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17
전투의 초반부터 전선에 투입되었던 적측 절정고수 세 놈은 사파의 그 십 대들이다.
내뿜고 있는 기운이 딱 그놈들이다.
세 놈 모두 남색 옷을 입은 채로 복면을 착용 중인데, 사용하고 있는 무기만 다르다.
각각 검, 도, 창을 쓰고 있다.
우리가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검을 든 놈은 전선의 좌측에서, 도를 든 놈은 전선의 우측에서, 창을 든 놈은 전선의 중앙에서 전투를 펼치는 중이다.
물론 놈들끼리 이리저리 움직이며 섞여서 연계 공격을 펼칠 때도 있다. 기본적인 활동 범위가 대체로 그렇다는 의미다.
절정고수 세 놈의 위치가 그런 식이기에, 우리 쪽에서도 좌, 우, 중앙의 위치를 기준으로 놈들을 방어하는 중이다.
길초량조가 좌측에서 검을 든 놈을, 단목강조가 우측에서 도를 든 놈을, 경비무사들이 중앙에서 창을 든 놈을 막고 있다.
창을 든 절정고수를 전담해서 막고 있는 경비무사들은 일류고수들 네 명이다. 경비조장도 포함되어 있다.
한데 아무래도 경비무사들의 경우에는 길초량조나 단목강조와 비해서 위태로운 상황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길초량과 유은무가 그쪽으로 철비정을 자주 날리며 지원해주는 중이며, 송유하의 화살 또한 중앙 전선 쪽을 지원하는 비중이 높다.
전선의 전반적인 상황이 그러하다.
그런 상황에서 적측 후방에 있던 여덟 명의 절정고수들이 움직인 것이다.
그 여덟 명의 기운은 앞서서 싸우고 있는 사파의 십 대들과 다르다.
놈들의 기운은 내가 알고 있는 혈교의 기운이다.
참고로 혈교 쪽의 절정고수들이 사파의 어린놈들보다는 기운이 더 강력하다. 더 강한 놈들인 것이다.
여덟 명 중에서 세 놈은 전장의 측면으로 빙글 돌고 있다. 궤적을 볼 때 저런 식으로 은밀하게 돌아가서 아군 진형의 옆구리를 노리려는 것 같다.
다섯 놈은 궤적상 앞뜰의 전장이 아니라 아예 내원 전체를 넓게 돌고 있는 모양새다. 아마도 저런 식으로 조용히 본채의 뒤뜰 쪽으로 향하려는 게 아닌가 싶다.
가만히 정신을 집중한 채로 놈들의 기운들을 조금 더 쫓다가, 계단을 통해 신속하게 본채의 일 층으로 내려갔다.
금세 본채 일 층의 우측 회랑으로 이동한 나는 은잠술을 펼치며 조용히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지금 내가 숨어 있는 곳의 몇 걸음 앞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 진형의 우측 전선이며, 단목강조가 도를 휘두르는 절정고수 놈을 막아내고 있는 전선이다. 전선의 측면으로 빙글 돌았던 혈교 측 절정고수 세 놈이 은밀하게 다가오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저 혈교 측 절정고수들 세 놈이 노리는 바는 빤하다.
전선의 양쪽 날개 중에서 일단 한쪽을 무너뜨리려는 거다. 그러면 우리의 진형이 우르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좌측과 우측 중에서 우측을 노린 이유는, 우측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봐도 소충광과 우문직이 포함된 길초량조에 비해, 두 소녀가 포함되어 있는 단목강조가 더 약해 보이긴 한다.
실제로도 단목강조는 도를 든 절정고수와 그 주변의 적들을 상대로 조금씩 밀리고 있다. 장우혜와 유은무가 아직은 실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이 상태에서 혈교 쪽 절정고수 세 놈이 일거에 단목강조를 노리면, 단목강조는 당연히 크게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이 눈에 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장으로 나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조용히 전장만 주시하는 중이다.
참고로 나는 현재 기척을 확실하게 죽인 채로 완벽하게 은잠술을 펼치고 있는 상태다.
이런 내 은신을 적측 절정고수들 수준에서 알아챌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우리 인원들 중에도 지금의 내 기척을 알아챌 수 있는 이들은 없다.
근처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만큼, 지금 단목강조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혈교 쪽 절정고수들 세 놈은 상황을 쉽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방심의 틈을 노릴 생각이다.
그러면 훨씬 더 쉽게 놈들을 처치할 수 있다.
* * *
남궁설은 양손으로 철비정을 털어냈다.
핏- 피잇-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날린 두 개의 철비정이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쏘아졌다.
