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04
결국 나는 심법 창안을 완료할 수 있었다.
우리 조의 아이들에게 방학 이야기를 하고 나서 닷새 후인, 유월 초닷샛날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심법은 주화입마 등의 우려가 있기에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에 흐름이 어색하지는 않은지, 이치와 묘리가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마지막까지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그러느라 최종 완성이 예정보다 약간 늦어졌던 것이다.
만들어 놓고 보니 이번에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잘 만들어져서 흡족했다.
무공에 있어 심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현대의 무학 체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만큼, 심법이 잘 만들어졌다는 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번에도 심법 이름은 그냥 ‘쾌류’를 붙여서 ‘쾌류심결’이라 명명했다.
괜히 쾌를 붙인 게 아니다.
심법 자체에 쾌의 묘리를 담아, 기운이 반응하고 작용하는 속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 예상대로라면 심법의 성취가 늘수록 운기행공의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게 될 것이다.
무속성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아직 내 수준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백도의 심법들을 많이 참고했기에 어느 정도의 정기는 담겼다.
다만 그 정기조차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했기에 백도의 속성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 의도대로라면 내공 경지가 비교적 겉으로 덜 드러날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심법 전수 대상자인 심산화, 명호운, 왕철양을 따로 실내 연무장으로 불렀다.
원래 심법은 명호운과 왕철양에게만 전수할 예정이었다.
한데 내 예상보다 심법이 잘 빠진 터라, 아무리 봐도 현재 심산화가 익히고 있는 심법보다는 쾌류심결이 확실히 더 나았다. 그간 심산화의 심법도 면밀히 분석해 봤기에 금방 비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산화가 익히고 있었던 심법은 내가 흑풍대 시절에 익혔던 심법과 대강 비슷한 수준의 심법이었다. 참고로 심산화가 현재 공력이 높은 이유는 영약 때문이지 심법이 훌륭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엊저녁에 바로 심산화를 불러서 심법 교체를 제안했었다.
가서 차분히 한번 고려해 보라는 식으로 말했던 건데 그녀가 그냥 그 자리에서 승낙했던 것이다.
어쨌든 잘된 일이다.
이왕 갈아탈 거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갈아타는 게 낫다.
애들이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쾌류심결의 이론 강의를 마쳤다.
그 후, 명호운부터 운기행공을 유도했다.
명호운은 기존에 배웠던 무공들이 이류 무공들이었다는 게 유일한 흠일 뿐, 원래 무공 관련 지능도 좋고 자질도 뛰어난 재목이다. 괜히 이류 무공으로 그 수준에 오를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심산화의 경우에는 무공 지능이 보통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며, 왕철양은 보통보다 약간 처지는 수준이다.
그런 만큼 명호운부터 가르쳐줘야 심산화와 왕철양이 그걸 보며 자연스럽게 예습을 하기에도 좋다.
명호운의 운기행공을 천천히 세 차례 유도해준 후, 심산화와 왕철양의 순서로 심법 전수를 이어갔다.
그런 식으로 오전에는 계속 심법만 전수했고, 오후에는 조용히 앉아서 세 아이들이 심법을 펼치는 모습만 꾸준히 살폈다.
내가 만든 심법을 전수하는 일은 처음이다 보니 계속 살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검토하고 또 검토한 심법이기는 하나, 만에 하나의 오류나 문제가 예상치 못했던 범주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혹여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 즉시 대처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계속 지켜봤던 것이다.
어느덧 신시 정(오후 4시)에 가까워지고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슬슬 운기조식을 마무리하게 했다.
아이들도 아침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운기조식만 취했다. 만만치 않았을 텐데 모두가 흐트러짐 없이 열심히 임했다. 대견스럽다.
심산화와 왕철양의 마지막 운기조식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가 명호운이 말했다.
“제가 새로운 심법을 단 하루 운용해 보고 뭔가를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만, 기존에 익혔던 심법과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류 심법을 익히고 있던 녀석이라 체감되는 면도 제법 컸을 것이다.
명호운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적어도 저는 심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듭니다.”
“분위기가 어떤데?”
“은은하면서도 깊이 있는 느낌입니다.”
저런 분위기 정도는 충분히 느꼈을 법하다.
이제 첫날에 불과하니 벌써부터 쾌의 묘리까지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고.
내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옆에 있던 심산화가 말했다.
“운기조식을 할 때도 그렇고, 하고 나서도 그렇고, 기분이 더 좋은 것 같아여. 헤······.”
