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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02화 (202/416)

내 안에 마교있다 202

“아하하,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이라는 게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인가 보군요. 짜깁기를 하는 와중에도 최대한 그럴싸해 보이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교관님이 칭찬할 만한 기상 같은 것까지 담겨 있단 말입니까?”

내가 한 번 더 발뺌을 하자 제갈수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심산화의 검법도 봤다. 일관된 맥락, 정제된 기세, 굴하지 않는 기상. 그런 것들이 충분히 느껴지더군. 한데 단순한 짜깁기 수준으로 그런 게 가능하다고? 명호운의 창법이나 심산화의 검법 모두, 누가 봐도 제대로 된 일류 무공들이던데?”

“아하하, 물론 짜깁기를 하는 와중에도 느낌 정도는 열심히 살리려고 노력했습죠. 뭐든 느낌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대꾸하자 제갈수광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럼 왕철양의 부법은 어떻게 된 걸까. 직접 제일서고에 가서 뒤져보니 짜깁기를 할 만큼 충분한 자료조차 없던데. 가뜩이나 쌍부법에 관련된 내용은 더더욱 적었고.”

제갈수광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무공의 수준을 따지면 왕철양의 부법이 명호운의 창법과 심산화의 검법보다 더 나은 느낌이었다. 부법은 짜깁기할 재료도 충분치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만들었을까.”

나로서는 부법을 잘 모르다 보니 신경을 특히 더 많이 쏟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공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일일이 왕철양에게 시연을 시켜서 꼼꼼히 확인까지 해가며 진행했었다.

그렇다 보니 무공 자체의 완성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이쯤이면 더 이상 발뺌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내가 코로 한숨을 내쉬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보법 또한 내가 이전에 확인했던 그 아이들의 보법들에 비하면 아예 환골탈태 수준이더군. 다들 성취가 아직 초반 단계에 불과한 모습이기는 한데, 그중에서도 성취가 가장 빠른 명호운의 경우에는 벌써부터 미끄러지듯 경쾌한 느낌이 살짝 보이더군.”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보법, 창법, 검법, 부법 할 것 없이, 모든 무공들에서 제대로 된 근원을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네가 좋아하는 쾌의 묘리가 잘 녹아 있기도 해서, 아이들의 성취가 발전하면 어떤 모습들일지 기대마저 될 정도였다.”

하여튼 귀신이다.

“네 녀석이 책 좋아한다는 사실이야 내가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 무공 실력만큼이나 무학에 대한 이해도도 충분히 높을 수밖에 없는 거고. 한데 네가 그런 무공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이론 경지에 도달해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짜깁기를 잘해도 기본적으로 무학 이론의 경지가 매우 높지 않으면 그런 무공들이 나올 수가 없는 거잖나.”

“아하하······.”

어색한 웃음만 나왔다.

제갈수광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뭐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이다.

잠시 조용히 있던 제갈수광이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포연월과 원추엽 같은 경우에는 우리 동부지맹의 전체 신입생들 중에서 최고 수준인 아이들이다. 실전 대비 교육만 받으면 금세 정예로 분류될 재목들이었지. 그래서 그 둘은 처음부터 삼 조에 넣어서 네게 맡길 생각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명호운, 심산화, 왕철양은 원래 삼 조원에 포함된 인원들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 애들 대신 다른 무난한 상위권 아이들 네 명이 포함되어 있었지. 너도 알다시피 그 셋은 무공 면에서 각각 적잖은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 제대로 지도하려면 한 명, 한 명 손이 매우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었지.”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기에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잠재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아이들이기도 해서 원래는 세 명 모두 내가 직접 지도할 계획이었다. 한데 아무리 봐도 그 애들을 제대로 지도해줄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많은 아이들이 이미 내게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 일로 한참 고민이 많았다.”

내가 조교 역할을 맡게 된 게 포양호에 갔다가 잠룡관에 복귀했던 당일 오전이었다. 보아하니 그 직전에 조 배정을 할 때의 이야기인 듯했다.

