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94
도예주도 날이 완전히 밝기 전에 산을 내려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조용히 신법을 펼치며 일단 하산부터 했다.
신법을 펼치는 내내 도예주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도 굳이 말을 걸지 않고 신법만 펼쳤다.
서로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우리가 신법을 펼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이 일에 대해 도예주는 아직까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유추할 수 있다.
신룡대가 조사하고 있을 정도라면 이 사안이 상당히 중요한 사안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금세 산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예주가 적당히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작은 계곡물 근처에서 멈췄고, 나도 그녀를 따라 멈췄다.
곧 도예주가 계곡물 옆에 쪼그려 앉더니 한 손을 물에 담갔다. 그러면서 나를 불렀다.
“이리 와봐, 유겸아.”
물장난을 하려고 부르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순순히 다가갔다.
그녀의 옆에 쪼그려 앉자 그녀가 작은 천에 물을 적셔서 살짝 짜더니 말했다.
“가만히 있어 봐.”
이윽고 도예주가 젖은 천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아마도 면구를 착용할 때 썼던 접착제가 굳어서 약간씩 얼굴에 붙어 있었던 모양이다.
다 닦았는지, 도예주가 만족스럽다는 듯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됐다.”
겪어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누나의 다정함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고마워요, 누나.”
내 말에 도예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제 면구 다시 써. 애초에 너도 모습을 감추고 다닐 생각이었던 거잖아.”
“네.”
아까 품속에 넣어뒀던 면구를 다시 꺼내고 행낭 안에서 접착제로 쓰는 연고도 꺼냈다.
그러자 도예주가 연고가 들어 있는 작은 가죽 주머니를 받아 들더니 말했다.
“아, 내가 붙여줄게.”
“아······, 네.”
도예주가 연고를 내 얼굴에 잘 펴 발라 주더니 능숙한 손길로 면구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이 인조면구, 네가 만든 거야?”
“네.”
“잘 만들었네?”
대견스럽다는 듯 칭찬해주는 어조다.
실은 대충 만들었던 건데, 도예주가 볼 때는 비전문가가 만든 것치고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사실 그녀가 안력을 최대한으로 돋워도 안 들킬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 능력이 있지만, 지금은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는 식으로 대답해야겠지.
“아하하, 열심히 만든다고 만들어 봤는데 어렵더라고요. 가뜩이나 누나한테는 금방 들키기도 했고.”
“내가 이런 쪽으로는 전문가다 보니 금방 알아챘던 것뿐이야. 잠룡관도 수준에서는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
“아하하.”
내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도예주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본인의 얼굴에 둘렀다.
검은색의 면사였다.
이제 날이 밝은 만큼 복면을 쓰고 다니는 건 적절치 않기에 면사를 착용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인적이 드문 경로들을 통해 신법을 펼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유겸이 실력에 뭘 못 할까 싶기는 한데, 아까 보니까 미행 실력도 대단하더라?]
[하하. 그냥 들키지 않고 따라간다는 생각으로······.]
[그 밧줄 다리 없었으면 끝까지 따라갈 작정이었겠지?]
[예, 뭐······.]
[원래는 위험하니까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너한테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네. 가뜩이나 너는 강하기도 강하지만 빠르기도 엄청나게 빨라서 웬만한 위험에는 대처가 될 테니까.]
그렇게 말한 도예주가 나를 보며 빙그레 웃어주기에 나도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예주의 전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네가 쫓았던 자들이 뭐 하는 자들인지는 알아?]
[저잣거리의 흑도들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모양이더군요. 그것도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가면서.]
도예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기색이다.
이후에도 그녀와 더불어 그 사안에 관련된 이야기를 좀 더 주고받았는데,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분위기를 보아하니 남창과 포양호의 다른 흑도방들에서도 청산호방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또한 내 예상대로였다.
도예주에게 물었다.
[그자들은 왜 저잣거리의 흑도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있는 걸까요? 누나도 잘 알겠지만 흑도 놈들이 단기간 무공을 배운다고 해서 그들의 개싸움이 갑자기 무예가 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도예주는 대꾸하지 않은 채 묵묵히 달리기만 했다.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상식적으로는 쓸데없는 짓이나 마찬가지라서 원래는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갈 생각이었어요. 한데 가르치는 놈들, 즉 내가 아까 미행했던 놈들이 풍기던 위험스러운 느낌을 확인하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겠더군요. 누나도 알 거 아녜요. 놈들이 풍기는 그 위험한 기운의 궤가 누구와 닮아 있는지.]
