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196
소검의 모양새는 근래의 표준 형태와 제법 다른, 고풍스러운 느낌이었다. 때문에 이 검을 오래된 물건이라고 판단한 것이기도 하다.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소검의 검병(검의 손잡이)을 잡고 들어 올린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스으-
모종의 깊고 아득한 느낌이 전신을 빠르게 한차례 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정말 깜짝 놀랐다.
한데 이상한 건, 깊은 아득함 속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친숙함과 반가움이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뭐지?
고개를 갸웃하며 검신에 손가락을 대었다.
스으으으-
나는 또다시 흠칫했다.
이번에도 모종의 아득함과 친숙함 등이 전신을 한차례 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검신을 만졌기 때문인지 그 느낌들이 아까보다 훨씬 더 크기도 했다.
이쯤 되니 알 것 같다.
이 소검은 마인이 지녔던 소검이다.
물론 검에 마기가 깃들어 있거나 한 건 아니다. 그랬다면 이렇듯 백도의 전리품으로 진열되기 전에 이미 목록에서 배제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마기까지는 아니어도 마의 혼이 서려 있다는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마인이 아꼈던 소검일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아득한 느낌과 함께 친숙하고 반가운 느낌을 받았을 테고.
아득함이 매우 크다는 건, 이 소검을 썼던 마인이 상당히 강력한 혼의 소유자였다는 뜻이겠지.
이건 내가 몸뚱이는 백도지만 혼은 마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다.
이 소검은 전리품이니 해적과의 전쟁 당시에 입수한 물품일 것이다.
해적들이 노략질을 했다가 창고에 넣어뒀던 물건일 수도 있고 사파 놈들이 지니고 다녔던 물건일 수도 있다.
튼튼하고 좋은 무기는 생명력이 길기에 본디 오랜 세월 돌고 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인이 쓰던 걸 해적 내지는 사파 놈들이 쓰다가 결국 백도에서까지 쓰게 된다는 게 나름 재미있기는 하다. 가뜩이나 백도에서도 특이한 존재인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뭐 하나?”
한참 동안 소검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제갈수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갈수광도 어느새 내가 서 있는 오른쪽 벽면으로 이동해 있는 상태였다.
곧 그가 다가오더니 내가 들고 있는 소검을 눈으로 찬찬히 살폈다. 그러더니 물었다.
“마음에 드나? 아까부터 한참 동안 보고 있던데.”
“아, 네. 뭐······.”
내 대꾸에 제갈수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또한 이 검에서 대단한 인상을 받지는 못한 모양이다.
“잠시 좀 살펴보고 싶군.”
이에 나는 제갈수광에게 순순히 소검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손잡이를 받아 드는 제갈수광을 유심히 살폈는데, 역시나 흠칫하는 기색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후에 제갈수광도 검신을 쓰다듬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은 했지만 아득한 느낌은 마의 혼을 지닌 내게만 작용했던 모양이다.
한동안 소검을 살피던 제갈수광이 그걸 다시 내게 건네며 물었다.
“이걸로 정할 생각인가?”
“예. 소검이다 보니 추가로 지니고 다니기에도 간편할 것 같아서요.”
“예전에 전리품으로 택했던 검을 보고는 병장기 고르는 눈썰미가 제법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대단한 눈썰미는 아니었던 모양이군.”
제갈수광이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 이보쇼! 무시하지 마시란 말이오! 이 소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 전에 마도의 길을 걸었던 선배께서 지녔던······!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물론 그것도 쓸 만해 보이기는 해.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지금까지 살펴봤던 소검들 또는 단검들 중에도 그보다 좋아 보이는 것들이 몇 개는 더 있던데.”
나야 뭐 특수한 입장이라서 이 소검의 특별함을 눈치챈 거지만, 제갈수광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저런 식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하, 그래도 저는 그냥 이게 손에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제갈수광이 대충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시든가’ 정도의 표정이다.
제갈수광이 고른 건 활대가 암갈색인 활이었다.
실은 나도 지나오면서 봤던 활이다.
굳이 만져보지는 않았으나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느낌을 풍기던 활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택하려고 마음먹었던 몇 개의 후보군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걸 제갈수광이 고른 것이다.
제갈수광에게 물었다.
“동갑도에서 적측 궁수가 무음시를 날렸던 그 활일까요?”
