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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08화 (208/416)

내 안에 마교있다 208

말없이 청여홍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시간 동안 청여홍도 조용히 내 눈을 응시했다.

나는 청여홍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기에, 불순한 의도 따위를 의심하지도 않는다.

내가 의문스러워하고 있는 건 청여홍의 역량이다.

그녀에게 사업을 제대로 성공시킬 만한 역량이 있는지는 아직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본인도 준비가 필요하다.

관련된 사안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하며 공부를 해야 한다.

사업 계획서 등을 꼼꼼하게 검토한 후 사업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도 따져 봐야 하고, 수익과 손실에 관련된 제반 사항들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계산해 봐야 한다.

아울러 어떻게 하면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고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부지런히 논의해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 지금은 왠지 큰 그림을 봐야 할 것 같은 상황이다.

청여홍이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사업, 수익, 특장점 등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없다.

왠지 이 순간이 나와 청여홍의 미래 관계를 결정지을 중요한 지점이 되지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면 청여홍도 아직까지는 어엿한 상인으로서 정식으로 첫발을 내디딘 상황은 아니다. 이제야 첫발을 내딛으려 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사업을 하는 그녀의 입장에서도 신뢰를 갖고 평생 함께할 만한 동지 또는 동반자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연주상단과 연관된 인맥이 아닌, 본인 인맥의 자본가 또는 투자자를.

단순하게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청여홍의 사업이 실패할 경우 나는 큰돈을 잃을 것이다.

내게는 그 외의 재산도 많긴 하나, 큰돈을 잃으면 당연히 충격과 상실감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말 그대로, 그 돈이 없다고 해서 내 삶이 궁핍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남은 재산도 죽을 때까지 다 쓸 수 있을지조차 의심될 만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청여홍의 사업이 성공할 경우, 나는 여러모로 편리해진다.

큰 수익이 생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그 전장의 특급 우대 고객으로서 자금 보관 및 융통에 있어 큰 유리함을 갖게 된다.

내 자금에 대해 외부에 비밀을 유지하기도 편해진다. 청여홍, 관대평, 양운필 등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한 후, 청여홍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말했다.

“그럽시다.”

청여홍이 나를 향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관련해서 한 가지만 묻고 싶소.”

“말씀하세요.”

“자금이라면 소저의 부친에게 저리로 대출을 받는 방식 등으로 해결할 수도 있잖소. 소저의 입장에서는 그편이 외부 자금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할 것 아니오.”

내 말에 청여홍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건 제 투자 요청을 승낙하기 전에 따져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하, 어쨌거나 말이오.”

청여홍이 잠시 호흡을 정리하더니 말했다.

“전에 말씀드렸듯 아버지께서는 제게 남창지점의 경영을 맡길 계획이세요. 우리 상단의 입장에서 남창지점은 중원 진출의 교두보인 만큼, 저는 열심히 남창지점을 경영할 생각이에요. 그러나 제가 남창지점을 열심히 키워 놓는다 해도, 그곳이 온전히 제 것이 된다는 보장은 없는 게 현실이에요.”

내가 살짝 눈매를 좁히자 청여홍이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세요. 상단주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그런 노른자위를 딸자식에게 온전히 물려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어요? 핏줄을 이어갈 아들들 내지는 언젠가 생길 손자에게 주고 싶겠죠. 차기 상단주의 자리도 아들인 제 동생이 잇게 될 텐데, 결정권이 그 아이에게 넘어간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구요.”

“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슬슬 알 것 같았다.

청여홍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저는 지금, 연주상단에 종속되지 않은 자금으로 제 사업을 일으키고 싶은 거예요. 연주상단의 결정권과는 전혀 관계없는 제 사업을.”

“아하.”

“상단들처럼 유통을 주무르는 것도 충분히 좋은 돈벌이 수단이긴 한데, 저는 아예 그 이전의 문제인 돈 주무르는 일을 제대로 해보려구요. 전장도 상인이잖아요. 돈 상인.”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는데, 모종의 자신감도 엿보이고 있다.

청여홍이 정리하듯 말했다.

