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10
장우혜, 유은무, 포연월, 원추엽이 공터를 떠나자마자 두 사람이 다가왔다.
소충광과 우문직이었다.
이번에는 이 둘의 수련을 도울 시간이다.
“어서들 오시오.”
내가 인사를 건네자 소충광이 대꾸했다.
“고생이 참 많으시오, 송 공자.”
그러자 멀어져가는 네 명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던 우문직이 말했다.
“합숙에 와서 확실하게 느낀 건데, 내가 잠룡관의 이 년 차 중에서 최고라고 여기는 두 사람이 저기에 있고, 잠룡관의 초년 차 중에서 최고라고 여기는 두 사람도 저기에 있구려. 한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아시오? 저 넷 다 계반이라는 점이오.”
그러자 소충광이 우문직에게 대꾸했다.
“아, 나도 우문 공자와 같은 생각이오. 한데 우리 동부지맹 잠룡관에서는 딱히 이상한 일인 것도 아니잖소? 단목강 공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잠룡관 최고의 실력자 두 명도 모두 계반에 있다고 하니.”
이건 나와 길초량 얘기라 민망한 미소를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슬슬 수련을 시작하기 위해 일어섰을 즈음, 소충광이 말했다.
“송 공자, 오늘은 이 대 일의 비무로 진행합시다.”
“예? 갑자기 이 대 일이라니······.”
지금까지 이 두 사람을 상대로는 일대일의 비무 형식으로만 수련을 도와줬었다.
나는 비무 형식의 수련을 할 때면 누구에게든 적당한 수준으로 맞춰서 상대해준다. 그래야 당사자가 더 마음껏 무공을 펼칠 수 있어서 수련에도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에게도 그래 왔었다.
한데 갑자기 왜 저런 제안을 하는 걸까.
소충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한번 해봅시다. 단, 일대일로 상대할 때처럼 적당히 맞춰주지 말고 제대로 상대해 주시오. 우리도 최선을 다하리다.”
그러자 우문직이 바로 말을 보탰다.
“송 공자는 마음먹고 움직이면 상당히 빠르다고 알고 있소. 우리를 압도해도 좋으니 충분한 빠르기로 상대해 주시면 더 고마울 것 같소.”
표정들이 자못 진지하다.
친우들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부탁하니 뭐, 들어줘야지.
물론 이 두 사람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속도만 쓸 것이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이 대 일의 비무에 들어갔다.
두 사람과의 이 대 일 비무는 반각 정도 진행되다가 끝났다.
반각이면 금방 끝난 셈인데, 소충광과 우문직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이다.
두 사람은 그 반각 동안, 그야말로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호흡을 고른 소충광이 놀람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허어! 이런 격차라니······! 물론, 애초에 이 대 일이라고 해서 우리가 우세를 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소. 그래도 한 차례씩은 곤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러자 우문직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게다가 후반부의 그 무시무시한 속도라니······. 속도도 속도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조금의 빈틈도 찾을 수가 없더구려. 정말이지 경지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이었소.”
그 말에 소충광도 동의한다는 듯 빠르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상당한 충격들을 받은 모양이다.
나는 민망함을 담아 미소만 지어 보였다.
사실, 비무의 초반에는 천섬무를 운용하지 않은 채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냈었다.
그러나 이들도 잠룡일대를 통해 실전 경험까지 쌓은, 어엿한 갑반 관도들이다. 그런 만큼, 그 정도 속도는 어렵지 않게 감당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초중반부터는 천섬무를 하 단계로 운용했는데, 이들은 그 속도에도 어떻게든 적응했다. 이 대 일의 대결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이후에는 천섬무를 중하 단계로 운용해줬다.
참고로 아까 장우혜도 천섬무의 중하 단계에 육박하는 속도를 보였었다. 물론 그 속도가 유지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장우혜의 경우, 그 시간 동안은 그런 속도를 완벽하게 감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소충광과 우문직은 장우혜보다 실력이 높은 만큼, 천섬무의 중하 단계를 얼마나 오랫동안 완벽하게 감당해 낼지가 궁금했다.
