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마교있다 234
일행들에게 합류해서 보니 다들 온몸에 상처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길초량, 단목강, 소충광, 우문직 이 네 사람은 모두 중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상 수준은 한참 넘은 부상들을 입은 모습들이었다.
그나마 장우혜와 포연월은 여기저기 상처는 입었으되 큰 상처들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녀들이 눈치껏 몸을 사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네 명의 선배들이 그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일행들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
“이분은 연월이의 사형인 백송학 선배님이시오. 그렇게들 알고 계시고, 지금은 길 형의 말마따나 앞서간 일행들을 서둘러 쫓아가도록 합시다. 여러분도 적잖은 상처들을 입은 듯하니 어서 배에 올라 치료를 받는 게 좋겠소.”
내 말에 일행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강이 절정에 오른 일을 포함하여 이들에게 들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러나 그 또한 배에 오른 후에나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신법 펼치기 어려운 분, 있소?”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다들 다치기는 했어도 경공을 펼치기에는 무리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백송학이 내게 물었다.
“송 공자야말로 괜찮겠소?”
“방금 전에 그리 무리한 건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경공은 충분히 펼칠 수 있을 듯합니다.”
이윽고 나와 백송학까지 포함된 총 여덟 명이 일제히 이차 접선 장소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달려서 이차 접선 장소에 도착했다.
호변에서 약간 떨어진 호수 위에 유람선 한 척이 떠 있었다.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보낸 배다.
우리가 호숫가의 나루터에 모습을 드러내자 배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배에 미리 타고 있던 일행들이 우리를 알아본 것이다.
곧 모두가 배에 오르자 배가 뭍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는 지난밤 내내 지속됐던 정신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 심적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위기 속에서도 결과적으로 우리 합숙조만큼은 어떻게든 살려서 피신을 시킨 것이다.
다들 내게는 소중한 이들이기에 최대한 지키고자 했는데, 좀 다친 이들은 있어도 다행히 불구가 된 인원은 없다.
여담이지만 이러면 제갈수광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다.
그는 나를 이 일행의 책임자로 여기고 있었을 게 빤한데, 그런 면에서의 역할도 다한 셈이다.
들어보니 중대형 유람선이라고 한다.
경비 무사들도 포함된 인원들이기에 큰 배를 보낸 모양이다.
큰 유람선은 처음 타 보는데,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보낸 배답게 내부 시설은 매우 호화로웠다. 청여홍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깔끔한 배다.
배에는 치료 도구들을 포함하여 필요한 물품들도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다행히 의원도 대기 중이었다.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서 일하는 의원이라고 한다.
의원은 서둘러 중상자들부터 돌보기 시작했다.
널찍한 공용 대기실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경비조장 이추관이 내게로 다가왔다.
“들어보니 추격자들을 막느라 내상을 크게 입으셨다고 하더구려. 다른 분들도 적잖은 상처들을 입었던데, 정말로 고생들이 많으셨소. 그리고 고맙소.”
“어찌 되었건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내가 대꾸하자 이추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들어보니 우리가 일차 접선 장소 쪽으로 요청했던 배에도 의원이 승선해 있다고 하더구려. 남창지점 인근의 의원(醫院)에서 급하게 수소문하여 데려온 의원(醫員)이라는 모양이오. 중상자들이 많으니 일단 그 배와 만나기로 한 지점으로 간다고 하오.”
한밤중이라고는 하나, 연주상단의 남창지점 정도 되는 곳에서 다급하게 부탁을 한 마당이라 그 의원으로서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이추관이 다시 말했다.
“그 배와 만나면 우리는 그쪽 배로 갈아타고 남창지점 쪽으로 향할 것 같소. 그때가 되면 정신이 없어서 서로 인사도 못 나눌 것 같으니 이렇듯 미리 인사를 하고자 온 것이오. 아까도 말했듯 고맙다는 얘기도 전할 겸,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할 겸.”
“장원에서 지내는 내내 이 조장님을 비롯한 무사님들 덕분에 마음 놓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저는 종종 연주상단의 남창지점에 가니 그곳에서 뵙게 되면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추관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때쯤, 뒤쪽에서 송유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내가 고개를 돌리자 송유하가 말했다.
“방에 치료 준비 마쳤어요.”
그러자 이추관이 말했다.
“가서 치료받으시오.”
이에 그를 향해 포권해 보인 후 돌아서서 송유하의 뒤를 따랐다.
송유하가 이끄는 방으로 들어섰다.
배에 먼저 타고 있었던 송유하는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말끔한 모습이었다.
다만 머리카락의 물기가 다 마르지 않아서 아직 머리를 묶지는 않은 모습인데, 그게 또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의 미모를 발산하는 중이다.
화폭에 담아놓고 싶은 모습이다.
옷도 송유하가 평소에 입는 옷이 아니라 처음 보는 옷이었다. 새 옷인 것 같은데 딱 봐도 고급스러운 원단이다.
내가 옷을 가만히 바라보자 송유하가 말했다.
