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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12화 (212/416)

내 안에 마교있다 212

길초량에게 내원과 본채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내가 먼저 서둘러 내원으로 향했다.

도예주의 치료가 급해 보이니 본채로 가서 여자들에게 미리 알려 준비시키기 위함이었다.

금세 내원의 문을 통과하여 본채로 들어섰다.

나는 들어서자마자 이 층에 있는 송유하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릴 계획이었다. 송유하를 깨우면 그녀가 알아서 청여홍이나 단목지 등에게 알릴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이 층으로 올라갈 필요도 없었다.

본채 일 층의 응접실에 단목지와 청여홍, 송유하가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의아하다.

지금 시각이 자정 즈음이라 평소라면 얘들도 웬만해서는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이렇듯 세 명이 깨어서 모여 있는 것이다.

나를 보는 세 여인도 의아해하는 표정이었다.

청여홍이 말했다.

“송 공자님, 웬 야행의를 입고 계신 거예요? 뭔가 외출이라도 했다가 돌아오신 듯한······.”

그 말에 송유하와 단목지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들을 향해 서둘러 대꾸했다.

“아, 잠이 잘 안 오기에 그냥 포양호 변을 따라서 잠시 산책하며 밤의 정취를 느끼던 중이었는데······.”

“왜 굳이 산책하시는데 무장까지 단단히 갖추시고······.”

단목지의 예리한 지적이었다.

무장을 갖춘 복장으로 산책이라니.

내가 봐도 이상하다.

“아하하, 강호라는 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니 항상 철저한 준비 정신으로다가······.”

여자들은 시선에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상태에서 송유하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라버니를 깨우러 가야 하나 고민 중이었어요.”

“응? 왜?”

내가 되묻자 송유하 대신 청여홍이 말했다.

“이것 때문에요.”

청여홍이 내게 뭔가를 내미는데, 꼬깃꼬깃한 전서였다.

펼쳐서 읽어 보니 짧지만 놀라운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무림맹의 남창지부가 정체불명의 무리들에게 기습을 받아 큰 위기에 빠진 것으로 보이며, 비상 상황인 만큼 연주상단의 남창지점도 재산 보호를 위한 즉각 폐쇄 조치 및 최대 방비 태세에 들어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거리가 있기에 남창지부의 위험 상황이 이쪽 장원에까지 영향을 미칠 일은 없겠으나, 그래도 주의할 필요가 있으니 경계를 강화하며 모든 상황에 대비하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세상에, 무림맹의 남창지부가 기습을 받아 위험한 지경에 처했다니.

이건 예전에 태화지부가 습격을 받았던 것과도 차원이 좀 다른 얘기다. 태화지부는 강서 남부의 산지에 인접한 외진 지부지만, 남창지부는 강서의 도읍인 대도시, 남창에 위치한 지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호 전복을 노리는 세력들이라 해도 그런 곳을 노리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는 사이, 도예주를 업은 길초량이 본채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기, 길 공자님······!”

길초량의 모습을 확인한 송유하, 단목지, 청여홍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길초량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 여러분, 늦은 시간에 미안하게 되었소.”

이에 나는 곧바로 청여홍에게 상황을 설명해줬다.

“산책하다가 밖에서 우연히 만나서 데려온 것이오. 길 형이 뒤에 업고 계신 분은 우리 두 사람의 지인이시오. 부상이 깊은 듯하니 서둘러 치료 준비를 좀 해주시오.”

“이 장원에서 상비하고 있는 약품들이나 치료 도구들이 있어요. 질 좋은 것들이니 충분히 도움이 될 거예요.”

청여홍이 그렇게 말하더니 송유하에게 도와달라며 데리고 사라졌다.

그러자 단목지가 길초량에게 말했다.

“저는 외상 치료 경험이 많으니 충분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예요. 일단 환자부터 옮겨요. 이 층 거실 바로 옆에 빈방이 있으니 그쪽으로.”

단목지가 그 말과 함께 앞장서서 이 층으로 올라갔고, 도예주를 업은 길초량이 즉시 그 뒤를 따랐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올라갔다.

이 층으로 올라오면서 보니 장우혜, 유은무, 포연월, 심산화 등이 하나둘씩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고 있었다. 본채가 약간 소란스러워진 것을 알고 나온 것이다.

“어? 길초량 선배님······?”

잠이 덜 깬 듯한 유은무의 말이었다.

이 층에 있던 애들도 다들 놀란 와중에도 의아한 기색이다.

단목지가 그녀들을 향해 서둘러 말했다.