역시나 두 사람도 처음에는 제법 잘 감당했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르자 손발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장우혜보다는 두 사람의 수준이 높다는 걸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 후에 나는 중하 단계에서 약간 더 속도를 올려줬다.
중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중하 단계와는 충분히 구분될 만큼의 빠른 속도였다.
역시나 그 속도는 거의 따라오지 못하기에 그쯤에서 비무를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두 사람에게 물었다.
“한데 두 분께서는 소생에게 왜 갑자기 이 대 일의 비무를 요청하셨으며, 왜 그런 식으로 상대해 달라고 하셨던 것이오?”
소충광이 대꾸했다.
“아, 단목강 공자의 의견에 따랐던 것이오.”
“엥? 조장님이 무슨 의견을 내셨기에······.”
참고로 나는 단목강을 계속 조장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있다. 소충광이 대꾸했다.
“이런 식으로 송 공자를 상대하고 나면 정신이 바짝 들어서 열심히 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하더이다. 한데, 해보니까 실제로 정신이 바짝 드는구려.”
맥락을 알 수 없어서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우문직이 입을 열었다.
“그게, 실은 우리가 이번에 통합 잠룡대전의 출전권을 노리고 있소. 그래서 이번 합숙에서 더더욱 열심히 하려는 것이고.”
우문직의 말을 들으니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아! 그 얘기였어?
생각해 보니 곧 그 시기이긴 하네.
나야 딱히 관심이 없지만, 통합 잠룡대전은 각 지맹 최상위권의 실력자들에게는 최대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행사다.
그리고 통합 잠룡대전의 출전자를 가리기 위한 동부지맹 잠룡대전은 팔월 보름께 열린다.
팔월 보름께면 이 학기가 개학하고 나서 한 달 후다.
그런 만큼, 통합 잠룡대전을 노리는 관도들은 여름 방학 때부터 부지런히 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문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송 공자도 아시겠지만 우리 동부지맹 잠룡관의 경우, 작년에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했던 관도들 중 다섯 명이 졸업했소. 즉, 예비 명단까지 생각하면 계산상으로 다섯 명이 새로 충원되어야 하오.”
우문직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다섯 자리 중에서 두 자리를 우리가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는 것이오. 사실, 소 공자의 경우에는 충분히 본선 진출자 여덟 명 안에 들 만한 실력이시라고 판단되오. 내 경우가 약간 간당간당할 것 같은데, 여덟 명에 못 들어도 예비 명단에라도 들겠다는 생각으로 노력 중이오.”
내 평가도 우문직의 평가와 비슷하다.
우문직이 예비 명단에라도 들고 싶어 하는 이유는 작년부터 신설된 단체전 때문일 것이다. 그 단체전 덕분에 이제는 예비 명단에 드는 일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소충광이 말했다.
“엊그제 단목강 공자와 같이 있는데 마침 통합 잠룡대전 얘기가 나왔소. 그래서 어떻게 준비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되었던 것이오. 단목강 공자는 유경험자이자, 통합 잠룡대전에서 사강에 오른 실력자이기도 하니까.”
“뿐만 아니라 올해에는 강력한 우승 후보이기도 하고.”
우문직이 그렇게 말을 덧붙이자 소충광이 입을 열었다.
“단목 공자는 비무 형식의 수련을 자주 하는 게 아무래도 유리할 거라고 하더구려. 그러면서 우리가 통합 잠룡대전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단목 공자 본인도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를 상대해 주겠다고 했소. 그러면서 중요한 건 따로 있다며 한마디를 더 보태더구려.”
“뭐가 중요하다고 하셨소?”
“출전권을 따내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려. 단순히 통합 잠룡대전에 출전만 하는 것을 넘어, 그곳에서도 성적을 내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없으면 삼십이강에서 탈락할 뿐이라고 했소. 통합 잠룡대전에 참가한 그 뛰어난 관도들 중에서 반이 삼십이강에서 탈락한다면서.”