동갑도에서 도예주를 노렸던, 그리고 이후에도 몇 차례 우리를 노렸던 그 무음시는 매우 강력했었다. 일전에 태화지부에서 겪었던 무음시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무음시였다.
궁수의 실력도 빼어났겠지만 활 자체의 성능 또한 뛰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기는 한데.”
불편해서 평소에 지니고 다니지는 않으나, 제갈수광은 이미 좋은 활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좋은 활이라고 들었다.
그런 제갈수광이 전리품으로 굳이 또 활을 고른 것이다.
“명궁이시다 보니 역시나 명궁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수집용입니까?”
앞의 ‘명궁’은 명궁수라는 뜻이고 뒤의 ‘명궁’은 좋은 활이라는 뜻이다.
“아니. 나는 딱히 수집욕 같은 건 없다. 단순히 수제자 챙겨주려고 고른 것뿐.”
“아하하, 굳이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 어쨌든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내 말에 제갈수광이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말했다.
“나는 궁술 수제자 말한 건데. 즉, 너 말고 송유하.”
“크흠.”
“너는 송유하가 지금 쓰고 있는 활이나 물려받아서 쓰도록. 현재의 네 궁술 실력으로는 그것도 과분하니까.”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저건 내게도 활을 챙겨준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다.
제갈수광의 말마따나 그가 저 활을 송유하에게 챙겨주면, 송유하가 쓰고 있는 활은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기 때문이다.
송유하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활도 충분히 좋은 활이다.
가뜩이나 내게는 은룡삭도 있다.
“감사합니다.”
내가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아, 마침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예.”
“송유하의 궁술 말이야. 못 보던 새 또 엄청나게 늘었더군. 원래도 뛰어났던 실력이라 그 상태에서 그렇게까지 성취가 상승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 나조차도 그 성취 속도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야. 무공이 늘어서 그런 건가······.”
제갈수광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물론 나는 송유하의 궁술 성취가 계속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다.
송유하의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 성취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승휴는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성취가 최소 삼성 이상씩인 상태에서, 궁술에 약간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인근에서 능히 명궁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듯 써놨었다.
송유하의 경우에는 이미 두 무공의 성취가 사성이 넘었다.
게다가 궁술 재능은 명궁수인 제갈수광이 인정한 자질이며, 무엇보다도 송유하 본인이 궁술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체적인 여건이 그렇다 보니 궁술 실력도 쑥쑥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윽고 우리가 문을 나서자 집무 탁자에서 서류를 훑고 있던 제삼각주 양석광이 우리의 전리품들을 확인했다.
암갈색의 활을 보며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이던 양석광이 소검을 보면서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나 이 사람이 보기에도 내 선택이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물론 양석광은 그러한 속내를 굳이 말로 내뱉지는 않았다.
전리품 인수 대장에 서명한 우리는 양석광과 인사를 나눈 후에 곧바로 동부지맹을 벗어났다.
적당한 속도로 신법을 펼치며 이동하던 제갈수광이 어느 순간 신법을 멈추더니 걷기 시작했다.
저 앞에 잠룡관이 보이는 지점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제갈수광이 말했다.
“얘기해줄 게 있다.”
“예.”
“알다시피 이번에 계반 실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계반으로 입관한 신입생들이 많잖나. 송유겸이 너 때문에.”
이 인간이 ‘송유겸이 너 때문에’라는 부분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계반 담당 교관이고.”
“아하하······.”
나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의미이니 어색한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제갈수광이 말했다.
“계반은 원래 정해진 수업 시간이 없는 대신 무공을 배우고자 하는 관도가 개별적으로 교관을 찾아가야 하는 체계지. 꾸준한 지도가 필요하면 교관과 해당 관도 간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교육을 이어가는 방식이고. 하지만 계반의 관도들 중에 그런 관도들은 매우 적은 게 사실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한데 올해의 계반 신입생들 중에는 무공을 지도해 달라며 찾아오는 관도들이 너무 많다. 애초에 실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계반으로 입관한 녀석들이 많은 탓이지. 몸은 계반에 있을망정 다들 수련은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더군. 덕분에 나는 바빠 죽을 지경이다. 송유겸이 너 때문에.”
이 인간이 ‘송유겸이 너 때문에’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아하하하······.”
“그래서 조치 좀 취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총교관실에 갔다. 마침 관주님도 같이 계시더군. 어쨌거나 이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총교관님께서는 매우 난감해하셨다. 현재 우리 잠룡관에 교관의 수가 전체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 갑자기 계반에 교관을 지원해줄 만한 여유가 없다고 하시더군.”
