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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마교있다-231화 (231/416)

내 안에 마교있다 231

이 믿기 어려운 현상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백도인이 오직 의와 협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을 때에만 발현되는 기이한 힘이 있다.

고매한 희생정신이 빚어내는 힘, 바로 백무혼(白武魂)이라는 힘이다. 뿌리가 깊고 기반이 탄탄한 백도의 무공일수록 그 힘도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지.

본인이 쓰고 싶다고 해서 발현시킬 수 있는 힘이 아니라, 순수한 선의와 올곧은 각오를 통해 우연히 발동되는 힘이다.

어쩌면 모종의 상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무혼이 작용하면 무아지경 비슷한 상태가 되며, 무인으로서의 모든 역량이 증폭된다. 심지어는 공력 사용의 효율마저 높아지지.

혼자서도 그런 상태에 빠질 수 있지만 집단이 빠져들 수도 있다.

집단인 경우에는 한 명이 그 상태에 먼저 빠져들면 같은 의지와 같은 마음인 이들에 한해 점차 전염되듯 퍼져가기도 한다. 집단에 그 힘이 발현되면 더 강력하기도 하다. 백무혼에 의해 서로의 무의식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스승님이 해줬던 말씀이었다.

‘확실해. 이건 모두에게 백무혼이 발동된 상태······.’

친우들이 지금의 상태에 빠지기까지의 과정까지 모두 지켜본 만큼, 이 상황은 백무혼 현상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친우들은 순수한 선의와 올곧은 각오를 갖고 이 싸움에 임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친우들이기에 그 성정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이 친우들은 모두 뿌리가 깊고 탄탄한 백도의 무공을 익힌 이들이다.

단목강의 단목세가와 우문직의 우문세가는 말할 것도 없으며, 소충광의 남천검문 또한 광동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 있는 문파다.

포연월의 경우 아직 출신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녀가 익히고 있는 무공이 도가 계열의 심오한 무공이라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백도에 뿌리를 둔 무공임이 확실하다. 그것도 아주 깊은 뿌리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우혜.

이전부터 어느 정도 추측은 하고 있었는데 아까 장원에서 그 추측이 사실이 되었다.

장원에서 대놓고 창궁검법을 썼는데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그것도 아주 기가 막히게 펼쳐냈는데.

천하제일세가의 늦둥이 금지옥엽인 그 유명한 남궁설인 것이다.

남궁세가의 무공은 뿌리를 논할 필요도 없다.

소림, 무당과 더불어 백도를 상징하는 무공 그 자체니까.

이렇듯 워낙 제대로 된 백도의 무공들이라 백무혼의 힘도 더 강하게 발현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맹렬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이지만 길초량은 순간적으로 목이 메어왔다.

백무혼을 끌어낼 정도로 대단한 친우들이라니.

지금껏 백도인으로 살면서 접했던 수많은 순간들 중에서 가장 가슴 찡한 순간이다.

의아한 점은, 죽을 각오를 가장 먼저 했음에도 유독 자신만 아직까지 백무혼 상태로 접어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유를 모르겠으나,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검과 곤을 휘둘렀다.

뱁새눈의 사내가 포연월을 향해 갑작스럽게 도기(刀氣)를 발출해냈다.

전투가 시작된 후로 그가 도기를 발출해 내기는 처음이다.

셋 중에서 가장 약한 포연월을 어떻게든 전력에서 이탈시키겠다는 의도인 듯했다.

뱁새눈 사내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껏 싸우는 과정 내내 포연월은 매우 귀찮은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결정타로 생각되는 공격을 틈틈이 서너 차례나 가했음에도 그녀가 신묘한 움직임으로 그 공격들을 의미 없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초승달 모양의 강력한 도기가 포연월을 향해 빠르게 짓쳐 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현재 백무혼 상태에 빠져 있다고 해도 피할 시간은 없어 보였다.

무조건 방어해야 하는데 그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백무혼이 발동되고 있다 해도, 게다가 그녀의 무공이 신묘하다 해도, 순간적으로 극복이 안 되는 상황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둘 사이의 경지 차이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순간적으로 포연월의 앞을 막아서며 양손에 쥐고 있는 검과 곤을 교차했다.

체내에 공력이 별로 남지 않았다.

처음부터 공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으로 아낌없이 공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처음부터 공력을 아끼지 않은 건 친우들도 마찬가지인데, 친우들은 백무혼 상태에 빠져 있어서 그런지 적어도 아직은 쌩쌩해 보였다.

얼마 남지 않은 공력을 모조리 쏟아부어 탄자결을 최대한으로 운용한 방어식을 펼쳤다.

의도한 바가 있기에 끝까지 집중했다.

카앙!

도기가 방어식에 부딪친 순간, 초승달 모양이었던 도기가 파편이 되며 뱁새눈 사내 쪽으로 튕겨 나갔다.

이 상황을 의도하고 탄자결을 최대한으로 운용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도기의 파편들은 날아올 때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되돌아갔다.

덕분에 이제 공력은 바닥이다.

뱁새눈 사내의 눈동자가 커지는 게 보인다.

그가 황급히 왜도를 휘둘러 도기의 파편들을 방어하던 순간, 측면에 있던 우문직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의 뒤에 있던 포연월도 스치듯 앞으로 나서는가 싶더니 어느새 뱁새눈 사내를 향해 검을 찔러 넣고 있다.

백무혼에 의해 서로의 무의식이 일정 부분 연결된다더니 정말로 그런 모양이다.

