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20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적습인 만큼, 지금의 상황은 우리 인원들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일행들 중에는 실전을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인원들이 몇 명 있으며, 설령 실전을 겪어 봤다 해도 아직 실전에 익숙하지 않은 인원들도 있다.
실전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는 여러 면에서 적지 않은 격차가 존재하며, 그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지게 되어 있다.
같은 초식 수련을 해도 경험자는 실전까지 염두에 두고 더 치밀하게 갈고 닦는 데 반해, 후자는 계속해서 막연하게 초식 위주의 수련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의 경험을 통해 실전 초보들은 앞으로 수련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며, 이미 우수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몇몇 일행들은 절정고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좋은 실전 경험 기회라는 것도 우리 측에 중상자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다.
혹여 누군가가 죽거나 불구가 되어버리면 실전 경험이고 나발이고 득보다 실이 더 많아질 우려가 크다.
아직은 모두가 스무 살 안팎의 어린 나이들인 만큼, 친한 사람이 옆에서 죽거나 불구가 될 경우에 받게 되는 정신적인 충격도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몇몇은 그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나기까지의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실전 경험을 쌓게 해줄 목적이라 해도 최대한 안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가 적측 절정고수 놈들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절정고수 놈들만 적당히 솎아내 주면 그 외에는 일행들이 알아서 대처할 수가 있다.
이 일행은 그럴 실력이 된다.
나는 항시 실전을 염두에 두고 우리 일행들을 단련시켜 왔으며, 일행들도 그러한 단련에 잘 따라왔었기 때문이다.
앞뜰에서 벗어나 본채 건물의 측면으로 진입하자마자 나는 천섬무를 상 단계로 펼치며 더 빠르게 나아갔다.
뒤뜰로 이동했던 혈교의 절정고수 다섯 놈이 내 예상보다 이르게 전투에 개입하기 시작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시 한 손에 세 자루씩, 양손에 총 여섯 자루의 소비도를 꺼내 쥐었다.
뒤뜰에서도 경비 무사들이 적에게 맞서 싸우는 중이다.
절정고수들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면 그들이 매우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급박한 상황이라면 원거리에서라도 최대한 엄호하고자 여러 개의 소비도를 꺼내 쥔 것이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뒤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뒤뜰에서도 본채의 일 층 현관으로 드나드는 통로가 있는데, 적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그 앞에 몰려 있었다.
뒤뜰에서 싸우고 있는 경비 무사들에게는 위험할 것 같으면 저 통로를 이용하라고 얘기해 뒀었다. 좁은 곳으로 들어가서 잠시만 버티며 시간을 벌라는 의미였다.
적측에 갑작스럽게 강자들이 등장한 상황이다 보니 경비 무사들이 내 지시대로 그 통로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후퇴하는 경비 무사들을 적들이 공격하는 중인데, 경비 무사들 쪽의 대처가 나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엄호하며 신속하게 통로로 들어서는 모습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금 막, 적측 절정고수들이 개입하여 경비 무사들 쪽으로 향한 것이고.
아직 거리가 멀긴 하지만 곧바로 여섯 개의 소비도를 한꺼번에 털어냈다.
당연하게도 절정고수들 위주로 노린 소비도들이다.
놈들만 견제하면 경비 무사들이 안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도들이 반 이상 날아갔을 무렵부터 절정고수 놈들이 하나둘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천섬무를 담아서 날린 소비도들이기는 하지만, 멀리에서 날린 만큼 대처할 시간도 있는 것이다. 내가 무시할 뿐이지 놈들도 절정고수이긴 하다.
절정고수들 중에서 세 놈이 즉시 나서며 내가 날린 소비도들을 쳐냈다.
챙! 채쟁! 채재쟁!
그러자 나머지 절정고수 두 놈도 우리 경비 무사들 쪽을 공격하려다 말고 내 쪽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놈들도 내 소비도술의 경지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어쨌거나 절정고수 놈들이 경비 무사들을 공격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내 입장에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놈들의 주의를 내 쪽으로 돌린 마당이라, 천섬비를 펼치는 속도도 상 단계에서 중 단계로 낮췄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빠른 속도다.
