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21
또 한 명의 적이 도약하며 병실의 창문 쪽으로 진입하려 했다.
명호운은 그 적의 발이 창틀을 밟기 한참 전부터 쾌류창법의 공격 초식을 펼쳐냈다.
어느 시점에 공격을 펼치는 게 적을 가장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이전에 침입했던 적들을 상대해 본 경험 덕분이다.
창이 깔끔하게 나아가고 있다.
이 초식만큼은 나름대로 실전 적응이 된 느낌이다. 역시나 이 또한 이전의 경험 덕이다.
아까는 많이 긴장했었는데 지금은 마음도 차분해졌다.
병실에 같이 있는 동료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했기 때문이다.
‘포 소저와 단목 소저가 개입할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만 벌어준다는 생각으로.’
그렇듯 차분하게 초식을 이어가던 명호운의 눈매가 급격하게 좁아졌다.
적은 아직 창틀을 밟지 않았기에 허공에 떠 있는 상태다.
한데 어느 순간 적의 신형이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자신의 창술을 간단하게 피하며 창틀 위에 올라선 것이다.
‘뭐, 뭐야, 이거······!’
적의 움직임이 흐릿하게 보였다는 건 적이 그만큼 빠르다는 뜻일 것이다.
툭!
곧 적이 가볍게 창틀을 디디더니 자신이 초식을 시전하고 있는 범위 안으로 쑥 들어왔다.
역시나 흐릿한 움직임이었다.
자신이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인 것이다.
적의 흐릿한 움직임 속에서, 날카로운 뭔가가 자신의 상체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향해 검이든 뭐든 뻗고 있는 모양이다.
온몸의 털이라는 털은 모조리 곤두서는 느낌을 받는 와중에도 명호운은 급격하게 몸을 비틀었다.
* * *
환자를 치료하던 단목지가 곧장 치료를 멈췄다.
적이 침입했으니 싸울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치료도구들을 청여홍에게 넘겼다.
그러면서 잠시 적에게 시선을 둔 단목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움직이는 모습이나 속도의 수준 자체가 이전에 이 방에 침입했던 적들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발산하고 있는 기운의 농도도 확실히 다르다.
절정고수인 것이다.
보아하니 옆에서 같이 치료를 하다가 서둘러 검을 집어 들고 있는 포연월 또한 놀란 기색이다.
포연월도 적이 절정고수임을 알아챈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적은 복장도 다르다.
아까는 흑의를 입은 자들이었는데 이번에는 암갈색의 무복을 입고 같은 색의 복면을 착용한 자였다.
창술을 간단하게 피해낸 갈의복면인이 명호운에게 근접하며 검을 뻗고 있다.
명호운의 복부를 노리고 있다.
매우 단순한 동작으로 검을 뻗은 느낌인데도, 검에 담긴 위력은 강력했고 속도는 자신이 눈으로 쫓기에도 약간씩 흐릿해 보일 정도로 빨랐다.
위험을 느꼈는지 명호운도 격렬하게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산화야, 빨리······!’
단목지가 속으로 그 생각을 한 순간, 절정고수의 고개가 급격하게 뒤로 돌아갔다.
은잠술을 펼치고 있던 심산화가 등 뒤에서 소검을 뻗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이 절정고수도 이전의 적들처럼 놀란 기색이다.
심산화의 은잠술이 절정고수에게도 통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나 절정고수가 다르긴 달랐다.
놀라긴 했으나 순간적으로 흠칫한 정도였을 뿐, 이전의 일류고수들처럼 화들짝 놀라며 당황하지는 않고 있다.
절정고수는 명호운을 향해 계속해서 검을 찔러 넣음과 동시에,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가더니 단검을 빼서 심산화의 소검을 막아냈다.
챙!
심산화의 공격은 너무 간단하게 막혔다.
그녀가 익히고 있는 소검술은 기본적으로 쾌검술 위주라고 들었는데, 그 쾌검술의 수준이 은잠술에 비해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게 아쉬운 순간이다.
공격에 실패한 심산화가 곧장 신형을 빼며 방문 쪽으로 이동했다.
은신은 발각됐고 소검술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한 만큼, 홀로 적의 뒤에 있다가는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의 암습과 함께 은신이 풀리면 무조건 안전한 방문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비록 암습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심산화의 은잠술은 기본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심산화에게 대처하다 보니 절정고수가 명호운에게 찔러 넣던 검의 위력과 속도도 약간 준 것이다.