맞는 말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우문직이 말했다.
“그러면서 말하더구려.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싶으면 이번 기회에 송 공자의 압도적인 실력을 한번 겪어 보라고. 어차피 일대일로는 너무 싱거울 테니, 이왕이면 이 대 일로 한번 붙어 보라고.”
우문직이 바로 말을 이었다.
“통합 잠룡대전의 우승자 출신이면서 근래 최강의 후기지수로 통하는 사람의 실력을 제대로 한번 느껴보라고 하더구려. 그러면 정신이 바짝 들 거라고. 단목강 공자 본인은 기동타격조에서 많이 봤는데, 나태해질 때마다 당시에 봤던 송 공자의 모습을 떠올리면 정신이 바짝 든다면서.”
나는 빙그레 미소만 지어 보였다.
소충광이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송 공자와 방금 그런 식의 비무를 펼쳐 보니 단목 공자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확실히 알 것 같구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는 그냥 방금 전의 방식으로 수련합시다. 어차피 송 공자도 여기저기 지도해 주느라 시간이 부족한 입장이고, 우리도 차라리 마지막의 그 속도에 적응하는 편이 여러모로 더 도움이 될 것 같소.”
그 말에 우문직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생각도 같소. 후반의 그 속도에만 어느 정도 적응해도 웬만한 상황들에는 대처가 가능해질 것 같소. 통합 잠룡대전을 준비하기에 그만큼 좋은 수련이 또 어디 있겠소? 어차피 일대일 비무 형태의 수련은 우리끼리 해도 되오. 그 부분은 단목강 공자도 도와준다고 했고.”
우문직의 말이 맞긴 하다.
천섬무의 중하 단계를 넘어선 속도에 대처할 수 있는 수준만 되어도, 누구한테든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대꾸해줬다.
“알겠소. 그럼 그리합시다. 어쨌거나 그 외에도 내 도움이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오. 나 또한 두 분이 통합 잠룡대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입장이니까.”
나는 안 나갈 테니 얘들이라도 잘되게 해주는 거지, 뭐.
“마음 써 줘서 고맙소.”
소충광의 대꾸에 우문직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의 이야기가 정리되자 우문직이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길 공자는 지금쯤 남창 근처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합숙 중이겠구려.”
이에 나는 곧바로 우문직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엥? 남창이라니요? 길 형의 조는 여산 쪽에서 합숙할 거라고 들었는데?”
“아, 원래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길 공자가 마침 남창 쪽에 볼일이 생겨서 막판에 장소를 변경했다고 하오.”
신룡대 자식이 합숙 장소를 갑자기 남창으로 변경했다고 하니 의심부터 든다.
다른 신룡대원들과 연계하여 혈교 및 흑도에 대한 조사를 하려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다.
나도 끼고 싶다고!
도예주 누나는 왜 연락이 없는 거냐고!
우문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자들과는 약 삼 주 정도만 합숙을 진행한 후에 이쪽으로 넘어올 계획이라고 했소. 마지막 방학이나 다름없으니, 최후의 며칠간은 친우들인 우리와 같이 보낼 거라면서.”
그 말에 소충광이 대꾸했다.
“보아하니 길 공자의 의도는 딱 이거요. 어차피 합숙의 마지막 즈음에는 정리하는 의미에서 술을 한 잔씩 하게 되니, 그쪽에서도 한잔하고 이쪽에 와서 또 한잔하겠다는 속셈이오. 빤하잖소. 다름 아닌 우리 길 술고래니까.”
“오! 하긴, 길 술고래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구려.”
소충광과 우문직이 낄낄거렸다.
참고로 얘들도 소 술고래, 우문 술고래다.
길초량과 함께 섣달그믐날의 인원들을 대표하는 술고래들인 것이다.
* * *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구슬땀을 흘리는 가운데, 합숙 기간은 금세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