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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07화 (207/416)

내 안에 마교있다 207

나루터에서 뭍까지는 석조 다리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장원으로 보이는 곳의 문이 있었다.

딱 보기에도 외곽에 쭉 둘러쳐진 담장이 아주 길었다.

규모가 큰 장원이다.

별장 개념으로 구했다고 하기에 적당한 규모일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

별장이라는 곳이 가끔씩 들르는 곳일 텐데도 이렇게나 넓은 곳을 구하다니.

역시 청여홍이다.

몇 달 전에 매입해서 단장했다고 들었는데 담장 위쪽으로 드러난 조경과 시설들도 얼추 나쁘지 않아 보인다.

장원의 외곽 담장에는 드문드문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경계를 서고 있는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연주상단 남창지부의 무인들일 것이다.

걷는 길에 장우혜가 청여홍에게 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장원이 훨씬 큰데요?”

“응. 당시에 이 근처의 매물이 이곳밖에 없었거든.”

청여홍이 대꾸하자 이번에는 유은무가 말했다.

“와, 청 언니 돈 많이 썼겠다······.”

“어차피 우리 남창지점 차원에서도 포양호 변에 별장으로 쓸 장원이 하나 더 필요한 상황이었어. 이전의 별장만으로는 사업상 귀한 손님들을 접대하기가 살짝 빠듯했거든. 우리 상단 차원의 단체 귀빈들을 남창지점 쪽에서 감당해야 할 상황들도 점점 늘고 있고.”

“아하.”

“유람선을 이용해서 이렇듯 경치 좋은 곳으로 모시면 많이들 좋아하시거든.”

“아, 이런 게 다 사업에 필요한 거구나.”

“응. 그래서 저 나루터도 수심이 약간 깊은 곳까지 길게 빼 놓은 거야. 뭍을 오갈 때 귀빈들이 중간에 작은 배로 갈아탈 필요가 없게끔.”

“아하.”

유은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청여홍이 말했다.

“은무의 걱정대로 돈이 많이 들기는 했는데, 상인이 돈을 쓸 때는 다 그만한 근거나 이유가 있는 거야. 큰돈일수록 더 그렇지. 장기적으로 이곳이 투자 가치가 충분한 땅이라는 게 우리 지점 수뇌부의 계산이야. 내 생각도 같고.”

“와! 이런 때 보면 확실히 대상단의 핏줄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막, 투자 같은 것도 잘 아는 것 같고.”

“나도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아.”

청여홍이 민망하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대꾸했다.

장원으로 들어섰다.

나루터에서 연결되는 문이 장원의 서문이며, 장원의 정문은 남쪽에 있다는 모양이다.

“장원은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돼 있어요. 도착한 김에 먼저 외원부터 살짝 안내해드린 후에 내원으로 모실게요. 외원의 지리도 알고 계셔야 다들 이용하기 편하실 테니까요.”

우리는 청여홍의 안내에 따라 외원의 이런저런 시설과 조경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조경은 대부분 원래 있던 그대로예요. 이번 여름에 합숙 장소로 쓸 계획으로, 건물과 시설들도 일단은 그전에 있던 것들을 적당히 보수만 해놨어요.”

외원에는 기존의 건물이나 시설을 허물고 남은 공터들이 곳곳에 보였다.

저렇게 놔뒀다가 대대적인 공사는 우리의 합숙이 끝난 후부터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장원의 한쪽에는 언덕이 위치해 있어, 튼튼하고 깔끔해 보이는 기와 담장이 그 언덕을 두르고 있었다.

장원의 내원이다.

내원에는 다섯 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본채는 터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이 층 건물이었다.

본채의 좌우에는 회랑으로 연결된 하나씩의 건물이 직각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었고, 그 외의 두 건물은 본채 쪽과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

본채 안으로 들어섰다.

일 층은 주로 공용 공간들이었다. 널찍한 응접실, 회의실, 식당, 서재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중앙의 응접실에서 커다란 창문들을 열어 보니 눈앞으로 포양호가 펼쳐졌다. 본채의 터가 높기에 일 층에서도 담장에 방해받지 않고 그러한 시야가 나오는 것이다.

이 층은 중앙에 거실이 있고, 거실의 좌우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방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 층의 거실에서는 포양호의 경치가 더 잘 보였으며, 이 층에 있는 방의 창문들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의 경치들이 보였다.

여자들은 난리가 났다.

“와아! 여홍아, 이곳에서 보이는 풍광이 너무 예쁘다!”

“청 언니, 경치 진짜 대박이에요!”

“이 장원 너무 좋아요!”

내가 보기에도 좋은 경치였다.

