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15
담장 위에 나란히 선 위치상으로는 길초량이 내 오른쪽이고 송유하가 내 왼쪽이다.
하지만 궁술은 기본적으로 옆으로 서서 펼쳐야 하기에, 그 자세를 기준으로 하면 길초량은 내 앞쪽에 서 있고 송유하는 내 뒤에 서 있다.
우리 셋 다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다.
은밀한 기운을 담아서 날린 내 화살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며 매우 빠르게 날아갔다.
내 앞에 서 있는 길초량이 살짝 흠칫하는 게 느껴진다.
그 정도로 내 시위가 강하게 튕겨진 탓이다.
화살은 뒤처져 달리던 장원 경비 무사의 어깨 근처를 지나치더니 최선봉에서 뒤쫓고 있는 적의 가슴께로 향했다. 애초에 놈이 달리는 속도를 계산하고 오조준했는데 얼추 정확하게 날아간 것이다.
화살이 별안간 가슴 위쪽으로 짓쳐 들자 놈이 화들짝 놀라며 검을 이용해서 화살을 쳐냈다.
직접적인 상해를 입히지는 못했으나 놈의 추격 속도는 확실하게 늦춰졌다.
내가 목적했던 바는 달성한 셈이다.
처음 놈이 살짝 뒤처지자 다른 놈이 선두가 되었고, 나는 곧바로 그놈을 향해 다시금 활을 겨누었다.
첫 화살을 쏠 때는 사거리가 간당간당했으나 지금은 적들과의 거리가 아까보다 더 가까워진 상태다.
놈들이 이쪽을 향해 신법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이면 아까보다 수월하게 화살을 날릴 수 있는 거리다.
투웅!
이번에도 은밀한 기운을 담아서 화살 한 발을 날렸다.
내 화살이 목표를 향해 반 정도 날아가고 있을 즈음, 내 왼쪽에서도 활시위 튕겨지는 소리가 났다.
투웅!
송유하가 화살을 날린 모양이다.
알아서 쏘라고는 했지만 약간의 의문은 든다.
이 어둠 속에서 송유하의 시야가 현재 적들이 있는 위치까지 닿긴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송유하 수준의 안력으로는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날린 화살이 적의 복부를 향해 날아들고 있다.
놈도 이전의 놈처럼 화들짝 놀란 기색이다.
내 화살이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날아든 만큼, 적들도 그 존재를 눈치채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날아간 화살은 처음에 날렸던 화살보다 더 강한 위력을 담고 있기도 하다.
놈이 도(刀)로 보이는 무기를 휘두르며 황급하게 내 화살을 쳐냈다.
도를 휘둘렀던 팔이 생각보다 크게 들썩이는 게 보였다.
화살에 담겨 있던 위력이 놈이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는 증거다.
한데 그 순간 눈을 휘둥그레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화살 하나가 시간 차로 날아들어 놈의 가슴팍에 그대로 박혀버렸기 때문이다.
빠르게 신법을 펼치던 놈이 그대로 고꾸라지며 절명했다.
뒤에서 달려오던 다른 적들도 깜짝 놀란 기색들이다.
궤적상 내 왼쪽에서 날아든 화살이었다.
송유하가 날린 화살인 것이다.
내 앞에 있는 길초량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눈동자가 휘둥그레져 있다.
그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내 뒤에 있는 송유하다. 그도 고수인 만큼 방금 전에 송유하의 화살이 적에게 박힌 모습을 확인한 것이다.
나도 놀란 눈으로 뒤돌아 송유하를 바라봤다.
길초량의 목소리가 들렸다.
“훌륭하구려······!”
송유하가 평소의 표정 없는 얼굴로 살짝 묵례해 보이자 길초량이 물었다.
“한데 송 소저도 저기까지 보였던 것이오?”
방금 전의 궁술도 대단했지만 송유하의 무공 수준에서 그 거리까지 안력이 닿았다는 게 더욱 놀라운 모양이다.
나도 같은 심정이다.
“네.”
송유하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짧게 대꾸하자, 길초량이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허어······!”
현재 송유하의 무공 경지로, 어둠 속에서 방금 전의 거리까지 시야가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놀란 것이다.
