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30
일행들의 후미에서 달리던 길초량은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뜨며 후방 쪽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추격해 오고 있는 두 개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쫓아오고 있는 저 속도만으로도 그냥 알 수 있다.
자신의 수준에서는 한 명을 잠깐 감당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의 고수들이다.
분명히 송유겸이 추격자들의 발을 붙잡겠다고 했었다.
한데 저 정도 강자들이 벌써 이쪽까지 추격해 오다니.
순간적으로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길초량은 내심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결코 그럴 리는 없어.’
상대가 아무리 저런 고수들이라 해도 송유겸은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라는 건, 송유겸에게도 저들의 발까지 붙잡고 있기에는 역부족인 사정이 있다고 봐야 한다.
어쨌거나 일행들 중 누군가가 나서서 저 추격자들을 막아야만 하는 상황인데, 당연하게도 이 순간에 나서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공적으로는 신룡대원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지만, 사적으로도 일행들에게 이러한 환란을 안겨준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럴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모두가 이런 환란을 겪고 있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일행들을 위해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줘야 하리라.
‘조금이라도 더 버티려면 틈을 봐서 그걸 써야겠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까. 물론 그런다 해도 저런 고수들을 상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행들 중에서 가장 후미에 있는 게 자신이다 보니 기척을 감추며 조용히 뒤로 빠지려고 했다.
괜히 말하고 빠져 봐야 시끄러워질 게 빤하기 때문이다.
한데 뒤로 빠지려 하기 직전에 단목강의 전음이 들려왔다.
[길 공자, 지금 추격해 오고 있는 저 고수들은 아무래도 우리가 막아야 할 것 같소.]
단목강도 무공이 뛰어나다 보니 추격자들의 존재와 경지를 알아챈 모양이다.
물론 단목강이 함께해 준다면 추격자들의 발목을 더 오래 붙잡아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단목강의 목숨 또한 무사할 수 없다.
[조장님, 저 고수들을 막아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계신 건 아니지요?]
[왜 모르겠소. 하지만 어쩌겠소. 누군가가 저들의 발을 붙들어놓지 않으면 모두가 위험해질 텐데. 송 공자가 없는 마당이니 우리가 어떻게든 해야 할 것 아니오.]
목소리에서 각오가 느껴지고 있다.
뭐라고 대꾸할 새도 없이 단목강이 후방으로 이동하여 곁으로 왔고, 그러자마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옆으로 물러섰다.
길초량과 단목강이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을 때쯤, 다른 두 명이 두 사람 곁으로 은밀히 합류했다.
소충광과 우문직이었다.
소충광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이거 두 분만 여기 남아서 뭐 하시나?”
표정으로 알 수 있다.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저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두 분, 어쩌시려고 이렇게······.”
길초량이 난감한 표정을 담아 그렇게 말하자 곧바로 우문직이 대꾸했다.
“이 상황에서 어쩌긴 뭘 어쩌겠소. 함께 막아야지.”
“저들은 엄청난 고수들이오. 자칫 잘못하면······.”
길초량이 재차 그렇게 말하자 우문직이 다시 대꾸했다.
“알고 있소. 그래도 어쩌겠소, 우리가 선밴데. 여러 소저들과 후배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더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거잖소.”
그 말에 소충광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의 안전만 생각하고 있겠소. 송 공자는 목숨을 걸고 홀로 후방을 막으러 갔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소충광이 빙그레 웃으며 바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두 분만 사지에 남겨놓겠소? 그간 같이 마신 술이 얼만데. 의리가 있지. 한칼이라도 우리가 대신 나눠 맞아 줘야지.”
길초량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멋진 친우들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런 친우들이 희생당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추격해 오고 있는 두 명의 고수가 거의 가까워졌을 즈음,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단목강이 말했다.
“비가 올 것 같구려.”
* * *
[잘 들어, 린아. 지금 우리의 후방에서 정체 모를 두 명의 고수들이 추격해 오고 있어.]