“중상자가 있어. 의술에 능한 사람은 나를 좀 도와주고, 나머지는 솥에 물을 좀 끓여줘.”

다들 무가의 자식들이고 스스로 무인들이라 치료술이야 일정 이상 갖추고 있지만, 방금 전의 단목지는 의술에 일정 이상의 조예가 있는 사람을 얘기한 것이다.

포연월이 대꾸했다.

“제가 의술은 어느 정도 가능한데······.”

그 말에 단목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포연월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그럼 저희들이 물 끓여 올게요.”

유은무가 단목지에게 그렇게 말하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빛을 보냈다.

“업혀 있는 분은 나와 길 형의 지인이야. 한데 어쩌다가 저렇게 되셨는지는 나도 아직 몰라.”

그러자 장우혜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송 오라버니, 그 행색은 뭐예요?”

“아, 이건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누이들, 빨리 물 좀 끓여줘.”

“알았어요.”

상황이 급하니 할 수 없다는 듯, 유은무와 장우혜가 심산화를 데리고 일 층으로 사라졌다.

그즈음 단목지, 포연월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던 길초량이 복도로 나왔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워낙 정신이 없었던지라 이 말을 이제야 물어보는구려. 괜찮소? 보아하니 몇 군데 베인 것 같은데.”

“괜찮소. 얕은 상처들이오.”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그를 이끌고 일 층으로 내려갔다.

응접실로 내려와서 길초량을 의자에 앉혔다. 그에게도 휴식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즈음 송유하가 깨끗한 천과 금창약을 가지고 우리 쪽으로 왔다.

“그 환자분한테는 여홍이가 이것저것 많이 챙겨서 갔어요. 제가 아까 잠깐 보니 길 공자님도 약간이나마 치료가 필요한 것 같기에······.”

의미를 알아들은 길초량이 빙그레 웃으며 송유하에게 대꾸했다.

“고맙소, 송 소저.”

“고맙긴요. 다른 분도 아니고 길 공자님이신데.”

곧 심산화가 물이 든 통을 가져오자, 송유하가 길초량의 상처를 꼼꼼히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

치료받고 있는 길초량을 향해 전음으로 물었다.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으로부터 전서가 왔소. 무림맹 남창지부가 정체불명의 무리들에게 기습을 받아서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 같다는 내용이었소. 길 형과 예주 누나가 다친 게 혹여 그 일과 연관이 있소?]

[간접적으로는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소.]

[그게 무슨 뜻이오? 아니 그 전에, 대체 길 형과 예주 누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내 물음에 길초량이 난감함 가득한 표정을 보였다.

대꾸하기가 난감하다는 뜻일 텐데, 나는 길초량이 다소 곤란해하더라도 이번 일만큼은 제대로 알아낼 생각이다.

그 심정을 고스란히 담아서 길초량을 바라보자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전음을 보내왔다.

[송 형의 표정을 보니 이쯤 되었으면 어쩔 수 없는 것 같구려. 아까 백룡조장님께서도 송 형이라면 괜찮다고 말씀하기도 하셨고······.]

아직은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어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그가 뭔가를 각오한 듯한 표정으로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백룡조장님이 그러시더구려. 넉 달 전쯤에 구령산맥 쪽에서 중요한 첩보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현장에서 우연히 송 형과 마주쳤다고. 당시에 송 형도 혼자서 나름의 조사를 하다가 그곳에 닿은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송 형에게도 혈교에 대한 언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그랬었소. 당시에 혈교에 대한 내용은 무림맹의 수뇌부와 신룡대 정도에서만 극비로 관리되고 있는 정보라고 들었는데, 그걸 길 형도 알고 있구려?]

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한 이유는, 나도 대강 눈치챈 것들이 있으니 수작 부리지 말고 제대로 대답하라는 의미에서다.

그러자 놈이 낮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소. 웬만하면 안 오기를 바랐지. 어쨌거나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감정이 복잡해지는구려. 실은 나는 신룡대원이오. 그간 어쩔 수 없이 감추고 지내왔소. 미안하오.]

짜식이 드디어 본인의 입으로 이실직고를 했다.

길초량은 어차피 혈교 얘기를 꺼낼 때부터 밝힐 각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지금의 상황을 내게 납득시키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도예주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혈교에 관련해서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도예주가 나라면 괜찮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었던 데다가, 길초량은 내가 입이 무겁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내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두세 차례 끄덕여 보이자 오히려 길초량의 눈매가 좁아졌다.