도예주는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은 채 묵묵히 신법을 펼치기만 했다.
동갑도에서 마차를 휘두르던 키 큰 놈과 박도를 휘두르던 왜소한 놈을 상대할 당시에 도예주도 나와 같이 싸웠었다. 심지어 우리는 함께 그 두 놈을 처치하기까지 했었다. 제갈수광도 끼어 있었고.
당시 그 두 놈의 기운과 아까 그놈들이 풍기는 기운의 궤가 같다는 걸 도예주가 못 알아챘을 리 없다. 그녀는 신룡대의 조장이니까.
잠시 후에 도예주가 말했다.
[그전에 하나 물어보자. 유겸이 너, 혼자서라도 이 일에 대해 계속 조사할 계획인 거야? 각오가 그래 보여서.]
[네.]
내 단호한 대꾸에 도예주의 눈빛이 약간의 당황감을 담았다.
[학기중인데 잠룡관은 어쩌려고?]
그 말에 내가 대답 대신 피식 웃어 보이기만 하자 도예주가 납득했다는 듯 바로 말을 보탰다.
[하긴, 너한테 잠룡관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도예주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맹에서 비밀리에 펼치고 있는 첩보 작전이야. 당연히 극비 사안이지만 네 경우에는 예외가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해. 너는 자체 조사를 통해 이미 핵심 정보에 근접한 데다가, 이 사안에 있어 앞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우리로서도 협력하는 게 이득인 존재인 거지.]
신룡대의 조장인 만큼 도예주는 이런 종류의 사안에서 현장 최고 책임자의 권한을 갖는다.
그렇기에 정보에 대한 일차적인 통제 및 공유 권한도 그녀에게 있다. 그래서 저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단, 내게서 들은 정보들을 허가 없이 타인에게 발설해서는 안 돼. 그 경우에는 네가 아무리 잠룡관도라도 맹으로부터 큰 징계를 받을 수 있어.]
[네.]
내가 짧게 대꾸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도예주도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네 말대로 흑도가 단기간 무공을 배운다고 해서 갑자기 무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래도 단전이 형성된다면 놈들의 전투력은 현 수준에 비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겠지.]
말 자체는 맞는 말이기는 하다.
단전이 형성되어 어설프게나마 축기를 할 수 있게 되고 엉성하게나마 공력을 쓸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래도 무인으로 여긴다.
삼류무인인 셈이다.
비록 삼류라 해도 무인은 무인이다. 공력이 있기에 일반인들과는 확실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러다가 공력 활용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병장기에도 내력을 담을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는 통상 이류무인으로 친다.
싸움 좀 한다는 흑도 놈들은 길거리 건달들에 불과하여 단전조차 형성되어 있지 않은 놈들이 대부분이다.
한데 그런 놈들이 삼류 수준이나마 무공을 익히면, 그들은 어설픈 초보 삼류무인이 아니라 미친개처럼 악착같이 싸울 수 있는 삼류무인이 된다. 원래 싸울 줄 아는 놈들이었던 만큼 백도의 웬만한 이류무인들 정도와도 견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단전을 형성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래요. 단전이 있고 그 안에 한 줌 공력만 존재해도 그걸 운용하는 방법이야 어떻게든 배울 수 있겠죠. 흑도 놈들은 애초에 개싸움도 잘하는 놈들이니, 한 줌 공력을 운용할 수 있다면 전투력의 차원도 달라질 테고요.]
도예주를 향해 바로 전음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일단 단전이 존재한다는 게 전제가 되어야 하잖아요? 한데 단전이라는 게 마음먹는다고 해서 뚝딱 형성되는 게 아니잖아요. 몇 년을 밤낮으로 수련해도 단전의 감조차 못 잡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거, 누나가 더 잘 알잖아요?]
그게 쉬웠으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무인 아닌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누구든 최소한 삼류무인 이상은 되었을 테니까.
도예주가 대꾸했다.
[우리는 그자들이 어떻게든 단전을 형성시켜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 우리가 모르고 있는 모종의 위험한 방식 같은 게 존재할 가능성을.]
[예에? 아무리 수많은 가능성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해도 그건 상식선을 너무 벗어난 가능성이 아닐지······. 사파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마교조차도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천마신교에도 어떻게든 단전을 형성시켜주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천마신교의 특성상 어떻게든 활용했을 텐데, 나는 그런 방법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전혀 없다.