경공을 펼치는 와중에 남궁설이 그렇게 말하자 선우린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렇지 않아도 단목강, 소충광, 우문직 등이 차례로 진형의 후방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봤다. 하도 자연스럽게 뒤로 빠지기에, 선배들끼리 후미에 있는 길초량과 뭔가 상의라도 하러 이동한 건가 했었다.
선우린이 곧장 남궁설에게 물었다.
[그러면 방금 선배들이 후미로 빠진 게 그 두 명의 추격자들을 막기 위해서였던 거야?]
[응.]
[그 두 명이 우리 선배들 네 분이서 같이 막아야 할 정도로 고수들이야?]
[아니. 그 선배들 네 명이 같이 막아도 못 막을 정도로 고수들이야.]
선우린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남궁설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도 도와주러 가려구.]
[설이 네가 가서 도와주면 막을 수 있는 거야?]
[아니. 어려워. 그래도 내가 있는 편이 없는 편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하지만 그러면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나도 같이 도와주러 가야 할까?]
[너도 알다시피 나는 빠르니까 그나마 도움 될 구석이 있는 거야.]
선우린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설아, 조심해야 해. 가면 바로 나서지 말고 일단 숨어서 선배들 싸우는 걸 잠시 살펴봐. 보고 나서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곧장 다시 우리를 쫓아와야 해. 알았지? 네 말대로 너는 빠르니까. 그 속도라면 충분히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니까. 알았지?]
[응.]
남궁설이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선우린은 염려 가득한 표정으로 남궁설을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남궁설이 신법 펼치는 속도를 자연스럽게 줄이며 진형의 후미 쪽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아무리 봐도 저와 함께 우리 진형의 후미를 지킬 목적으로 오신 느낌은 아니네요? 그렇지 않나요, 장 선배?]
포연월의 목소리였다.
의도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남궁설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후배라도 눈치가 적당히 빠른 후배라야 예쁘지, 포 후배처럼 눈치가 너무 빠른 후배는 별로 안 예뻐.]
그러자 포연월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실제로 안 예뻐하는 사람한테는 그런 말조차도 안 하는 분이 바로 장 선배잖아요?]
그 말을 들은 남궁설이 한숨을 내쉬자 포연월이 약간은 능글능글한 느낌의 미소를 보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씀만 그럴 뿐이지, 장 선배가 실제로는 저를 믿음직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것쯤, 잘 알고 있다구요.]
남궁설이 눈을 가늘게 뜨며 대꾸했다.
[뭐래.]
[후훗.]
포연월이 배시시 웃어 보이자 남궁설이 졌다는 듯 한숨을 내쉰 후에 말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선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가려는 거야. 그리 알고 포 후배는 일행들 잘 보살피면서 목적지로 이동하도록 해.]
[무슨 말씀이세요. 애초에 저도 선배님들을 도와드리러 가려고 후미로 빠졌던 건데.]
그러자 남궁설이 양미간을 좁히며 대꾸했다.
[위험하다니까?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고.]
[장 선배도 조금이라도 선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는 거라면서요. 저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가려는 거예요. 적어도 저라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 이제는 장 선배도 잘 아시잖아요?]
남궁설의 눈매가 살짝 좁아졌다.
포연월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합숙 내내 비무 형식의 수련을 계속 같이 해 왔기에 알고 있다.
포연월의 무공은 신비로워서 상대가 강맹하든 빠르든 순간적으로 항상 최소한의 대응은 해낸다. 수련을 도왔던 송유겸도 그 신묘함만큼은 인정한 바였다.
그렇기에 포연월의 경우에는 아무것도 못 해보고 허망하게 당할 가능성이 매우 적기는 하다.
게다가 본인이 어떻게든 가겠다는 각오다.
저러면 지금은 자신이 말린다 해도 나중에는 기어이 올 것이다.
[내가 데리고 가는 거 아니야. 내 탓 하기 없기야.]
[그럴 리가 있나요.]
이윽고 두 소녀가 후방을 향해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 * *
길초량은 추격자들이 도달하기 전부터 곤에서 검을 뽑아, 왼손에는 곤을 쥐고 오른손에는 검을 쥐었다.
