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16
‘우리 수준에서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전력이라고?’
경비조장 이추관은 송유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머릿수부터 차이가 너무 크다.
장원 측의 전력은 경비 무사들 스물두 명에 잠룡관도들 열네 명이다.
거기에 아까 송유겸의 지인들 두 명이 추가되긴 했는데, 그중에 한 명은 중상자이니 전력 외다.
결국 장원 측의 전력은 다 합해 봐야 서른일곱 명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도 청여홍을 포함한 세 명은 그 중상자를 치료하는 중이니 실질적인 전력은 서른네 명이라고 봐야 한다.
한데 적들의 수는 일흔 명가량이라고 했다.
머릿수에서부터 이미 두 배의 전력인 것이다.
전력의 질까지 비교하면 더 암울해진다.
적측은 모두가 최소한 일류고수 이상이라고 했다.
한데 이쪽은 이류무인들이 다수다.
당장 장원 경비 무사들 스물두 명 중에서 열네 명이 이류무인들이다. 나름 일류에 가까운 이류들이긴 한데 그래도 이류는 이류인 것이다.
잠룡관도들 중에서도 서너 명은 이류라고 알고 있으니, 결국 장원 쪽 전력의 절반 가까운 수가 이류인 셈이다.
한데 일류고수를 넘어 절정고수의 숫자를 비교하면 아예 절망적이 된다.
적측의 절정고수가 열 명 남짓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장원의 경비 무사들 중에는 절정고수가 없다.
하면 잠룡관도들 중에는 있을까?
송유겸을 포함한 저 잠룡관도들이 아무리 우수한 관도들이라 해도 나이가 겨우 스무 살 이쪽저쪽들이다. 저 중에서 선배 관도들도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하다.
통상적으로 저 나이에 절정고수일 수는 없다. 그 대단한 남궁찬도 저 나이에는 절정고수가 아니었다.
결국 이쪽 전력에는 절정고수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관도들의 중심축인 송유겸, 단목강, 소충광, 우문직 등의 분위기가 여유롭다. 방금 합류한 길초량이라는 청년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저 송유겸의 말을 믿고 열심히 버티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의 명성이 괜히 얻어진 명성이 아니기만 바라면서.
* * *
적들이 이곳에 쳐들어온 이유는 근본적으로 도예주를 처치하기 위함일 것이다.
도예주가 첩보 작전 중에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기에 어떻게든 제거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도예주를 업고 온 길초량도 제거 목표일 것이다. 적들의 입장에서는 도예주가 길초량에게 정보를 전달했을 거라고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놈들은 추적을 통해 두 사람의 종적이 이 장원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아낸 후, 간략하게나마 이 장원에 대한 정보도 알아봤을 것이다.
하면 적들이 우리 일행들의 존재와 내 존재를 알고 쳐들어왔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적들이 몰랐을 거라고 본다.
우리 일행은 첫날 배를 타고 와서 서문을 통해 이 장원 안에 들어온 후로 바깥에 나간 적이 없었다.
우리가 수련에만 매진할 수 있게끔,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음식이나 생필품 등을 알아서 수송해줬기 때문이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경비 무인들이 우리의 존재를 외부에 알렸을 가능성도 없으니, 우리의 정체가 외부에 드러날 만한 정황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나는 밤중에 남창에 다녀오곤 했지만 그건 몰래 갔다 온 것이니 별개의 문제다.
결국 적들은 우리 일행들의 존재와 내 존재를 모른 채, 본인들의 계산상 이곳을 초토화시키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전력으로 쳐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런 식으로 추측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적측 절정고수들 중에 강력한 느낌을 풍기는 자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났던 혈교의 절정고수들 중에는 이를테면 기형거검의 덩치 놈, 마차를 휘두르던 키 큰 놈, 박도를 휘두르던 왜소한 놈 등의 빼어난 고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 장원에 쳐들어온 적들 중에는 그들처럼 내 위기감을 자극하는 고수가 전혀 없다.
그런 특별한 고수가 없다면, 아무리 적측에 절정고수가 열 명 남짓이라도 내 입장에서는 처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층 거실의 대청문이 열려 있어, 계반삼조의 원추엽, 명호운, 왕철양, 심산화 등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송유하와 함께 이 층으로 도약하여 거실에 착지했다.
그 후, 죽립을 쓰고 앞머리를 정리하면서 즉시 송유하에게 전음을 보냈다.
[누이는 이곳에서 궁술로 우리 인원들을 엄호하도록 해. 내 활을 계속 써. 내 활이라면 내원의 담장 안쪽은 무조건 직사가 가능할 거야. 나는 아무래도 이리저리 돌아다니게 될 거거든.]
