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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05화 (205/416)

내 안에 마교있다 205

방학 전까지의 기간 동안 제갈수광은 보법 초안을 몇 차례 가져와서 내게 조언을 구했고, 나는 성심껏 그를 도와줬다.

그가 창안하려는 보법은 이류 수준의 보법으로, 어렵지 않은 난이도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나갈 계획으로 보였다.

이류 수준이라도 창안 의도가 훌륭한 보법이었다.

순수한 계반 실력의 관도들, 즉 무공이 매우 낮은 관도들이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는 수준의 보법인 것이다.

수많은 기초, 기본 보법들에 대해 엄청난 양의 자료 조사를 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제갈수광도 어떠한 목표가 생기면 아주 확실하게 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저렇듯 탁월한 사람이 된 거겠지만.

그 보법을 익힌 초보들이 차후에 일류 보법을 익히게 될 경우에도 쉽게 호환이 되게끔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 * *

중간에 송가장에서 사람이 와서 방학 계획에 대해 묻기에, 합숙 계획에 대해 얘기해줬다.

그랬더니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하는지도 알아가야 한다기에 그 답변도 해줬다.

특히 계반삼조원들 핑계를 많이 댔다. 조교인 만큼 걔들의 여름 훈련을 책임져야 한다는 식으로.

때문에 이번에는 가족 모임에 참석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여줬다.

혹시 모를 일이니 그냥 한번 던져본 것이다.

그래도 참석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송유하와 나는 가족 모임에 들렀다가 따로 합숙 장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한데 의외로 이번에는 가족 모임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는 답신이 왔다.

웬일인가 싶지만 귀찮은 자리가 사라진 만큼 무조건 잘된 일이다.

일전에 송천광, 이청오, 진양옥이 잠룡관에 찾아와서 모두가 모였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는 굳이 모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인가 싶다.

이번의 승반 심사 결과가 너무 눈에 빤히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송유백과 송유하의 경우 상위 반인 만큼 한 학기 만에 또다시 승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송유상도 작년 말에 승반했으니 이번 학기에는 승반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나야 뭐, 승반 심사를 치지도 않는 사람이고.

그런 마당이니 굳이 가족 모임을 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게 아닐까.

어쨌든 잘된 일이다.

* * *

승반 심사 전날 새벽.

여느 때처럼 송유하와 함께 구보를 하는 길에 단목세가의 사촌 남매와 마주쳤다.

근래에는 딱히 용무가 없으면 멀리에서 서로 손만 흔들어 보이며 지나치곤 했었다.

한데 오늘은 저쪽에서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물에서 벗어나 다가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평소처럼 사촌 남매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다.

단목강도 함께였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짧은 인사들을 나눈 후 근처의 넓적한 바위들에 자리 잡고 앉았다. 평소에 우리가 대화할 때 앉는 평평한 바위들이다.

단목강이 송유하에게 말했다.

“을반 승반 심사, 좋은 결과 있기를 응원하겠소.”

“응원은 감사하지만 이번에 제가 승반 심사를 치는 목적은 바뀐 평가 기준을 경험해 보기 위함에 불과해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하하, 그렇다 해도 심사는 심사잖소. 이왕 치르는 거 만족스럽게 치르기를 응원하겠소.”

“예. 물론 최선은 다할 거예요. 감사해요.”

송유하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이 틈에 나도 단목지에게 응원의 말을 건넸다.

“다음에 만날 때는 단목 소저도 갑반이 되어 있겠구려. 편하게 잘 치르시오.”

“후훗, 응원은 감사한데 꼭 그렇게 되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단목지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대꾸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실력은 단목세가의 검법을 여인에게 맞게 변형시키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속속 확인했다.

무공의 많은 부분들이 여인에게 맞게 변형된 덕분에 단목지의 성취도 자연스럽게 상승한 상태다.