“그즈음에 마침 송유하의 궁술을 지도해줄 시간이 있었는데, 문득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더군. 송유하는 재작년까지만 해도 분명히 하위 반인 신반었는데 어느새 상위 반인 병반에 있는 거잖나. 무공이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한 건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굳이 오래 고민해 볼 필요도 없었지.”

“아하하, 그건 누이가 원래 자질이 뛰어난 데다가 워낙 노력도 열심히 해서······.”

제갈수광은 내 대꾸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데리고 있으면서 제대로 신경도 못 써주는 것보다는 네게 맡기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는 확신이 들더군. 송유겸이 특유의 성격을 믿었지. 너는 책임 있는 역할을 극도로 꺼려 하지만, 일단 맡고 나면 결코 대충 하는 법이 없는 녀석이잖아.”

후우. 이렇게까지 달갑지 않은 칭찬이 또 있을까.

“그래서 네게 조교 역할을 제안하기 바로 전날에 그 세 명을 삼 조로 옮겼던 것이다. 이후에 네가 그 세 아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고 기대도 됐었는데······.”

잠시 말을 줄인 제갈수광이 ‘하!’ 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방식으로 풀어낼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 예상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거지. 네 녀석은 정말······.”

이번에도 ‘뭐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이다.

뭔 말을 해도 적절하지 않을 것 같기에 조용히 먼 하늘을 바라보는데 제갈수광이 말했다.

“계반에는 별의별 관도들이 다 있지. 그중에는 종종 일반적인 무공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특수하게 맞춤형의 무공이 필요한 건데, 예를 들면 절름발이 관도 같은 경우다. 일반적인 보법은 맞지 앉는데, 그렇다고 해서 절름발이를 위한 보법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지. 어딘가에는 존재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범주 안에는 없었던 거고.”

제갈수광이 말을 이었다.

“그렇듯 해결 방안을 제시해주지 못할 때마다 교관으로서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 그 절름발이 아이의 경우에는 무공을 배우려는 열망도 컸고 자질도 괜찮았는데, 결국 해결책이 딱히 없음을 알고 일 년 만에 잠룡관을 떠났다.”

“아······.”

“그런 여러 이유들로, 나 또한 평소 무공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 대단한 무공은 아니더라도, 맞춤형의 무공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는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무공 서적이라면 읽을 만큼 읽었으니 무학 지식이나 이해도가 얕은 것도 아니고.”

이청오가 말하길 제갈수광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매우 유명했다고 했다.

당연히 학문 서적뿐만 아니라 무공 서적도 엄청나게 읽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무학 지식이나 이해도도 충분히 높을 테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약간씩의 수정 작업 정도는 해봤으나, 무공을 만들 시도까지는 아직 해보지 못했다. 아무리 짜깁기라 해도 무공을 창안한다는 건 섣불리 엄두가 안 나는 일이잖나.”

“예, 아무래도 그렇지요.”

“한데 네가 하는 걸 보니 나도 일단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더군. 앞으로 그 일로 송유겸 네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제자인 나를 상대로도 배울 수 있는 건 배우겠다는 뜻이다.

역시 제갈수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제가 이해하고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으로 보조해드릴 것입니다.”

내 대꾸에 제갈수광이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무공 지식과 이해도 등의 측면에서는 아무리 제갈수광이라 해도 나보다 아래일 수밖에 없다.

나는 천마신교의 중심부에서 수많은 상승 무공들을 접하며 살았던 몸이다.

검마 장로와 비마 장로는 정사마를 아우르는 천하 고수 서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초고수들이며, 나와 친했던 창마 장로의 경우에는 그 서열에서 십 위 정도였다. 그 외에 다른 장로들도 대부분 이삼십 위 안쪽이었다.

나는 그런 최상위의 고수들과 부대껴 살며 그들의 무공을 수도 없이 접했던 몸이다. 이미 그 정도만으로도 보는 눈 자체가 남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한데 더 결정적으로 내게는 사부님이 계셨다.

천마전의 서고 중에 제자들이 이용 가능한 구역에만 해도, 정사마를 막론한 엄청난 양의 무공서들이 꽂혀 있다.

물론 내가 그 무공서들을 다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부님이 숙제로 내셨거나 추천하셨던 무공서들은 무조건 다 읽었었다.