아니나 다를까, 내게로 향해 있는 절정고수 놈들의 눈동자도 휘둥그레져 있다. 놈들이 느끼기에도 내가 다가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와중에 얼핏 보니 이 층 거실 옆에 있는 방의 창문이 박살 나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저 방은 도예주가 치료받고 있는 병실이다.
상태를 보니 이미 공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병실 안에서 큰일이라도 벌어졌다면 그쪽이 상당히 소란스러울 텐데, 얼핏 느끼기에도 그런 기색은 없다.
그래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병실 쪽으로 기운을 퍼트리며 탐색을 시작했다.
사실 딱히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저 절정고수 다섯 놈의 행적은 내가 계속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놈들은 방금 전에야 뒤뜰의 작전에 개입하기 시작했기에 저 병실에 침입할 시간은 없었다.
결국 나머지 적들 중 일부가 창문을 통해 진입하여 병실을 공격했다는 뜻인데, 그 정도는 병실에 있던 인원들만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가 있다.
단목지와 포연월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원래 가진 실력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번 합숙을 통해 성취가 크게 발전하기까지 했다.
참고로 저 창문을 통해 한꺼번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웬만하면 한 명이다.
몇 명이 동시에 진입하는 것도 아니고 한 방향에서 한 명씩만 진입하는 정도라면, 단목지와 포연월 수준에서도 충분히 대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나는 그녀들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명호운을 합류시켰으며, 심산화를 이중 안전장치 삼아 대기시키기까지 했다.
곧 병실 안의 기척 탐지를 마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단목지, 포연월, 명호운, 청여홍, 심산화 모두 기운이 정상적이었다.
적측 절정고수들과의 간격이 열다섯 걸음 안으로 줄었다.
나는 한 손에 하나씩의 소비도를 빼 든 상태다.
저놈들도 절정고수인 만큼 이 거리에서 여러 개의 소비도를 날려 봐야 유의미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소수의 소비도라도 집중해서 정확하게 날리는 게 낫다.
소비도들에 은밀한 기운을 담아서 빠르게 털어냈다.
쉬쉭-
두 자루의 소비도가 각각 절정고수 한 놈씩을 노리고 날아갔다.
한 자루는 다섯 놈 중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놈에게 향했고, 다른 한 자루는 우측에서 두 번째에 위치한 놈에게 향했다.
두 놈이 소비도에 반응하며 검을 들고 있다.
쳐내려는 목적으로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한 놈의 반응이 살짝 늦다.
챙! 푹!
우측에서 두 번째에 있던 놈은 위태위태하게나마 소비도를 겨우 쳐내기는 했다. 하지만 좌측 끝에 있던 놈은 쳐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소비도가 그놈의 어깻죽지에 박혀버린 것이다.
놈은 오른손잡이인데 소비도가 박힌 부위가 왼쪽 어깨라는 점이 약간 아쉽다.
절정고수 놈들과의 간격이 얼추 열 걸음 내로 줄어든 순간, 나는 급속도로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절정고수 놈들이 갑자기 약속이라도 한 듯 빠르게 여러 곳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다섯 놈 중에서 한 놈은 곧장 일 층의 창문을 뚫고 본채 안으로 진입한 상태다. 회의실 쪽 창문이다.
세 놈은 동시에 이 층으로 도약했는데, 신형들이 각각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놈은 도예주가 치료받고 있는 병실 쪽의 창문으로, 한 놈은 이 층 거실로 연결되는 창문으로, 다른 한 놈은 이 층의 다른 침실로 향한 것이다.
이쯤 되면 내 입장에서도 놈들의 의도를 모를 수가 없다.
내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나 혼자서는 대처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 새끼들 보게?
마지막 한 놈은 본채의 건물 안으로 진입하지 않은 채 원래의 자리에 그냥 남아 있다.
방금 내 소비도에 의해 왼쪽 어깨를 찔렸던 바로 그놈이다.
한데 놈이 오른손에 쥐고 있는 검에 순간적으로 강력한 기운이 담기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직후, 놈이 그 검을 통로 쪽으로 뻗기 시작했다.
통로를 향해 강력한 검기를 날리겠다는 심산이다.