수줍은 미소를 지은 채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실제로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
좋다니 다행이다.
왕철양이 말했다.
“저, 저는 잘은 모르겠지만, 조교님이 알려주셨으니 앞으로는 운기조식도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본인이 기존에 익히고 있던 심법과 별 차이를 못 느끼는 눈치다.
저럴 수밖에 없다.
왕철양은 명호운처럼 이류도 아니고 삼류 심법을 익히고 있던 애다. 게다가 내공 경지마저 그다지 높지 않은 만큼, 양 심법 간의 차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왕철양의 경우에는 나중에야 알게 될 것이다.
현재 자신이 익히고 있는 쾌류보, 쾌류선풍쌍부법, 쾌류심결 모두, 본인에게는 거의 기연 수준의 행운들이라는 사실을.
어쨌거나 무공 지능은 평균보다 약간 낮지만 노력은 소처럼 열심히 하는 녀석이 왕철양이다. 그런고로 성취 상승 속도 자체는 평균 정도는 되리라 판단하고 있다.
애들을 돌려보내고 실내 연무장에 혼자 남았다.
찜찜한 기분이 든다.
사실 나는 근래 조원들을 지도하고 난 후에 계속 이런 기분을 느끼는 중이다.
애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애들은 여전히 말도 잘 듣고 수련도 열심히 하고 있다.
찜찜한 건 다른 부분 때문이다.
며칠 전에 우리 조원들은 길초량과 계반이조의 합숙 얘기를 듣고는 엄청나게 부러워했었다.
그 표정들을 보니 조만간 누군가는 직접 합숙에 대해 조르거나, 전령 겸 대표인 명호운을 통해 조심스럽게라도 건의를 해오지 않을까 싶었었다.
그런데 내 추측과는 달리, 우리 조원들은 지금껏 합숙의 ‘합’ 자도 꺼내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애들이 합숙 얘기를 꺼내도 선약이 있다는 이유를 대며 거절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선약이 있기도 하다.
한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막상 애들이 합숙에 대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으니 오히려 신경이 쓰이고 있다. 모두가 엄청나게 부러워하던 표정을 빤히 확인한 입장이라서 더더욱 그렇다.
머릿속으로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실내 연무장의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송 오라버니!”
“우리 왔어요.”
유은무와 장우혜였다.
두 소녀는 오늘 오후에 길초량이 지도하는 철비정술 교습 일정이 있다고 했었다. 그렇기에 내가 지도하는 실전 대비 훈련은 그 이후에 하자고 미리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조원들을 보낸 후에도 혼자 계속 실내 연무장에 머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소녀를 상대로 이 대 일의 치열한 비무를 펼친 후 자세히 복기하는 것으로 실전 대비 훈련을 마쳤다.
둘 다 철비정술의 성취가 부쩍 상승한 게 인상적이었다.
애초에 무인으로서의 그릇 자체가 잘 만들어져 있는 데다가 무공 자질도 빼어난 아이들이다. 그런 만큼 철비정술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고 나니 실력이 쑥쑥 늘고 있는 것이다.
노력이 뒷받침되고 있는 건 당연한 것이고.
전체적인 경지를 보면, 장우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유은무의 실력도 이제는 의심할 나위 없는 갑반 실력이다.
작년에 처음 봤을 때에 비하면 일단 공력도 많이 늘었고, 그 외의 제반 역량들도 부쩍 늘었다.
두 소녀는 평소에 보면 치열하다는 느낌을 거의 풍기지 않는다.
그래서 자칫 오해할 수가 있는데, 실제로는 본인들의 수련만큼은 철저하게 해가면서 남는 시간에만 틈틈이 노는 애들이 바로 얘들이다.
우수한 애들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두 소녀에게는 작년에 삼청산 산장 사건과 태화지부 사건이 큰 동력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느슨해질 법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잡게 되는 동력이다.
이제는 둘 다 실전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보인다. 철비정술까지 열심히 장착하는 중이니 실전 역량도 더더욱 좋아질 것이다.
“송 오라버니, 무슨 고민 같은 거 있어요?”
유은무의 물음이었다.
“응? 웬 고민?”
내가 대꾸하자 이번에는 장우혜가 말했다.
“고민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뭔가 생각이 필요한 문제 정도는 있는 거죠?”
나는 평소와 차이 없이 어울렸던 것 같은데 두 소녀 모두 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 많이 친해졌다 보니 이제는 내 사소한 표정 변화 같은 것도 잘 보이는 모양이다.
