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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13화 (213/416)

내 안에 마교있다 213

길초량이 말했다.

[이 장원을 향해 방향을 잡고 달리던 중에 백룡조장님이 다시 깨어나셨소.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시기에 송 형이 친우들과 합숙하고 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라고 말씀드렸소. 그때 송 형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던 것이오. 두 분이 넉 달 전에 우연히 산속에서 마주쳤던 얘기 말이오.]

이제야 전반적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뭔가를 떠올렸다는 듯 바로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아, 그리고 내가 아까 추격조와 살짝 얽혔을 때 파악한 사실이 있소. 해적들과의 전쟁 때도 우리가 상대했던 사파의 그 십 대들 있잖소? 추격조에 그들도 끼어 있었소.]

일전에 그 십 대들과 혈교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유추했던 적이 있었는데, 길초량의 증언에 의해 그게 확인된 셈이다.

그들은 약물 복용을 통해 순간적으로 공력을 활성화시켜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방식을 쓴다.

신체가 점점 망가지는 잔인한 방식인데, 애초에 그런 방식에 있어 사파보다 훨씬 전문적인 자들이 바로 혈교이기도 하다.

잠시 그 십 대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길초량에게 물었다.

[누나가 적의 추적이 계속될 수도 있다고 말했던 거, 확실하오?]

[그렇소.]

도예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구령산맥에서 혈교 쪽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펼쳐왔던 만큼, 그들의 역량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도예주가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상황 속에서도 추적에 대해 언급했다면 그건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적들 쪽에서도 추종술 등을 통해 얼마든지 두 사람에 대한 추적을 계속할 수가 있는 만큼, 이쪽에서도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송유하의 옆에 서 있는 심산화에게 말했다.

“산화야, 가서 모두에게 전투 준비를 완료하고 행낭도 꾸려서 다들 본채로 모이라고 전해. 자고 있는 남자들도 깨워서 똑같이 전하고, 이 층에서 치료하고 있는 사람들도 번갈아 가며 전투 준비는 마치고 치료를 계속하라고 해. 누군가 이유를 묻거든 그냥 내 지시라고 하고.”

“네에.”

“마지막에는 내 방에도 좀 갔다 와. 가보면 행낭을 꾸려 놓은 게 있을 거고 탁자 위에 종이도 하나 놓여 있을 거야. 둘 다 바로 나한테 가져와.”

“네.”

심산화가 그렇게 대꾸하더니 곧바로 응접실을 벗어났다.

그러자 길초량을 치료해 주던 송유하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갑자기 전투 준비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일 뿐이야. 누이도 그렇게 알고 지금 치료 끝내면 가서 전투 준비하고 행낭도 꾸려와. 전투 준비할 때 화살도 넉넉히 챙겨 놓고.”

“알았어요. 마침 치료도 거의 다 끝나가요.”

송유하가 다시금 치료를 이어가기 시작했을 때쯤 길초량이 미소 띤 얼굴로 나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그렇듯 바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든든하구려. 뭐라고 할까, 이제는 송 형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되는 느낌이오. 물론 당사자인 송 형은 내 이런 기분을 모르겠지만.]

이쯤 되니 길초량도 평소의 여유를 되찾은 모습이다.

내가 피식 웃어 보이자 그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백룡조장님과는 언제 그렇게 친해지셨소? 누나라고 부를 정도의 관계라니······.]

[동갑도의 전투가 끝난 직후, 신룡대가 떠나가기 전날 밤이었소. 그 당시에 내가 나름 백룡조원들 여럿의 목숨을 구했던 터라, 누나가 그 일에 대해 내게 따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왔었소. 그때 누나라고 부르라는 강요를 받았던 것이오.]

[아하.]

고개를 끄덕이는 길초량에게 불쑥 물었다.

[한데 길 형은 무슨 조요?]

내 말에 길초량의 눈매가 좁아졌다.

길초량은 황룡 태무엽과 친한 것 같기에 황룡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여겼었다.

한데 동갑도에서 겪어 보니 황룡조나 백룡조는 아닌 것 같았다.

당시에 황룡조원들이나 백룡조원들이 길초량을 바라보는 눈빛 때문이었다.

평상시에도, 전투를 펼칠 때도, 길초량이 위험에 빠졌을 때도, 길초량이 다쳤을 때도, 그쪽 조원들의 눈빛에서는 같은 조의 동료를 바라보는 끈끈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다.

