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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197화 (197/416)

내 안에 마교있다 197

거처로 돌아왔다.

오면서 보니 거처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관도들은 확실히 사라진 모습이었다.

다만 멀리에서 지켜보는 시선들 몇 개 정도는 여전히 느껴졌다. 이 정도도 며칠 전에 비하면 약간 줄어든 것이다.

낮에는 방 안에서 회회심공만 운기했다.

운기조식에 의한 축기 효율이 증가한 후부터는 굳이 통각을 이용한 축기를 추구하지 않아도 되니 그게 참 편해졌다.

신시초(오후 3시)쯤에는 송유하가 활을 들고 찾아왔다.

“제갈 교관님께서 감사하게도 새 활을 주셨어요. 제가 쓰던 것은 오라버니에게 갖다 주라고 하셔서······.”

내가 잠룡관에 돌아왔다는 얘기도 제갈수광한테서 들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기분 좋다.

내게도 처음으로 그럴듯한 활이 생긴 것이다.

“오라버니의 궁술 실력도 궁금해요. 제갈 교관님께서 그러시는데 실력이 매우 빠르게 상승해서 지금은 무시 못 할 실력이라고 하시더라구요.”

“하하, 아직 그냥 흉내 정도나 내는 수준이야.”

참고로 단목세가에 머물 당시에 꾸준히 열심히 쐈기에 내 궁술 성취도 조금 더 상승한 상태다.

“시간 날 때 같이 가서 활 쏴요.”

“그러자. 그러면서 누이한테 궁술도 좀 배우고, 좋지.”

“제가 오라버니를 가르칠 만한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필요로 하신다면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수업이 없는 시간이라고 하기에, 오랜만에 송유하를 실내 연무장에 데리고 가서 무공 성취를 점검하고 수련을 도와줬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더 부지런히 송유하의 수련을 도와줄 계획이다.

혈교가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혈교는 사파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놈들이다. 그런 만큼 송유하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조금이라도 더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후에 그녀와 같이 구보까지 마치고 거처에 돌아왔더니, 방문 안쪽에 서신 봉투가 떨어져 있었다.

열어 보니 제갈수광이 보낸 통지서였다.

내일 사시초(오전 9시)까지 계반 실내 연무동의 십구 호 실내 연무장으로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조교 일 때문이리라.

씻고 나서 또다시 운기조식을 취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

다음 날 시간에 맞춰서 실내 연무장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여섯 사람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제갈수광이며, 다섯 명은 관도들이다.

참고로 관도들 중에서 한 명은 나름 반가운 얼굴이었다. 내 옆 거처의 거주자인 명호운이다.

“안녕하십니까, 교관님.”

내가 인사하자 제갈수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어, 왔나. 어제 말했던 조교 일로 부른 거다. 얘들이 네가 맡아야 할 아이들이다.”

“아하하······, 예.”

그러자 제갈수광이 관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이 다들 잘 아는 송유겸이다. 인사하도록.”

그러자마자 다섯 관도가 일제히 나를 향해 포권했다.

“안녕하십니까, 조교님!”

“아하하······, 안타깝게도 안녕하지는 않소.”

관도들을 향해 그렇게 대꾸해 주자 포권을 푼 관도들이 민망함 깃든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갈수광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나를 째려보고 있다. 인사를 제대로 받아 주라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아, 반갑지 않다는 뜻은 아니오. 아하하하······.”

내 말에 제갈수광이 낮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그럼 나는 가 볼 테니 알아서 하도록.”

제갈수광이 곧 실내 연무장을 벗어났다.

제갈수광이 떠나자 실내 연무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명호운을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을 천천히 살폈다.

계반의 신입생들 중에 최상위군이라고 하더니 딱 보기에도 다들 실력이 있어 보인다.

“기대도 안 했는데 이런 식으로 송유겸 선배님한테서 지도 받을 기회가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설렙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명호운이 특유의 싹싹한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하하,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구려, 명 공자.”

내가 대꾸하자 명호운이 말했다.