뭣 때문에 저런 말들을 하는지 알 것 같았기에,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대단한 고민 같은 건 아니고······.”
이후에 나는 계반이조의 합숙에 대한 얘기와, 그걸 듣고 우리 조원들이 부러워하던 일에 대해 두 소녀에게 얘기해줬다.
합숙하자고 조를 줄 알았던 우리 조원들이 그 일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다는 얘기까지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려고 하는데도 괜히 마음이 찜찜하면서 신경이 계속 쓰이더라고.”
내 말에 장우혜가 대꾸했다.
“걔들끼리 말을 맞춘 모양이네요. 합숙 얘기 꺼내지 말기로.”
“분위기상 아무래도 그랬겠지?”
“네. 걔들도 송 오라버니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겠죠. 그간 오라버니가 얼마나 열심히 가르쳤는지를 걔들이라고 해서 모를 리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 방학 기간마저 오라버니에게 수고 끼치고 싶지는 않다는 거겠죠. 염치가 있는 애들인 거죠.”
장우혜가 말을 마치자 이번에는 유은무가 입을 열었다.
“저, 알 것 같아요. 그 애들이 마음 써주고 있다는 사실을 송 오라버니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거겠죠. 제자들이 그렇게까지 기특한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보니, 그 애들이 합숙을 부러워하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거구요.”
“음······, 얼추 누이들 얘기가 맞는 것 같네.”
내가 대꾸하자 장우혜가 말했다.
“그러면 그냥 걔들도 청 언니의 별장에 데리고 가면 어때요?”
“응······?”
의외의 인물이 의외의 제안을 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인원들 중에 가장 까다로운 게 장우혜인데, 얘가 먼저 저런 제안을 해오다니.
장우혜가 말했다.
“송 오라버니도 얼마든지 그 애들 데리고 합숙하러 갈 수 있지만 우리와의 선약 때문에 못 그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걔들까지 우리 일행에 합류시키자는 거죠.”
이에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친하고 편한 관계의 인원들끼리 가는 합숙에 걔들이 끼면 다들 불편해하지 않겠어? 당장 누이들도 불편할 거고.”
그러자 장우혜 대신 유은무가 특유의 다정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송 오라버니가 마음 찜찜하게 여름 방학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편이 낫잖아요. 우혜는 그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까다로운 애가 나를 배려해주기 위해서 먼저 저런 제안을 했다는 뜻이다.
장우혜를 바라보니 시선을 살짝 돌리고 있는 것이, 유은무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가뜩이나 원무뚝이나 명싹싹과는 나름 친분이 있는 관계이기도 하고, 나머지도 다들 안면이 있는 사이니까요.”
하긴 올해 계반의 신입생들을 데리고 잠룡관을 안내해줬던 게 바로 이 두 소녀이기도 하다.
유은무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왕 공자는 생긴 건 우락부락한 느낌이어도 실제로는 순박한 사람이라는 소문이고, 심 소저도 착해 보이는데, 무엇보다 귀여워서 더 끌리고······.”
유은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쯤 장우혜가 끼어들며 바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포 소저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람이잖아요? 송 오라버니가 더 잘 아시겠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
포연월은 경지가 겉으로 잘 안 드러나는 종류의 내공을 익혔다.
참고로 나는 우리 조원들에게, 수련하다가 알게 된 서로의 실력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했었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원래 그게 기본이기도 하다.
물론 나 또한 제갈수광과 대화를 나눴던 것 외에는 포연월의 실력에 대해 발설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송유하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우혜는 포연월의 뛰어난 실력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는 눈치다. 유은무는 장우혜가 말한 의미를 잘 모르는 눈치고.
결국 장우혜가 혼자서 눈치챘다고 보는 게 맞다.
역시 장우혜는 장우혜다.
내가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주자 장우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청 언니한테는 우리가 말해둘 테니 계반삼조원들도 그쪽에서 같이 합숙하는 것으로 해요. 별장도 넓다고 했으니 문제 될 것도 없을 거예요.”
주인도 아닌 것이 주인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한데 주인인 청여홍도 어차피 장우혜와 유은무의 뜻이라면 거부할 리가 없긴 하다. 청여홍이 그만큼 장우혜와 유은무를 고맙게 여기고 있으며, 서로 친하기도 매우 친하기 때문이다.
물론 청여홍은 나한테도 매우 고마워하며 극진하게 여기는 만큼, 그녀가 우리 조원들의 합류를 반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환호할 조원들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지는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