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14
저 시끄러운 호각 소리가 의미하는 바는 빤하다.
적습인 것이다.
잠시 귀 기울여 보니 호각 소리는 장원의 정문 쪽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아직은 소리가 멀기는 하다. 아마도 정문에서 적의 움직임을 발견하고는 즉시 알린 모양이다.
의외다.
설령 적습이 있다 해도 시간이 어느 정도는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탓이다.
추종술이라는 게 흔적을 면밀하게 살피며 쫓아야 하는 만큼 추적을 완료하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밤중에는 추종술을 펼치기도 더 어렵다.
한데 벌써 찾아왔다니.
그나마도 다행인 점은 청여홍의 장원이 기본적으로 넓고 형태 또한 남북으로 길다는 사실이다.
적습은 장원의 남쪽에 있는 정문을 통해 이뤄진 분위기고, 이곳 본채가 위치한 내원은 장원 최북단의 언덕 위에 외떨어져 있다.
게다가 어두운 밤중인 만큼 적들이 이곳에 도달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모두와 함께 짧게나마 대책을 논의할 시간 정도는 있는 것이다.
곧바로 병실로 쓰고 있는 방의 문 앞으로 돌아가서 단목지에게 말을 전했다.
“적습인 듯하오. 이후의 상황이 어찌 될지 모르니 치료를 서둘러 주셔야 할 것 같소. 이미 치료하고 있던 상처들은 최대한 빠르게 수습하고, 아직 치료하지 못한 상처들은 응급처치로 마무리해 주시오.”
“네. 최선을 다해 볼게요.”
“혹, 내가 말한 정도로 상처를 수습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음······, 그래도 한 식경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요.”
“알았소.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한 식경 전에 이곳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서둘러 주시오. 그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방을 보호해 드릴 것이니 치료에만 집중하시면 되오.”
“알겠어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듯 여홍이 좀 바로 불러주세요.”
“그러리다.”
단목지와의 짧은 대화를 마치자마자 신형을 돌려 미끄러지듯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일 층으로 내려와 보니 일행들 대부분은 아직 응접실에 남아 있는 상태였다. 밖으로 나갔던 몇 명도 서둘러 응접실로 다시 모여들고 있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
다들 멀리서 들려오고 있는 저 시끄러운 호각 소리들의 의미를 대강은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즈음 장원의 경비 무사들 몇 명도 응접실로 들어섰다.
경비 무사들 중에서 선임으로 보이는 삼십 대 후반의 사내가 내게 말했다.
“함께 움직이며 대응해야 할 테니 작전이나 계획 등을 듣고자 들어왔소.”
“잘 오셨습니다.”
“외원의 외곽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인원들도 신속하게 이쪽으로 모이고 있소. 이 적습에 대한 비상 전서도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으로 즉시 날려 둔 상태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임 무사를 향해 대꾸해준 후 곧바로 청여홍을 향해 말했다.
“청 소저는 뜨거운 물동이를 하나 들고 바로 병실로 올라가 보시오. 위에서 보조가 필요하다며 청 소저를 찾고 있소.”
내 말에 청여홍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장 부엌 쪽으로 향했다.
곧 단목강이 양미간을 좁히며 내게 물었다.
“송 공자, 어찌하면 좋겠소?”
“일단은 환자의 상처 수습을 최대한 서둘러 달라고 말해 둔 상태입니다. 단목 소저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최소한 한 식경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면 한식경 동안은 이곳에서 적들을 막아내야 한다는 뜻이겠구려.”
“웬만해서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아직 적의 규모와 수준을 정확히 모르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도중에 긴급히 퇴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맞서 싸우는 중에 만약 포위 섬멸당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즉시 퇴각해야 하는 겁니다.”
단목강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를 향해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경우는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보냈다는 배가 도착하기 전일 가능성이 큰 만큼 달려서 퇴각해야 합니다. 모두 그런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전투에 임해야 합니다.”