현재의 단목지는 말도 안 되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당연히 통과할 실력이다. 이전에 한 차례 갑반 승반 심사에서 떨어졌던 경험도 있으니 감도 잡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런 얘기를 하니 의아할 수밖에.

단목지가 미소 띤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승반 심사 결과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자신이 없지는 않아요. 그 부분 말고, ‘다음에 만날 때’라는 말씀에 대해 잠깐 농담을 한 것뿐이에요. 실은 저도 이번 여름 방학에 여홍이의 장원에 합류하기로 했거든요.”

여홍이란 청여홍이니 우리와 함께 합숙한다는 뜻이다.

처음 듣는 얘기이기에 내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자 단목지가 말을 이었다.

“여홍이와도 겨울 방학 때 포양호 변에서 같이 합숙하면서 친해졌었거든요. 유하, 은무, 우혜와 언니 동생 하며 지내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부터였구요. 여홍이가 이번에도 합숙 얘기를 꺼내기에 합류하겠다고 한 거죠. 아예 여홍이가 본인의 별장을 마련했다고 하니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승반 심사를 통과해도 바로 갑반이 되는 건 아니다.

방학 때까지는 공식적으로 을반 신분이었다가 새 학기가 되면서 갑반이 된다.

단목지는 그래서 다음에 만날 때도 갑반이 아닐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던 것이다. 어차피 합숙 기간은 방학 때고, 그 기간 동안은 을반이니까.

재미있으라고 한 농담은 아니고 나를 놀라게 하려는 목적으로 한 농담인 듯하다.

단목강이 말했다.

“참고로 나도 합류하오. 부모님께서 이번 여름 방학 때는 굳이 세가에 오지 말고 친우들이랑 어울리라고 하시는구려. 어차피 일전에 세가에 오래 머무르기도 했고, 연아가 너무 어리다 보니 이번 가족 모임도 그냥 넘기기로 해서.”

그가 말한 ‘연아’란 늦둥이인 단목연이다.

“오!”

단목강이야 뭐, 언제 어디든 함께하면 든든한 사람이다.

이후에 단목홍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말했다.

“아, 나는 아쉽게도 같이하지 못하오. 잠룡일대에 있을 당시 강소 출신의 북부지맹의 관도들 서너 명과 친해졌소. 이번 여름 방학에 그들과 소주에서 회합을 갖기로 했던지라······. 그 후에는 세가에 들렀다가 잠룡관으로 복귀할 계획이오. 나는 아직 늦둥이 사촌 여동생을 한 번도 못 본 상황이라.”

강소 땅의 남부와 절강 땅의 북부는 닿아 있다.

유명한 소주는 강소의 최남단에 있고 단목세가가 위치한 천목산은 절강의 북부에 위치해 있다. 그다지 멀지 않은 만큼 충분히 다녀올 만한 거리다.

가뜩이나 외인인 나도 본 단목연을 단목홍신은 아직 못 본 상황이기도 하고.

단목강이 말했다.

“아, 그 다섯 명의 후배들도 같이 합숙한다고 들었소.”

계반삼조의 아이들을 말하는 거다.

단목강과 계반삼조의 아이들은 이미 몇 차례 대면을 한 관계다. 단목강이 나를 대신해서 애들을 한 번씩 지도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리되었습니다.”

“다들 착실한 후배들이니 무난하게 잘 어울릴 것이오. 어쨌든 기대되는구려.”

단목강이 합숙에 합류하면 나도 더 편해진다.

혹여 내가 자리를 비웠을 경우에도 단목강이 알아서 애들을 지도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좋다.

* * *

일 학기 말 승반 심사가 끝났고 그다음 날이 밝았다.

오늘은 승반 심사 결과 발표 날이며, 합숙지로 출발하는 날이기도 하다.

행낭은 어젯밤에 모두 꾸려놓았다.

행낭 안에는 귀중품들이 많이 들어 있다.

