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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29화 (229/416)

내 안에 마교있다 229

설령 우리 둘이 합공을 하여 상승효과를 일으킨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백의 사내의 최대 역량에 대해서도, 내 최대 역량에 대해서도 이미 다 파악을 했다는 투다.

왼손으로 죽립의 챙을 살짝 내리며 부리부리를 향해 말했다.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여 그냥 누운 채로 죽음을 맞고 싶지는 않을 뿐이오. 그래도 나도 무인이다 보니, 이왕 죽을 거면 싸우다가 죽고 싶다고 할까.”

내상을 크게 입은 사람답게 적당히 힘겨워하는 기색으로 말해줬다.

물론 시간을 끌기 위해서 그냥 던진 말이다.

백의 사내가 호흡을 고를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다.

부리부리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겉멋은 들어 갖고.”

같잖다는 투다.

놈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게다가 정체 모를 은인께서 나 때문에 목숨을 거셨는데, 죽기 전에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은 한 번쯤 해야 할 것 아니오. 칼 한 번 대신 맞아 드린다든가 하는 식으로라도.”

백의 사내가 포연월과 밀접한 사이라는 사실을 대강 짐작하고 있기는 하나, 그래도 초면이며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 인물인 건 맞다.

내 말에 부리부리가 백의 사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싸우는 내내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저 나이에 저 정도 경지면 엄청난 실력자라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거든. 하여튼 이놈의 백도는 이런 면이 골치라니까. 정보망에 전혀 없던 실력자들이 어디선가 이렇듯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원.”

적아를 떠나서 부리부리의 마지막 발언에 대해서만큼은 적극 공감하는 바다.

놈이 바로 말을 이었다.

“특히 무공 연원이 궁금하더군. 들어본 적도 없는 신기한 무공이던데, 그건 대체 어디의 무공이지?”

물론 백의 사내가 제대로 대답해 줄 리 만무한 상황이긴 하지만 나 또한 궁금한 부분이긴 하다.

역시나 백의 사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부리부리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쓸데없이 대꾸나 하는 대신 이 순간마저 최대한 활용하며 호흡을 고르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뭐가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이다.

마음에 든다.

부리부리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놈 또한 백의 사내의 의도를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부리부리의 신형이 백의 사내를 향해 쏘아졌다.

더 이상은 백의 사내가 호흡을 고르는 걸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부리부리의 입장에서 이 대 일의 대결이 되었을 때 더 신경 쓰이는 쪽은 역시나 백의 사내 쪽일 수밖에 없다.

내 쪽은 적잖은 내상을 입은 만큼 크게 힘을 쓰기가 어려울 테니, 백의 사내만 힘을 못 쓰게 하면 별문제는 없을 거라는 계산이다.

백의 사내가 갑자기 당할 실력은 아니니, 나는 천섬무를 중 단계 정도로만 운용하며 부리부리의 후방으로 향했다.

부리부리의 후방으로 이동한 나는 서두르지 않은 채 차분하게 접근해 들어갔다.

회회심공을 두 차례 운기한 덕분에 내상이 약간이나마 진정되기는 했다.

그러나 저 부리부리 놈을 처치하려면 결국은 천섬무를 최고 속도로 펼쳐야 한다. 천섬무를 최고 속도로 펼치려면 공력을 격렬하게 휘돌릴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면 무조건 내상이 다시 도질 테고, 내상이 다시 도지면 무공을 제대로 쓰기가 어렵다.

결국 이 합공에서 내가 천섬무를 최고 속도로 펼칠 수 있는 건 딱 한 순간이라고 봐야 한다.

그때 승부를 확실하게 보지 못하면 아무리 백의 사내와의 합공이라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다.

부리부리 놈은 여전히 막강한 기세로 금세 다시금 백의 사내를 맹렬하게 몰아붙이는 중이다.

놈은 경지가 높으니 공력도 많고 공력 활용의 효율도 좋다. 그렇다 보니 힘을 덜 쓰면서 우리를 상대할 수 있고, 그래서 지치는 것도 훨씬 덜 지치는 것이다.