전투 준비를 마친 포연월이 그 틈에 앞으로 나서며 절정고수의 검을 걷어내듯 위로 쳐냈다.
챙!
심산화가 시간을 벌어준 그 순간에 개입하여 명호운을 엄호한 것이다.
자신에 비해 병실의 창문 쪽에서 더 가까운 게 포연월이기에 그녀가 저 역할을 맡겠다고 자청했었다.
한데 매번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치료 도구를 청여홍에게 인계하자마자 곧바로 검을 집어 들었다.
참고로 검은 검집에 꽂아놓지 않고 침상의 옆에 세워 뒀었다. 이렇듯 검집에서 검을 뽑을 시간마저도 아끼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안전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야 해!’
명호운, 심산화, 포연월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적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다.
이 병실에 있는 이들 중에서 공격력이 가장 강한 게 자신이기도 하다.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을 살짝 넘어 측면의 벽을 가볍게 박찼다.
탓!
적과 자신의 사이를 포연월과 명호운이 가리고 있는 상황인데, 현재 명호운은 자세가 많이 무너져 있다. 그래서 자신이 스스로 명호운을 피하며 나선 것이다.
벽을 딛자마자 절정고수 쪽으로 신형을 튕기며 강력한 검초를 최대한의 속도로 펼쳐냈다.
포연월도 곧바로 호응하며 절정고수를 향해 검술을 펼쳐내고 있다.
그러자 자신과 포연월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절정고수가 어지럽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카가강! 캉!
쇠붙이들의 격돌로 인한 불꽃들이 허공을 수놓은 순간, 단목지는 이를 악물며 손아귀를 꽉 쥐어야 했다.
‘끅!’
적의 검에 담긴 힘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여, 손아귀를 꽉 쥐지 않으면 검을 놓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손아귀에 전해지는 고통도 적지 않았다.
‘이 정도라니······!’
단목세가의 검술은 남들이 보는 느낌상 아무리 경쾌해 보여도 실제로 그 안에는 중검(重劍)의 묘리가 녹아들어 있다.
마음먹고 중검의 묘리를 담으면 검에 담긴 힘이 더 묵직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아까의 통통한 적이 당했던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에는 속도를 중시해서 검초를 펼쳤기에 아까와 같은 묵직함까지 담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 해도 기본적으로 강 대 강으로 맞섰을 때 이런 충격을 느껴야 할 정도로 중검의 묘리가 약하게 담겼던 건 아니었다.
결론은 하나다.
내공의 차이와 경지의 차이가 너무 심한 것이다.
참고로 방금 절정고수의 검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포연월은 미약한 신음을 흘리기도 했었다.
중검의 묘리를 활용했던 자신이 이런 충격을 느꼈을 정도이니 포연월이 느낀 충격은 더 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신묘한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경지 차이가 너무 많이 나다 보니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절정고수가 곧바로 공세로 전환하며 검초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검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기도 어려울 정도로 빨랐고, 검초에 담긴 위력도 강력했다.
검초를 펼쳐내는 방향은 자신 쪽이다. 포연월을 향해서는 단검을 털어내고 있다.
절정고수가 던진 만큼 단검이 날아드는 속도도 매우 빠를 것이다. 즉, 포연월로서는 그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수밖에 없다.
결국 절정고수가 펼쳐내고 있는 저 검초는 자신 혼자서 온전히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뒤에 환자가 누워 있는 만큼 웬만한 건 쳐내야 한다.
슈슈슉-
무엇이 허초이고 무엇이 실초인지도 구분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 검병을 꽉 쥔 채 어떻게든 방어를 해갔다.
카강!
일단 가슴 한복판으로 향하는 공격과 얼굴 쪽으로 향하는 공격은 겨우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둘 다 실초였던 것이다.
직후에는 오른쪽 허벅다리 쪽으로 다가오는 공격을 빠르게 막아갔다.
휙-
한데 이번에는 검이 실체를 막지 못한 채로 허공만을 갈랐다.
허초였던 것이다.
그 순간 왼쪽 옆구리 쪽으로 향하는 섬뜩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실초였······!’
지금은 막을 방도가 없거니와 피할 수도 없다.
온 힘을 다해 상체를 우측 후방으로 빼고는 있으나 머릿속은 이미 아득해져 갔다.
‘아······!’
적의 검이 곧 자신의 왼쪽 옆구리로 파고들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문 열어!”