상대가 탐색전 따위가 의미가 없는, 처음부터 무조건 전력을 다해야만 하는 고수들이기 때문이다.
“저 두 명이 붙어서 싸울 경우에는 우리 네 명도 같이 싸우되, 만약 저 두 명이 따로따로 자리를 잡을 경우에는 우리도 두 조로 나눕시다. 그 경우 내가 우문 공자와 한 조가 될 테니 조장님과 소 공자가 한 조가 되시는 겁니다.”
친우들을 향해 낮게 말하자 친우들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임하십시오. 어차피 나중을 위해 공력을 아끼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님을 아실 겁니다.”
친우들이 각오가 담긴 표정으로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에 어둠 속에서 두 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월아산을 든 작고 뚱뚱한 사내였고, 다른 한 명은 왜도를 든 평범한 체구의 사내였다.
두 고수가 잠시 전음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뚱뚱한 사내는 남고 뱁새눈의 사내는 일행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추격하려 했다.
그 의도를 읽자마자 길초량은 최대한의 속도로 뱁새눈의 사내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아직 전투의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의 공력을 최대 수준으로 격렬하게 휘돌리면서.
뱁새눈 사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보였다.
제법이라는 느낌의 미소였다.
그 미소와 함께 왜도의 도광이 번쩍였다.
뱁새눈의 사내가 왜도를 양손으로 쥔 채 길초량을 향해 쾌속한 도법을 펼쳐낸 것이다.
왜도는 길초량의 목과 왼쪽 어깨 사이를 사선으로 완전히 가를 듯 강맹하면서도 날카롭게 떨어져 내렸다.
길초량의 왼손에 들린 곤이 겨우 그 도의 경로를 쫓아가는 듯했다.
왜도와 곤이 맞부딪쳤다.
카아앙!
격렬한 소리가 난 순간,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길초량의 왼손으로 들고 있는 곤은 살짝만 뒤로 밀려난 데 반해, 왜도를 쥐고 있는 뱁새눈 사내의 양손은 머리 위쯤까지 크게 들린 것이다.
뱁새눈 사내가 두 눈을 부릅뜬 순간, 길초량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뱁새눈 사내의 복부를 간결하게 찔러갔다.
슉-
뱁새눈 사내가 뒤로 한 발을 빼며 왜도를 한 손으로 잡고 길초량의 검을 내리쳤다.
샥-
경지의 차이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복부를 찔러가던 길초량의 검은 왜도에 의해 금방 따라잡혔다.
왜도가 닿는 순간 길초량이 검을 쥔 손목을 살짝 비틀며 왜도의 힘을 흘러냈다.
탱!
그러자 이번에는 뱁새눈 사내의 왜도가 길초량이 흘려낸 방향으로 상당히 크게 튀어 올랐다.
뱁새눈 사내의 눈동자에 또다시 놀람이 담겼다.
그 상황에서 우문직까지 가세하자 뱁새눈 사내가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마자 뚱뚱한 사내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풋! 뭐 하는 거야? 바보.”
뱁새눈 사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 이, 이게 말도 안 되는 반탄력이라······.”
대꾸를 하는 와중에도 뱁새눈 사내의 시선은 길초량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자 뚱뚱한 사내가 월아산을 휘휘 돌리며 말했다.
“쯧. 고작 일류 상대로 쪽팔리게. 앞으로 어디 가서 내 친구라고 하지 마라.”
“어, 아니라니까. 정말로 일류라고는 안 믿어지는 엄청난 반탄력이라니까.”
길초량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뱁새눈 사내의 관심을 제대로 끌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뱁새눈 사내는 왠지 일행들을 뒤쫓아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자신을 상대할 것 같은 기색이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방심할 일은 아닐 테지만.
월아산을 휘휘 돌리던 뚱뚱한 사내가 곧바로 소충광을 향해 달려들었다.
슈슈슉! 훅훅! 슉!
소충광이 눈을 부릅떴다.