저래서 고수인 것이고.

다행한 점은 백의 사내도 호흡을 고르기 전에 비해 움직임이 활기차다는 사실이다.

잠깐의 호흡 정리가 나름의 도움이 된 것이다.

내가 합류한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리겠다는 생각인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의욕도 더 느껴졌다.

내가 뒤에서 서서히 간격을 좁혀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리부리는 내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있다.

사실, 부리부리 정도의 고수쯤 되면 굳이 고개를 돌리는 행위까지 해 가며 내 움직임을 파악할 필요가 없기는 하다. 내 기운과 기척에 집중만 하고 있어도 충분하다.

당장 나조차도 하수들을 상대할 때면 기운과 기척만으로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곤 하는데, 그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놈이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내 은잠술 실력이다.

은잠술은 시전자가 어떻게 숨는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면 당연하게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나 이렇듯 직접 시야로 확인하지 않은 채 기운과 기척만으로 파악하는 경우에는 얘기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가뜩이나 지금은 은잠술을 펼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어두운 밤인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데, 거기에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고, 종종 벼락이 치며 우레가 울리고 있다.

나는 소년 시절, 정식 마인을 육성하는 천마신교의 훈련소에 있을 때부터 은잠술 쪽으로는 특히 두각을 드러냈던 몸이다. 그때 배운 건 기초 은잠술에 불과했으나, 그 기초 은잠술만으로도 교관들에게 크게 인정을 받았었다.

은잠술에 특히 가능성을 보인 덕분에 정식 마인이 되면서도 정예 조직에 차출될 수 있었고, 그곳에서도 빼어난 은잠술 실력을 바탕으로 활약을 펼친 덕분에 당시 최연소 흑풍대원으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이다.

흑풍대에 들어간 후에는 고급 은잠술들마저 섭렵하며 내 은잠술 경지는 쑥쑥 발전했다. 그 덕분에 흑풍대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결국 사부님의 눈에 띄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은잠술로는 이 강호에서 손가락에 꼽힌다고 자부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은잠술에는 자신이 있었고, 그 후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며 훈련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내가 인정하는 차세대 은잠술 꿈나무는 심산화다.

나는 부리부리에게 성급하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후방에서 기회를 엿보는 듯한 움직임만 보였다.

부리부리도 내가 매우 빠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내가 간격을 너무 좁히면 경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굳이 놈의 경계심을 높일 필요는 없다.

그냥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감지하게 놔둬야 한다.

적극적으로 합공을 펼칠 줄 알았던 내가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백의 사내는 의아한 모양이다.

짧게 전음을 보내줬다.

[한 순간을 노릴 겁니다.]

백의 사내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내가 원하고 있던 순간이 왔다.

번쩍! 짜자작!

우리가 싸우는 장소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찰나간에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며 인근이 뇌(雷)의 기운으로 가득해진 순간, 나는 내가 펼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은잠술을 펼쳤다.

뇌의 기운이 가득해졌다가 사라지는 찰나에 내 기척도 같이 사라지게 한 것이다.

은신한 내 기척이 발각되지 않을 수준에서 최대한 자세를 낮추며 부리부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백의 무인이 부리부리에게 접근하며 강한 공격 초식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내가 아까 전음으로 말했던 때가 바로 지금임을 파악하고는 알아서 호응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감지되어야 할 내 기운이 감지되지 않고 있어서인지 부리부리가 화들짝 놀라고 있는 게 느껴진다.

부리부리가 곧장 고개와 상체를 후방으로 틂과 동시에 오른손에 든 검으로는 백의 사내를 향해 강력한 기운을 떨쳐냈다.

아까 나와 싸우던 마지막 순간에도 펼쳐냈던 그 기술이다. 검에 딱히 강력한 기운이 모여든다는 느낌이 없음에도 찰나간에 강력한 기운이 폭사된다.