“이제 선배님과 저희들의 관계는 조교와 관도의 관계이니 그냥 편히 하대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쓱 돌아보니 나머지 네 명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내 생각에도 그냥 하대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어쨌거나 얘들을 상대하는 일은 내 입장에서 귀찮은 일인데, 그 와중에 말까지 꼬박꼬박 높여 줄 수는 없잖아.

“그러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명호운의 옆에 서있는 관도는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졌다.

자세히 보니 내가 아는 원을태의 얼굴과 어느 정도 닮았음을 알 것 같다.

얘가 바로 원추엽이라는 그 아이일 것이다.

일전에 유은무와 장우혜가 본인들이 파악한 원추엽의 실력에 대해 말해 준 바 있었다. 나도 그 얘기를 들으면서 원추엽이 대형 후기지수급일 거라고 짐작하기도 했었다.

직접 보니 확실한 것 같다.

작년에 입관했을 당시의 장우혜보다는 못하지만 유은무보다는 나은 느낌이다.

괴물일 거라고 짐작은 했었는데 정말로 괴물인 것이다.

손자를 이렇게 잘 키워 내다니, 역시 원을태라는 생각이 든다.

“이름이?”

누군지 빤히 알지만 일단은 초면이니 물어본 것이다.

“원추엽이라 합니다.”

두세 차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다음 관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음 관도도 나름 반가운 얼굴이었다.

그 소녀다.

며칠 전에 내 거처 앞에 몰려왔었던 이들 중에 끼어 있었던, 은잠술에 매우 능통한 그 소녀다.

키도 작고 체구도 작아서 겉보기에는 그냥 예쁜 여자 아이 느낌의 소녀지만, 실상은 얘도 내 짐작으로는 일류고수다.

즉, 얘도 원추엽처럼 괴물인 것이다.

이렇게 예쁘장한 여자 아이한테 괴물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한데, 실력 면에서는 분명히 괴물인 게 맞다.

“넌 이름이?”

내가 짧게 말하자 소녀가 대꾸했다.

“시, 심산화라구······, 합니다.”

목소리도 앳되다.

대꾸한 후에 약간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나를 살짝 올려다보고 있는데, 어이구야, 엄청나게 귀엽다.

심산화라.

그녀에게 궁금한 게 많으나, 지금은 다른 아이들도 듣고 있으니 나중에 개인적으로 묻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담당 조교이니 이것저것 물어보기는 편하겠네.

내 입장에서 명호운과 심산화는 나름 구면이었고 원추엽은 구면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나머지 두 명은 완전히 처음 본다.

며칠 전에 내 거처 앞으로 몰려왔었던 인파에 끼어 있었다면 낯이라도 익었을 텐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때 없었던 애들인 것이다.

남관도 하나와 여관도 하나다.

그리고 얘들도 내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일단 남관도는 크다.

내 키도 큰 편인데 그런 나보다도 머리통 하나가 더 위에 있다.

거기에 덩치마저 우람하다 보니 더 크게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심산화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인상은 상당히 우락부락한데, 눈동자와 표정은 왠지 내 시선으로 인해 잔뜩 긴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긴장하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산만한 덩치에 인상도 우락부락한 놈이 생긴 것답지 않게 뭘 저렇게까지 긴장을 해?

누가 보면 내가 괴롭히고 있는 줄 알겠네.

“몇 살이지?”

“왕철양이라 합니다.”

“나이, 나이.”

“헛! 헙! 여, 열일곱 살입니다.”

짜식이 다른 애들처럼 이름을 물어보는 줄 알고 이름부터 대꾸한 것이다. 긴장한 탓이다.

실수가 창피한지 얼굴이 벌게져 있다.

뭐, 이름은 안 물어봐도 되겠군.

그나저나 열일곱 살에 저 덩치라니.

아직 열일곱 살에 불과하니 저기에서 더 클 가능성도 있다. 물론 조숙해서 저 나이쯤에 성장이 거의 멈추는 애들도 있긴 있지만.

확실히 점검해 봐야 정확해지겠지만, 딱 보기에 무공 실력은 이 다섯 명 중에서 가장 딸리는 느낌이다.