두 조 모두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길초량이 대꾸했다.

[그, 그것까지 말해드릴 수는 없소.]

이런 때 그냥 넘어가는 건 하수다.

소거법을 적용하고 남은 것들 중에 하나쯤을 찍어서, 과감하게 넘겨짚으며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생각으로 만면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은 채, 입술로는 씩 웃어 보이며 놈에게 물었다.

[묵룡조요?]

뭐, 아니면 어때?

청룡조, 적룡조, 묵룡조 중에 하나일 텐데, 이왕이면 최강의 조라고 불리는 묵룡조로 한 번 밀어붙여 보는 거지.

묵룡조가 아니면 청룡조이거나 적룡조라는 뜻일 테고.

안력을 집중하며 놈의 눈동자를 살폈는데, 순간적으로 놈의 눈이 커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뭐야, 이 자식?

진짜 묵룡조였어?

길초량이 서둘러 눈동자에서 놀란 기색을 감췄다.

본인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놀람을 드러냈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제 와서 표정 관리 해 봐야 무슨 소용이오? 방금 전에 양 눈동자에 아주 지진이 났던데.]

[아, 아니, 그······ 어, 어떻게 아셨소?]

놈이 놀란 눈으로 그렇게 물었다.

시치미를 떼서 수습할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일 것이다. 상대가 어차피 가장 친한 친우인 나이기도 하고.

씩 웃으며 놈에게 대꾸해줬다.

[찍은 것이오.]

[그, 그래도 어떻게 다섯 개 중에 하나를 정확하게······.]

[이왕이면 최강 조라는 묵룡조로 찍어본 것이오.]

소거법을 쓴 근거까지 일일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겠지.

[하······!]

길초량이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거나 놈이 묵룡조인 이상, 언젠가는 신룡대 최강의 고수로 통하는 묵룡과도 한 번쯤은 얽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곧, 치료를 모두 마친 송유하가 말했다.

“다 됐어요.”

“고맙소, 송 소저.”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길 공자님, 치료할 때 들어보니 계속 꼬르륵거리시던데, 시장하신 거죠?”

“아······, 그······, 어쩌다 보니 저녁을 걸러서 말이오.”

“조금만 계세요. 빠르게 전투 준비 마치고 나서 간단하게나마 요기될 만한 거 챙겨올게요.”

말을 마친 송유하가 응접실을 나서자 잠시 후에 단목강이 응접실로 들어섰다.

“송 공자, 갑자기 전투 준비라니 무슨 일······. 어? 길 공자!”

내게 말을 걸던 단목강이 길초량을 발견하고는 반가움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하하, 조장님, 안녕하셨습니까.”

단목강은 기동타격조의 조장이었던지라, 길초량도 계속해서 조장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단목강은 기동타격조 출신답게 벌써 전투 준비를 완료한 모습이었다. 행낭은 보이지 않았는데, 전투 준비를 마치자마자 자초지종부터 듣기 위해 일단 이곳으로 온 모양이다.

나는 곧바로 단목강에게 말했다.

“조장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장원의 경비 무인들에게 가서 적습에 대비한 비상 경계 태세를 유지하라고 일러주십시오.”

내 말에 단목강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저, 적습······?”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모두를 모아 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소.”

“무인들에게는 경계를 서다가 상황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곧바로 호각을 불며 이곳 내원으로 퇴각하라고 알리십시오. 현재 휴식 중이거나 대기 중인 무인들의 경우에는 전투태세를 갖춘 후 내원으로 와서 휴식을 취하거나 대기하라고 이르시면 됩니다.”

“그러리다.”

말을 마친 단목강이 곧바로 응접실을 벗어났다.

청여홍에게서 열쇠를 받아서 길초량과 같이 본채 구석의 반지하 쪽방으로 향했다.

내원의 간이 무기고다.

전투 준비를 지시한 만큼 간이 무기고도 개방해 둘 필요가 있고 우리도 암기 등을 챙길 필요가 있다.

나는 쇠구슬과 소비도와 화살 여러 단을 챙겼는데, 길초량도 철비정을 챙기더니 이후에는 활을 챙기고 화살도 여러 단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물었다.

“풋! 길 형의 궁술 수준에 활을 준비할 필요가 있소? 제갈 교관님한테서 실전 궁술 허가부터 받고 와야 하는 것 아니오?”