위기에 몰렸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저 검술을 펼치는 모양이다.

그즈음, 은신 상태로 접근하던 나는 놈의 허리 어림을 향해 쾌속하게 오른손을 털어냈다.

지금 내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건 비룡검이 아니라 은룡삭이다.

장원에서는 활시위로 쓰던 것을 도주하는 시점에는 풀어서, 활대는 왕철양에게 맡기고 은룡삭만 내가 챙겼었다. 만약 누군가가 추격해 온다면 반드시 고수가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예상으로 챙겼던 것이다.

방금 전에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부리부리 놈이 나를 뒤돌아보지 않았기에, 비룡검은 왼손으로 옮겨 쥐고 오른손에는 은룡삭을 빼내어 적당히 말아 쥐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공격을 가하는 순간에는 부리부리도 어차피 위험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챌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은룡삭을 찔러 넣는 순간에는 은밀함을 배제하고 일부러 강맹하고 날카로운 기운을 담았다.

최대한 검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로 인해 공력이 가득 주입된 은룡삭이 마치 얇은 작대기처럼 쭉 펴져서 부리부리의 허리 어림으로 짓쳐 들어갔다.

허리 어림을 노린 이유는 부리부리가 호수구의 작대기 부분이 아니라 손잡이 부분의 칼날인 월아로 막게 하기 위함이다.

쾌속하게 떨쳐내기는 했으나 지금의 속도는 상 단계와 최상 단계의 중간쯤이다.

이 또한 의도한 부분이다.

부리부리가 굳이 황급하게 피할 필요 없이, 막는 동작만으로도 대응할 만하게끔 일부러 속도를 조절한 것이다.

고개와 상체를 후방으로 튼 부리부리는 역시나 매우 빠른 속도로 왼손에 들고 있는 호수구를 움직였다. 그 짧은 순간에도 즉각 반응하며 호수의 월아 부분을 이용하여 내 공격을 쳐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체의 움직임을 보니 최소한의 방어를 통해 내 공격을 쳐냄과 동시에 몸을 뺄 생각인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열세에 몰린 만큼, 우리에게서 한차례 간격을 벌린 후 다시 대처하겠다는 판단이다.

이제는 내 은잠술 실력까지 파악했으니 이후에는 그 부분에 대한 대처도 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부리부리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의아함이 담겼다.

검일 줄 알고 반사적으로 쳐내고 있는 상황인데, 실상은 검이 아닌 끈 비슷한 물건임을 이제야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호수구의 월아 부분에 극도로 날카로운 기운이 담기는 게 느껴졌다.

한낱 끈에 불과하나, 내가 이런 순간에 쓰는 물건이면 보통 물건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한 모양이다. 그걸 염두에 두고 확실하게 절단할 수 있게끔 기운을 담은 것이다. 어차피 끊어버리면 변수가 없을 거라는 판단이다.

이윽고 호수구의 월아 부분과 내 은룡삭이 닿았다.

그 순간에 나는 천섬무를 최고 속도로 운용하며 한 차례 손목을 털었다.

툭!

역시나 은룡삭은 끊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월아와 닿은 부분으로부터 반듯했던 형태가 급속도로 꺾어졌다. 그러면서 부리부리의 손목과 호수구를 매우 빠른 속도로 휘감아갔다.

내가 순간적으로 천섬무를 최고 속도로 운용했던 덕분이다.

부리부리는 눈을 크게 뜨며 곧장 손목을 빼려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 은룡삭을 피하려 했으면 모를까, 절단하기 위해 스스로 빠르게 맞서 왔던 상황에서 손을 빼기에는 이미 늦었다. 역동작에 걸린 셈이다.

은룡삭이 그의 손목 부분을 휘감자마자 나는 공력을 강하게 주입했다.

부리부리는 당황한 기색임에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손목에 묶인 은룡삭을 강하게 당겨서 나를 끌어당김과 동시에, 본인도 내게 근접하며 달려든 것이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수를 낸다.