상황이 상황이니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말들을 매우 빠른 속도로 내뱉었다.
단목강이 서둘러 말했다.
“개요는 대강 알겠으니 전투는 송 공자가 지휘해 주시오. 우리 모두 명령으로 여기고 따를 것이오.”
그 말에 장원의 선임 무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말을 보탰다.
“송유겸 공자가 온 백도에서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신흥 고수라는 사실을 우리도 잘 알고 있소. 관 지점장님께서도 혹여 무슨 일이 생기거든 송 공자에게 무조건 협조하라고 말씀하셨소. 즉, 우리도 송 공자의 지휘를 따를 것이오.”
지금은 겸양이나 떨며 지휘를 맡느니 안 맡느니 입씨름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한 차례 고개를 끄덕이자, 무사들과 일행들도 각오를 다지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를 향해 말했다.
“지형적 특성상 내원의 담을 끼고 싸우는 게 가장 좋으나, 현재 우리가 보유한 인원과 전력만으로 내원 전체를 지키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본채만 지키면서 싸우는 게 현명할 듯합니다. 본채는 내원 안에서도 터가 높은 위치인 데다가, 이 층 건물인 만큼 방비하며 싸우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직은 적들의 기운이 내 인지 범위까지 다다르지는 않은 상태다.
지금은 싸울 자리를 미리 잡고 있는 게 중요한 상황인 만큼, 나는 서둘러 지시를 내려줬다.
“경비 무사님들은 총 스물두 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조로 나누어 일 조는 본채의 전방을, 이 조는 본채의 후방을 방비해 주십시오. 육 대 사 정도로 일 조의 전력이 더 강해야 합니다.”
장원의 경비 무사들은 일류가 여덟 명이고 이류가 열네 명이다. 합숙 초반부터 파악해 뒀었다.
선임 무사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이후에 나는 곧바로 길초량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싸우는 데 문제없겠소?”
“당연하오. 아까 입은 상처는 잔상처들에 불과하오. 방금 밥도 먹어서 힘도 많소.”
길초량이 문제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이에 나는 그와 소충광과 우문직을 차례로 바라보며 말했다.
“길 형, 소 공자, 우문 공자가 한 조요. 세 분은 기본적으로 본채의 전방에서 경비 무사님들과 같이 적들을 막아주시오.”
“알았소.”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소충광과 우문직은 잠룡일대에서의 활동을 통해 충분한 실전 경험을 갖춘 인원들이다. 이번 합숙에서 나를 상대로 수련하며 반응 속도 또한 많이 끌어 올린 상태다.
길초량은 신룡대인 만큼 두말할 필요가 없는 전투의 전문가다.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마친 실력자다.
기본적으로 소충광과 우문직이 전열에서 싸우고 길초량은 후열에서 암기 지원을 하는 조합인데, 상황에 따라 길초량이 전열에 개입하여 두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
저 세 사람은 비무를 많이 해본 사이라서 서로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한 조로 묶은 것이다.
이후에는 단목강과 장우혜와 유은무를 차례로 바라보며 말했다.
“조장님이 장 매, 유 매와 함께 한 조입니다. 세 분은 기본적으로 본채의 전방과 후방을 오가며 싸우는 조입니다. 초반에는 전방에서 싸우다가 이후에 후방에 전력 지원이 필요하면 그쪽을 지원해 주십시오.”
“알겠소.”
“알았어요.”
세 사람이 거의 동시에 대꾸했다.
이 세 사람은 작년에 사십사 조에서도 같은 조였다.
단목강은 두 소녀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극소수의 인물들 중 한 사람이기도 하며, 두 소녀는 단목강을 매우 잘 따른다.
장우혜와 유은무는 올해 봄부터 길초량을 통해 철비정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실전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실력들이다. 둘 다 지난 몇 달간 지독할 정도로 열심히 철비정술을 익힌 덕분이다.
따라서 이 셋은 기본적으로 단목강이 전열에 서고 장우혜와 유은무가 후열에서 암기 지원을 하는 조합이다.