하나는 단목강을 향해 도를 휘두르던 절정고수에게 날아갔다.
그 절정고수는 결국 단목강을 향해 도를 끝까지 휘두르지 못한 채 철비정을 쳐내는 모습이었다.
팅!
다른 하나는 우측 끝에 있는 다른 적의 허벅지로 날아갔다.
그도 단목강을 향해 두 걸음 쇄도하며 검을 찔러 넣으려는 중이었는데,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철비정을 튕겨 내는 모습이었다.
팅!
‘방금 전에는 두 개 다 좋았어.’
제대로 견제가 된 만큼, 남궁설은 내심으로 흡족했다.
지난 몇 달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왼손 오른손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손을 떠난 철비정들이 처음에 노렸던 지점으로 정확하게 날아드는 중이다.
전투 초반의 철비정술은 약간 어설펐는데, 실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나자 수련할 때처럼 정확성이 살아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철비정술을 배운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기에 보완해야 할 점들도 많다.
속도도, 위력도, 더 올려야 한다.
은밀함과 예리함도 더 가다듬어야 한다.
한 손에 두 개 이상의 철비정을 들고 날릴 경우 정확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은 한 손에 하나씩이 한계인 셈인데, 이 부분에 대한 보완도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철비정술 배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지금까지 많이 제법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철비정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애초에 송유겸이 많이 챙겨가라고 주문했었기 때문이다.
후열에서 암기를 날리는 것만큼 안전하게 실전에 적응하는 방법이 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은 실전에 완벽하게 적응된 게 아닌 만큼, 이후에도 한동안은 철비정을 날리며 실전 감각을 끌어 올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남궁설은 그 와중에도 주변시를 이용하여 틈틈이 선우린의 모습을 살폈다.
‘철비정술은 확실히 린아가 더 뛰어나긴 하네.’
친구인 선우린은 종종 한 손으로 두 개씩의 철비정을 날리곤 했다.
그런데 그 정확도도 상당했다. 위력이나 속도도 선우린 쪽이 자신에 비해 조금 더 나은 느낌이다.
지난 몇 달간 선우린은 검법 수련을 최소화한 채 철비정술을 우선적으로 연마했었다. 본인의 성향상 보조하며 싸우는 쪽이 훨씬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선우린의 경우에도 그러한 노력의 성과가 이런 식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남궁설의 시선이 다시금 단목강 쪽으로 향했다.
‘조장님은 태화지부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이 되셨구나.’
저 등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물론 태화지부 사건 당시에도 단목강의 실력은 충분히 대단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관도라는 느낌이 더 강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느낌이 그때와는 완전히 반대다.
신분은 여전히 잠룡관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어엿한 한 명의 고수라는 느낌이다.
실제로 절정고수를 비롯한 주변의 적들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단목강은 단 한 번도 동작이 엉키는 적이 없었다.
매우 안정적으로 전열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벌써 두세 명의 적들을 마무리 짓기까지 했다. 자신과 유은무가 철비정을 날리면서 만들어낸 우연 깃든 기회들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부지런히 철비정을 날리며 실전에 적응해가던 어느 순간, 남궁설의 눈매가 살짝 좁혀졌다.
영문 모를 서늘한 기분이 육감을 자극했다가 사라진 탓이다.
빠르게 주변을 한 차례 훑었다.
한데 전투 상황이 변한 건 딱히 없다.
‘기분 탓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문득 며칠 전에 송유겸과 같이 했던 야간 수련이 떠올랐다.
송유겸과 원추엽이 한편이 되고 자신과 선우린과 포연월이 한편이 된, 이 대 삼의 비무였다.
당시에 송유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자신의 바로 뒤에서 나타났었는데, 수련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모른다.
그때 송유겸은 이렇게 말했었다.
「실전에서는 설령 자잘한 느낌이라도 절대로 그냥 무시하고 흘려보내서는 안 돼. 때로는 우리의 의식이 파악하지 못한 것들을 무의식이 먼저 파악해서 신호를 보내기도 하거든. 그러니 근거가 없다고 할지라도, 느낌이 이상하다 싶으면 곧바로 위험에 대한 대응을 준비해야 해. 그러면서 주변의 모든 기운과 기척들에 집중하는 거지.」
송유겸의 말을 떠올리자마자 남궁설은 즉시 오른손을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의 손잡이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면서 왼손으로만 철비정 하나를 빼 들며 주변의 기운들에 집중했다.
그 직후, 남궁설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딱 그 순간에, 우측의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기운 두 개가 자신의 측면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던 탓이다.