매우 짧은 순간에 여섯 개의 월아산이 눈앞을 어지럽히며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뚱뚱한 사내의 월아산이 너무도 빨라서 실제 잔상이 남고 있는 건데, 이마저도 합숙 당시에 송유겸을 통해 빠르기에 대처하는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잔상이 몇 개인지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 허초고 무엇이 실초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모든 잔상들에서 강맹한 기운들이 전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소충광은 서둘러 검을 휘두르며 월아산들을 막아갔다. 공력은 이미 최대한으로 끌어 올린 상태다.
휙! 휙! 캉!
‘윽!’
직접 막아 보니 앞선 두 개가 허초였고 세 번째가 실초였다.
한데 실초를 막고 나니 손아귀가 저려왔다.
뚱뚱한 사내의 월아산은 빠를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힘도 강한 것이다.
문제는 아직 세 개의 잔상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옆으로 피하려는데, 순간적으로 단목강이 끼어들며 검을 휘둘렀다.
캉! 캉!
소충광이 보니 단목강은 검을 딱 두 번만 휘둘렀으며, 두 번 다 막아냈다.
‘즉, 단목 공자는 처음부터 허초와 실초를 정확하게 구분했다는 뜻······.’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단목강을 바라보는 뚱뚱한 사내의 눈동자도 이채를 띠고 있다.
뚱뚱한 사내가 월아산을 꼬나 쥐고는 말했다.
“네 말대로 제법이긴 하네? 무슨 놈의 일류가 수준이 이 정도야? 우리 애들은 일류라도 다들 약해 빠졌는데.”
뱁새눈 사내에게 한 말이다.
“어. 동천비룡의 친구들이라 그런가, 다르긴 달라.”
“바락바락 대드는 애들 죽이는 맛이 또 괜찮지.”
“어. 그건 그래.”
뱁새눈의 사내가 짧게 대꾸했을 때쯤, 길초량의 양미간이 빠르게 좁아졌다.
뒤쪽에서 익숙한 두 개의 기운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뒤쪽이란 일행들이 떠났던 방향이다.
‘이건 장 소저와 포 소저······!’
도와줄 생각으로 되돌아왔을 것이다.
‘그냥 가던 길들이나 갈 것이지······.’
물론 마음 자체는 고맙다.
실제로 장우혜와 포연월은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 만한 실력들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들의 합류 인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뱁새눈의 사내와 뚱뚱한 사내가 너무 강력한 고수들이라는 게 문제다.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해도, 그게 실제 시간상으로 크게 의미 있는 정도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너무도 안타깝다.
“어라? 뭔가가 더 왔는데?”
뚱뚱한 사내의 말에 뱁새눈의 사내가 대꾸했다.
“어. 여자애들 두 명이네.”
“정말로 애들이네. 뭐, 상관없겠지. 바락바락 대드는 애들이 늘어나면 죽이는 맛도 더 괜찮아질 거고. 그럼 잠시나마 즐겁게 어울려 줄까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전투가 재개되었다.
길초량과 우문직 쪽으로는 포연월이 합류했고, 단목강과 소충광 쪽으로는 장우혜가 합류했다.
뱁새눈의 사내를 상대하는 세 명도, 뚱뚱한 사내를 상대하는 세 명도, 모두가 공력을 아끼지 않은 채 순간순간 각자가 펼칠 수 있는 최상의 무공들을 펼쳐냈다.
싸움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길초량은 동료들로 인해 계속 놀라야 했다.
전투가 진행되면서 친우들의 눈빛이 점점 초집중 상태로 변하는가 싶더니 하나둘씩 악귀의 눈처럼 변해 갔고, 어느 순간에는 모두의 눈빛이 악귀의 눈처럼 변해 있었던 것이다.
저런 눈빛을 알고 있다.
저건 진심으로 죽을 각오를 마친 사람들만이 보일 수 있는 눈빛이다.
죽음에서 초연하여 혼을 활활 불태우고 있는 눈빛이다.
저 중에서 단 한 명도 억지로 끌려 나와서 싸우고 있는 친우들이 없다.
오로지 다른 일행들을 살리겠다는 일념하에, 스스로의 의지로 나와서 스스로 목숨을 건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놀랍게도 친우들은 지금 다들, 원래 가진 역량을 크게 초월한 역량을 보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