본채가 좋은 위치에 잘 지어져 있는 덕분이다.

합숙 인원들은 총 열네 명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남자와 여자가 반반으로 일곱 명씩이다.

본채의 침실은 이 층에 있는 열 개가 전부라, 그쪽은 그냥 여자들에게 양보했다.

남자들의 숙소는 본채의 좌측으로 연결된 객실 건물이다.

객실 건물에도 중앙에 거실이 있었고 좌우에 적당한 크기의 방들이 존재했다.

나는 객실들 중에서도 끝에 있는 방을 잡았다.

들어가서 행낭을 놓고 창문을 열어 보니, 풍광이 본채보다는 못해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참고로 내 옆방은 전령인 명호운의 방이며, 그 옆방이 단목강의 방이다.

본채와 부속 객실들을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비룡장 생각이 났다.

나도 비룡장의 본채 건물은 이 층으로 올렸다.

비룡장의 본채는 아래로 포양호가 펼쳐지는 절벽 위쪽에 위치한 만큼, 풍광도 이곳보다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비룡장은 본채 옆으로 연결되는 객실 건물 또한 좋은 풍광이 보이는 방향이다.

오늘의 반응들을 보니, 나중에 비룡장에 놀러 오는 사람들도 다들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서 행낭을 정리한 후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 공자님, 저예요.”

청여홍이다.

“아, 들어오시오.”

곧 그녀가 안으로 들어와서 탁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더니 미안함 가득한 기색으로 말했다.

“송구해요, 송 공자님. 저는 괜찮다면서 계속 사양을 했는데도, 은무랑 우혜가 기어이 송 공자님에게 말씀을 드려버리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송 공자님은 신경 쓸 일도 많고 바쁜 분이신데······.”

배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유은무와 장우혜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었다.

장원에 도착하면 청여홍의 성취를 점검해주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조언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송 오라버니는 안 그래도 바쁘시니 청 언니의 수련은 웬만하면 우리가 알아서 이끌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청 언니의 성취가 여러모로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어서, 우리 수준에서는 해결책을 제시해주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말씀드리는 거예요. 마침 합숙하는 김에.」

그래서 흔쾌히 승낙해줬던 것이다.

청여홍은 모두를 위해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으니 나름의 답례 차원이다.

게다가 청여홍은 내 개인적으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갈 필요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하, 괜찮소. 다른 분도 아니고 청 소저신데, 그 정도야 뭐.”

내가 대꾸하자 청여홍이 고마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부족한 저를 그렇게 여겨주시니 영광스러울 따름이에요.”

“아하하, 그런 말씀 마시오. 민망하게 영광은 무슨.”

“영광스러운 거 맞죠. 다른 분도 아니고 동천비룡이라 불리는 송 공자님이신데.”

청여홍의 그 말에 나는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소? 도, 동천, 뭐······?”

“동천비룡이요. 송 공자님의 별호, 그렇게 통하던데요?”

황당하다.

난데없이 별호라니.

“허······! 나는 처음 듣는데 소저는 그런 얘기를 어디에서 들으셨소?”

“최근에 받아본 상단의 보고서에 나와 있더라구요.”

연주상단 정도 되는 큰 상단이면 정보도 상당히 빠르긴 할 것이다.

청여홍이 말을 이었다.

“이미 백도의 많은 분들이 실제로 송 공자님을 그 별호로 부르고 있다고 해요. 계속 퍼져나가고 있는 모양이구요.”

“하······!”

이미 많이 퍼져나가고 있기까지 하다고?

“기분이 어떠세요? 저는 멋진 별호라고 생각되는데.”

“아하하······, 이것 참······.”

얼떨떨하면서도 민망한 기분이다.

동천비룡(東天飛龍).

동쪽 하늘을 나는 용이라는 뜻이다.

동부지맹 소속이기에 ‘동천’일 테고, 거기에 ‘비룡’이 붙은 것이다.

별호에 들어가는 ‘비(飛)’라는 글자는 주로, 전체적인 움직임이 빠르고 유려한 무인들에게 붙는다. 간단한 예로 천마신교의 비마(飛魔)라는 별호를 들 수 있다. 비마 장로도 매우 빠른 사람이다.

부담스럽기는 한데, 내가 빠르게 움직이며 싸웠던 만큼 저런 별호가 붙은 것도 납득은 된다.

개인적으로 비룡이라는 별호 자체가 싫지는 않다.

이번 생은 비룡이라는 말과 뭔가 인연이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연승휴의 무공인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 때문에 나는 비룡이라는 말을 붙여 여러 이름들을 지었었다. 귀령사객한테서 빼앗은 수투에도 비룡수투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내가 세울 장원의 이름도 비룡장으로 정했었다.

