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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26화 (226/416)

내 안에 마교있다 226

이 두 놈만 해도 충분히 고수들이다.

사실, 경지 자체를 따지면 이 두 놈이 나보다 더 높다. 내 경우에는 천섬무의 빠른 속도와 전생의 경험 덕분에 당장의 경지에 비해 훨씬 높은 전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뿐이다.

그렇듯 나보다 경지가 높은 놈이 ‘무시무시한 분’이라는 표현까지 쓴 마당이라, 나도 속으로 경계심을 끌어 올리는 중이었다.

한데 그러자마자 새로운 적이 다가올 줄이야.

그는 후방에서 다가오는 중인데, 다가오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매우 빠르다.

저런 속도라면 내 예상 범주를 뛰어넘는 고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놀라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적이 눈앞에 등장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흑의 무복을 입은 삼십 대 후반의 사내다.

신장은 평균보다 살짝 큰 편이며 마른 체형이다.

얼굴도 말랐는데 눈매가 매우 부리부리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저 사람이라면 눈빛만으로도 살인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전생에 천마신교에서 접했던 정보들을 떠올려 봤지만, 역시나 저 사내에 대한 정보는 떠올릴 수 없었다. 참고로 뚱뚱이와 뱁새눈이의 정보도 없다.

허리 왼쪽에 검집을 차고 있는 것으로 봐서 오른손잡이인 모양이다.

한데 무기가 저 검만이 아닌 것 같다.

등 뒤에도 뭔가를 메고 있는 듯한데, 지금의 내 방향에서는 그게 뭔지 확인할 수가 없다.

나에 비해 경지가 매우 높기에 저 부리부리 사내의 정확한 무공 경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느껴지는 기도로 추측건대 최절정에 근접하지 않았나 싶다.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엄청난 고수인 것이다.

참고로 저 세 명의 고수가 갑자기 동시에 내게 합공을 가해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즉각 대비할 수 있게끔 기운을 충분히 활성화시켰다.

이렇듯 자칫 잘못하면 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몸이 떨리지는 않는다.

아마도 전생에 천하제일인을 상대로 치열한 수련을 하도 많이 해본 덕분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 걱정거리는 하나다.

뚱뚱이와 뱁새눈이의 대화를 되새겨 보면 저 부리부리한 사내가 나를 맡고 저 두 놈은 우리 일행을 추격할 가능성이 높다. 한데 현재 우리 일행의 역량으로는 절대로 저 두 놈을 막을 수가 없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오셨습니까.”

뚱뚱이가 그렇게 말하며 ‘부리부리’를 향해 묵례하자 뱁새눈이도 따라서 묵례했다.

부리부리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는 상태다.

뚱뚱이가 내게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어, 동천비룡. 벌써 헤어지려니 살짝 아쉽네.”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딱히 아쉬워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뱁새눈이도 한마디를 보탰다.

“어. 아쉽기는 해도 다음에 보기는 어렵겠네.”

내가 부리부리한테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는 확신이 담긴 말이었다.

그러자 뚱뚱이가 부리부리에게 또다시 묵례하며 말했다.

“그럼 저희들 먼저 가보겠습니다. 천천히 오십시오.”

뱁새눈이도 따라서 묵례하자 부리부리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뚱뚱이와 뱁새눈이가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 오른쪽으로 넓게 돌아 우리 일행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그 순간에 즉시 발을 박찼다.

저 두 놈을 그냥 보내버리면 우리 일행들이 너무 위험해지는 만큼, 어떻게든 놈들의 움직임을 방해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내가 놈들의 경로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네댓 걸음을 움직인 순간이었다.

슈슈슈슈슉-

좌측 후방에서 매우 빠르게 날아온 다섯 줄기의 경력이 내가 나아가는 진로를 막았다.

강맹하면서도 쾌속한 검기다.

다섯 줄기의 검기가 교묘하게 내 경로를 방해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 검기들을 모조리 막고 피하면서 전진하는 건 너무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공연히 힘을 낭비하면서 위험 속으로 뛰어들 필요가 없기에 멈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급격하게 고개를 틀지 않을 수 없었다.

부리부리가 좌측 후방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짓쳐 들었기 때문이다.

슛-

부리부리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내 왼쪽 허벅다리 측면을 찔러오고 있다.

참고로 부리부리의 왼손은 등 뒤쪽으로 향해 있는 상태인데, 아마도 등 뒤에 메고 있는 무기를 쥐려는 모양이다.

놈이 워낙 빠르기에 피하기는 늦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자세나 무게중심이 상대적으로 불안한 쪽은 내 쪽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지가 높은 고수의 무기를 강하게 튕겨내는 건 어설픈 대처다.

짧게 비껴낸 후 어떻게든 견제를 해야 한다.

왼발을 살짝 뒤로 뺌과 동시에 비룡검을 이용하여 짧은 동작으로 부리부리의 검을 바깥으로 비껴냈다.

채앵!

그러자마자 부리부리가 즉시 손목을 빙글 비틀어 검로를 바꾸며 내 무릎 쪽을 베어왔다.

채앵!

나는 그 또한 짧은 동작으로 가볍게 비껴낸 후, 즉시 검로를 틀어 부리부리의 좌측 허벅다리 상단을 노렸다.

그러면서 왼손으로는 미리 준비해 뒀던 쇠구슬을 튕겨냈다.

부리부리의 우측 어깨를 향해서였다.

부리부리가 검으로 내 공격을 쉽게 막을 수 없게끔 쇠구슬을 이용해 견제한 것이다.

천섬무를 상 단계로 운용하고 있기에, 그 모든 과정이 거의 동시에 벌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부리부리가 왼쪽 다리를 뒤로 살짝 빼고 있다.