통로 안에는 경비 무사들이 몰려 있다.
참고로 경비 무사들은 현재 다른 적들을 상대하느라 저 절정고수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저대로 놔두면 여럿이 죽고 다칠 수밖에 없다.
결국 고수가 가서 막아 줘야 하는데, 지금 저 공격을 막아 줄 수 있는 고수는 나뿐이다.
즉, 절정고수 놈들도 그걸 노리고 내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잡아두기 위해서 저놈에게 저 짓을 시킨 것이다.
저러면 저놈은 나한테 죽게 될 텐데, 어차피 다친 동료이니 그를 희생시키겠다는 계산이기도 하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새끼들 같으니.
역시 혈교 새끼들이다.
통로를 향해 검을 뻗던 놈이 내 쪽으로 살짝 고개를 틀었다.
복면 안으로 드러난 놈의 눈매가 웃고 있다.
의외다.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표정일 줄 알았는데 처웃고 있다니.
의미를 대강 알 것 같다.
본인은 곧 나한테 죽겠지만, 나 또한 자기들이 방금 펼친 작전을 막을 수는 없을 거라는 의미다.
결국 나는 저 경비 무사들의 죽음을 막을 수도 없고, 내 다른 동료들이 방금 흩어진 본인의 동료들에게 죽는 걸 막을 수도 없다는 의미다.
어차피 곧 죽을 입장이니 마지막 순간에나마 내게 조롱을 보내며 정신 승리를 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건방진 또라이 새끼 같으니.
나도 놈을 향해 히죽 웃어줬다.
내 반응이 의외였던지, 놈의 눈동자에 잠시나마 의문이 떠올랐다.
곧바로 비룡검을 뽑아 듦과 동시에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애초에 놈이 검을 뻗고 있는 오른팔을 잘라버리면 검기가 발출될 염려도 없다.
한데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친다 해도, 놈의 검기가 발출되기 전에 저 앞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결국 검기부터 제대로 막아낸 후에 놈을 처리하는 게 안전한 선택이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쳤기에 놈과 나 사이의 공간은 순간적으로 압축되듯 빠르게 가까워졌다.
예상했던 대로 검기가 발출되기 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한 걸음이 모자랐다.
놈에게서 발출된 검기는 세 가닥이다.
세 가닥의 검기에 담긴 위력들이 하나같이 강력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출하는 검기라서 각오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다음 순간, 나는 꽉 움켜쥔 비룡검을 쭉 뻗으며 놈이 발출해 낸 강력한 검기들을 비스듬히 튕겨냈다.
카가강!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하고 있었던 만큼, 튕겨 내는 그 순간에도 비룡검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튕겨 나간 검기들이 모두 적들 쪽으로 향하게끔 조절한 것이다.
푸부북!
검기가 튕겨 나간 방향에 있던 적 세 명이 그대로 검기들에 찔리던 순간, 내 비룡검은 이미 절정고수 놈의 오른팔에 다다른 상태였다.
내게로 향해 있는 절정고수 놈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 부릅떠진 게 보인다.
뭐, 저런 반응일 수밖에 없겠지.
서걱-
비룡검이 놈의 팔을 가른 순간, 내 왼손에서 튕겨 나간 쇠구슬이 놈의 콧잔등 상단에 작렬했다.
빠악!
“크아악!”
이어서 튕겨낸 쇠구슬은 놈의 왼쪽 무릎에 작렬했다.
빠각!
“끄아아악!”
놈을 죽일 목적으로 튕겨낸 쇠구슬들이 아니다.
고통에 몸부림치게 할 목적으로 힘을 조절해서 튕겨낸 쇠구슬들이다.
잘린 팔도, 콧잔등도, 무릎도, 미칠 듯이 아플 것이다.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이다.
물론 죽일 마음은 없다.
이 몸을 조롱했던 놈을 편하게 죽여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별로 착한 사람은 아니거든.
[계속 처웃지, 왜.]
또다시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펼치기 시작하는 와중에 전음으로 그 말을 남겨줬다.
더 아프게 해줄 수 있으나 지금은 시간이 촉박한 만큼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