그 순간 길초량은 쥐고 있던 곤을 살짝 놓으며 왼손을 품속에 넣었다.

그가 이후에 왼손에 꺼내든 물건은 얇은 종이 껍질에 쌓여 있는 한 알의 약이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언제든 복용할 생각으로 목갑에서 미리 꺼내어 준비해 뒀었다.

지체하지 않고 약을 종이 껍질째로 입안에 넣었다.

동시에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던 곤의 머리 부분을 발등으로 툭 차올려서 다시금 왼손으로 잡았다.

약을 씹자 알싸한 약 향이 입안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우문직과 포연월을 주시하며 약을 우물우물 꼭꼭 씹었다.

종이 껍질째로 씹었다.

활심대환단이다.

본사(本寺)에 대환단이 있다면 본원(本院)에는 활심대환단이 있다.

활심대환단은 영약으로서의 효능만으로 따지면 본사의 대환단에는 못 미치는 약이다.

그러나 활심대환단만의 특별한 성질이 있다.

활심대환단은 복용하자마자 체내에 급속도로 퍼지며 영약의 기운이 강하게 활성화되는데, 그 활성 시간이 길지가 않다.

그렇기에 다른 영약들처럼 장시간의 운기조식을 통해 약 기운을 서서히 흡수하는 형태를 취할 수가 없다. 그럴 경우 약 기운이 너무 많이 소실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활심대환단은 기운을 맹렬하게 휘돌릴 수 있는 환경에서 복용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기운을 맹렬하게 돌려서 단전과 혈도가 약 기운과 최대한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공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복용할수록 더 유리하다.

그래야 약 기운의 흡수가 더 잘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공력이 매우 빠르게 회복되는 부가적인 효과도 누릴 수가 있다.

활심대환단은 본원에서 십 년에 하나씩만 만들어지는 귀한 영약이다.

자신은 본원의 차기 원주 자격으로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자격은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자격이지 마음껏 복용해도 되는 자격이 아니다.

활심대환단은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복용하는 것이 본원의 엄격한 규율이다. 불가제자로서 본인의 욕심으로만 복용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복용 후에는 조사를 통해 시비까지 명확하게 가린다. 조사 후에 적절하지 않은 복용으로 판단되면 본원으로 불려가 면벽동에 갇힌다.

경중에 따라 기간은 다르며, 설령 자신처럼 차기 원주 내정자라 해도 형량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약 기운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자마자 길초량은 정해진 구결을 읊으며 격렬하게 내공을 휘돌렸다.

그러면서 곧장 뱁새눈의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캉! 카앙! 카가강!

약기운을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검과 곤에 공력을 아끼지 않고 주입했다.

그렇다 보니 한 수, 한 수에 담긴 힘이 활심대환단을 복용하기 전에 비해 더 강력했다.

정신은 최대한의 냉철함을 유지했다.

지금의 기분에 취해서 과하게 몰입하다가는 자칫 큰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룡대원으로서 실전 경험이 많다는 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순간이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뱁새눈 사내의 눈이 살짝 커져 있다. 저 상태가 되니 뱁새눈은 아니다.

당연히 그도 이 기운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갑자기 이상한 기운을 풍기며 아까보다 더 강력한 위력을 내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자신이 이런 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이쪽의 세 명이 뱁새눈의 사내를 몰아붙이고 있다거나 하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이쪽이 아까에 비해 조금 더 잘 버틸 수 있게 된 것뿐이다. 그로 인해 오래 버틸 가능성도 약간 더 높아진 것뿐이다.

뱁새눈의 사내는 그 정도로 강한 자다.

그런 형국으로 맹렬하게 맞붙고 있기를 잠시.

별안간 뱁새눈 사내의 고개가 한쪽으로 홱 돌아갔다.

방금 전보다 더 놀란 표정을 하고 있다.

단목강 쪽의 세 사람이 뚱뚱한 사내와 싸우고 있는 방향이다.

슬쩍 고개를 틀어서 보니 단목강과 소충광과 장우혜의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백무혼 상태라고는 하나 역시나 열세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세 사람 쪽이 점점 더 밀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월아산의 뚱뚱한 사내도 엄청난 고수이기 때문이다.

한데 의아하게도 뚱뚱한 사내 역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자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뚱뚱한 사내의 시선이 단목강에게로 향해 있다는 사실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뱁새눈의 사내가 놀란 것 또한 단목강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저 두 고수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속으로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검과 곤을 휘둘렀다.

지금은 활심대환단마저 복용한 상황이니 특히나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잠시 후에는 결국 길초량도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조, 조장님······?’

매우 신비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천지자연을 이루고 있는 일대의 모든 기운이, 서서히 소용돌이치며 단목강에게 흡수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게 무슨······!’

본인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사자인 단목강은 계속해서 뚱뚱한 사내에게 맞서는 중이다.

한데 자세히 보니 단목강의 검에 담긴 위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움직임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빨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단목강의 경우에는 원래 빼어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만큼, 백무혼 상태에서도 친우들 중에서는 가장 위력적인 움직임을 보였었다.

한데 지금은 그때의 위력을 가뿐히 뛰어넘어, 위력을 더해가고 있기까지 하다.

움직임의 차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무인으로서의 기도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생각이 거기에 이른 순간 길초량은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상태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절정······!’

뱁새눈 사내와 뚱뚱한 사내가 직전부터 왜 놀란 눈으로 단목강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고수인 만큼, 그 변화가 시작된 순간부터 눈치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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