그 순간에 비룡검을 찔러가는 동작에 속도를 더했다.

최대 속도는 아니었다.

천섬무를 최대한으로 운용한다고 해도 이 공격을 확실히 성공시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면 섣불리 최대 속도를 보여줘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기회인만큼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여 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나는 쇠구슬을 튕겨내자마자 이미 왼손에 소비도 한 자루를 빼 든 상태다.

탱!

부리부리가 검으로 내 쇠구슬을 튕겨낸 순간, 나는 곧바로 왼손의 소비도를 털어냈다.

소비도는 부리부리의 우측 허벅다리를 향해 쾌속하게 날아갔다.

내 비룡검의 검극도 부리부리가 뒤로 뺐던 좌측 허벅다리에 거의 다다른 상황이다.

그 순간, 부리부리의 왼손이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나 또한 부리부리의 저러한 대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무슨 무기일지도 궁금하던 차였다.

놈이 왼손에 든 병장기의 손잡이 부분을 이용하여 내 비룡검을 어렵지 않게 비껴냈다. 동시에 오른손에 든 검으로는 내 소비도를 쳐냈다.

채쟁!

그 틈을 타서 나는 놈과의 간격을 안전하게 벌렸다.

적어도 무인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병장기는 아닐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전체 길이가 삼 척이 되지 않는 무기인데, 저건 호수구(護手鉤)라는 명칭의 병장기다.

병장기에서 ‘구(鉤)’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무기들은 기본적으로 쇠갈고리 형태의 무기들이다. 전투 시에 쇠갈고리 부분을 이용하여 상대의 무기를 잡아당기는 식으로 활용된다.

앞에 붙은 ‘호수(護手)’라는 글자는 의미 그대로 손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즉, 호수구는 ‘구’ 형태의 무기에 손잡이를 보호하는 부위가 따로 추가되어 있는 모양새의 무기다.

한데 호수구는 호수 부분이 단순히 손을 보호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손잡이 쪽의 호수 부분에 초승달 모양의 칼날인 월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수구의 손잡이 부분은 근접 거리에서의 방어와 공격에도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내가 겪어본 혈교의 강력한 고수 놈들은 모두 중원의 무인들이 일반적으로 잘 쓰지 않는 종류의 무기들을 썼다.

기형거검, 마차, 커다란 박도, 월아산, 왜도.

모두가 중원의 무인들은 잘 쓰지 않는 무기들이다.

눈앞의 부리부리는 검을 사용하기에 그나마 평범한가 싶었는데, 놈도 흔치 않은 무기인 호수구를 들고 있는 것이다.

신기한 놈들이다.

흔치 않은 무기들을 골라서 익혀야만 했던, 놈들만의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싶다.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부리부리가 장검과 호수구를 동시에 쓰는 이상, 놈을 상대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무기라는 게 숙련도도 중요한 법인데 방금 보니 부리부리는 호수구의 숙련도도 높아 보인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부리부리가 입을 열었다.

“아까 우리 애들이 동천비룡이라고 할 때는 속으로 솔직히 의아했다. 보는 것만으로는 전혀 강해 보이지 않았거든. 고수의 느낌 같은 게 없어서.”

목소리는 처음 듣는데, 마른 체구치고는 중저음이다.

“한데 직접 확인해 보니 확실히 알 것 같구나. 사람들이 괜히 동천비룡, 동천비룡 하는 게 아니구나. 내가 이렇게 놀라는 건 실로 오랜만이다. 그 어린 나이에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가 존재할 수 있다니.”

중저음의 음성 자체는 그리 놀란 기색이 아닌데, 부리부리한 눈빛에는 약간의 놀란 기색이 담겨 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매우 흥미롭구나. 대체 뭘 어찌했기에 약관의 나이에 그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었던 걸까.”

아니나 다를까 부리부리의 눈동자에 담겨 있던 약간의 놀람은 이미 흥미로 바뀐 상태다.

“온갖 기연들로 목욕이라도 한 것이냐? 그렇다 해도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전투 감각을 갖기는 어려울 텐데······. 대체 어찌 한 것이냐?”

놈의 질문인데, 나는 사실 놈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

지금은 아까 뚱뚱이와 뱁새눈이를 마주할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벌어야 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우리가 머무는 장원을 처음에 공격해온 시점도 그렇고 지금 추적해온 시점도 그렇고, 귀하들 쪽의 움직임이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더구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이오?”

놈들은 길초량과 도예주가 우리 장원에 들어온 후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장원을 공격해 왔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점이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뚱뚱이와 뱁새눈이 또한 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우리를 추격해왔다.

나는 그 두 놈이 내 감지의 영역에 걸린 순간부터 그 점이 의아했었다.

내 입장에서는 최대한 서두른다고 서두르며 대처를 이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적들에게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부리부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너희들이 운이 없었던 것뿐이다. 우리는 운이 좋았고.”

이에 내가 눈매를 좁히자 그가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장원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작은 산이 하나 있다. 그 산속에 우리의 소규모 거점이 있지. 마침 나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고.”

그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그런 곳에 혈교의 비밀 거점이 있었다니, 누가 그걸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참고로 청여홍의 장원을 기준으로 정가장은 북쪽으로 가야 나오며, 남창은 서쪽으로 가야 나온다.

즉, 나는 합숙이 시작된 후로 장원 동쪽으로는 가본 적이 없었다. 갈 이유가 없기도 했다.

참고로 저런 고수들의 신법으로 이십 리는 가까운 거리다.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도 그 장원에 너희들 정도 되는 강력한 전력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장원이 우리 입장에서 딱히 신경 쓸 만한 장소는 아니었거든. 특히 그곳에 그 유명한 동천비룡 송유겸이 머물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지.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듯 만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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