“계획의 초기 단계라서 송 공자님에게 처음 말씀드린 거고, 그런 만큼 송 공자님이 첫 투자자이기도 하세요. 투자 계약서 초안을 작성해서 보여드릴 테니 세부 사항들은 그걸 보면서 조율하기로 해요. 그때 사업 계획서도 보여드리고 설명도 드릴게요.”

“알았소. 다만 이 시점에 내가 사업 계획서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어차피 이미 청 소저에게 돈을 맡기기로 결정을 내린 마당이니까.”

내 말에 청여홍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했다.

“참고로 숨겨진 보고에서 얻은 귀중품들이 더 있으시면 차후에 그것들도 저희 쪽에 편하게 맡겨 주세요. 그 자금까지 투자해 달라고는 말씀 안 드릴 거니까요.”

“하하, 알겠소.”

투자에 관련된 대강의 이야기가 끝난 것 같기에, 음성이 퍼져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퍼트렸던 공력도 거두었다.

이후에 청여홍에게 말했다.

“어차피 관 지점장님과 양 총관님이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았으니, 그 전까지 요 옆에서 간단하게 소저의 무공이나 점검해 봅시다.”

“네. 잘 부탁드려요.”

내 방 바로 옆에는 객실 건물 측면의 작은 마당이 있다.

청여홍을 그곳으로 데리고 나가서 비무 형식의 점검을 마쳤다.

그녀가 호흡을 고르기를 기다렸다가 말했다.

“익히고 계신 모든 무공이 잠룡관의 기본 무공들 중에서 고른 것들이구려.”

“네. 잠룡관 초창기에 교관님들이 기본을 다지기에 좋을 거라며 추천해 주셨던 무공들이에요. 아무래도 제가 처음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잠룡관에 들어왔던지라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구요.”

하긴 청여홍은 원래 잠룡관에 들어올 계획조차 없던 사람이다. 정략혼인을 피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입관했다고 했었다.

“관 지점장님이 졸업 후에 따로 뛰어난 무공 사부를 붙여준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그 전까지는 기본기 위주로 탄탄하게 익혀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열심히 수련해왔던 거예요.”

청여홍은 올해 일 학기 때는 경반이었다가 이번에 기반으로 승반했다.

내가 보기에도 딱 그 수준의 실력이긴 한데, 그녀의 말마따나 확실히 기본기 자체는 탄탄하게 잡혀 있는 모습이었다.

단, 지금의 무공들로는 성취가 매우 더뎌질 수밖에 없다.

기본 무공이 가지는 한계 때문이다.

청여홍은 현재 삼 년 차인 만큼 졸업을 빨리 한다고 해도 잠룡관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아직 일 년 반이나 남았다.

한데 이대로는 그 시간 동안 성취의 큰 진전 없이 시간만 날릴 가능성이 높다.

유은무와 장우혜가 왜 내게 청여홍을 점검해 달라는 부탁을 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어차피 나는 청여홍에게 큰돈을 투자하기로 했기에 앞으로도 그녀와는 깊은 신뢰 관계를 유지해가야 한다.

그렇듯 여러 부분들을 고려하다 보니, 나는 결국 이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무공, 바꿉시다.”

내 말에 청여홍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어차피 내게는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쾌류’ 무공들이 있으니 그걸 전수하면 될 일이다.

다섯 명 가르치는 중에 한 명 더 늘어난다고 해서 크게 부담될 일도 아니다.

가뜩이나 우리 조원들을 지도하는 일도 한결 수월한 상황이다. 단목강, 소충광, 우문직도 함께 합숙하고 있으니, 실전 위주의 훈련이 필요한 포연월과 원추엽은 그쪽에 맡겨도 되기 때문이다.

소충광과 우문직 또한 잠룡일대로서 목숨 건 실전을 겪었던 이들이며, 현재의 동부지맹 잠룡관에서는 최정상급의 실력자들이기도 하다.

내가 무공을 바꾸자고 제안한 근거를 설명하자 청여홍도 금세 이해하고 납득했다.

그렇기에 오전에는 쾌류심결에 대해 이론 강의를 간단하게 마친 후,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두 차례 운기행공을 유도해줬다.

청여홍은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무조건 따르겠다는 각오다.