“여홍이가 갈아입으라며 가져다줬어요. 저 보자기 안에 오라버니 옷도 있어요. 이 배에 원래 준비되어 있던 옷인가 봐요. 치수가 잘 안 맞아도 이해해 달래요.”
연주상단 남창지점에서 준비해 둔 옷이니 고급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전투를 치른 옷이고, 행낭 안에 한 벌 챙겨놨던 건 이미 다 젖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저 옷을 입기는 입어야 할 것 같다.
방 안에는 물동이와 치료에 필요한 물품들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아까 배에 오른 나를 보자마자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더니 이걸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특하고 예쁘고 고맙고.
그렇다.
내가 상의를 벗자 송유하가 물에 적셨던 깨끗한 천으로 내 등 쪽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나는 내상도 내상이지만 군데군데 외상들도 있다.
부리부리와 싸우다가 입은 상처들이다.
고수들과 싸우다 보면 아무리 그들의 기운을 잘 막고 잘 비껴내도 곳곳에 상처들이 남는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날카로운 기운들이기 때문이다. 목숨에 지장은 없으나 나중에 보면 어느 정도의 치료는 필요한 상처들이기도 하다.
내 상체를 조심스럽게 닦으며 송유하가 말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흉터가 훨씬 더 많아졌네요.”
“아무래도 기동타격조에서 활동할 때 전투들이 잦기도 했고, 매 전투마다 격렬하기도 했으니까.”
“다행히 오늘은 외상이 심하지는 않네요. 한데 듣자 하니 내상을 심하게 입으셨다고······.”
“지금은 그나마 괜찮아졌어. 당분간은 무리하면 안 되겠지만.”
그러자 송유하가 잠시 조용히 내 등을 닦아주다가 말했다.
“오늘 보니 오라버니가 전투에서 왜 그렇게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건지 알 것 같았어요. 항상 그렇게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으시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이시니까······.”
송유하의 목소리가 갑자기 크게 일렁이며 떨리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얘가 평소에 감정이 무뎌 보여도 나 때문에 한번 울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우는 애다.
울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즉시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아, 참! 아까 보니 누이 궁술 실력이 정말 어마어마······.”
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송 오라버니, 안에 있어요?”
활기찬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은무였다.
“혹시 옷 갈아입는 중이라도 상관없이 바로 들어갈······ 아니, 아니지. 지금은 나 혼자 온 게 아니지, 참.”
유은무의 목소리가 이어졌는데, 내 등에 마른 천을 대고 있던 송유하가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야, 야, 야! 유은무!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소릴랑 하지 말라고!
그딴 식으로 말하면 평소에 너 혼자서는 아무 때나 내 방에 막 드나드는 것 같잖아!
“에구. 은무 언니는 그 무슨 남세스러운 말씀이세요. 송 조교님에게 폐 될 말씀은 함부로 하지 말아주세요.”
포연월이다.
너도 있었냐?
“볼일 있으면 들어들 와.”
쟤들 덕분에 송유하가 울 일은 없을 것 같다.
유은무와 포연월이 내가 머무는 선실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포연월이 양손으로 빠르게 얼굴을 가리며 짧은 음성을 내뱉었다.
“어머낫······!”
내가 상의를 탈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얘야, 너 스스로 더 잘 알겠지만 얼굴을 그런 식으로 가리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 넓게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네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하나도 안 가려지고 있다고, 지금.
유은무가 말했다.
“아, 송 언니가 이미 와 있었구나. 저도 얼른 도와드릴게요!”
눈빛에서 순수한 도움의 의도는 거의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본인의 욕망만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곧장 와서 내 오른쪽 뒤에 앉은 유은무는 역시나 젖은 천 대신 본인의 손으로 내 상체를 만지기 시작했다.
“안녕, 송 오라버니의 근육들아? 오랜만이야. 우와! 어쩜 너희들은 그전보다 훨씬 더 질기고 단단해졌구나!”
살다 살다 남의 근육한테 말 거는 애는 또 처음이다.
하여튼 얘 때문에 웃겨 죽겠다.
유은무의 말마따나 꾸준한 신체 단련 덕분에 예전에 비해 근력도 더 늘었다.
참고로 아까 부리부리와 은룡삭을 잡아당기던 힘 싸움에서 버티며 무게중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근력 덕분이다. 공력만으로 힘 싸움을 했으면 당연히 내가 불리했을 것이나, 강한 근력이 뒷받침되어 줬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포연월은 어느새 얼굴에서 양손을 내린 상태다.
그녀는 몸에 담요를 덮어쓴 채로 멀뚱멀뚱 서 있다.
싸울 때 입고 있던 옷을 아직 갈아입지 못한 모습이다.
“연월이는 왜 그냥 그러고 섰어? 너도 다쳤잖아. 가서 얼른 씻고 치료받아.”
“아, 저는 언니들의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조교님께 침부터 놔드린 후에 가서 씻고 치료받고 하겠습니다.”
“침?”
“네. 대사형이 놔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내상 치유에 도움이 되는 침술이 있어서······.”