심지어 사부님은 본인의 서재에 있는 무공서들 중에서도 흥미로운 것들은 내게 갖다주며 읽게 하셨다.

워낙 무학 이론 얘기를 좋아하시다 보니, 관련된 서적들을 일단 내게 읽힌 후에 같이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던 것이다.

사실 나는 지루했지만 감히 지루한 티를 내지 않고 열심히 호응해 드렸었다. 내가 흑풍대 시절에 극한 상황을 얼마나 많이 겪었는데 그런 지루함쯤을 못 참겠는가.

그렇다 보니 사부님은 내가 그런 쪽에 나름대로 흥미가 있는 것으로 오해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신나셔서 상승 무공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많이 하셨던 거다.

이러니 나는 보는 눈, 무학 지식, 이해도 등 모든 게 매우 높은 수준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쪽으로는 이 강호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거라고 자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갈수광의 경우는 다르다.

제갈수광은 강호 최고 고수들 사이에서 부대껴 지내며 안계를 넓힐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맹주 운천흠급의 고수들과 무학 이론을 토론하며 지낼 만한 환경도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와룡서고에도 방대한 무공서들이 비치되어 있기는 할 것이나, 어차피 제갈수광은 십 대 중후반부터 잠룡관에서 생활했고, 그 후에는 제갈세가를 뛰쳐나온 사람이다.

설령 많은 무공서들을 접했다 해도 독학으로 무학 이론을 깨우쳐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본인의 무공이 실제로 상승해야만 깨닫게 되는 영역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사부님이 확인하고서 직접 이해시켜 주셨던 상위 영역들이 매우 많은 것이고.

제갈수광이 말했다.

“포연월과 원추엽도 많이 성장했다는 게 느껴지더군.”

“아시다시피 그 둘이야 워낙 뛰어나기에 지도하기도 편합니다. 원추엽이야 그렇다 쳐도, 포연월은 대체 어디에서 저런 대단한 실력자가 튀어나온 건지······. 아, 포연월의 출신을 얘기해 달라고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그냥 너무 놀랍기 때문에 궁금하다는 차원으로······.”

“무슨 말인지 알아. 그런데 사실 나도 모른다. 네 녀석 입이 무겁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아는 게 있으면 얘기해주고 싶다. 한데, 심지어는 총교관님도 모르는 눈치시다. 유일하게 잠룡관주님만 알고 계신 것 같더군.”

“아······.”

알고 있는데도 모른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내게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잠시 후에 제갈수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이번 여름 방학 말인데, 평년보다 열흘 정도 더 길어질 것이다. 닷새 일찍 시작해서 닷새 늦게 개학하게 될 거야. 작년에 비상 대비 체제 때문에 방학에도 제한이 있었으니 그 일에 대한 보상 개념이다.”

“오! 알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나는 송가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친우들 핑계 대고 남창이나 포양호 쪽에서 보내면 될 것 같다.

혈교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궁금한 점들이 있으니 그런 것들도 조사해볼 겸.

“삼 조원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줘서 미리 계획들 세우게 하도록.”

“알겠습니다.”

제갈수광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방학 전에 간단한 보법을 하나 만들어 볼 생각이다. 틈틈이 조언을 구할 테니 그리 알고 있고.”

“예.”

나도 일어서며 흔쾌히 대꾸해줬다.

제갈수광도 상승의 경지에 있는 무인인 만큼 무공을 만들다 보면 성취 상승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제갈수광의 성취가 상승하는 건 내게도 좋은 일이다. 그가 필요로 한다면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 * *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거처에 돌아와서 유등을 켜고는 서탁 앞에 앉았다.

내 서탁 주변에는 제일서고에서 대여해 온 십여 권의 심법서들이 쌓여 있다. 서책 대여에 있어서는 조교도 교관 취급이라 여러 권을 오래 대여할 수가 있다.

어느새 심법 창안 작업도 마무리 단계다.

이삼일 내에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면 명호운과 왕철양에게도 전수해주고 여름 방학 전까지 과정을 지켜볼 시간도 충분하다.

작업을 시작한 후로 일각도 지나지 않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사립문을 열고 들어온 두 개의 기척은 유은무와 장우혜였다.