최근에 연승휴의 동굴에 가서 꺼내 온 것들인데, 현금화시키기에 적당한 물품들을 가져왔다.

합숙소에서 남창까지는 멀지 않기에,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으로 가져가서 처분할 생각이다.

계속 보관할 가치까지는 없는 물품들의 경우 얼른얼른 현금화해서 전장에 넣어두는 게 더 이득이다. 이런 때 틈틈이 처분할 필요가 있다.

승반 심사 결과는 보통 사시 정(오전 10시) 무렵에 발표되는데, 잠룡관 중앙의 대연무장에 방의 형태로 게시된다.

합숙 인원들은 그 결과 발표를 확인한 후에 출발하기로 얘기가 되었다.

사시 정까지 얼추 한식경쯤(30분) 남겨둔 시각에 송유하가 찾아왔다.

“오라버니, 준비 다 되셨어요?”

“어, 나갈게.”

밖으로 나와서 보니 송유하는 행낭을 멘 채 한쪽 어깨에 활까지 차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 활도 갖고 가려고?”

“네. 제갈 교관님이 어딜 가든 항상 활을 갖고 다니면서 꾸준히 쏘라고 하셔서요.”

“하긴 그건 그렇지. 잠깐 기다려 봐.”

곧바로 나도 방 안에 들어가서 활을 챙겨 나왔다.

이후에 방과 부엌의 자물쇠를 잠그고는 송유하와 함께 거처를 나섰다.

잠시 후 갈림길에 이르렀다.

오른쪽 길이 중앙의 대연무장 방향이고 왼쪽 길이 약속 장소인 정문 방향인데, 송유하는 당연하다는 듯 왼쪽 길로 들어섰다.

“하하, 심사 결과 확인도 안 하려고?”

“네. 굳이 확인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현실적으로 합격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고 있으니 굳이 결과 확인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당사자의 뜻이 저렇다는데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송유하와 함께 왼쪽 길로 접어들어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어제 승반 심사는 어땠어? 잘 치긴 한 것 같아?”

승반 심사 후에 처음 보는 자리다.

송유하의 승반 심사 순번은 어제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오늘은 어차피 신법을 오래 펼쳐야 하기에 새벽 구보를 생략했었기 때문이다.

“부담감 없이 임하다 보니 이전에 치렀던 승반 심사들에 비해서도 긴장을 안 했어요. 큰 의미는 없겠지만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잘 친 것 같아요.”

이전의 승반 심사들에서도 별로 긴장을 안 했던 송유하다. 그녀가 승반 심사에서 항상 좋은 결과를 얻었던 이유도 저러한 성격 덕분이다.

한데 그때보다 더 긴장을 안 했다면 거의 연습하듯 심사를 치렀다는 말과 같다.

저 특유의 무덤덤한 성격은 웬만한 남자들도 못 따라갈 것이다.

합숙 인원들의 약속 장소는 정문으로 향하는 대로변에서 약간 떨어진 공터다.

도착해 보니 계반삼조원 다섯 명만 먼저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승반 심사 결과와 전혀 상관없는 인원들이기도 하다.

인사를 주고받으며 보니 아이들의 표정에 설렘이 가득했다.

처음에 합숙 얘기를 꺼냈을 때 이 아이들이 환호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좋아했었다. 무뚝뚝한 원추엽도, 똑순이에 어른스러운 포연월마저도.

이후부터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더 가득해지기도 했다.

잠시 후, 몇 사람이 우리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모여야 할 나머지 인원들로, 단목강, 단목지, 유은무, 장우혜, 청여홍의 다섯 명이었다.

저 다섯 명은 승반 심사 결과를 확인하러 갔다가 마주쳐서 같이 오는 모양이다.

유은무와 장우혜의 경우에는 청여홍의 수련을 부지런히 도왔던 만큼, 아마도 청여홍의 승반 심사 결과를 같이 확인하러 가줬을 가능성이 높다.