흑풍대였던 데다가 사부님의 최측근이었던 나조차도 들은 바가 없다는 건, 적어도 천마신교에는 그런 방법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파나 마교보다 훨씬 더한 또라이들이라면 어떨까? 이를테면 혈교 같은.]
그 말에 나는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놀라서 신법도 멈췄을 정도였다.
혈교.
당연히 나 또한 무림사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 혈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껏 혈교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었던 이유는, 그들이 이미 삼백 년쯤 전에 완전히 멸망하여 그 후로는 존재 자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천마신교에 있을 당시에 접했던 수많은 정보에도 혈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내 인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기에 그들이 다시금 등장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를 해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토록 놀란 이유는, 도예주한테서 그 이름을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겪어본 그놈들의 기운은 감각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 기운이었다.
사파 놈들의 기운처럼 성질은 매우 탁하지만, 사파 놈들과 달리 흐름 자체는 상당히 잘 정돈된 기운이었다.
놈들의 기운에서는 아득한 피의 광기가 느껴지기도 했었다.
가뜩이나 놈들은 비슷한 경지라도 기본적으로 사파 놈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느낌을 풍겼었다.
이는 충분히 혈교로 의심해볼 만한 특징들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납득이 되어 놀란 것이고.
[정말로 혈교인 거예요?]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 추정하고 있는 단계야.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혈교로 추정되는 저들의 뿌리를 조용히 찾아내는 게 무림맹의 목표야.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게 조사에 임하고 있는 거고.]
혈교라는 이름이 나온 것만으로도 이 사안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렇기에 무림맹의 수뇌부에서도 이 일을 조사하는 일에 신룡대를 투입한 것이다.
[만약에 누나가 말한 대로라면 흑도들이 은밀하게 무공을 배우고 있는 저러한 현상은 이곳뿐만 아니라 중원의 수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겠군요? 혈교쯤 되는 자들이 일을 추진하는 규모가 겨우 일부 지역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을 테니까. 겨우 이곳만의 문제였다면 애초에 무림맹에서도 그런 규모의 놈들을 혈교라고 추정하지도 않았을 테고.]
내 말에 도예주가 말없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더니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눈치도 빠르고 똑똑하고. 하긴 그러니 그 나이에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거겠지.]
[아하하, 그런 칭찬 들을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도예주가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아직 잎사귀에서 잔가지들을 찾아가는 단계에 불과해. 그 잔가지들 여러 개를 찾아야 제대로 된 가지를 찾을 수 있고, 또 그 가지들 여러 개를 찾아야 제대로 된 큰 가지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후에야 줄기를 찾고 뿌리를 찾게 될 텐데, 그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예주가 말을 이었다.
[즉, 이렇듯 잔가지를 찾아가는 단계에서는 굳이 네 도움까지는 필요치 않다는 뜻이야. 나중에 중간 가지를 찾고 큰 가지까지 찾아야 할 때쯤 되면 그때는 나와 우리 조원들만의 역량으로는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지겠지. 그때 도움을 청할 테니 그전까지는 잠룡관에 가서 얌전히 수련이나 하고 있어. 알았지?]
다정한 표정으로 동생을 타이르듯 말하고 있다.
사실 그녀의 말대로이긴 하다.
굳이 내 힘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데도 신룡대가 잠룡관도인 나를 끌고 다닐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알았어요.]
내가 흔쾌히 대꾸하자 도예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음이 아닌 육성으로 말했다.
“배고프다. 밥 사 줄 테니 밥 먹고 가.”
“내가 살게요. 이래 봬도 나름 부잣집 출신이거든요.”
“후훗. 누나가 사 준다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야. 얼른 가자.”
도예주가 그렇게 말하더니 내 팔짱을 끼고 나를 이끌었다.
“아, 알았으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붙어 갈 필요는······.”
가슴, 내 팔에 닿고 있잖소! 당신도 알 것 아니오!
하지만 도예주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정한 어조로 대꾸할 뿐이었다.
“후훗, 얼굴 빨개졌네? 귀엽긴. 암튼 가자.”
‘암튼’이라고 말하며 결국 팔짱은 풀지 않았다.
이보쇼 누님! 이 몸이 너무 혈기왕성한 나이라서 이 정도도 자극이 너무 세단 말이오!
끌려가듯 따라가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속으로 동요를 불렀다.
그것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어, 나는 종종 대사형이었던 위지광 그 개새끼 욕을 하다가 다시금 동요를 부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