그래도 저 정도의 거구는 흔히 보기 어렵다 보니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여관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도 내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고 있는 아이다.

내 시선이 닿자 소녀가 말했다.

“포연월이라 합니다.”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포연월은 날렵한 몸매에 신장은 평균쯤이다.

용모도 예쁘장한데, 사실 저 얼굴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고얀 것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된 면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 정도 되는 전문가라서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고.

더욱 내 호기심을 자극한 건 이 포연월이라는 소녀의 분위기다.

딱 봐서는 강해 보이지 않고 평범한 느낌이다.

한데 그건 포연월이 평범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러우면서도 거슬림이 없는 기도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내공을 익힌 것이다.

저런 식이면 무공 경지도 잘 드러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데, 나름 회회심공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포연월의 경지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한데, 이 또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애들을 보고 나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어느 정도는 실력들도 되니 내 입장에서는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말했다.

“계반에서 실력이 가장 좋은 신입생들이라고 하더니 직접 보니 생각 이상이네? 다들 그런 실력으로 왜 굳이 계반에 온 거야? 이유나 들어 보자. 명호운부터.”

나는 임시 조교일 뿐, 얘들의 상관 같은 게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얘들과도 잠룡관의 동도일 뿐이니 굳이 상관이 부하를 대하는 듯한 말투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는 친구인 추엽이 따라서······.”

그러자 원추엽이 말했다.

“저는 조부님의 뜻에 따라서.”

내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심산화가 말했다.

“저는 송유겸 선배님, 아니, 조교님을 뵙구 싶어서······.”

그 말에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긴, 쟤는 며칠 전에 내 거처 앞에 몰려 있던 인파들 속에 섞여 있던 애였지.

내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왕철양이 민망함 가득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저, 저는 배치 심사 날을 착각해서 그 다음날에 왔더니 자동적으로 계반으로 배치가 되어 있어서······.”

본인이 말하면서도 창피한지 얼굴을 붉히며 뒷머리를 긁고 있다.

그런 날을 착각하는 놈이라니.

똑똑한 느낌은 아니었는데, 역시나 둔한 면이 좀 있는 것 같다.

다만, 거구에 인상이 우락부락한데도 저렇게 웃을 때 보면 순박하고 착해 보이기는 한다. 창피해하며 웃는 눈동자가 사슴 같아 보일 정도다.

말 잘 들을 것 같은 느낌이다.

포연월이 말했다.

“저는 송유겸 공자님, 그러니까 조교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계반으로 입관했습니다.”

인피면구 쓰고 있는 애 치고는 대답이 솔직하네.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말했다.

“일단 전령이 필요할 것 같네? 내가 너희들에게 공지할 사항을 알려 주면 모두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이지. 마침 명호운은 내 바로 옆 거처라서 명호운에게 맡기면 나도 편할 것 같은데. 명호운 본인 말고 반대하는 사람은 거수.”

심부름하는 역할인데 여기서 반대하면 본인이 하겠다는 뜻이 된다.

역시나 손 드는 아이들은 없었다.

명호운이 말했다.

“아, 제게 그런 중책을······.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중책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어쨌거나 내가 박수를 치자 나머지 애들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이후에 다시금 아이들에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실전 대비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라는 게 내가 받은 지시야.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너희들 각각의 실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특성도 알아야 하겠지?”

“예.”

“때문에 일단은 한 사람씩 실력을 점검해 보고 겸사겸사 면담도 진행할까 해. 그러는 동안에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이 내 입을 통해 남에게 발설될 일은 없을 테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단, 제갈 교관님하고는 상의할 수도 있어.”

아이들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 시진씩 진행할 거야. 순서는 아까의 역순으로, 포연월, 왕철양, 심산화, 원추엽, 명호운 순서야. 일단 포연월부터 진행할 테니 나머지 네 사람은 시간 되면 알아서 이곳으로 오도록 해.”

“예.”

“그래. 포연월을 제외하고 일단 해산.”

곧 네 명이 밖으로 나갔고 실내 연무장에 포연월과 나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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