챙!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들며 검에 기운을 주입했다. 동시에 오른쪽으로 빠르게 고개를 틀었다.
두 개의 검기는 매우 강력하고 위협적이었는데, 각각 자신의 어깨 쪽과 허리 아래쪽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두 검기의 성질이 미세하게 다른 것으로 보아, 한 사람이 날린 게 아니라 두 사람이 하나씩의 검기를 날린 것 같았다.
‘둘 다 막아야만 해!’
피할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피하면 자신의 왼쪽에 있던 선우린이 저 검기들에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설령 선우린이 피한다 해도 선우린의 왼쪽에 있던 경비무사들이 당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검기를 두 개 다 막으려면 빠른 무공을 펼쳐야 한다.
무공 연원이 드러나는 일 따위를 신경 쓸 계제도 아니다.
순간적으로 섬뢰일검을 펼치며 두 개의 검기를 막아갔다.
캉! 카앙!
다행히 두 개의 검기를 모두 막아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어야 했다.
손아귀에 전해진 충격이 매우 컸던 탓이다.
검기에 담긴 위력이 이렇게나 강하다면, 둘 다 상당한 고수들일 것이다.
그 와중에 단목강이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카강!
모양새를 보니 단목강에게도 우측에서 검기 하나가 기습적으로 날아들었고, 그와 동시에 정면에서는 도를 들고 있던 절정고수가 강맹한 공격을 가해왔던 것 같다.
단목강은 단목강대로 그 두 개의 강력한 공격들을 막느라 자신을 돕지 못했던 것이다.
‘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자신이 아까의 그 서늘한 기분을 그냥 무시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오른손으로 검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방금 전의 검기 두 개를 결코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경우 준비가 안 된 상태였던 만큼 검기들을 피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랬다면 친구인 선우린이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우린은 양손으로 부지런히 철비정술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우측의 어둠 속에서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는 세 명의 적들이 보였다.
자신에게 검기를 날린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명과 단목강에게 검기를 날린 것으로 추정되는 한 명이다.
셋 다 암갈색의 무복을 입은 채 동색의 복면을 착용 중이다.
대부분의 적들은 흑의무복을 입고 있고, 처음부터 전선에서 싸우고 있었던 세 명의 절정고수들은 남의무복을 입고 있다.
저렇듯 갈의무복을 입고 있는 이들은 처음 보는데, 저들의 기세가 남의무복을 입은 절정고수들에 비해 더 사나워 보인다. 더 강한 자들인 것이다.
갈의무복의 절정고수 두 명이 자신을 노리고 쇄도해오고 있다.
왼손에 들고 있던 철비정을 왼쪽의 절정고수에게 날렸다.
핏!
조금이라도 견제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뒤쪽에서도 두 개의 철비정이 두 절정고수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피빗!
선우린이 날린 철비정이다.
티딩! 팅!
하지만 두 명의 절정고수들은 너무도 간단하게 철비정들을 쳐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속도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확실히 실력이 빼어난 자들이다 보니 자신들 수준에서의 견제가 전혀 통하지 않은 것이다.
지척까지 파고든 두 명의 절정고수가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슈슉-
다행히 두 개의 검로를 겨우 눈으로 쫓을 수 있었다.
지체하지 않고 다시금 섬뢰일검을 펼쳤다.
캉! 카강!
각오를 하고 검병을 꽉 쥐었음에도 손아귀가 저리다.
둘 다 절정고수인 만큼 위력이 장난이 아니다.
챙!
뒤쪽에 있던 선우린이 다급하게 검을 뽑은 소리다.
하지만 두 절정고수는 이미 자신을 향해 재차 검을 찔러 넣은 상태다.
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막아야 한다.
선우린이 검을 뽑기는 했으나, 아직 저들 중 한 명이라도 막아줄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좁히지는 못한 상태다.
결국 이번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지 못한 채, 홀로 저 두 절정고수의 공격을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를 악물며 검을 맞대가던 순간이었다.
푹푹!
두 절정고수의 뒤쪽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자신을 향해 검을 뻗던 그 두 절정고수가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그러더니 자신에게 검을 뻗던 그 자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놀란 상태에서도 일단은 옆으로 피했다.
두 절정고수가 자신을 향해 고꾸라지고 있었던 탓이다.
피하면서 확인해 보니 두 절정고수의 뒷목 바로 위쪽에 각각 하나씩의 소비도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쯤,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잔영을 남길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게 보였다.
너무 빨라서 그 인영의 모습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는 상황이나, 그가 누군지는 자연스럽게 인식되었다.
송유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