실전이 오랜만인 만큼, 두 소녀는 처음부터 전열에서 싸우기보다는 후열에서 암기 지원을 하며 차분히 적응하는 게 낫다. 두 소녀도 그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단목강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기동타격조에서도 전열을 맡았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가뜩이나 단목강도 근래 나와의 수련을 통해 반응 속도를 한층 더 끌어 올린 상태다. 그런 만큼, 순간순간 혹시 모를 위기 상황이 발생해도 두 소녀를 잘 엄호해줄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전력에 대한 편제를 마친 후 그들에게 즉시 지시를 내렸다.
“미리 나가서 자리들 잡으십시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많은 이들이 지체 없이 응접실을 벗어났다.
그 와중에 나는 단목강에게 전음으로 한마디를 보태줬다.
[장 매와 유 매의 경우 갖추고 있는 실력은 빼어나나 실전은 오랜만입니다. 조장님이 잘 좀 이끌며 돌봐주십시오.]
[내가 목숨을 잃었으면 잃었지, 이 두 소저가 크게 다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당연하잖소. 이 두 소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우리 세가가 무사하지 못할 텐데.]
농담 섞인 과장임을 알기에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남은 건 포연월을 제외한 계반삼조원 네 명과 송유하.
송유하에게 말했다.
“누이는 활과 전통 하나만 챙겨서 나를 따라와.”
“네.”
나도 내 활을 들고 전통 하나를 챙기며 계반삼조의 네 명에게 지시했다. 원추엽, 명호운, 심산화, 왕철양이다.
“너희들 네 명은 이곳에 있는 화살 묶음들을 챙겨서 이 층의 거실로 이동하여 대기해. 내가 곧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대기하는 동안 전투가 시작될 텐데, 밖에 있는 선배들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도록. 특히 단목강 선배와 길초량 선배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송유하도 그렇지만 계반삼조의 조원들도 실전은 처음이다.
그런 만큼 잠시나마 실전 고수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길초량과 단목강은 그냥 실전 고수도 아니고 제대로 된 실전 고수들이기도 하다.
송유하를 이끌고 밖으로 나와 보니 다들 지시대로 본채의 뜰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경비 무사들의 숫자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무사들이 있는 것이다.
길초량은 활을 든 채로 내원의 담장 위에 서서 언덕 아래쪽을 바라보는 중이다. 보아하니 아직은 적들이 화살의 사거리 안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참고로 내원 자체가 언덕 위에 위치해 있기에, 적들의 입장에서는 내원까지 오려면 짧지 않은 언덕 경사면을 올라와야 한다.
즉시 송유하와 함께 가서 길초량이 서 있는 담장 위로 도약해 올랐다.
“누이, 준비되면 알아서 쏴.”
“네.”
송유하도 실전은 처음이니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더 경험하는 게 좋으니 알아서 쏘라고 한 것이다.
나는 시위에 화살 한 발을 메기고는 언덕 아래를 겨누며 회회심공을 끌어 올렸다.
먼 어둠 속을 향해 안력을 집중하자 언덕 아래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수많은 흑의인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적들의 선봉에게 쫓기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장원 경비 무사의 복장이다.
그 셋 중에서 한 명은 살짝 뒤처진 상태로, 적측 최선봉에서 뒤쫓고 있는 자와의 간격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위태로워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거리가 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측 최선봉에서 달려오고 있는 자를 세밀하게 겨누며 화살에 공력을 주입했다.
현재 내 활의 시위는 은룡삭이며, 활대는 이전에 송유하가 쓰던 것을 물려받은 상태다.
당연히 예전에 연습하던 일반 활보다 성능이 좋아졌다.
이 정도면 천섬무를 운용하여 화살을 날릴 경우, 저 먼 곳까지도 화살에 담긴 위력을 어느 정도는 유지할 수가 있다.
투웅!
파르르르르르르-
화살을 놓자 시위인 은룡삭이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