 두 놈을 집중해서 살폈다.

잠시 후, 대문이 열리더니 그 두 놈이 조용히 대문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더니 서쪽 길을 따라 속보로 걷기 시작했다.

두 놈 모두 걸음걸이가 경쾌하며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고 있다. 자세가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중심 이동도 안정적이다.

저건 무공을 상당히 익힌 자들의 걸음걸이다.

무인인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나는 곧바로 나무에서 내려와 은밀하게 두 무인의 뒤를 쫓았다.

미행하는 와중에도 계속 봤는데, 두 놈 모두 일정 수준 이상 무공을 익힌 자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놈들이 무공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기에 경지를 확실하게 짐작할 수는 없으나, 저 정도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일류 이상은 될 것이다.

두 무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민가가 사라지며 서서히 들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판에서는 미행하기가 까다롭다.

그러나 지금은 어두운 새벽이다.

내 은잠술이라면 간격을 조금 더 벌린 후 길가의 둔덕, 덤불, 나무 등을 이용하면 충분히 미행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대한 미행할 생각으로 두 놈의 뒤를 조금 더 따라갔다.

곧 들판으로 진입하여 민가에서 충분히 멀어졌을 때쯤, 두 놈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주변을 쓱 한번 둘러본 후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두 놈 모두 드디어 내공을 사용한 건데, 그 순간에 나는 급격하게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는 제법 익숙한 종류의 기운이었던 탓이다.

사파 놈들의 기운과 비슷한 듯 미묘하게 다른, 바로 그 종류의 기운이다.

기형거검을 휘두르던 놈, 마차(馬叉)를 휘두르던 키 큰 놈, 박도를 휘두르던 왜소한 놈.

바로 그놈들이 풍겼던 기운과 같은 종류의 기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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