[알겠어요. 그런데 오라버니, 그렇듯 앞머리로 눈을 가리면 많이 불편하실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내가 이래 봬도 적들 사이에서도 소문 난 인사라서 최대한 모습을 감추려는 거야. 나라는 사실을 몰라야 적들도 경계심을 덜 품지.]
[아.]
송유하가 납득했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활과 화살을 쥐었다.
내가 앞머리로 눈을 가린 이유는 싸우다가 혹시라도 눈동자의 색이 변할지 모르니, 그 부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송유겸 그대로의 모습인 만큼, 혹시라도 눈동자의 색이 변한 기괴한 모습을 우리 일행들이 봐서 좋을 일은 없다.
송유하에게 말을 마쳤을 즈음, 앞뜰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퉁-!
투웅-!
송유하가 잡고 있는 내 활에서도 화살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대청문 근처에 서서 계반삼조의 네 명에게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 선배들이 싸우는 모습을 잘 지켜보도록.”
그 후 나도 전투 상황을 묵묵히 바라봤다.
경비 무사들에게 너무 염려할 필요 없다고 말해두긴 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적과의 전력 차가 너무 크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어쩔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인지 경비 무사들의 초반 움직임은 전체적으로 딱딱했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경비 무사들 중에서도 제대로 된 실전을 겪어 본 이들은 별로 없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다.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다.
경비 무사들의 딱딱한 초반 움직임을 상쇄시켜 주고 있는 이들은 역시나 길초량조와 단목강조의 인원들이었다.
그들은 경비 무사들의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매우 적절한 대응을 하는 중이다.
두 조 중에서는 길초량조가 조금 더 안정적이었다.
전열에 있는 소충광과 우문직은 역시나 잠룡일대에서 해적들과 사파인들을 상대로 실전을 겪었던 이들다웠다. 노련했고, 움직임에도 여유가 있었다.
후열의 길초량은 얼핏 보기에 별로 하는 일 없이 설렁설렁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넓은 시야로 전체적인 전황까지 파악하며 싸우는 중이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철비정술을 펼치는데, 그가 날린 철비정은 기가 막히게 적들을 견제하며 우리 경비 무사들을 엄호하곤 했다. 역시나 수준이 매우 높은 철비정술이다.
길초량은 기동타격조에서 싸울 때보다 몸놀림이 전체적으로 더 여유롭고 경쾌해 보였다. 당시의 실전 경험들이 완전히 본인의 것으로 녹아든 게 아닌가 싶다.
저러면서 경지가 조금씩 더 상승하는 것인데, 참고로 길초량의 경지는 기동타격조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도 이미 일류의 후반에 다다라 있었다.
길초량조가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일 뿐이지 단목강조의 움직임도 충분히 좋았다.
단목강과는 비무 형식의 수련을 꾸준히 계속해왔기에 그의 최근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도 기동타격조에서 활약할 당시의 경험들을 본인의 것으로 확실하게 흡수하여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룬 상태였다.
이렇듯 실전에서 보니 그 발전상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다.
지금 단목강은 움직일 때마다 매우 감각적인 위치를 잡으며, 뒤따르는 장우혜와 유은무가 편하게 진형을 잡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중이다.
덕분에 후열의 장우혜와 유은무도 더 안정적으로 철비정을 날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단목강은 혼자서 전열을 맡고 있음에도 소충광과 우문직이 같이 전열에 있는 것보다 더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역시 단목강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장우혜와 유은무의 경우에는 초반인 만큼 조금은 긴장한 기색이 엿보인다.
그러나 둘 다 무리하지 않고 차분히 철비정을 날리며 전투에 적응해가는 모습이었다. 단목강이 잘 이끌어주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두 소녀가 마지막으로 실전을 겪었던 건 작년 봄의 태화지부 사건 당시였다.
그 후로 일 년 남짓이 흘렀는데, 그간 두 소녀는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성장한 상태다.
그런 만큼, 이 상태로 적응할 시간만 충분히 갖는다면 단목강조가 길초량조보다 더 큰 활약을 펼칠 가능성도 높다.
전투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듯 움직이지 않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적측 절정고수들 중 다수가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적측 절정고수들 중에서 싸우기 위해 전면으로 나선 자들은 세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여덟 명의 절정 고수들은 여전히 적진 후방의 어둠 속에 조용히 머문 상태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로서도 다급할 것도 없는 상황이기에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전선이 팽팽한 상황이니까.
그 후로 약간의 시간이 더 흘렀을 때쯤, 후방에 머물러 있던 적측의 절정 고수들이 서서히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선의 상황이 의외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히 머릿수에서도 전력의 질적인 면에서도 모두 우리 쪽이 불리한데, 오히려 적들 쪽에서 먼저 네댓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태다.