나도 놀랍기는 한데 이유는 알 것 같다.
연승휴의 무공 중에서 심법인 고천비룡결의 특징 덕분이다.
고천비룡결은 축기 효율도 좋지만 성취가 상승할수록 안력과 동체시력을 강화시켜 주는 특징이 있다.
송유하의 고천비룡결 성취가 어둠 속에서도 아까의 거리까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 만큼 상승한 모양이다.
송유하가 곧바로 또 한 발의 화살을 활시위에 메기더니 시위를 잡아당겼다.
찌이이익-
송유하가 그 상태로 언덕 아래쪽을 겨누는 동시에 화살에 기운을 담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그 모습에 계속 시선이 갔다.
동요하는 모습 없이 차분한 분위기다.
사실 얘도 실전은 처음인 애다.
게다가 방금 전에 궁술로 첫 살인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분위기인 것이다.
물론 송유하는 첫 실전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긴 했었다. 본디 신경이 예민하지 않고 성격도 무덤덤하기 때문이다.
한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분하다.
이런 쪽으로 아예 무신경한 애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기도 하다.
이후에는 길초량도 본격적으로 궁술을 펼치기 시작하여, 우리 세 사람은 부지런히 활을 쐈다.
덕분에 이곳을 향해 퇴각하던 경비 무사들은 확실하게 안전해졌다.
우리가 적들 중에서 선두로 나오는 자들을 계속해서 노린 탓에, 적들의 추격도 늦춰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송유하는 연사 속도가 매우 빨라서 이미 모든 화살을 소모한 상태다.
저렇게까지 연사 속도가 빠른 줄 알았으면 전통을 하나 더 챙기라고 할 걸 그랬다.
나 또한 전통 안에 있던 모든 화살을 소모했을 즈음, 길초량이 팔을 뻗어 송유하를 향해 전통을 내밀었다.
보아하니 내민 전통 안에 대여섯 발의 화살이 남아 있었다.
길초량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남은 화살, 내가 쏘는 것보다는 송 소저가 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아서 말이오. 이대로 뽑아 쓰시오.”
길초량은 송유하가 화살을 편하게 뽑아서 쏠 수 있는 위치로 전통의 입구를 기울여주기까지 했다.
송유하가 길초량을 한 차례 바라보더니 화살 한 대를 뽑아 들며 대꾸했다.
“감사해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나도 내 활을 송유하에게 건넸다.
“이걸로 쏴. 이 활로는 직사 사거리야.”
“네.”
송유하가 짧게 대꾸하더니 본인의 활을 내게 건네며 내 활을 받아들었다.
이번 합숙 때 틈틈이 송유하와 같이 궁술 수련을 하며, 은룡삭을 시위로 쓴 내 활로도 몇 차례 연습하게 했었다.
제갈수광이 틈틈이 내 활을 사용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송유하가 내 활을 사용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였다.
한데 딱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투웅! 투웅! 투웅! 투웅! 투웅!
화살을 뽑기 쉬운 상황이라서 그런지 송유하는 어마어마한 연사 속도를 보여줬다.
제갈수광만큼은 아니지만 저 정도만으로도 내 경지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연사의 경지다.
다섯 발의 화살들은 경사면 아래를 향해 직사로 날아갔다.
적도들 중에서 두 명은 송유하의 화살을 쳐냈지만 세 명은 화살을 쳐내지 못했다. 그들은 각각 어깨, 허벅지, 복부에 화살을 맞고 큰 부상을 입었다.
짧은 순간에 낸 성과치고는 매우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송유하 정도 되는 궁수가, 좋은 활로, 가까운 거리에서, 각도 계산 필요 없이 직사로 쏜 덕분이다.
화살이 다 떨어졌기에 길초량과 송유하를 이끌고 즉시 자리를 떴다.
방금 전에 우리 세 사람은 전통 세 개에 들어 있는 예순 발의 화살로 열한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중에서 세 명은 죽었고 그 외는 부상을 입었다.
참고로 우리가 쏜 화살들은 대부분 제대로 날아갔는데, 적들의 대처도 만만치가 않았다.