‘동천비룡 송유겸 소협’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점심에는 지점장인 관대평과 총관인 양운필이 찾아와서 모두와 함께 인사를 나누고 식사도 했다.

이후에는 나와 그 두 사람, 청여홍이 따로 만나서 여러 대화들을 나누었다.

비룡장 공사 진행 건, 내가 건넨 귀중품들을 처분하는 건, 투자 건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를 대하는 관대평과 양운필은 이전보다 더 극진한 분위기였다.

이제는 내가 투자자의 입장이라서 그러나 보다 했는데, 헤어질 때 ‘앞으로도 동천비룡 송 소협을 더 잘 모시겠다’는 식의 농담 섞인 인사를 건네고 떠났다.

관대평과 양운필이 돌아간 후에는 또다시 청여홍에 대한 무공 전수를 이어갔다.

아까 시작했던 쾌류심결을 이어서 전수했는데, 청여홍도 초보가 아닌 만큼 금세 혼자서 운기조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쾌류보도 가르쳤다.

심산화가 익힌 일형을 전수했는데, 청여홍은 이 또한 금방 적응하며 익혔다. 그녀의 기본기가 탄탄하게 잡혀 있는 덕분이며 내가 일대일로 집중해서 지도한 덕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배우는 사람의 열정이 강하다 보니 가르쳐주는 입장에서도 편했다.

“며칠간은 심법과 보법만 집중적으로 익히고 계시오. 새로운 검법은 그 후에 가르쳐드리겠소.”

“네, 알았어요.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수련할게요.”

검법은 심산화에게 가르친 쾌류소검예를 일반적인 검에 맞게 변형시켜서 가르치면 될 것 같은데, 어려운 작업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다듬을 부분들은 있다.

그 작업은 천천히 진행할 생각이다.

어차피 청여홍도 심법과 보법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할 테니, 검법은 그 후에 가르쳐도 되기 때문이다.

검법명은 쾌류소검예에서 ‘소’를 빼고 그냥 쾌류검예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합숙 첫날이 지나갔다.

* * *

합숙 기간은 바쁘게 흘러갔다.

나는 매일같이 송유하의 무공 수련을 도왔고, 단목지와 같이 단목세가의 검술의 변형식을 정리해 갔으며, 청여홍을 포함하여 쾌류무를 익히고 있는 인원들을 꼼꼼하게 지도했다.

쾌류검예도 완성시켜서 청여홍에게 전수한 상태다.

참고로 내가 만든, ‘쾌류’가 붙은 모든 무공들을 그냥 ‘쾌류무’라고 부르고 있다.

장우혜, 유은무, 포연월, 원추엽 등과는 최소한 이틀에 한 번씩, 단목강, 소충광, 우문직과는 사나흘에 한 번씩 비무 형식의 수련을 해줬다.

합숙 기간의 초반에는 혼자서 정가장에도 다녀왔다.

이번에도 면구를 쓰고 모습을 바꾼 채로 가서 정우립과 정세건을 만났고, 비룡장의 공사 진행 상황과 그 옆에 있는 내 집터의 공사 진행 상황도 확인했다.

간 김에 제갈수광이 얻었다는 집에도 몰래 가서 구경했고, 원을태와 촉홍결이 얻었다는 집들도 확인하고 왔다.

정가장 쪽에 다녀온 후에는 밤시간을 이용해서 남창에도 다녀왔다.

당연하게도 흑도 놈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일전에 내가 파악했던 청산호방의 고철상에 가봤는데 인적이 없어서 의아했다.

오래 기다리며 확인까지 해봤으나 고철상의 대문을 드나드는 사람도 없었고 그 안에 있는 창고의 문이 열린 적도 없었다.

그때의 흑도 놈들이 거짓말처럼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청산호방의 거점인 고철상뿐만 아니라, 동호방과 서호방의 거점들도 확인해 봤다. 그 거점들도 청산호방의 고철상처럼 인적이 없이 조용했다.

때문에 요즘은 밤마다 틈틈이 청산호방 구역의 번화가로 나가서 단서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나, 흑도 놈들이 혈교와 연관되어 있는 만큼 왠지 모르게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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