“송 오라버니, 우리 왔어요.”

장우혜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유은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들어가도 되는 거죠? 혼자서 이상한 야한 짓 같은 거 하고 계셨다거나······.”

즉시 대꾸해줬다.

“아니거든.”

곧 방문이 열리더니 두 소녀가 차례로 들어와서 서탁의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앉자마자 유은무가 장우혜에게 물었다.

“불결한 짓 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

“어. 의심스러운 정황은 보이지 않아.”

안 했다고, 이것들아!

친해질 만큼 친해졌기 때문인지 쬐끄만 것들이 요새는 간혹 저런 농담도 한다.

“이 시간에 무슨 일들이야?”

내가 묻자 유은무가 말했다.

“아! 들었어요, 송 오라버니? 이번에 방학 길다는 거?”

“어. 아까 들었는데.”

“그래서 말인데, 이번 여름 방학 때는 뭐 할 거예요?”

“글쎄. 그냥 혼자 여기저기 쏘다니며 조용히 보낼까 생각 중이었는데.”

“그럼 작년처럼 같이 보내요!”

“응?”

유은무를 향해 되묻고 보니 장우혜도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두 소녀를 향해 한 가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다 떠나서, 누이들은 본가에 안 가? 작년에도 비상 대비 체제 때문에 두 번의 방학 때 모두 본가에 못 갔잖아. 가뜩이나 누이들이 본가가 엄청 먼 것도 아니고.”

그러자 장우혜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안 가도 돼요. 어차피 내놓은 자식들이거든요.”

퍽이나 내놨겠다, 요것아.

내가 피식 웃어 보이자 장우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뭐, 부모님이 종종 이쪽에 오시는 터라, 그때마다 조용히 나가서 뵙고 있어요. 한 달 전에도 뵀어요. 큰 오라버니도 동부지맹에 계시니 자주 뵙고 있구요.”

“저도 부모님이 종종 오시는데, 이 주쯤 전에 뵀어요. 할아버지도 가끔 동부지맹에 오시니 그때마다 뵙고 있구요.”

유은무도 그렇게 말을 보탰다.

하긴, 저런 식이면 별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여름 방학을 작년처럼 보낸다면 내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다. 다만 장소가 문제다. 나는 남창과 포양호 쪽에 볼일이 있기 때문이다.

유은무가 말했다.

“청 언니랑 일찍부터 얘기가 됐던 거예요. 작년 여름 방학 때도 합숙 장소를 빌려서 썼고, 송 오라버니는 없었지만 겨울 방학 때도 포양호 인근의 다른 합숙 장소를 빌려서 썼거든요. 작년 여름에 갔던 정가장이 공사 중이어서.”

아, 그 공사는 나 때문이야.

“그래서 작년 겨울에 청 언니가 그랬거든요. 매번 합숙 장소를 빌리는 것도 귀찮고 그곳 주인의 눈치도 보이니까, 이 다음에는 아예 포양호 변에 장원을 하나 사놓겠다구요. 이런 때 이용하는 별장 개념으로.”

유은무가 말하자 장우혜가 입을 열었다.

“이번 여름 방학 전까지 준비해 둘 테니 첫 개시는 우리와 함께하자고 했어요. 근데 진짜로 몇 달 전에 사서 근래 단장까지 다 마친 모양이에요.”

캬아! 역시 잘나가는 상단의 장녀는 달라도 다르구나!

그냥 필요하다 싶으면 장원이고 뭐고 뚝딱 하나 장만해버리는구나.

“위치가 어디쯤인데?”

“그······, 사모산인가 하는 작은 산의 서쪽 호변이라고 했던가?”

유은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장우혜가 대꾸했다.

“어, 맞아.”

어딘지 알고 있다.

포양호 전체로 따지면 남남동(南南東) 방향쯤 되며, 파양현에서는 남서쪽에 위치한 곳이다. 참고로 정가장은 파양현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내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위치다.

정가장과 남창의 중간쯤이기 때문이다.

그 위치라면 마음먹고 신법을 펼쳤을 경우 정가장까지든 남창까지든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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