초반에는 방심해서 두세 명이 당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적측 고수로 보이는 자들이 이리저리 적극적으로 나서며 우리가 날린 화살들을 쳐냈던 것이다.
그나마도 마지막 순간에 송유하가 내 활을 이용해서 세 명의 사상자를 추가하지 못했다면 열 명의 사상자도 못 낼 뻔했다.
본채 쪽으로 복귀하는 와중에 길초량의 전음이 들려왔다.
[허! 송 소저의 궁술 조예가 남다르다는 사실이야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대단할 줄은 몰랐구려! 저건 아예 차원이 다른 궁술이잖소!]
어조에 놀람이 가득하다.
길초량의 전음이 다시금 들려왔다.
[정확할 뿐만 아니라 연사 속도도 무시무시했소. 게다가 화살에 담긴 공력은 은밀하면서도 매우 위력적이더구려. 저 정도면 모든 면에서 그냥 한 명의 명궁수인 거잖소. 송 형도 잘 알겠지만 저 정도 궁술이면 실전에서도 즉시 전력감이오.]
길초량의 말대로다.
송유하의 궁술이 뛰어나다는 건 진즉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같이 궁술 수련을 하며 충분히 목격하기도 했었다.
한데 실전에서 쏘는 걸 보니 수련할 때보다 훨씬 대단했다.
궁술에 있어 송유하는 차원이 다른 존재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궁술 쪽의 재능은 초창기부터 궁술 교관이 인정할 정도로 독보적인 애였는데, 고천비룡결과 풍우비룡무를 통해 완전히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희대의 명궁수인 제갈수광의 궁술 지도도 큰 역할을 했을 테고.
길초량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어떤 작전에서든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궁술 실력이오. 저 정도 실력의 궁사는 희소성이 매우 높소.]
흑풍대 출신이었기에 저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길초량이 전음을 이었다.
[송 형의 누이만 아니었다면 바로 영입 제안을 했을 것이오. 신룡대 묵룡조의 저격 요원으로.]
이에 나는 미소를 보이며 길초량에게 대꾸해줬다.
[제안해도 상관없소.]
길초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는 것이다.
[누이의 삶은 누이가 결정하는 것이오. 본인이 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라면, 나는 누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길을 가든 응원할 생각이오. 누이에게도 진즉 이런 내 생각을 전해 뒀고.]
내 말이 진심인 걸 알고 길초량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곧 길초량이 입가에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사실, 제안을 한다 해도 결과는 빤할 것 같소. 내가 아는 송 소저라면 결코 송 형 주변을 떠나려 하지 않을 거거든.]
현재 내원을 공격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는 적들의 수는 일흔 명가량이다. 그나마도 열한 명이 우리의 궁술에 당해서 전력 외가 된 덕분이다.
적들 중에 다수가 내뿜고 있는 기운의 성질은 역시나 내가 알고 있는 혈교의 기운들이었다. 일전에 고철상의 창고에서 빠져나왔던 놈들이 풍겼던 종류의 기운들인 것이다.
혈교의 기운이 아닌 다른 기운들도 소수 섞여 있었다.
그 기운들은 내가 알고 있는 사파의 그 어린놈들의 기운이었다. 길초량이 말했던 대로 사파의 어린놈들이 혈교의 무리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적들의 전력은 일류고수와 절정고수로 이뤄져 있다.
내가 파악하기로 절정은 열 명 남짓이고 나머지는 일류들이다.
일류들 중에서 스무 명가량은 일류의 중반 이상으로 보이며, 그 외는 중반 이하로 보였다.
우리의 궁술에 당했던 적들은 대부분 일류의 중반 이하에 속하는 자들이다.
본채의 앞뜰에 모여 있는 우리 인원들에게 빠르고 짧게 그 사실을 알렸다.
적의 규모에 대해 알고 있어야 대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듣는 것만으로는 적의 전력이 상당하게 느껴지는 만큼 여러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담겼다. 특히나 장원의 경비 무사들이 많이 긴장한 표정이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 정도는 우리 수준에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전력입니다. 그러니 무사님들은 절대로 무리하지 마시고 연계하여 방어한다는 생각으로 임하십시오.”
경비 무사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일 때쯤, 적들이 내원의 담장을 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