갑자기 창문 쪽에서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즈음의 일이었다.
작지만 또렷한 외침의 주인공은 송유겸이었다.
슥-
매우 짧고 미세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된 순간.
푹-
역시나 짧고 미세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더니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 넣고 있던 절정고수가, 자세가 그대로 굳은 채 앞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부릅뜬 그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갔다.
절명한 것이다.
단목지는 서둘러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발바닥을 이용해 절정고수의 몸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절정고수가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면 그의 검이 환자를 상하게 할 수 있는 탓이다.
그 순간, 뭔가가 자신이 손으로 짚고 있는 벽의 위쪽을 밟으며 스쳐 지나갔다.
벽을 평지처럼 밟고 지나간 건데, 당연히 송유겸일 것이다.
그는 곧장 방문 방향으로 향했는데,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에는 이미 문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가 창문을 통해 이 방에 들어서서 방문을 통해 복도로 나가기까지, 그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송유겸은 그냥 지나쳐 간 게 아니라 절정고수를 죽이고 지나쳐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송유겸의 모습을 제대로 시야에 담지도 못했던 것이다.
뭐가 지나갔나 싶은 느낌이 바로 이런 느낌인가 싶다.
얼핏 느껴지기로는 그냥 검은 바람 줄기가 스쳐 지나간 느낌이다.
그 정도로 빠른 것이다.
‘세상에······.’
송유겸의 무공 실력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접했으나 그 실력을 직접 접할 기회는 없었다. 그렇다 보니 막연하게 대단한 실력이겠거니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의 실력을 직접 접하게 된 건데, 이건 대단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너무 부족한 느낌이다.
‘송 공자님은 우리와 비슷한 나이인데도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경지에 있는 거구나······.’
기습에 실패한 후 방문 쪽으로 이동해 있던 심산화가 문고리를 잡고 있는데, 그녀도 깜짝 놀란 표정이다.
아직 방문이 충분하게 열려 있지도 않은데 송유겸은 저 틈으로 바람처럼 사라진 모양이다.
포연월도 경악한 표정이었다.
“조, 조, 조교······, 님······.”
그녀답지 않게 말을 제대로 내뱉지 못하고 있다.
그녀 또한 본인을 지도해 주고 있는 젊은 조교가 이렇게까지 대단한 실력자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 * *
콰자작!
이 층 거실 후면 쪽의 나무 창문이 박살 난 순간 원추엽의 상체가 그 방향으로 홱 돌아갔다.
선배인 송유하의 궁술이 워낙 빼어나기에 적측에서도 슬슬 이곳을 견제하러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중에 역시나 적이 온 것이다.
일단은 한 명뿐인 듯하다.
날이 두꺼워 보이는 도를 든 자다.
한데 그의 복장이 신경 쓰였다.
갈의무복을 입고 같은 색의 복면을 착용했다.
‘저 복장은······!’
내심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앞뜰 쪽에도 저자와 같은 복장의 적들이 있었다.
세 명이었는데, 그들은 전선에 등장해서 단목강과 장우혜를 기습하다가 금방 죽었다.
조교 송유겸에 의해서였다.
등장하자마자 죽은 느낌이긴 했으나, 그들이 무공을 펼칠 때 얼마나 강력한 기운들을 발산했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빠르기도 매우 빨랐었다.
절정고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저자도 절정고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혼자서 후방을 타격하러 온 거겠지.’
한데 이 상황에서도 흥미로운 건, 갈의복면인이 이쪽으로 시선을 두더니 살짝 주춤했다는 점이었다.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옆에 쌍부를 들고 서 있는 왕철양 때문일 것이다.
왕철양은 거인 느낌이다.
당장 자신만 해도 키가 크고 어깨가 떡 벌어졌기에 체격 면에서는 어디 가서 꿇릴 일이 없는데, 왕철양 앞에 서면 꼬마가 된다.
비록 왕철양의 실력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채게 된다 하더라도, 저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거구를 보고 흠칫하는 건 본능적인 반응이다.
갈의복면인의 입장에서는 이곳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게 왕철양일 테니까
하지만 주춤한 것도 잠시.
갈의복면인이 곧장 왕철양을 향해 짓쳐 들었다.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아까 아래에서 죽은 갈의복면인들을 볼 때도 빠르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듯 직접 겪어 보니 훨씬 빠른 느낌이다.
도에서도 매우 강맹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절정고수가 확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