승반 심사를 치른 단목지와 청여홍의 표정이 밝다. 그 외에 단목강, 유은무, 장우혜의 표정도 밝다.

단목지와 청여홍 둘 다 승반한 모양이다.

다섯 명이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쯤 인사도 생략한 채 단목강에게 곧바로 물었다.

“혹시 두 분 모두 승반한 겁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단목지는 갑반이 되고 청여홍은 기반이 된다. 기반이면 어엿한 중위 반이다.

“오! 단목 소저, 청 소저, 모두 축하드리오!”

내가 축하 인사를 건네자 우리 조원들도 곧바로 두 사람을 향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와아! 두 분 선배님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송유하도 빙긋 웃으며 단목지와 청여홍을 향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단목 언니 축하드려요. 여홍이도 축하해.”

그러자마자 단목강이 송유하에게 말했다.

“아, 송 소저도 축하하오.”

그 말에 송유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네?”

송유하의 반응에 이번에는 단목강이 고개를 갸웃했다.

“엥? 아니······, 송 소저도 축하받을 입장······.”

단목강이 그렇게 말할 때쯤 장우혜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송유하에게 말했다.

“하! 저럴 줄 알았어. 송 언니는 결과 확인도 안 한 모양이네. 송 언니도 합격자 명단에 있다구요.”

“에에엥? 내가?”

송유하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되묻자 유은무가 대꾸했다.

“네. 송 언니 이름이 정말로 있다구요. 을반 승반 심사를 통과한 거라구요.”

송유하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마, 말도 안 돼······.”

이윽고 송유하의 고개가 천천히 내 쪽으로 돌았는데, 그녀는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상태로 돌처럼 굳었다.

물론 나도 깜짝 놀라서 한동안 멍하니 송유하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린 후에 송유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짐작되는 바는 없어? 승반 심사 때의 특이 사항이나 감독하던 교관님들의 반응 같은 거.”

“그게······, 이번에 제 심사 시간이 많이 길기는 했어요. 체력 소모가 많았는데도 잘 버텨서인지 체력 좋다는 칭찬은 들었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송유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심사가 다 끝났나 싶었는데, 감독관님이 실전에서 쓸 만한 다른 특기는 없느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궁술에는 약간의 조예가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궁술도 한번 보자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이후에 교관님들이 여러 방식으로 제 궁술을 심사하셨어요. 아주 먼 거리에서 쏘기도 했고, 교관님들이 들고 움직이는 과녁에도 쐈고, 저 스스로 빠르게 신법을 펼치면서도 쐈고, 화살에 내공을 많이 담아서 조준 사격을 날리기도 했어요. 그 외에 연사 속도 점검도 하셨고······.”

“잘 쐈어?”

“네······. 교관님들이 과녁 들고 빠르게 신법을 펼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다 맞히긴 했어요. 웬만한 화살들은 정중앙에 꽂히기도 했고······.”

결국 궁술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납득은 충분히 된다.

바뀐 승반 심사의 기준은 실전 수행 능력과 실전 효용성 부분에 가중치를 두고 가산점도 부여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즉, 감독관들은 송유하의 궁술이 실전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물론 내가 봐도 실전에서 충분히 통하고도 남는 궁술이다.

다만, 바뀐 심사 기준에 의해 저 궁술까지 심사를 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뿐이다. 그간의 승반 심사에서는 궁술 실력을 따로 평가한 예가 없었다고 알고 있으니까.

제갈수광 덕분이기도 하며,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의 성취가 쭉쭉 상승한 덕분이기도 하다.

“잘했어, 누이. 축하해.”

내가 축하의 말을 건네자 여기저기에서 축하 인사가 들려왔다.

“송 소저, 다시 한번 축하드리오!”

“축하해, 유하야!”

“송 언니, 축하해요!”

“송유하 선배, 감축드립니다!”

송유하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얼떨떨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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