저들의 입장에서도 이건 심상치 않은 흐름일 테니 결국 저 절정고수 놈들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놈들은 이러한 의외의 상황이 이해가 안 되겠지만 나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적들 대부분은 공력을 증폭시키는 약을 복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투 전에 복용하면 몇 시진 동안 공력을 이삼 할 정도 증폭시킬 수 있는, 바로 그 약일 것이다.
나는 적들 중에 사파의 십 대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부터 그 가능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한데 놈들이 싸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니 확실히 내공 경지에 비해 움직임들이 시원치 않은 모습이었다. 적들 대부분의 움직임이 그렇다는 건, 결국 그 약물 때문일 수밖에 없었다.
즉, 적들 중에서 적지 않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일류 초반의 놈들은 원래 이류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숫자가 두 배인데도 실전을 펼치는 상태들이 저 꼴들인 것이고.
참고로 길초량과 단목강은 저런 전력들을 상대하는 일에 있어서는 장인들이다. 워낙 많이 상대해 봤기 때문이다.
덕분에 두 사람은 각자의 조를 이끌고 수월하게 적들을 압박하는 중이다.
둘째는 송유하의 궁술 때문이다.
송유하는 현재 후방의 고지인 이곳 이 층 거실에서, 시야를 넓게 확보한 채로 화살을 날리고 있다. 그녀는 아무런 견제조차 받지 않은 채, 매우 자유롭게 화살을 날리며 지속적으로 아군을 엄호하고 적들을 견제하는 중이다.
문제는 송유하의 궁술이 너무 뛰어나다는 데 있다.
이런 식이면 적측의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피로감과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
나도 무영시를 날리던 적측 궁수들을 두어 차례 겪어 봤기에, 이 피로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반대 입장이 되니 이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그 생각을 하다가 원추엽을 불렀다.
“추엽이.”
“예, 조교님.”
“만약 네가 적의 입장이면 이런 궁사가 계속 이렇듯 자유롭게 활을 쏘게끔 놔두겠나?”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을 겁니다. 놔두면 놔둘수록 피해가 점점 배가될 테니까요.”
“그러니 네가 이곳을 지킨다.”
원추엽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작지만 힘찬 목소리로 대꾸했다.
“예!”
나는 곧바로 왕철양을 향해서도 한마디를 해줬다.
“철양이도 같이.”
“아, 알겠습니다, 조교님.”
이후에는 송유하에게 말했다.
“적이 이쪽으로 접근하면 누이도 즉시 이 두 사람과 호응해서 대적하고, 상황이 어려울 것 같으면 셋이 같이 병실 쪽으로 이동해. 어차피 병실은 바로 이 옆이니 안에서도 머지않아 호응을 해줄 거야.”
“네.”
이후에는 명호운에게 지시를 내렸다.
“병실도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다. 단목 소저와 연월이는 현재 의술을 펼치는 중이지만, 무공이 강한 만큼 만약의 상황에서는 싸워야 한다. 그 경우에 치료 도구를 청 소저에게 넘기고 본인들의 무기를 쥘 시간이 필요하겠지. 호운이는 병실에 머물며 그런 상황에 대비한다.”
“예.”
“병실의 창문 쪽에서 침입해오는 적에게 대비하는 거야. 절대로 창가에 붙어 있지 말고, 네 창의 사거리가 창문에 닿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해. 혹여 적이 창문으로 침입하면 즉시 가장 강력한 공격 초식을 펼친다. 아까도 말했듯 단목 소저와 연월이가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주기만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산화는······.”
내가 호명하자 심산화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수줍어하는 아이 같은 그 미소다.
이후에 나는 심산화에게 전음으로 몇 마디를 전했다.
전음을 모두 듣고 난 심산화가 헤헤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상 내 전음은 쟤가 저렇게 웃을 만한 내용이 전혀 아니었는데, 애가 왜 저런 표정으로 웃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런 식으로 이 층 거실에 있는 인원들 각자에게 지시를 내려준 후, 모두에게 말했다.
“언제든 싸우다 죽을 수 있는 게 실전이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은 위기에 닥치면 이 두 마디를 떠올려라. ‘움직여.’ 그리고 ‘비틀어.’ 그 말을 속으로 외치면서 그대로 하는 거야.”
아이들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의미가 궁금한 것이다.
모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을 듯 아파도 이를 악물고 끝까지 움직이며 최후의 일격을 한 번이라도 더 피하라는 뜻이다. 설령 검이 심장 앞에 닿고 있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몸을 비틀라는 뜻이다. 그렇게 한순간이라도 더 버티며 도움을 기다리라는 뜻이다. 알았지?”
“예······!”
송유하를 포함한 아이들이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곧 명호운과 심산화는 내 지시대로 거실을 벗어났다.
적측의 후방에 있던 절정고수들이 다섯 명과 세 명으로 나뉘어 은밀하게 이동하기 시작한 게 느껴진다.
나도 슬슬 움직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