길초량이 발끈하며 대꾸했다.

“큭! 무시하시기요? 나도 잠룡관 복귀 후에도 궁술 수련 꾸준히 열심히 했단 말이오! 제갈 교관님한테서 실전 활용 허락도 받았고!”

이에 나는 과장되게 감탄한 반응을 보이며 놈에게 말했다. 물론 놀리려는 의도다.

“오오오오! 그렇소오?”

“큭! 자존심 상해! 초보 때 나보다 훨씬 못 쐈던 사람한테 저런 소릴 들으니 더 자존심 상해!”

푸흐흐! 짜식이 저런 식으로 발끈할 때 보면 귀엽다니까.

화살은 송유하가 써야 할 몫도 있는 만큼 둘 다 최대한으로 챙겨서 응접실로 복귀했다.

이후에 길초량은 식사를 하기 위해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가져왔던 활의 시위를 제거한 후 은룡삭으로 대체했다.

물론 언제든 쉽게 풀 수 있게끔 매듭짓는 걸 잊지 않았다.

이 일도 숙련이 된 탓인지 시간도 별로 안 걸렸다.

곧 일행이 본채의 응접실에 집합했다.

다들 전투 준비를 마치고 행낭을 지닌 채였으며, 간이 무기고에서 필요한 물품들이나 암기들도 챙긴 모습들이었다.

열외한 사람은 세 사람으로, 도예주를 치료하는 단목지와 포연월, 그리고 식사 중인 길초량이었다.

모여든 이들에게 상황을 얘기했는데, 밝힐 수 있는 선에서는 웬만하면 자세히 설명해줬다.

어차피 무림맹의 남창지부에 큰일이 벌어진 상황이다.

감춰질 수가 없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 일에 대한 소문은 강호에 쫙 퍼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일을 벌인 자들과 연관된 자들한테서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일행들도 알만큼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혈교라니······.”

얘기를 모두 전해 들은 일행들은 저마다 놀란 표정들이었다.

그 이름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이름인지를 모를 사람은 없다.

모두에게 말했다.

“물론 적습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소.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오. 그래도 나는 우리가 이곳을 비우고 잠룡관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소. 위험 가능성에 대해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머물러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오.”

다들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모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이곳으로 배를 보내겠다고 했소. 늦어도 한 시진 안에는 배가 당도할 것이오. 우리는 그 배를 타고 떠날 것이오.”

내 말에 단목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 전에도 혹시 모를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일단은 전투 준비를 시킨 거구려.”

“그렇습니다.”

단목강에게 대꾸해준 후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만큼, 행낭 안에 중요한 물품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따로 챙겨서 몸에 지니고 있는 게 좋을 것이오. 아무 일도 없으면 그냥 행낭을 갖고 배에 오르면 되지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행낭을 챙길 겨를이 없을 테니.”

내 말에 많은 이들이 본인들의 행낭을 열기 시작했다.

일행들을 향해 한마디를 더 보탰다.

“휴식을 취하거나 요기들 하고 계시오. 흩어져 있어도 좋으나 내원을 벗어나지는 맙시다. 그러다가 중간에 혹시라도 상황이 벌어지면 우선은 이곳으로 모이는 것으로 하겠소.”

나는 이미 행낭 안에서 챙길 것들은 다 챙겨놨기에 도예주의 상세를 확인하기 위해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똑똑.

도예주가 치료 받고 있는 방의 문을 두드린 후에 물었다.

“송유겸이오. 치료 상황이 어떤지 알고 싶소.”

그러자 방 안에서 단목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공자님, 문 열지 마세요. 참고로 저희들도 둘 다 손이 바빠서 지금 문 못 열어드려요. 앞으로 최소한 반 시진 남짓은 이대로 치료해야 할 것 같아요. 깊은 상처가 여러 곳이라서 어쩔 수 없어요. 그나마도 연월이의 의술 실력이 상당해서 그 정도인 거예요.”

“알았소.”

“뜨거운 물 계속 끓여서 갖다달라고 하시고, 보조할 사람이 필요하니 여홍이도 좀 불러주세요.”

“고생 많으시구려. 알았소, 그리하리다.”

단목지에게 그렇게 대꾸해준 후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삐이- 삐이- 삐이이-! 삐이- 삐이- 삐이이-!

밖에서 어지러운 호각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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