역시 고수는 고수다.

물론 나는 고수들의 그러한 끈질긴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 또한 은룡삭을 쥐고 있는 오른손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면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천섬무를 펼치며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은룡삭의 엄청난 탄성을 매우 잘 알고 있기에, 천섬무의 최고 속도에 그 탄성을 이용한 속도까지 더하고자 한 것이다.

왼손에 들고 있는 비룡검으로 부리부리를 찔러 갔다.

부리부리도 어느샌가 회수한 오른손의 검을 내 쪽으로 휘둘러오고 있다.

회수가 빠르며 순간적으로 강력한 기운을 발출할 수 있는 바로 그 검술이다.

다만 이번에는 검날을 통해 나를 베어오며 기운을 발출하고 있다.

백의 사내를 견제하다가 급하게 검을 끌어당긴 탓에, 찌르는 형태로 기운을 발산하기에는 늦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래서 끌어당긴 동작 그대로 베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지금 놈의 입장에서는 그편이 나은 선택이기도 하다.

급격하게 내공을 최대한으로 휘돌리고 있는 만큼, 벌써부터 내상에 의한 통증이 재발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데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또다시 벼락이 쳤다.

번쩍!

그 순간에 나는 내상으로 인한 고통을 잊었다.

내 눈앞에서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펼쳤던 천섬무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천섬무가 펼쳐지고 있는 만큼, 현재 내가 보고 있는 광경들 또한 가장 느린 속도로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보니 비룡검이 지나간 근처의 빗방울들이 압력으로 인해 비룡검을 따라 움직이는 모양새가 아주 느리게 내 시야에 담겼다.

벼락이 친 탓에 빛으로 반짝이는 빗방울들이다.

나를 베어오고 있는 부리부리의 검 또한 비슷한 광경을 연출해 내고 있다.

생사가 오가는 상황이라는 게 오히려 거짓말같이 느껴질 정도로 환상적인 광경이다.

부리부리의 무릎 아래쪽을 향해 사선으로 날아오고 있는 두 줄기의 검기도 보인다.

백의 사내가 부리부리의 후방에서 발출해 낸 검기다.

부리부리가 갑자기 나를 향해 급속도로 달려들었기에 순간적으로 백의 사내와는 간격이 벌어진 상황이다.

그 상황 속에서도 백의 사내는 어떻게든 나를 돕고자 검기를 발출한 것이다.

우리 둘은 부리부리를 중심으로 반대편에 위치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렇듯 사선으로 무릎 아래를 노려 검기를 발출하는 건 훌륭한 판단이다.

저래야 혹여 부리부리가 피했을 경우에도 그 검기들이 나를 상하게 할 일이 없이 땅바닥에 박힌다.

게다가 발 쪽을 공격한 만큼 저러면 부리부리는 발을 움직여서 피해야 한다.

지금 부리부리와 나는 서로 은룡삭을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는 상황이니, 저런 식의 공격을 하면 부리부리가 중심을 유지하는 것도 방해할 수가 있다.

멋진 호응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마음에 든다.

부리부리의 양발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백의 사내가 발출해 낸 두 줄기의 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놈의 복부를 찔러가던 검로를 살며시 내려 놈의 오른쪽 허벅다리를 노렸다.

애초에 내가 노리려던 부분도 복부가 아니라 다리였다.

부리부리가 백의 사내의 검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고 역동작에 걸린 다리 쪽을 노리려 했던 것이다.

비룡검을 뻗어가던 그 속도 그대로 검기를 발출해 냈다.

어차피 놈은 은룡삭에 붙들려 있는 데다가 나와의 간격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놈이 고수라도 피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놈이 발출해 낸 강력한 기운도 매섭게 내 오른쪽 가슴께로 날아드는 중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모든 것이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지금의 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건, 내 비룡검에서 발출된 한 줄기의 검기다.