[아니, 아무리 지금의 정황으로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놀란 척도 안 하시오? 송 형의 친우인 이 길초량이가, 신룡대원이라니까?]

[왜, 대신룡대원님 앞이니 고개라도 조아려 드려?]

내 대꾸에 길초량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닛! 그, 그런 뜻이 아니곳! 그래도 친우 간에 갑자기 놀랄 만한 정체가 밝혀진 마당인데 송 형이 너무 무덤덤한 반응이잖소.]

아까 도예주를 업고 있을 때는 그리도 다급하고 불안해 보이더니, 지금은 약간이나마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주 편한 표정은 아니다.

왠지 뭔가를 염려하고 있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면 농담을 주고받을 게 아니라 바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가야 한다.

[집어치우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나 얘기해 보시오. 누나는 왜 저렇게 다쳤고, 길 형은 왜 다쳤으며, 무림맹 남창지부에서 벌어진 일은 또 뭔지.]

결국 길초량이 체념한 표정을 짓더니 전음을 보냈다.

[나와 계반이조는 남창의 서쪽에 있는 작은 장원에서 합숙 중이었소.]

[원래 여산 쪽에서 합숙할 계획이었잖소.]

[그랬는데 윗선의 지시가 있어서 합숙 장소를 변경했던 것이오. 인근에서 첩보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룡대원들이 있기에, 필요에 따라 그들을 지원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셨소. 그러면서 알아서 그 장원을 잡아 주셨던 것이오.]

흑풍대 생활을 해본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었다.

길초량을 일종의 지원 예비 전력으로 삼았다고 보면 된다.

현재 펼쳐지고 있는 신룡대의 작전에 직접 관여치는 않고 지내다가, 만약의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만 투입되는 전력이다.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길초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오늘 오후에 계반이조의 우리 아이들을 먼저 잠룡관으로 복귀시킬 예정이었소. 남창에서 배 태워서 보낸 후에, 나는 친우들과 시간을 보내다 갈 겸 이곳으로 올 계획이었지. 한데 오늘 점심때쯤 우리가 있던 소장원에 긴급 지원 연락이 온 것이오. 그래서 아이들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며 허겁지겁 인사하고는 지원을 위해 산속으로 떠났던 것이고.]

[산속이라면, 구령산맥?]

[그렇소.]

[계반이조의 아이들은 확실히 돌아갔소?]

[그 소장원도 사실은 무림맹의 안가였고, 그곳에 있던 관리인들도 본맹의 무인이었소. 그들이 책임지고 잠룡관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었소.]

그 정도면 아이들은 안전할 것이다.

길초량의 전음이 이어졌다.

[연락책을 따라 상당히 깊은 산속까지 갔는데, 마침 신룡대원 세 명이 쫓기는 중이더구려. 백룡조장님과 백룡조의 선배들 두 명이었는데, 격전을 펼쳤는지 세 분 모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소. 그중에서 백룡조장님의 부상이 가장 심했고, 특히나 많이 지친 모습이었소. 그래서 내가 곧바로 그분을 업고 퇴각하기 시작했던 것이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서 신법을 펼쳤소. 하지만 추격하는 자들도 만만치 않았소. 결국 혼자서도 적의 추격을 막아설 수 있을 만한 좁은 길에 다다랐을 때쯤, 선배 한 명이 남아서 추격해오는 적들을 막아섰소. 이후에도 비슷한 지형에서 나머지 한 명의 선배가 적들을 막아섰고······.]

결국 그 두 백룡조원들의 희생으로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선배들이 그런 선택을 하던 당시에 백룡조장님은 계속 의식을 잃고 계신 상태였소. 두 선배는 내게 무조건 백룡조장님을 살려야 한다고 당부하셨소.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남창지부를 향해 달리는 것뿐이었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한데 중간에 백룡조장님이 깨어나시더니 지금 남창지부로 향하는 건 위험할 거라고 하셨소. 그리고 적의 추적이 계속될 수 있으니 남창지부 외에 최대한 안전할 만한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고도 하셨소. 뭔가 첩보를 알고 계신 눈치였는데, 그 후에 다시 의식을 잃으셨소.]

길초량이 말을 이었다.

[백룡조장님의 치료도 급한 마당이라 순간적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소. 치료도 받을 수 있고 혹시 모를 위험이 닥쳐도 안전할 수 있는 곳. 그 순간에 바로 떠오른 곳이 이곳이었소. 남창지부마저도 위험해진 지금, 남창 인근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바로 송 형이 있는 곳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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