한데 사람들이 붙여준 별호에도 비룡이라는 말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청여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참고로 동천비룡은 동천뇌룡과 함께 동천쌍룡으로 통한다고 해요.”

“엥?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원래 동천일룡이 계셨잖아요. 동쪽 하늘에 용이 하나뿐일 때는 굳이 다른 이름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제 용 하나가 더 나타났잖아요. 그러니 구분하기 위해서 원래 있던 용한테도 알맞은 이름이 붙은 거죠. 그 이름이 뇌룡인 거구요.”

동천일룡은 남궁찬의 별호였었다.

한데 동천일룡이 동천쌍룡이 되면서 내게는 비룡이라는 별호가 붙고, 남궁찬에게는 뇌룡이라는 별호가 붙었다는 뜻이다.

동천뇌룡(東天雷龍)이라.

별호에서 ‘뇌(雷)’는 주로, 공격 기술이 매우 빠르고 강력한 무인에게 붙는다.

남궁찬이 싸우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입장에서, 그에게 충분히 어울리는 별호라고 생각된다.

그나저나 쌍룡(雙龍)으로 같이 묶여도 하필 남궁찬과 묶이다니.

남궁찬은 워낙 상징성이 높은 인물이라, 그 이름과 같이 묶이면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입에서 한 번이라도 더 언급될 수밖에 없다.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라는 경력까지 더해져서 내 별호와 이름도 더 널리널리 퍼져나갈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도 제대로 유명인사인 건가?

옘병, 동갑도에서 활약을 펼친 후로 머지않아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긴 했었다.

한데 막상 그게 현실이 되니 한숨이 나온다.

잠시 후에 청여홍이 말했다.

“한데 송 공자님께서도 제게 용무가 있으시다고······. 그래서 방으로 호출하셨다고······.”

“아! 청 소저에게 따로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였소. 그 일로 부탁도 드릴 겸.”

“무슨 부탁이신지는 몰라도 제 역량이 닿는 한,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행낭 안에서 보자기 두 개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청여홍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보자기의 매듭을 풀 때쯤, 나는 공력을 퍼트려 방 안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했다.

보자기들을 풀어본 청여홍이 놀란 음성을 내뱉을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청여홍은 보자기를 풀 때마다 눈을 휘둥그레 뜨기는 했으되 놀란 음성을 내뱉지는 않았다.

역시 대상단주의 딸내미답게, 어려서부터 귀한 물품들을 많이 보며 자랐기 때문인가 싶다.

“와······! 이건 제 예상을 수십 배는 뛰어넘는 수준인데요? 어딘가의 숨겨진 보고라도 발견하신 거예요?”

“그렇소. 운이 좋았소.”

“헉! 농담 삼아 그냥 해본 말인데 정말이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 많은 귀중한 물품들을 어떻게 구했겠소. 그나저나 어떻소? 거래가 가능하겠소?”

“당연히 가능해요. 하지만 우리 상단 혼자서 이 많은 귀중품들을 현금화시키려면 시간은 좀 걸릴 수밖에 없어요. 제대로 팔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쳐야 하는데, 물품이 많아서 그 시간도 적지 않게 걸릴 거예요. 이후에 막대한 현금을 조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구요.”

“그건 이해하오. 급하지 않으니 연주상단 또는 남창지점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차분히 진행해도 되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청여홍이 공손하게 읍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침 점심때 관 지점장님과 양 총관님이 인사차 이곳에 잠시 들르기로 하셨어요. 그 두 분에게도 말씀드리고 가시는 길에 직접 가져가게 하면 될 것 같아요. 어차피 이곳에서 배로 이동하면 남창지점 앞의 나루터에 닿으니 안전하기도 할 테구요.”

“알겠소.”

잠시 후 청여홍이 보자기를 묶으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거 현금화시키면 액수가 어마어마할 텐데, 따로 염두에 두신 용처라도 있나요?”

“아직 따로 용처를 생각해 본 건 아니오. 일단은 전장에 넣어 둘 셈이오.”

그러자 청여홍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액수가 워낙 커서 그 돈을 그냥 전장에만 넣어 두셔도 많은 이자가 나오긴 할 거예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동안 꺼내지 않고 전장에만 넣어 둘 계획이시라면 그 금액, 제 쪽에 투자하는 건 어떠세요?”

“투자······?”

“네. 제가 관 지점장님, 양 총관님과 같이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거든요.”

“새로운 영역이라면······.”

그러자 청여홍이 살며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러나 진지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바로 그 전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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