비룡검의 검기가 부리부리의 오른쪽 허벅다리를 제대로 찌르고 들어가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즈음에는 놈이 발출해 낸 기운도 내 오른쪽 가슴께에 거의 다다른 상태였다.

허리를 뒤쪽으로 꺾으며 몸을 비틂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쥐고 있던 은룡삭을 지체 없이 놓았다.

놈은 은룡삭에 의해 왼손이 묶여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자의로 은룡삭을 쥐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기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 부리부리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휘청거리는 게 보인다.

놈이 발출해 낸 기운의 가장자리가 내 어깨 근처를 스치고 지나갔다.

스아아악-

순간적으로 불에 덴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중상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시선으로는 백의 사내를 쫓았다.

백의 사내가 자세를 낮춘 채로 부리부리의 왼쪽 다리를 찔러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간격을 좁혀 와서는 휘청거리고 있는 부리부리의 하체를 뒤쪽에서 공격한 것이다.

지금의 부리부리는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친 상황이며, 휘청거리는 몸의 무게중심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다.

결국 백의 사내의 검이 부리부리의 왼쪽 다리마저 찔렀다.

“크윽······!”

양쪽 다리를 크게 다친 상황이라, 결국 부리부리의 신형이 무너져갔다.

그 와중에도 놈은 끝까지 상체를 뒤로 비틀며 왼손의 호수구로 백의 사내를 공격하는 모습이었다.

나 또한 지금은 자세가 무너진 상태이나, 그 상황에서도 오른손으로 두 자루의 소비도를 뽑아서 날렸다.

무너져가는 부리부리의 상체를 향해서였다.

이윽고 백의 사내가 검으로 부리부리의 호수구를 쳐낸 순간.

푸북!

내가 날린 소비도 두 자루가 각각 부리부리의 오른쪽 등과 왼쪽 옆구리에 박혔다.

“크악!”

부리부리가 비명을 지를 때쯤 백의 사내의 검이 부리부리의 목을 찔렀다.

푸욱-

철퍼덕!

부리부리의 신형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더니, 한 차례 꿈틀한 후에 축 처졌다.

그 모습까지 확인한 후, 나도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크으으······.”

입에서 절로 신음이 새어 나온다.

내상이 도져 극심한 고통이 몰려 왔기 때문이다.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고통도 더 심한 것 같다.

백의 사내가 얼른 다가오며 내게 물었다.

“괜찮으시오? 내상이 심해 보이는데······.”

표정에 염려하는 기색이 가득하다.

“참을 만은······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일어서자마자 백의 사내에게 서둘러 말했다.

“감사도 표해야 하고 여러모로 여쭙고 싶은 바도 많습니다만, 지금은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 일행들이 위험합니다. 어서 쫓아가야 합니다.”

백의 사내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로 부리부리의 시신 쪽으로 다가가서 그의 왼팔 쪽에 묶여 있는 은룡삭을 풀어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러자 백의 사내가 물었다.

“더 챙겨야 할 건 없으시오?”

“예.”

“그럼 내게 업히시오. 어서 갑시다.”

“그,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그 정도 내상을 입고 경공을 펼치며 달리면 정말로 큰일 날 수 있소. 가뜩이나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다고 했잖소. 의견 듣고 있을 시간 없으니 얼른 업히시오.”

그러면서 한쪽 무릎을 땅바닥에 대며 등을 내주는데, 어쩔 수 없이 업힐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업히자마자 그가 일어서더니 물었다.

“방향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며 대꾸했다.

“저쪽입니다.”

대꾸를 마치자마자 백의 사내가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업혀 가게 된 상황이기에 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은인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알고 있소. 송유겸 소협이잖소.”

“소, 소협이라니 민망합니다. 한데 초면인데도 어찌 저를 바로 알아보시고······.”

해적 퇴치 때의 활약이 퍼졌기에 내 용모와 특징을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포연월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요새 워낙 유명하시잖소.”

일단은 전자구나.

“한데 송구하게도 저는 은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내 말에 백의 사내가 대꾸했다.

“나는 백송학이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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