제갈수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자 관주님이 대안을 제시해주셨다. 어차피 당장 교관을 확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만큼, 일단은 있는 자원이라도 활용하자고. 마침 계반의 재학생 중에 외부 검증이 끝난 실전 고수들이 두 명이나 있으니 그 인력들을 활용하자고. 그게 관주님의 의견이셨다.”
갑자기 불길함이 엄습해 왔기에 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제갈수광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제갈수광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보조 교관, 즉 조교의 형식으로 너와 길초량을 활용하자는 뜻이신 거지.”
제갈수광을 향해 즉시 대꾸했다.
“하핫, 제 생각에도 길 형이라면 조교 역할을 충분히 훌륭하게 수행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관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모난 성격에 염세주의자입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겁니다.”
“후후, 그럼, 그럼. 네 성격이 모났다는 사실이야 내가 잘 알고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정도의 성격도 문제 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음주 중독에 까칠한 성격의 나조차도 제법 좋은 교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모양이거든.”
아, 역시나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아하하하, 가뜩이나 저는 누군가를 이끌거나 가르치거나 하는 쪽의 역량이 전혀 없습니다.”
“아, 그 부분도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네가 애들을 이끌지 않아도 애들이 알아서 너를 따를 테니. 겨우 신입생 주제에 어떻게 감히 우리 송유겸이를 안 따르겠나?”
제갈수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또한 송유하의 무공 성취가 그렇듯 성장한 걸 볼 때 가르치는 쪽의 역량도 전혀 걱정이 안 되는군. 애초에 송유하를 가르쳤던 정도로 애들을 가르치라는 것도 아니니.”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맹렬하게 회전시키고 있는데 제갈수광이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은 채로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나는 내 수제자인 송유겸이가 선생이 고생하고 있는데도 제 한 몸의 편함만 추구하는 싸가지 없는 제자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거든. 암, 그렇고말고. 가뜩이나 우리 송유겸이는 신조가 바로 군사부일체잖아, 군사부일체.”
아, 군사부일체 저 말을 이런 때 써서 되받아치다니.
이 정도면 거의 외통수다.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제갈수광이 씩 웃더니 말했다.
“대충할 생각일랑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관주님과 총교관님께서도 이미 너와 길초량을 계반의 임시 조교로 임명하셨거든. 지금쯤이면 임명장이 나와 있을 거고. 아! 보조 교관도 교관이니, 임시직이지만 봉급도 제대로 나올 거다. 좋지?”
내가 봉급 같은 게 필요 없다는 걸 빤히 아는 사람이니, 결국 놀리려고 저러는 거다.
제갈수광의 얼굴에서 기분 좋은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반대로 나는 계속해서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내가 아무리 싸가지 없는 제자라도 선생님 앞에서 대놓고 계속 한숨을 쉬며 싫은 티를 낼 수는 없는 거잖아?
잠룡관의 정문을 통과한 후에 제갈수광이 말했다.
“아이들의 실력 편차가 다양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지도를 위해서 일단 실력별로 분류를 했다. 내가 파악한 계반 신입생들의 실력을 기준으로 최상위군, 중상위군, 중하위군으로 나눴지. 네게 최상위군을, 길초량에게 중상위군을 맡기고 나머지는 모두 내가 맡을 것이다.”
“아······.”
“내가 맡는 중하위군에 인원이 많다. 그러니 너와 길초량은 몇 명씩만 맡아서 지도하면 될 것이다. 즉, 그 몇 명씩에 한해서는 너희들이 담당 교관인 셈이다. 상식선만 지키면서 너희들이 알아서 지도하면 된다. 뭐, 네 경우에는 최상위군의 아이들이니 별로 답답하지도 않을 테고.”
“예······.”
“모아놓고 지도하면 될 것이다. 일과시간 네 시진(8시간)을 기준으로 한 주에 최소 이틀 이상은 지도하도록. 두 시진(4시간)을 기준으로 한 주에 나흘을 지도해도 상관은 없다. 이상, 나는 총교관실에 좀 들러야 하니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질문하도록.”
말을 마친 제갈수광이 신법을 펼치며 멀어져갔다.
그제야 나는 오래오래 참았던 한숨을 길게 내쉴 수 있었다.
“후우우우우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