이제는 쟤가 소요곡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소요곡의 침술이면 확실히 도움이 되긴 될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후에 물었다.
“그런데 대사형? 백 선배님 말고도 사형제가 많은가?”
“대사형 아래로 사형이 한 명 더 있고, 그 아래로 사자가 한 명이 있습니다. 막내가 접니다.”
사자(師姉)란 사문의 손위 누이다.
‘자매(姉妹)’라고 할 때의 ‘자(姉)’다.
“네 명?”
“네.”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쯤 뒤에서 유은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월아, 네 침 그거, 어설픈 거로는 안 돼. 이 질기고 단단한 근육을 찌르고 들어가려면 강철 침이 필요해. 아, 망치도 필요할 수 있어. 박아 넣어야 할지도 모르거든.”
야잇! 그럴 리가 있겠냐!
“푸흡. 은무 언니는 정말 너무 재미있으세요.”
포연월이 대꾸하자 뒤에서 유은무가 말했다.
“쟤 봐? 재미있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니까? 송 오라버니가 마른 체형에 근육이 우람해 보이지 않아서 지금 그 소릴 하는 거지? 와서 만져 봐. 일단 만져 보고 얘기해. 니네 대사형과 이사형의 근육을 만져봤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다르다니까? 장담하는데 분명히 다를 거야.”
“아니, 유 매. 내 근육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고 남들보다 약간 더 단련된 정도라고. 연월이네 사형들이 훨씬 더 단련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포연월이 움직였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조교님.”
얘야, 내 허락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미리 움직일 거면 뭣 하러 허락을 구하는 거냐?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뭐, 쟤 같은 경우에는 침을 놓으려면 어차피 만지게 될 거긴 하다.
“은무 언니도 참. 아무리 송 조교님의 근육이 단련이 잘돼 있다고 해도 자꾸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송 조교님만 괜히 부담 느끼시잖······.”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 쪽을 만지던 포연월이 순간적으로 손동작을 멈추며 말도 멈췄다.
이후에 포연월은 잠시 동안 말없이 내 어깨와 가슴 위쪽, 등 쪽의 근육들을 꾹꾹 누르기만 했다.
놀란 느낌이 손길에서 전해지고 있다.
“훗! 그럴 줄 알았지. 그러게 내가 뭐랬어?”
유은무의 득의양양한 목소리였다.
포연월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 얼마나 신체 단련을 열심히 하셨으면 이렇게까지······.”
“이게 우혜도 인정한 근육이라구.”
그렇듯 두 소녀가 재잘대는 가운데 상처 치료가 계속되었다.
상처 치료가 끝나자 포연월의 침술이 이어졌다.
상체의 이곳저곳에 공들여 삼십여 개의 침들을 꽂고 난 포연월이 말했다.
“내상 치유가 목적이라서 이대로 한 식경 정도 계시면 좋긴 한데, 만약 불편하시다면 반 각 남짓 지난 후에 뽑아드리겠습니다.”
“한 식경 후가 좋다면 그렇게 하지. 이대로 운기조식이나 취하고 있을 테니 연월이도 그동안 씻고 치료도 받도록 해.”
“알겠습니다.”
곧 송유하와 유은무, 포연월이 물동이와 다 쓴 치료 도구 등을 들고 내 방을 나섰다.
한 식경 남짓 운기조식을 취하다가 멈추자 포연월이 와서 침을 뽑아갔다.
이후에 나는 하체를 스스로 닦고 옷을 갈아입은 후 또다시 운기조식을 취했다.
이렇듯 여유가 생긴 김에 회회심공을 통해 내상을 최대한 많이 다스려놓고 싶기 때문이었다. 포연월의 침술이 효과가 있었는지 내상이 진정되는 속도도 빠른 느낌이었다.
중간에 배가 멈추고 바깥이 약간 소란스러워졌는데, 경비 무사들이 다른 배로 옮겨 타는 소리였다.
경비조장 이추관과 이미 인사를 나눈 마당이라,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선실 안에서 계속 운기조식만 취했다.
포연월이 침을 뽑은 후부터 따져 봐도 최소 두 시진(4시간) 동안은 운기만 한 것 같다. 내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에 취해서 운기조식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쯤이면 동이 트고도 남았을 듯하다.
유람선은 계속 나아가는 중이다.
눈을 좀 붙일 생각으로 누웠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잠은 오지 않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만 났다.
생각해 보니 엊저녁 이후로 물과 응급 내상약 말고는 아무것도 배 속에 넣은 게 없다.
조금만 배를 채운 후에 눈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선실을 벗어나 식당 쪽으로 걸었다.
그러던 한순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매를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배 안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시 집중하며 기운을 탐색했다.
그 직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의 자연지기들이 선실 중에서 한 곳을 향해 서서히 소용돌이치며 스며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나도 겪어 봤기 때문이다.
전생에 한 번, 현생에 한 번, 총 두 번이나 겪어 봤다.
이건 누군가가 절정에 오른 직후의 현상이다.
그리고 자연지기가 향하고 있는 구심점에 있는 건 길초량이다.